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호씨가 일산에서 그룹전 한다는 소식이 '인사동연가' 카페 글방에 올랐다.
개막 한 시간 전에서야 알게 되어, 하던 일을 제켜놓고 일산 '아람누리 미술관'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광호씨는 몸이 불편해 외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럴 때 만나지 않으면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전시하는 '일산미술인회'는 15년전 서양화가 이목일씨와 지금의 회장이 주도하여 만든 미술인모임으로 알고 있다.

그 당시는 미협지부의 실력 없는 화가들이 득세하여 새로운 모임을 만들었다는데,

작가들을 선별해 가입시켜서인지 전시작들의 수준이 보통은 넘었다.
박광호씨 외에도 아는 작가가 두 분 더 있었지만, 건망증이 많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데다,

전시작들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이야기를 꺼낼 형편이 아니다.

반평생동안 생선뼈만 그려 온 박광호씨의 최근작은 늘 궁금했는데,

아쉽지만 오늘 걸린 작품으로 대략의 흐름은 가늠하게 되었다.

한 때는 생선 뼈가 상형문자처럼 너무 도식적이어 약간 회의감을 가진 적도 있지만,

오늘 걸린 작품에서 그 형상의 꿈틀거림을 보게 되어 또 다른 기대를 하게된 것이다.

언제 열릴지 모르지만 벌써 그의 개인전이 기다려진다.

회원전 개막식을 끝내고 모두 뒤풀이에 갔으나, 우리만 남아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진 고생 끝이지만, 두 아들 잘 키워 어엿한 사회인으로 내놓았다기에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광호씨의 처 신경희씨가 4년전 자유문학으로 등단해 시를 연재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다음달 중국 청도 청우림갤러리에서 그림전시회까지 갖는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두 내외가 그림 그리며 잘 살아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기름 넣으라며 돈까지 주니 기가 막혔다.

그를 알게 된 지도 어언 4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내가 부산 남포동에서 '한마당'이란 국악주점 할 때, 단골손님으로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가난하지만 세상에 굴하지 않고 그림그리는 모습이 늘 의연했지만, 때로는 애잔하기도 했다.

술이 취해 술집의자에서 꼬부려자기도 했으나 어찌 보면 둘 다 그 때가 행복한 시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잘난 사진 때문에 장사 팽개치고, 서울로 야반도주하여 지긋지긋한 제2막이 시작된 것이다.
성북동 외딴 곳에 달세방 하나 얻어 놓고 '월간사진'이란 잡지사에서 일할 무렵이다.
인사동에서 술 마시다 자정이 가까워 버스 타러 가는데, 포장마차에서 "형"하며 부르기에 돌아보니 광호씨였다.

죽었던 친구 살아온 듯 반가웠으나, 불러놓고는 술이 취해 그 자리에 뻗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극적으로 이산가족 만나듯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세월이 30년이 되었건만 아직 둘 다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겁지급 살아가는데,

그는 몹쓸 병에 걸려 걸을 수 조차 없으니 더 안타까운 것이다.
스스로 만든 팔자이긴 하나 죽는 날까지 좋아하는 그림 그리고, 사진 찍으며 사니 더 이상 바랄 것은 없구나.

죽으면 돈 싸 가지고 가지는 않으니까...

"제발 성질 좀 죽이고, 고생한 도화엄마 잘 다독여 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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