지난 10월1일은 조준영시인과 약속해 인사동가는 날이다.
‘유목민’에는 조준영씨와 그림 그리는 이청운, 장경호씨, 연극하는 이명희씨 등
반가운 분들이 모여 술판을 벌여놓았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술맛 나게 했는지, 소주가 입에 짝짝 달라붙었다.
아마 선선한 바람에 날리는 계절 탓도 컷을 것이다.
뭔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따스한 정이 그리운게 가을이 아니던가.

조준영씨가 마련한 술상은 푸짐했다.
봄 쭈꾸미 가을낙지라지만, 가을 백숙도 괜찮았다.

기분 좋아도 옆 손님 눈치 보여 노래 한 곡 못 한 것 보니, 나도 늦게사 철들었나보다.
여배우의 수다에 “이명희 없는 술자리는 앙코 없는 찐빵”이라고 부추기기도 했다.

술 취해, 사진 찍으러 인사동 한 바퀴 돌아 오니, 이미 파장이다.
이차는 술집 대신 팥빙수 집으로 갔다.
술 깨는데 도움이 되고 맛은 있지만, 술꾼 체면이 말이 아니다.

열심히 말하는 이청운씨 말은 솔직히 삼분지 일 정도밖에 못 알아듣는다.
말이 어눌하기도 하지만 내 귀도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심히 그를 지켜보았다.

이청운씨는 외로운 사람이다. 그래서 술이 취하면 누구에게나 말을 건다.
버스를 기다리는 아낙에게 “오케이”를 연발하기도 하고
버스에 올라서는 옆 자리의 젊은이에게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녹번동에 내려 이집 저집 술집들을 찾아다녔으나,
두 늙은이의 술 취한 행색에 모두들 손을 내 저었다.
어느 꼬치 집에 간신히 입성하여 아내를 불러냈다.

두 사람의 작별사진 한 장 찍으라며 카메라를 내밀었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지난 9월4일은 내 생일이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로 스스로 생일을 챙기지 않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더 많았으나,
이젠 아내가 대신 챙겨,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번 생일은 추석 대목장과 겹쳐 구미 해평장에서부터
안동 구담장, 문경 가은장을 돌아다니는 촬영 길에 나섰다.
구미 해평장에서 일하다 공윤희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오후7시경 ‘유목민’에서 생일잔치를 할 것이니 참석하라”는 것이다.
느닷없는 전갈에 당황했다.

 

작업을 서둘러 일찍 상경할 수밖에 없었고, 가까스레 약속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공윤희, 전활철씨 외에도 장경호씨가 기다렸고,
뒤 이어 조준영, 노광래, 김명성씨가 나타났다.
고맙게도 전활철씨는 미역국을 끓여놓고, 공윤희씨는 생일케익까지 준비했으나,
촛불켜고 박수치며 축하하는 절차들이 몸에 익지않아 어색했다.

주인공이라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이 날은 술을 마셔도 덜 취했다.
담담한 기분으로 소주를 마시며 끝나기만 기다렸으나 
피로감이 몰려와 결국은 탈진 상태가 되고 말았다.

못난 사람 생일을 거두어 준 공윤희, 전활철씨와 함께 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 달부터 용돈이 불어나  한결 마음이 든든하다.
정부에서 기초노령연금을 20만원으로 올려줘 고맙기는하지만,
그러다 나라가 거덜나지 않을지 염려된다.

강 민선생과의 오찬약속에 인사동으로 나가며, 밥값은 내가내기로 작정했다.
약속장소인 포도나무집에는 강 민선생을 비롯하여 김가배, 신동명선생 그리고 여행작가 정선모씨가 함께 계셨다.
오뎅탕과 복분자를 주문하였으나 음식도 나오기도 전에 신동명시인께서 계산해 버렸다.
급히 나오느라 은행에 들리지 못해 잠깐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 흔한 신용카드 한 장 없는 신세를 빨리 면해야 할텐데...

뒤늦게 이행자시인이 나타났다.
이행자시인은 술이 거나해지면 대화가 과거형으로 돌아간다.
옛날에는 어떠했고, 누구와는 어떻게 지냈다는 등 별 재미없는 이야기 일색이지만,
가끔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동요를 불러주는 애교도 있다.
그 날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된 것은, 이행자시인이 50여 년 동안 왼쪽 무릎 없이 버텨왔다고 한다.

멀쩡한 다리로도 걷기 힘들어 짜증 부린 자신이 부끄러웠다.
분위기를 바꾸려 느닷없는 이행자시인의 애정 편력을 물었는데, 그 답이 걸작이었다.
“연가는 많이 불렀지만 히트곡이 없다”는 것이다.

오후8시부터 시작되는 ‘넋전 아리랑’을 보고 가려니,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전시장도 가고 사진도 찍었으나 도무지 시간이 가지 않았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통인가게 대표 김완규씨도 만났고, 미술평론가 유근오씨도 만났다.

정말 일하는 것 보다 노는 게 더 힘들었다
공연이 끝날 무렵, ‘유목민’으로 오라는 공윤희씨의 전화가 왔다.
'유목민'에는 공윤희, 전활철, 김왕기, 김명성, 신현수씨가 있었고, 뒤늦게 노광래씨를 비롯하여 

무세중, 무나미선생도 오셨다. 몸이 편치 않으니 술 맛도 없지만 즐겁지도 않았다.
하루종일 마신 술이라고는 ‘포도나무집’에서 마신 복분자2잔, ‘예당’의 막걸리2잔,
‘어머니가 구워주신 생선구이’에서 소주2잔 등, 몸 생각하느라 술을 찔끔찔끔 마셨으나,
결국 마지막 들린 ‘유목민’에서 취하고 말았다.

 

 

 

 

 

 

 

 

 

 

 

 

 

 

 

 

 

 

 

 

 

 

 


“장사꾼들만 판치는 인사동에 무슨 예술과 풍류가 남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인사동 골목골목을 돌다보면 인사동 기억을 소주잔에 부어 마시는 예술가들도 있고, 그들이 즐겨 찾는 아지트도 가뭄에 콩 나듯 한 두 곳은 남아있다.

 

인사동 술집하면 이미 고인이 된 서양화가 강용대, 사진가 김종구, 시인 적음스님을 비롯한 인사동 골통들이 죽치던 실비집(‘실비대학’이라 부름)부터 생각난다. 그 실비대학 총장님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행방조차 묘연하지만...

50여 년 전 민병산, 박이엽, 천상병, 강 민, 민 영, 신경림, 황명걸, 채현국씨 등의 여러 선생님들이 관철동에서 인사동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며 인사동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그 인사동의 선구자적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란 바로 목순옥 여사가 운영했던 ‘귀천’을 기점으로 ‘실비집’과 ‘누님칼국수’, ‘하가’, ‘시인통신’등 이다. 이젠 고담준론을 나누던 그 대폿집들은 물론 객들도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거나 사라지고 있다.

 

예술로 빌어먹는 술꾼들이 외상술에 개똥철학 풀던 그런 대폿집들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아직 인사동을 떠도는 사람들이 남아 있기에 그 풍류적 가치를 지키려는 술집도 생기는 것이다. 인사동을 떠도는 예술가들이 원하는 공간이란 흥에 겨워 즉석에서 유행가라도 한 곡 뽑을 수 있는 마음 편한 술집이다. 신용카드 때문에 외상술은 안 통하겠지만 안면 있는 벗들이 곳곳에 있어 공술도 가끔 얻어 마실 수 있고, 자정이 넘었다고 손님들을 칼같이 내쫓지도 않으며, 소주잔에 담배연기 날려가며 마실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술집 말이다.

 

인사동 16길에 있는 ‘노마드(유목민)'가 그러한 요건을 두루 갖춘 대폿집이다.

’노마드‘는 오랫동안 인사동에서 민예품을 만들어 왔던 전활철(60세)씨가 2년 전에 만든 술집인데, 인사동 술꾼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공간이 그리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본래 애주가로 아무리 마셔도 취기 한 번 보이지 않지만, 매일같이 손님들과 어울려 술을 마셔대니 몸이 성할지 걱정스럽다.

 

’노마드‘의 술집 문을 열면 어디에선가 본 듯한 예술가들이 구석구석 박혀 있고, 그 시절의 감정을 자극해가며 술집을 흥건히 적셔주는 음악 또한 기가 막힌다. 가끔은 ‘뮤아트’ 김상현씨를 비롯한 뮤지션들의 생음악도 감상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얼큰하게 취한 전활철씨의 열창도 들을 수 있다. 술 종류야 어느 집이나 다 비슷비슷하겠지만 이 집에서 자랑할 만한 술안주로는 홍어찜이나 가오리찜, 귤전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두부를 곰삭은 묵은지에 싸 먹는 두부김치 맛이 압권이다.

 

그 곳에 들락거리는 인사로는 철학자 채현국, 행위예술가 무세중선생을 비롯하여 시인 강 민, 김신용, 조준영, 김명성, 서양화가 이청운, 허미자, 장경호, 김언경, 차기율, 전인경, 전강호, 도예가 김용문, 신동여, 황예숙, 음악인 김상현, 가수 하양수, 김추자, 연극배우 이명희, 소설가 배평모,  패션디자이너 손성근, 그래픽 디자이너 김의권, 인사동 마당발 노광래, 현장스님, 덕원스님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입이 아프다.

 

‘노마드’ 위치는 인사동 16길인 ‘사랑방모텔’ 골목으로 들어가 종로경찰서 가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나온다.

근간에 한 번 들리시어  막걸리나 한 잔 드심이 어떨지?

 

 

 

 

 

 

 

 

 

 

 

 

 

 

 

 

 

 

 

 

안승일씨의 백두산전에 갔던 인사동 유목민 몇 몇 분들이 행사가 끝난 후 ‘노마드’를 찾았다.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박윤호, 임헌갑, 김용문, 황예숙, 임태종, 권영진, 김혜련, 희가비, 이재희,

박흥식, 최혁배, 이명희, 정기범, 공윤희, 노광래씨 등 여러 분들이 왔으나, '노마드'에 자리가 부족했다.

김명성씨를 비롯한 일부는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했으나  대부분 덕원스님을 비롯한 지인들의 자리에  합석했다.

나는 이명희씨와  함께 장경호, 황정아씨가 차지한 구석자리에 끼어 앉을 수 있었다.
황정아씨는 몇일 전, 마산 이강용씨 전시에서 만난 적이 있지만 장경호씨는 너무 오랜만에 만났다.

올 5월경에 있을 개인전 준비로 바쁘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오늘은 사진가들의 오찬회에서 일찍부터 술이 취해, 사진전시장에서 실수를 더러 한 모양이다.

술이 깨기도 전에 전시장에서는 와인을, '노마드'에서는 소주를 마셨는데, 몸은 힘들지만 기분은 좋았다.

내일 일찍부터 출발할 촬영스케줄이 마음에 걸렸으나, 날이면 날마다 먹는 술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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