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말이든 평일이든 할 것 없이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 인사동을 찾았다. 그곳에서 따끈한 차 한 잔을 하고 찾은 근처 운니동에 있는 운현궁(雲峴宮)에 잠깐 들렀는데 마침 유난히 추운 날씨 때문이었는지 여느 때와 달리 방문객이 적어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1990년대 초중반 수십억 원을 들여 실시한 보수공사로 잘 다듬어진 운현궁은 그 자체가 갖는 아름다움과 함께 구한말 비운의 역사가 갖는 처량함때문인지 답사 내내 차분한 기분이 들게 했다.

먼저 우뚝 선 솟을대문을 통해 운현궁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이 나온다. 위엄있어 보이는 노안당은 흥선대원군이 기거하던 생활 공간이자 고종 즉위 이후 섭정을 하던 구한말 정치의 중심과도 같은 곳이다. 다른 한옥들과는 달리 툇간이 노안당의 삼면을 빙 두르고 있고 마루는 질서정연한 우물마루다.

조금 더 들어가면 노락당(老樂堂)이 나온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열린 곳으로 유명한데, 가례는 왕이나 왕세자가 왕비나 세자빈을 맞는 혼례를 의미하며 '국혼'이라고도 한다. 그 안쪽에 있는 이로당(二老堂)은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여흥부대부인 민 씨가 거처하던 안채로 왕궁으로 치면 중전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그런데 운현궁 답사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운현궁의 바로 북서쪽에 붙어 있는 주한일본대사관 일본공보문화원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일본공보문화원은 지난 1971년 주한일본대사관 공보관실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래 1988년 주한일본대사관 광보문화원을 거쳐 1993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그 자리는 원래 구한말 당시 일본의 헌병 초소가 있던 곳이다. 운현궁에서 생활하던 흥선대원군을 비롯해 조선황실 인사들의 동태 감시가 그들의 주요 임무였다.

또한 운현궁 뒤쪽에 있는 '양관(洋館)'이라는 근대 건축물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덕성여대 법인사무국 건물로 쓰이고 있는데, 일제가 흥선대원군의 장손인 이준용에게 선사한 건물로 황실 인사들을 회유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보통 문화유산을 답사할 때면 해당 건물이나 현장만을 둘러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주변의 상황들을 함께 두루 살펴볼 때 비로소 그 문화유산과 관련한 역사의 이면과도 대면할 수 있다.

권기봉 /'다시,서울을 걷다' 저자

[스크랩 / 메트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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