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만 있었다면 세상사 비우고 사는 스님처럼 살 수도 있었겠으나

팔자가 그렇지 않은지 돈과 일, 인연에 얽힌 갖가지 욕망에 시달리며 산다.

돈은 아예 나와 인연이 없었던지 일찍부터 욕망의 조절대상이 되지 못했으나

사진과 관련된 일에서는 그 욕망을 버릴 수도 조절도 되지 않는다.

 

인사동으로 가거나 장에 가거나 어딜 가던 사진은 찍게 되는데,

많은 것들을 찍다보니, 찍는 것 못지않게 정리하는 일도 만만찮다.

그래서 밤늦도록 컴퓨터와 씨름해 아내로부터 종종 잔소리를 듣게 된다.

그의 중독 수준이라며...

 

아내 말처럼 적당하게 하면 좋으련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더라.

조금만조금만 하며 일에 빠지다보면 금세 한두 시간이 지나버린다.

특히 블로그 관리하느라 매일 같이 인터넷에 접속하다보니 더 하다.

카페까지 버리며 멀리하려 했으나, 이젠 블로그에 덜미 잡힌 셈이다.

 

블로그는 일기 쓰 듯, 인사동 자료들을 정리하기 위해 만들었으나

이젠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인사동을 더나드는 사람들을 찍다보니

당사자의 사적 기록에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스스로 일을 만드는 셈이다.

다 인연에 얽혀 사는데, 내가 할 일과 아닌 것을 칼같이 자르기도 쉽지 않았다.

 

몇일 전, 아내가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얻게 되어 함께 돌아다닐 기회가 생겼다.

그 동안만이라도 컴퓨터에서 해방되기 위해 일단 사진정리부터 않기로 작정했다.

김포 문영태씨의 살림집 전시회를 비롯하여 채현국선생 강연회와

춘천의 무세중선생 공연, 인사동, 정선 귤암리 등 곳곳을 기록했지만, 모두 그대로 뒀다.

 

그런데 닷새 만에 사진을 정리하려 책상 앞에 앉아보니, 이게 장난 아니다.

하루 온 종일 걸릴 분량인데, 어디 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습관을 바꾸는 것은 물론, 적당이 한다는 말이 참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닥치고, 눈에 보이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도 없지만, 미뤄 둘 일도 아닌 것이다.

 

여지 것 작업은 ‘꾸준하게’라는 말을 좌우명처럼 살아왔으나

이젠 ‘적당하게’라는 말을, 더 마음에 새길 때가 된 것 같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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