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하루 앞 둔 오후 2시 낙원동 떡전골목. ‘대한민국 떡집 1번지’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거리는 한산했다.

사진=이원광 기자

 

3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낙원동 떡전골목. 한때 대한민국 떡집 1번지로 '명절에 횡단보도까지 줄을 섰다'는 골목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번화한 떡집을 상상했다면 길을 잘못 든 줄 착각할 정도다. 골목 구석구석을 누볐지만 눈에 띄는 떡집은 9곳 정도였다.

조선 말기 나라가 어려워지며 궁중을 나온 상궁과 나인들이 떡 장사를 시작한 곳. 떡전골목은 6·25전쟁 직후 배고픔을 달래던 피난민들이 떡을 사고 먹던 장소였다. 그러나 한 때 50여 곳이 넘었던 떡집은 급증한 빵 소비와 기계식 떡의 보편화로 20년 전부터 점차 자취를 감췄다.

◇기대보다 시름이 커진 명절 대목

줄어든 떡집 수만큼 상인들에게 명절은 '대목'이 아니라 '시름'이 됐다. 15살부터 50여년간 골목을 지켜온 평양떡집 사장 이모씨(67)는 "내년에는 설에 쉬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30년 전 설날에는 가마니에 쌀과 섞여 있는 '뉘(탈곡이 덜 된 쌀)'만 모아서 떡을 만들어도 한 판을 칠 정도였다"며 "이젠 어제도, 오늘도 아침부터 넋 놓고 앉아 있을 뿐"이라고 했다.

3대째 가업을 이어 온 90년 전통의 낙원떡집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인과 함께 낙원떡집을 운영하는 사장 김정귀씨(73)는 "설 매출이 작년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IMF시절에는 경기 탓에 매출이 줄었었는데 이제는 떡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떡전골목의 쇠퇴는 기계식 떡의 보편화와 떡의 맛보단 모양을 추구하는 세태에도 이유가 있다는 게 이곳 사람들의 말이다. 김씨는 송편부터 꿀떡, 영양떡에 이르기까지 한 번에 기계로 만들어지는 것을 두고 "기계로 뽑은 떡이 맛의 평준화를 이끌었다"며 "떡 맛을 찾아 낙원동을 찾는 것은 옛말이 됐다"고 말했다.

평양떡집의 김모씨(66·여)는 "강남의 한 품평회에 간 적이 있는데 떡 맛도, 체리 맛도, 빵맛도 아닌 '쌀덩어리'를 먹은 기분이었다"며 "인사동과 강남 떡은 작고 예뻐 인기지만 옛 맛이 사라져 '눈으로만' 먹는 떡이 됐다"고 꼬집었다.


오후 4시 낙원동 떡전골목.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한 낙원동 떡전골목을 알아채기 어려웠다. /사진=이원광 기자

 

◇그래도 자리 지키는 상인들 "전통 지켜나가야"

떡 상인들은 고유의 떡 문화가 점차 사라진다는 점을 가장 아쉬워했다. 김씨는 "40년 동안 일하며 전통떡으로 만들었던 가진편과 쌍계피 등을 찾는 사람은 이제 없다"고 씁쓸해 했다. 가진편은 꿀편, 백편 등의 떡 한편에 공양 한층을 쌓고 종이를 놓는 방식을 반복해 만드는 떡이고 쌍계피는 계피떡을 2개 붙이는 떡이다.

김씨는 전통 떡을 찾지 않는 문화를 두고 "떡을 전통문화로 인식하는 풍토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통 살린다고 나오는 말이 인사동이지만 인사동 떡들은 다 기계떡"이라고 지적했다.

골목에 남은 상인들은 그러나 떡집만큼은 포기할 수는 없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떡집을 30년 넘게 운영해 온 선일떡집 사장 김경화씨(57·여)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열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떡집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변 사람들은 떡집을 합쳐 커피숍만 운영하거나 떡 카페를 차리라고 권유하지만 나에게 떡집은 '자부심'"이라며 "떡 산업이 사양산업이라고들 하지만 우리 전통을 다 없애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