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도, 인사동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도 이제 몇 남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이청운씨는 2년 넘게 병원에 감금되어 있고,
시 쓰는 김신용씨는  젊어 지게를 많이 져, 관절이 아파 못나오고,
소설 쓰는 배평모씨는 풍기에 유배되었으니, 잘 만날 수가 없다.


그렇게 하나 둘 떠나가고, 흘러가는 게 이치라면 따를 수밖에...

지난 일요일 이청운씨가 입원한 ‘연세노블병원’에 잠시 들렸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나, 잘 가지지 않았는데,
모처럼 찾았더니 엄청 반가워했다.


이 친구는 가래가 많아 목에 구멍을 뚫어 빼 내고 있었다.
처음 구멍을 뚫어 호스를 박으려니 강력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박기는 박았으나, 폼에 살고 폼에 죽는 그로서는 스타일 구긴 것이다.
“야! 청운아~ 이제 그게 너만의 패션이야.”했더니 빙긋이 웃었다.

“꽃피는 춘 삼월되면 대포 한 잔 해야지!”라고 말했더니,
무표정하게 천정만 쳐다보았다.
좋아했던 지난번에 비해 마음에 변화가 생긴 듯 했다.
그 좋아하는 술이 마시고 싶지만, 어떻게 웬수 같은 걸 또 마실 수 있으랴.
마음에 새겨놓은 그림 그릴게 늘렸는데, 그 깐 술에 죽을 수 없다는 것 같았다.

24시간을 붙어 있는 이화백 부인의 행색도 환자나 다를 바 없었다.
이년 넘도록 간병하며 지냈으니, 남들 처럼 화장 한 번 해본지도 옛날이야기다.


에레베이터까지 따라 나온 부인에게 말했다.

“어쩌면 남편과 함께 한 시간은, 병원에서 함께한 시간이 더 많을듯합니다?”
고개를 끄떡였다. 늘 집과 작업실에서 떨어져 생활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작업에 파 묻혀 술과 담배를 달고 살았으니, 내외간의 정은 덜 했을 수도 있다.
이제 모든 일 다 떨치고 두 내외가 함께 부대끼고 있으니,
어쩌면 행복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친구야! 대포는 못하더라도, 봄되면 꽃놀이라도 가자.”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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