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의 인사동은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미국서 온 최정자 시인이 ‘귀천’에 계신다는 전갈로 나왔으나, 인사동 나올 형편은 아니었다.

요즘 신경을 너무 곤두세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데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인사동 길을 걸었으나, 마치 술 취한 듯 비틀거렸다.

카메라를 꺼내, 비오는 거리도 찍었으나, 대부분 흔들려 있었다.

‘귀천’에 계신 최정자씨는 고향친구들과 계셨고, 그 옆에는 정영신씨가 책을 보고 있었다.

내가 나타나자 최선생 친구 분들께서 서둘러 일어나셨는데, 핸드폰의 요금충전도 해야 하고,

미국에 보낼 화물 박스를 구하는 등, 할 일이 많단다.

일보러 나간 사이 혼자 꾸벅꾸벅 졸다 정신 차리려 잠시 나갔는데, 지나가던 ‘민예사랑’ 장재순씨를 만났다.

화가 문영태씨와 사별해 힘들지만, 항상 밝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최정자 시인은 경주에서 열린 국제펜클럽대회 초청으로 잠시 귀국하셨는데, 몇 일전 ‘유목민’에서 만났다,

그 자리엔 공윤희, 정영신, 김수길씨가 함께 했으나, 뒤늦게 사진가 박진호씨도 합류했다.

술이 취한 뒤에는 장경호씨가 등장한 것 같으나, 박진호씨와 이야기 나누는 사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날따라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아,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것이 죄가 되어, 힘들어도 다시 나온 것이다.

뒤늦게, 국수 좋아하는 최정자씨를 모시고 ‘안동국시’에 들려 마지막일지도 모를 만찬의 시간을 가졌다.

미국 이민가기 전인 8-90년대 자주 다녔던 인사동의 ‘누님칼국수’를 그리워하며,

밥값보다 더 비싼 9천 원짜리 안동국시를 먹었는데, 다들 맛있다니 다행이다 싶다.

최정자씨는 모래 미국으로 돌아가신다는데, 다들 몸이 편치 못하니 다시 뵐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외로움을 시로 달래며 사시니, 살아 계시는 동안 건강하고 보람된 여생을 보내길 빌 뿐이다.

그 날은 인사동에 나와 술 한 잔 마시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다.
이별에 대한 아쉬움인지, 삶에 대한 피로감인지, 떨어지는 빗물이 눈물 같았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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