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망국으로 가는 길을 재촉한 통상수교거부정책의 주인공 흥선대원군의 거처였던 운현궁(雲峴宮)에 가보셨는지요? 고종이 등극하기 전에 살았던 잠저(潛邸)이기도 했던 운현궁은 대원군이 이곳을 무대로 어린 고종을 대신해 10여년간 집정한 것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원래 궁은 아니었으나 고종이 즉위하면서 ‘궁’이라는 이름을 받아 점점 규모가 커졌습니다.

사대부 집이라고 하기보다 궁궐 내전에 가까웠다고 하니 그 위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됩니다. 하지만 세월의 파도를 넘으면서 지금은 규모가 크게 줄었습니다. 비록 일제와 6·25 전쟁, 개발시대를 거치면 많이 파괴됐지만, 옛 영화에 걸맞은 나무가 한두 그루는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찾아가보았습니다.

 

 

운현궁의 느티나무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을 출발점으로 삼아 북쪽의 낙원상가 방면으로 갔습니다. 낙원상가 옆으로 난 좁다란 음식점 길을 지나 안국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운현궁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입구의 안내판에는 서운관(書雲觀)이 있던 고개에서 유래한 지명을 따서 운현궁이라 불렸다고 적고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나무가 느티나무입니다. 오른쪽의 수직사 주변을 비롯해 운현궁 곳곳에서 느티나무가 보입니다. 모두 어린 나무로, 아마도 1993년부터 시작된 복원 공사를 하면서 심어졌을 것입니다.

 

노락당의 모란
 

수직사는 운현궁을 지키던 수하들이 사용한 곳으로, 복원 공사 때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수직사를 우측에 두고 곧장 가면 노안당이 나옵니다. 노안당은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의 주된 거처였습니다. 1864년(고종 1년) 3월에 노락당과 함께 상량하고, 같은 해에 완공하였습니다.

혹시 노안당에서 난을 치는 흥선대원군을 만나더라도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형이니까요. 이 주변에 심어진 여러 나무 가운데 씨를 맺은 모란이 가장 눈에 띕니다. 봄날에는 크고 화려한 꽃을 만개했을 것입니다.

 

노락당
 

옆으로 이어지는 노락당은 안채이고, 운현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고종이 명성황후와 가례를 올렸다고 합니다. 훗날에 있을 비극의 역사는 전혀 예감하지 못한 채 말이죠.

 

남행각의 중국단풍(왼쪽)과 낙우송(오른쪽)
 

남행각 뒤쪽으로는 중국단풍(좌측)과 낙우송(우측)이 형제처럼 나란히 붙어 서 있습니다. 이런 나무들은 제아무리 큰 나무라 해도 조선 시대에 심었을 리 없는 도입종입니다. 가로수로 많이 심고 오성기처럼 새빨간 단풍이 아름다운 중국단풍은 중국이 원산지인 나무이고, 잎이 새의 깃털처럼 떨어진다 하여 이름 붙여진 낙우송은 북미가 원산지인 관상수입니다.

 

노락당 앞 매실나무
 

노락당을 나오면 매실나무가 보입니다. 운현궁에는 모란과 함께 매실나무를 많이 심어 궁의 느낌을 더하였습니다. 물론 모두 후세에 심어진 것들이겠지만요.

 

이로당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노락당과 함께 안채로 쓰였던 이로당으로 연결됩니다. 노안당과 노락당보다 늦은 1869년(고종 6년)에 지어진 곳으로, ‘이로(二老)’는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 여흥 민씨를 의미하는 말로 해석합니다. 한마디로 대원군의 부인인 민씨가 살림하던 곳입니다.

 

이로당 뒤편의 나무들

 

노락당에서 이로당까지는 복도각을 통해 이어지게 하였고, 그것이 운현궁의 특색이라고 합니다. 안채끼리는 비가 오는 날에도 신발 신지 않고 복도를 통해 이동할 수 있게 해놓았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복도각 밑으로 난 작은 문으로 고개 숙여 지나가면 여러 나무가 심어진 것이 보입니다. 감나무, 모과나무, 대추나무 등입니다.

 

감나무의 껍질과 굼벵이의 허물
 

모두 푸른 열매를 달고 어서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는 유실수입니다. 그중 감나무는 나무껍질이 조각조각 갈라지는 점이 특징이라 금세 알아볼 수 있는데, 이곳의 감나무 껍질을 보면 매미의 단골 우화 장소로 쓰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유물전시관 쪽의 호두나무

 

이로당을 나서면 우측으로 작은 기념관이 보입니다. 여기에도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는 나무가 또 있습니다. 호두나무입니다. 호두나무는 중국 및 서남아시아가 원산지인 나무로, 고려 중엽에 류청신이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 묘목을 가져와 천안에 심은 것이 시초라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천안에는 호두가 많이 나고, 광덕사에는 가장 오래된(약 400년 추정) 천연기념물 제398호 호두나무가 있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호도과자’가 천안의 명물이 된 건 당연한 일입니다.

호두의 본딧말이 호도(胡桃)라서 그런지 천안에서는 호두과자라고 하지 않고 호도과자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 맞다 틀리다 하면서 딴죽을 거는 분들이 간혹 있지만 호도과자는 일종의 고유명사로 인정하면 그만이 아닐까 싶습니다.

운현궁은 그 역사성과 연결 지을 만한 나무는 없어 보였습니다. 창덕궁에서 볼 수 있는 정도의 오래된 나무는 없고, 주변 경관에 어울리는 조경수들을 후세에 들어 복원하면서 심어놓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역사 있는 나무가 없는 고궁!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지난한 시련의 역사를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어서 더욱 허하게 느껴집니다. 마음속에라도 역사의 자양분을 먹고 사는 큰 나무 하나 키워야겠습니다.

조선비즈 /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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