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부터 ‘프로젝트 장에가자2’ 정선전시가 시작되었다.

이 전시장은 정선문화원’에서 버려진 정선버스터미널 지하공간을 개조해 만든 문화공간이다. 

계속되는 초대전 유치로 터미널을 이용하는 관람객들의 반응이 좋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 1월에 있었던 서울전시 때 담당자가 찾아 와 정선전을 건의했으나 전시 공간도 다르지만,

같은 작품을 그대로 할 수 없어 전시일정을 늦춘 것이다.

새로운 기획에 따라 사진을 다시 제작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정영신의 ‘추억의 장터 풍경’과 조문호의 ‘정선아리랑시장의 신바람’으로 장터의 어제와 오늘을 함께 보여주며

퇴락해 가는 전통시장 기를 살리려하지만, 과연 얼마만큼 성과가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여름 피서 철에 나선 관광객들을 전시장으로 끌어 모으려는 계획은

피서객들의 전통시장에 대한 관심보다 주최 측의 홍보의지에 관객동원의 성패가 달린 것이다.

오는 7월31일부터 8월15일까지 주말을 이용해 실시하는 초상사진 퍼포먼서에

관객들이 몰릴 걸 예상하고 있으나, 아직은 초장이라 한산한 편이다.
부디 정선을 찾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정영신의 '추억의 장터풍경' 전시작 일부

 

 

 

 

 

                                   조문호의 '정선아리랑시장의 신바람' 전시작 일부

 

 

 

 



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 & 게리 위노그랜드 Garry Winogrand展
2015_0702 ▶ 2015_0920 / 월요일 휴관

 

 

ⓒ Garry Winogrand

ⓒ Vivian Maier/Maloof Collection, Courtesy Howard Greenberg Gallery, New York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비비안 마이어『내니의 비밀』展

게리 위노그랜드『여성은 아름답다』展

 

입장료

성인(만 19~64세) 10,000원 / 청소년(만 13~18세) 8,000원

어린이(만 4~12세) 6,000원 / 20인 이상 단체 20% 할인

국가유공자,장애인,65세 이상 5,000원

특별 강연회 3회이상+1인 관람권(전시 무제한 입장가능) 30,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 월요일 휴관

 

 

성곡미술관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82.2.737.7650

www.sungkokmuseum.com

 

 

성곡미술관은 여름특별전으로 비비안 마이어의 『내니의 비밀』과 게리 위노그랜드의 『여성은 아름답다』展을 동시에 개최한다. 마이어는 1960년대 미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보모로 생계를 유지하며 틈틈이 사진을 찍은 수수께끼 같은 여성으로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사진을 전시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전문 포토그래퍼로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위노그랜드는 미국의 격동기 시대상을 잡아낸 '사회적 풍경 사진가'이자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로 명성이 높은 작가이다. 동시대를 공유했지만 서로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두 사진가가 기록한 삶의 모습들을 감상하면서, 한 시대, 한 사회에서 예술가로서 인정받는 과정의 모호성과 작품의 우상화, 그리고 순수한 시각에 대한 인간의 욕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본 전시를 기획하였다. ● 이번 전시는 위노그랜드의 빈티지 프린트 85점과 인터뷰 영상2점, 마이어의 흑백/컬러프린트 115점 및 수퍼 8밀리 필름 9점, BBC에서 제작한 마이어의 일대기 『Who Took nanny's Pictures?』 필름으로 구성 되었다.

 

비비안 마이어_1975년 8월 August 1975_컬러사진

ⓒ Vivian Maier/Maloof Collection, Courtesy Howard Greenberg Gallery, New York


 

1관 - 비비안 마이어: 내니의 비밀Vivian Maier: The Revealed World of Vivian Maier

베일에 감춰진 고독한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1926~2009) ●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이어는 1951년 뉴욕으로 돌아와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다. 마이어는 1956년 시카고에 정착한 이후 200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카고에서 보모로 생계를 유지하며 생활하였다. ● 2007년 존 말루프는 우연히 시카고의 한 동네 경매장에서 비비안 마이어의 놀라운 작품들을 발견한다. 말루프는 역사 자료를 수집하던 중 다량의 프린트와 네거티브 필름, 슬라이드 필름(상당수가 현상되지 않음)과 슈퍼 8밀리 필름을 값싸게 구입하게 되었다. 베일에 감춰진, 고독한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 12만 장을 찍었다고 한다. 그녀는 30년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누구에게도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틈틈이 짬을 내어 코닥 브라우니 박스 카메라와 롤라이플렉스, 라이카를 목에 걸고 뉴욕과 시카고의 거리를 활보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제는 성인이 된 마이어가 돌보았던 아이들에 따르면, 그녀는 교양 있고 열린 사고의 소유자로 관대하면서도 무뚝뚝했다고 한다. ● 마이어의 작품에는 일상 속 사물에 대한 사실적인 호기심과 행인들에 대한 깊은 관심이 배어있다. 표정, 태도, 옷차림, 유행하는 액세서리와 소외계층의 삶에 관심을 보이며, 몰래 찍은 사진과 실제로 만나서 가까이에서 촬영한 사진들이다. 미국의 경제가 발전하는 한 가운데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이다. 2009년 4월 마이어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사망했다. 그녀는 19년 가까이 겐즈 버그 일가에서 보모로 일했으며, 세상을 떠나기 전 그들의 경제적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이어의 소지품 대부분과 필름은 창고에 보관되었다가 연체된 창고 비용으로 인해 2007년 압류당한 후 존 말루프에게 팔린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는 행정서류상 오스트리아계 헝가리인이자 프랑스인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프랑스의 오트잘프의 샹소르와 아시아, 미국에서도 그녀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사진에 입문하게 된 배경과 예술가로서의 행로는 알아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비비안 마이어_자화상 Self-Portrait_흑백사진_제작년도 미상

ⓒ Vivian Maier/Maloof Collection, Courtesy Howard Greenberg Gallery, New York

 

비비안 마이어_뉴욕 공립도서관, 뉴욕, c. 1952

New York Public Library, New York, c. 1952_흑백사진

ⓒ Vivian Maier/Maloof Collection, Courtesy Howard Greenberg Gallery, New York

 

비비안 마이어의 컬러 사진 ● 비비안 마이어는 1970년대 초 가볍고 휴대하기 편리한 라이카 카메라로 컬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전에 사용하던 롤라이플렉스와 달리 라이카 카메라는 대상을 눈높이에서 촬영한다. 마이어는 이 새로운 도구를 가지고 타자와 시각적으로 대면하고, 실제의 색상 그대로 세상을 담아내며 자신의 재능을 펼쳐나갔다. 그녀의 컬러 사진은 흑백 사진과 마찬가지로 독특하고 자유로우며, 심지어 장난기가 넘친다. 마이어는 색채 언어의 독특한 특징들을 다소 우발적으로 탐색하며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만들어갔다. 특히 눈에 띄는 독특한 색을 세밀히 강조하거나, 의상의 부자연스러운 색상 조합을 보여주었으며, 대조되는 색상들을 더욱 부각시키는 등의 방법을 사용해 실제 대상과 유희를 보태었다. 비비안 마이어의 슈퍼 8 영상 ● 마이어는 1960년부터 거리에서 마주친 풍경, 사건, 장소들을 필름에 담기 시작했다. 그녀의 사진 언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개개의 시각적 경험들을 조용히 관찰하며 영상에 담았다. 그 영상에는 내러티브가 부재하고 카메라의 움직임도 없다. 영상적 움직임이라고 할 만한 것은 마이어가 올라 탄 자동차나 전차의 움직임뿐이다. 마이어는 사진이 될법한 이미지들을 영상으로 담아낸다. 조용히 관찰하다 대상을 직관적으로 발견하면 따라간다. 가까이 다가가는 대신 줌 인을 이용해 대상과의 거리를 좁혀, 군중 속 인물의 손이나 다리와 같은 세밀한 부분이나 자세에 초점을 맞춘다. 마이어의 영상은 경찰에 체포되는 사람이나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장소를 촬영한 것과 같은 기록물이면서, 시카고의 도살장으로 향하는 양들의 기묘한 행진과 같은 관조의 대상이기도 하다.

 

비비안 마이어_자화상 Self-Portrait_컬러사진_제작년도 미상

ⓒ Vivian Maier/Maloof Collection, Courtesy Howard Greenberg Gallery, New York

 

비비안 마이어와 스트리트 포토그래피 ●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피 장르에서 새롭게 재조명 된다. 마이어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의 거장인 게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와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전문 포토그래퍼라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누군가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자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절대적 순수함과 강렬함을 품고 있는 마이어의 작품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이 당혹스러움은 이미지 그 자체를 능가하며 예술계의 오래된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는데, 한 시대, 한 사회에서 예술가로서 인정받는 과정에 대한 모호성, 예술계가 부여하는 작품에 대한 '우상화', 그리고 순수한 시각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그것이다. 비비안 마이어와 여성 사진가 ● "거리사진가들 중에서 여성 사진작가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비비안 마이어는 여성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차별화된다. 마이어는 한 번도 사진가를 자신의 직업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지만, 거리에서 찍은 사진은 사적 동기에서 찍었을지라도 아마추어의 취미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구도 베일에 숨겨진 그녀의 존재를 몰랐고, 이미지의 극도의 기괴함, 명백한 무성성(asexuality)은 그녀의 삶과 작품에 제기되는 수많은 의문 중 하나이다. 마이어는 카메라의 '눈'과 주체인 '내'가 연결된 관계 속에서 마치 카메라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의 역사에서 비비안 마이어와 같은 인물은 없다. (아비게일 솔로몬-고도 Abigail Solomon-Godeau) ● 당시 사진은 '남성중심주의의 회화'에 대항하고 있었다. 즉 라이카와 롤라이플렉스와 같은 경량 카메라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 있어서 이동성과 근접 촬영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당시 베레니스 에보트와 리젯 모델, 다이안 아버스와 같은 여성사진작가들은 기존 인물사진이 추구하였던 미학적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의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주로 이민자 출신으로 사회와 도시 공간의 변화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다. 비비안 마이어가 사용한 카메라 ● 비비안 마이어의 첫 번째 카메라는 셔터 스피드와 초점 조절이 가능한 보통의 코닥 브라우니 박스 카메라였다. 1952년 마이어는 첫 번째 롤라이 플렉스 카메라를 구입한 이후 롤라이 플렉스 3.5T, 롤라이 플렉스 3.5F, 롤라이 플렉스 2.8C, 롤라이 플렉스 오토매트 등을 사용하며 작업하였다. 또한 라이카 IIIc, 이하게 엑젝타, 자이스 콘타렉스와 여러 종류의 SLR카메라도 사용하였다

 

비비안 마이어_1978년_컬러사진_1978

ⓒ Vivian Maier/Maloof Collection, Courtesy Howard Greenberg Gallery, New York

 

비비안 마이어(1926~2009)는 1950년대 초반부터 40여 년 간 보모로 살았다. 따라서 최근 그녀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마이어의 삶은 알려질 리 없었다. 2007년 존 말루프는 한 벼룩시장에 나온 가치 없는 필름 상자들을 단 돈 몇 백 달러에 사들인다. 그는 12만 여 점에 이르는 마이어의 거대한 작품군을 발견하는데, 네거티브 필름, 슈퍼 8mm와 16mm 필름, 다양한 녹화물, 잡다한 사진, 다량의 미현상 필름 등을 아우른다. 이후 존 말루프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영화를 제작하며 의문에 싸인 비비안 마이어와 그녀의 사진들을 하나씩 발굴해 나아가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특히 SNS를 통한 비비안 마이어 작품 소개는 사회 여러 계층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으며, 마침내 전시를 기획하게 된 것이다. 학계와 평단의 다양한 평가를 비교 분석할 시간이 충분치 않아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비비안 마이어의 대표작들을 선별해 최초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세밀하고도 예민한 시선으로 당대의 시각 언어를 전용한 비비안 마이어의 예술 세계를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마이어는 따분한 일상의 현실에 숨겨진 틈새와 미묘한 변화들을 찾아내 일상의 사물이 지닌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마이어에게 세상은 잠시 마주친 타자로서 미지와 익명의 대상들이었다. 따라서 카메라를 들이댈 때 대상과 적절한 거리를 취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다지 중요할 리 없는 이야기일지라도 대상들을 주인공이 되게 하는 바로 그 거리. 마이어는 뭔가 불안정해 보이는 구도 속에 대상을 위치시키며, 촬영자의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화면의 경계나 그 너머에 서서 자신을 드러냈다. 그녀는 자신이 보고 있는 장면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대상이 된다. 셀피(self-photography)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본인의 모습을 그림자를 통해서 또는 거울에 비친 반사된 이미지를 통해 곳곳에 암시한다. 마이어의 존재는 반사된 얼굴, 길 위로에 뻗은 그림자, 바디 실루엣으로 이미지의 언저리에 투영된다. 비비안 마이어가 일생 동안 촬영한 수많은 자화상에서는 자아를 찾고자 하는 끈질긴 노력이 엿보인다. 그녀는 이미지 자체보다 사진을 찍는 행위,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듯 촬영이라는 몸짓에 집착했던 것 같다. 거리는 그녀의 극장이었고, 사진은 그녀의 삶의 도구였다. ● 암스테르담의 포암 foam 미술관을 비롯해 베를린, 런던, 오슬로, 뮌헨, 뉴욕, 로스엔젤레스, 부다페스트, 이탈리아, 벨기에, 모스크바, 토론토, 스웨덴 등지에서 비비안 마이어 전시가 열렸으며, 현재도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그녀의 사진전이 이어지고 있다.

 

게리 위노그랜드_여성은 아름답다 Women Are Beautiful_빈티지 흑백사진

ⓒ Garry Winogrand

 

2관 - 게리 위노그랜드: 여성은 아름답다   Garry Winogrand: Women Are Beautiful'사회적 풍경사진가'게리 위노그랜드 (1928-1986) ● "위노그랜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상기시켜 준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 하는 일이다." (존 자르코브스키 John Szarkowski) ● 위노그랜드는 뉴욕 브롱크스의 유태인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콜롬비아 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하였고, 1951년 뉴스쿨에서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교수의 지도로 사진을 배웠다. 또한 사진이란 지적일 수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임을 재차 강조하였던 당시 최고의 사진가인 워커 에반스의 가르침을 따랐다. ● 1955년 뉴욕현대미술관 사진부장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기획한 『인간가족』展에 위노그랜드의 사진 2점이 소개되었다. 이를 계기로 위노그랜드는 1963년과 1967년 리 프레드랜더, 다이안 아버스, 듀안 마이클 등과 함께 뉴욕현대미술관에 초대되어 전시를 열었고, 1964년, 1969년, 1978년 총 3회에 걸쳐 구겐하임 장학금을 받아 미국 전역을 횡단하며 미국인의 일상을 기록하였다.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일리노이 기술학교, 오스틴 대학 등에 재직하며 사진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위노그랜드의 대표적 사진집으로 『동물들, 1969』, 『공적 관계, 1977』, 『스톡 포토, 1980』, 『여성은 아름답다, 1975』 등이 있다. ● 위노그랜드는 세상을 비판적 의식이나 도덕적인 잣대로 평가하기 보다는, 사라지는 순간 속에서 그가 본 것들을 순수하게 잡아내며 어떠한 해석도 덧붙이지 않은 채 표현하고 기록하고자 하였다. "나의 사진은 그 어떤 메시지도 감추지 않는다." 위노그랜드는 1984년 암으로 사망한다. 그는 자신의 카메라가 마치 기관총인 양 사진을 찍었고(그는 생전에 26,000통의 필름을 사용했다.) 작품 선정과 인화 작업, 작품집 출간과 같은 전시회와 관련된 일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고 한다.

 

게리 위노그랜드_여성은 아름답다 Women Are Beautiful_빈티지 흑백사진

ⓒ Garry Winogrand

 

게리 위노그랜드_여성은 아름답다 Women Are Beautiful_빈티지 흑백사진

ⓒ Garry Winogrand

 

『여성은 아름답다』 빈티지 프린트 85점으로 구성된 시리즈 작품 ● 이 시리즈는 게리 위노그랜드의 1960년대 미국의 격동기 시대상을 잡아낸 '사회적 풍경화'로서, 자유분방하고 개성이 넘치는 당시 여성들의 일상을 계산되지 않은 본능적인 샷으로 잡아낸 미국 사회의 중요한 시기를 밝혀주는 역사적, 예술적 기록들이다. 또한 위노그랜드는 오늘날 패션 사진의 주류가 된 '스트리트 스타일'의 사진을 찍으며 시대의 변화를 예술 사진으로 바꿔놓은 작가이기도 하다. ● 1970년대 초 뉴욕현대미술관 사진부의 존 자르코브스키는 위노그랜드가 거리와 공원에서 몰래 찍은 여성들의 사진 85점을 선정하여, 1975년 『여성은 아름답다』사진집을 출판하였다. 오래 전부터 사진의 주제였던 '여성'은 위노그랜드에 의해 새로운 개념으로 재탄생한다. 즉 여성들을 이상화, 물질화시키지 않았으며, 연출되지 않은 일상의 모습 그대로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여성들의 매력을 그대로 부각시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위노그랜드는 수영장, 카페테리아, 상류층의 사교 파티, 뉴욕의 거리 등 장소를 불문하고 여성들을 찍는데 열중하였다. 그는 여성의 누드 사진과 스튜디오의 인물사진을 찍는 대신 패션, 헤어스타일, 제스처, 웃음 혹은 수다를 떨고 있는 여성들의 일상적 모습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 방법을 탐구하였다." (롤라 가리도)

 

게리 위노그랜드_여성은 아름답다 Women Are Beautiful_빈티지 흑백사진

ⓒ Garry Winogrand

 

게리 위노그랜드_여성은 아름답다 Women Are Beautiful_빈티지 흑백사진

ⓒ Garry Winogrand

 

사진의 모더니즘, 스트리트 포토그래피 ● '스트리트 포토그래피', 즉 '거리 사진'은 사진의 한 장르로서, 거리나 공원, 지하철, 대형 쇼핑센터 혹은 박물관과 같은 공공 장소의 연출되지 않은 실제 상황 속에 놓인 인간을 촬영한 사진을 이른다. "스트리트 포토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모더니즘과 냉철한 형식주의, 그리고 기술과 산업, 대도시에 대한 열광의 결과물이다." (프랑수아 브뤼네) ● 19세기 말 유럽은 사회 전반적인 현대화로 인하여 '거리 사진'의 근거지로 떠오른다. 으젠느 앗제는 이 장르의 선구자로서 파리의 구석구석을 사진의 영원한 주제로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앗제는 189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파리를 찍으며 '거리 사진'의 본질을 잘 드러내 주었다. '거리'는 단지 공간이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고, 시대와 개인의 사회적인 삶과 관계한다. 스트리트 포토는 19세기 말부터 1970년대까지 오랜 시간 동안 주목을 받았고, 이 시기는 각종 휴대용 카메라들이 발명되어 급부상한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를 명확하게 구분하기에는 그 범주가 유연한데, 이것은 초창기부터 익명으로 활동하는 수백 수천에 달하는 사진가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스트리트 포토를 찍어왔기 때문이다. ●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를 필두로 워커 에반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리 프리드랜더, 로버트 프랭크 등 20세기 중반 사진작가들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라는 장르를 탄생시켰고, 1960년대와 70년대 대도시의 삶을 개성 있게 담아낸 스트리트 포토는 뉴욕에 그 뿌리를 내린다. 하지만 사생활 침해와 테러리즘에 대한 불안이 한데 얽히면서 스트리트 포토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또한 우리는 사생활 보호 권리를 소리 높여 외치는 한편,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일상의 모든 일들을 휴대폰과 디지털 카메라로 기록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모두는 '거리 사진가'인 셈이며, 동시에 우리 세대는 이례적으로 가장 많은 사진을 찍고, 찍힌 사람들이기도 하다.

 

게리 위노그랜드_여성은 아름답다 Women Are Beautiful_빈티지 흑백사진

ⓒ Garry Winogrand

 

게리 위노그랜드의 시대와 사진 ● 게리 위노그랜드는 1952년부터 프리랜서 광고 사진가로 '라이프', '룩',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등에서 일하였으며, 당시 사진 가운데 2점이 1955년 『인간가족』展에 선정되어 일반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나 여전히 마이너의 위치에 머무른다. 이 시기는 텔레비전이 대중화되기 이전으로, 사진 잡지들의 경쟁 시대였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를 제외하고 가장 강력했던 대중매체는 사진잡지였다. 그러나 위노그랜드는 당시 잡지에 실린 상업적 광고 사진의 진실성에 대해 의심하였고, 주문자들의 요청에 따라 일종의 '판박이'로 전락하는 광고 이미지에 대해 고민하였다. ● 그렇다면 위노그랜드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처음부터 아티스트라는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였다는 점이다. 1950년대 초반 '사진가'가 '예술가'라는 개념은 친숙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사진은 예술 분야로서 인정받고 있지만, 당시는 극소수의 장소에서 사진전이 열렸고, 미술관에 사진부가 설치되어 있지도 않았다. 이러한 시대에 위노그랜드는 '직관에 의한 사진 촬영'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탐구하고, 그 본질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열망으로 붓 대신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 위노그랜드는 워커 에반스와 로버트 프랭크를 추종하였고 윌리엄 클라인의 영향을 받았으며, 생의 격정적 순간의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위해 늘 현장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생생한 사회적 표정들을 잡아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리 프리드랜더, 브루스 데이비슨, 데니 라이언, 다이안 아버스 등 동시대 사진가들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성곡미술관

 

 

Vol.20150702b | 비비안 마이어 × 게리 위노그랜드展



고 김영갑 작가가 즐겨 찍던 제주 용눈이 오름의 가을녘 풍경.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 밭 너머로 도톰한 오름과 수평선이 펼쳐진다. 도서출판 다빈치 제공

사진작가 김영갑 10주기 특별회고전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생전 김영갑 사진작가가 글로 남긴 ‘몰입의 순간’

웅웅거리는 바람 탓이다. 제주섬 오름 둔덕의 꽃풀들이 휘휘 눕고 일어서는 것도, 능선 위 하늘구름과 석양이 천변만화 색깔을 바꾸는 것도. 분화구 너머 수평선, 오름 풀밭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 풍경 어디에도 그 바람결의 흔적이 빠지지 않는다. 1982년 이래 20여년을 제주 중산간의 기생화산 오름을 오르내리고 기어다녔던 사진가 김영갑(1957~2005)의 생전 작업들은 거의 다 바람을 맞는 오름의 풍경들이다. 보이지 않는 바람 기척을 포착하는 데 삶을 바친 그는 “제주의 속살을 엿보려면 온몸으로 바람을 느껴야 한다”고 했었다. 제주 사람들의 눈물 어린 역사를 기억하는 바람은 작가의 화폭을 그려내는 붓이었으니, 붓이 되길 열망한 작가는 끝내 스스로 바람이 되어 지금도 제주바다와 오름을 떠돈다.

올해는 오름 사진의 거장으로 이름 높은 고 김영갑 작가의 10주기다. 오는 27일부터 그의 제주 대표작들을 처음으로 망라한 큰 회고전이 열린다. 고인이 제주 성산읍에 세운 갤러리 두모악이 9월28일까지 서울 견지동 아라아트센터에서 펼치는 ‘오름에서 불어오는 영혼의 바람’전이다. 작가가 제주와 처음 인연을 맺은 82년부터 2005년 몸근육이 마비되는 루게릭 병으로 타계할 때까지 오름과 주변 자연, 사람의 사철 풍경을 찍은 컬러작업 70여점을 초기, 중기, 후기작들로 나눠 선보이게 된다.

평생 제주 오름의 사계절에
자신의 삶 일체화시켜 작업
가장 치열하게 지역 성찰한 대가
하늘과 땅, 바다 무위적 풍경 포착
사진마다 ‘바람의 기척’ 느껴져

사진기자 권혁재씨가 찍은 생전의 김영갑 작가. 권혁재 제공

 

 

 

제주 사진의 대명사로 통하는 김영갑 작가는 한국 사진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지역과 자연을 성찰하고 탐구한 대가로 평가받는다. 단순한 취재여행이나 출사가 아니라, 평생 숭배했던 제주 오름의 사계절 풍광 속에 삶을 일체화시키며 작업했다는 점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작가적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실제로 출품된 초기, 중기, 후기 작품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제주 오름과 자연의 생명력을 담아내려 한 그의 시선이 ‘삽시간의 황홀’이란 화두 아래 점차 확장되어가는 흐름을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다. 초창기엔 황량한 바람이 부는 자연 속에서 정착 생활의 고단한 정서가 얼비치는 작품들을 주로 찍었지만 사계절 오름의 변모하는 이미지에 시선을 몰입시키면서 중후기 작들은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맑고 청량한 감각이 부각되는 하늘, 땅, 바다의 무위적인 풍경들로 점차 수놓아진다. 사진들의 화면이 가로로 확장되는 파노라마 구도로 점차 바뀌면서 바람의 존재감이 곳곳에 드러나는 태곳적 대자연의 적막한 순간들이 주된 피사체로 포착되는 작품들이다. 그런 몰입의 순간을 작가는 이렇게 글로 적고 있다.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작가에게 황막한 오름은 인간에게 곁을 내주는 꿈과 희망의 무대다. 오름의 현무암 바위 틈에 자라나고 피어나는 야생화와 풀, 바람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가지를 뻗는 나무의 생명력, 그 사이에 똬리를 튼 제주사람들의 삶 속에서 작가는 단단하고 아름다운 희망을 이야기한다. 오름자락에서 뒹굴고 서성거리면서 일상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은 끝에 뽑아낸 사진 한점 한점은 누구도 찍을 수 없는 그만의 영원으로 남았다. 회고전 ‘오름에서…’는 바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내면의 자연 감성을 일깨우는 작가의 존재감을 새삼 느껴볼 수 있는 자리다. 전시장에서는 출품작 외에 갤러리 두모악의 상설전 작품들까지 포함한 작가의 ‘오름’ 연작들을 슬라이드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출품작들을 담은 사진집 ‘오름’(다빈치 펴냄)도 함께 나왔다. 7월6일, 8월3일, 9월7일 휴관. (02)737-250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24일 오후 인사동 나우갤러리에서는 오상철 들꽃사진전 오픈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많은 사진작가 선후배들과 친구와 축하객들이 오상철 작가의 개인전을 축하해 주었다.행사에 같이 참여한 오상철 작가의 부인은 사진하는 신랑을 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얘기해 달라고 하자, 우선은 사진을 하면서 사람의 격이 올라 갔다고 말하고, 나쁜 점은 지출이 많은 점과 같이 있을 시간이 줄었다'고 말했다.

 

 

오랜 동안 카메라와 사진과 함께 하면서도 사진 찍는 것에 대한 뚜렷한 목적이 없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해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이것저것 보이는 것들이 아름다워 그냥 기록으로 남기는 정도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긴 세월 속에 많은 사연들이 사진으로 담아 졌습니다.

몇 년 전 모처럼 작심하고 오래된 필름들을 스캔하여 파일로 변환하여 저장하다 지금은 잠시 중단하고 있지만, 스캔하며 오래 전 사진들을 보니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추억의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갔습니다.

 

키는 크고 삐쩍 마른 아이 하나가 카메라를 둘레 메고 눈 덮인 1월의 추운 날 동학사로 해서 남매 탑을 지나 계룡산 능선을 타고 갑사로 넘어갑니다. 어디선가 폭포 물 소리가 들립니다. 겉은 얼었고, 소복이 눈에 덮인 폭포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가 중학교3학년 겨울방학이었지요.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카메라로 중무장하고 혼자 계룡산을 넘으며 촬영했습니다. 사진을 찍은 것이 이 날 처음은 아니었지만 인천에서 출발해 혼자 여행을 떠나 사진을 찍고, 필름을 사진관에 맡기고, 인화한 사진을 찾아보고 한 것으로는 처음이었습니다. 지금도 사진하면 이 날이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이렇게 카메라와 사진은 한 때의 아름다운 추억을 가장 오래 남기는 것 같습니다.

 

사진은 한 시대의 있는 그대로를 간직할 수 있는 역사의 기록이며, 개인적으로는 소중한 추억의 일기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진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촬영 당시의 느낌과 마음을 함께 담아 두고 봄으로써 과거에 대한 현재의 반성과 현재에 대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커다란 자산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더욱 인위적이지 않은 있는 그대로를 나만의 시선과 감성으로 기록하려는 편안한 마음으로 사물 앞에 다가 갑니다.

 

 

 

이번 전시 작업은 오랜 사진 생활 동안 다양한 장르에 다양한 피사체와 눈 맞춤을 했지만, 그 중 유독 기다림과 설렘 그리고 즐거움과 아쉬움까지 함께 주었던 우리 산야의 들꽃들, 사계절 홀린 듯 달려가 마주했던 그 꽃 사진들을 모아 지난 날을 돌아보고자 시작되었습니다. 오상철

 

 

 

야생화 사진의 미학적인 의미

글: 김영태(사진문화비평. 현대사진포럼대표)

20세기 전반부에 사진이 회화로부터 벗어나고자 기계적인 기록성과 재현에 의존하는 인위적이지 않은 사진(Straight photo)을 표현양식으로 수용하면서부터 소재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특정한 사물이나 상황 혹은 공간을 극명하게 재현하는데 몰두 하였고, 생물, 무생물, 자연환경, 인공적인 조형물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사진의 표현대상이 되었다.


 

 

그 중에서 야생화를 찍은 사진은 예술적 가치보다는 자연과학의 자료로서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진으로 표현했을 때 가장 큰 감동과 시각적인 재미를 느끼게 할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사진은 특정한 대상을 극명하게 재현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보는 이들의 감성을 깊이 있게 자극 한다. 완성도 높은 야생화사진을 찍으려면 그것에 적합한 장비와 필름을 선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찍고자 하는 목적을 분명하게 정한 후에 표현대상에 접근 해야만 생산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단순히 형태미나 시각적인 화려함만 보여주기보다는 철학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와 소재를 정하였다면 표현대상의 특성을 사전에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빛의 방향과 카메라 거리, 앵글, 프레임 등을 선택해야 한다. 사진은 시각예술이므로 장르와 관계없이 작가가 조형의식을 가지고 대상에 접근하는 태도가 꼭 필요하다.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외형적인 느낌이 미학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정당성을 확보 할 수 있다. 같은 소재라도 흔히 보는 익숙한 프레임과 앵글보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대상에 접근해야만 생산적인 이미지를 생산 할 수 있다.

 

그리고 노출의 선택과 톤은 최종 결과물의 이미지를 형성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주제에 적합한 노출과 톤을 선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어반복 하는 것은 창작 혹은 예술과는 전혀 관계없는 비생산적인 행위이다. 분명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소재를 정하고 작업을 진행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인류의 삶과 문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미지를 생산해야만 그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소재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작가의식과 기술이 잘 어우러져야 완성도 높은 최종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완성도 높은 야생화사진은 인간의 감성과 이성을 깊이 있게 자극하여 큰 울림을 남긴다.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하려면 열려있는 유연한 사고와 사물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그것은 다양한 직. 간접적인 문화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생산하려면 보편적인 사고와 상식을 뛰어 넘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야생화를 표현대상으로 선택해서 시각화한 오상철의 사진은 지금까지 언급한 야생화사진의 미학적인 의미를 반영한다. 작가는 다양한 인간군상 혹은 인간의 삶을 반영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여러 야생화를 세련되고 능숙한 사진기술을 바탕으로 재현했다.

광선의 선택, 앵글 및 프레임의 선택 등 여러 기술적인 요소가 유효 적절하게 어우러져서 시각적으로 보는 이의 감각을 자극하고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물을 성취했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생의 의미를 우의적(Allegorism)으로 비유하는 것 같은 이미지를 생산했기 때문에 미학적인 성과를 거뒀다. 자연과학적인 성취뿐 만 아니라 예술로서의 가치도 확보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보는 이의 관점에서 따라서 다양한 이야기(Narrative)와 의미를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에 현대예술의 미학적인 층위와도 교차하는 결실을 거뒀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자연의 일부를 통해서 우리가 각자 우리의 삶을 반추하는 기회를 제공한 결과물이다. 이 지점에서 야생화사진의 유효한 가치를 환기시킨다.

오상철 O, Sang cholb. 1951

학력 인하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공학사)연세대학교 산업대학원 졸업 (공학석사) 현재포토저널 서울지사장아름다운 세상 함께하는 사진가들의 모임 회장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

 

저서 (출판물)한국디지털사진가협회 월간지 "사진 속 여행"_작은산의 야생화 촬영 13회 연재
소장부천자연생태공원성남시율동생태학습원

오상철 들꽃 사진전 [ 回想, Memory ]展2015년 6월 24일(수) - 6월 30일(화)10am - 7pm /

6월 30일은 2pm 까지 관람가능갤러리 나우 -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39, 관훈동 성지빌딩 3F

(서울=국제뉴스) 김한정 기자


 

 

 

 

 

 

 

 

 

 

 

 

 

 

 

 

 

 

 

 

 

 

 

 

 

 

 

(서울=국제뉴스) 김한정 기자

 

여름 피서객들을 위한 사진전 '프로젝트 장에가자2'가 오는 7월 20일부터 8월15일까지

정선시외버스터미널 문화공간에서 열립니다.

 

정선문화원이 주최하고 정선군이 후원하는 본 기획전에는 정영신의 '추억의 장터풍경'과

조문호의 '정선아리랑시장의 신바람'이 함께 전시됩니다.

 

전시기간중 7월31일(금), 8월1일(토), 8월2일(일), 8월7일(금), 8월8일(토), 8월12일(수),

8월15일(토), 일주일 동안은 오일장을 사랑하는 관람자들께 작가가 직접 초상사진을 찍어

주는 '장터 추억 만들기'퍼포먼스가 진행됩니다. 

 

위 날자에는 작가가 전시장에 상주하오니, 혹시 정선 오시는 걸음이라면 한 번 들려 주세요.

막걸리라도 한 잔 하게...

 

조문호

 

 

 

 

 

 

 

 

 

 

 

사진작가 김생수씨의 ‘이미지 페인팅2’ 사진전 오프닝 및 출판기념회가
지난 5월6일 오후5시부터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렸다.

김생수선생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사진과가 생겼던 서라벌예대의 초창기 멤버다.
그 뒤 ’태평양화학‘에서 광고사진을 찍었고, 종합광고회사 ’동방기획‘의 제작본부장으로 활약하는 등

상업사진에 오랫동안 종사했는데, 한 때는 수중사진 전문가로도 활약했다.

사진가 한정식선생께서 작품집 서문에 밝혔듯이 그는 참 다정한 분이다.
전시 작품들도 스스로의 작품세계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후학들에게 사진기법에 의한 경험들을 보여주기 위한 교육자다운 배려라고 한다.

개막 시간을 잘 못 알아,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전시장에는
작가 가족을 비롯한 몇 몇 사진가들이 남아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날 만난 사진가로는 김정혜, 류성준, 선우인영, 이영일, 배병수씨를 미술관 입구에서 만났고,

전시장에서는 전민조, 박옥수, 한정식선생을 만났었다.

특히 포항에 있는 웨딩사진가 김정혜씨는 참 오랜만의 반가운 만남이었다.
30여 년 전, 인사동사람들과 어울려 많은 시간을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정식, 전민조선생과 어울려 밥 먹고, 차 마시는데 시간이 지체되어,
김정혜씨가 기다리는 허허당 스님 전시장에는 가지도 못했다.
뒤풀이 장소인 ‘두부마을’로 오라는 김정혜씨의 전화를 받고서야 자리를 옮겼다.

그 곳도 이미 파장이었다.
김정혜씨는 ’안양예고‘에서 연극 공부하는 아들 장형민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허허당 스님을 비롯하여 사진가 권양수, 음악인 송형익, 행위예술가 타이거 백 등
몇 명만 남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는 카메라가 주인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찍고 싶어도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는데, 오프닝의 중요한 기념사진마저 망쳐 놓았다.
집에서 한번 달래 볼 작정이나, 중병이 난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된다.

사진,글 / 조문호

 

 

 

 

 

 

 

 

 

 

 

 

 

 

 

 

 

 

 


 

정선 떠나는 일정을 늦추어가며 기다린 김보섭씨의 결혼3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 ‘연평도의 바위’가 지난 22일 성황리에 개막되었다.

육중한 바위들이 가득메운 인천 ‘선광미술관’에는 축하객들로 넘쳐났다.
오프닝이라 소란스러워 집중이 잘 되지 않았으나, 전체적인 전시분위기는 장엄했다.
돌아 와 조용하게 작품집의 사진들을 새겨보며 꼼꼼히 음미했다.

사진집을 덮자 제일 먼저 ‘침묵’이란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다.
숱한 세월의 풍파를 지켜보았던, 그로테스크한 바위들은 아무말이 없었다.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원칙만 암시하며...

자연의 풍화작용과 지리적 여건에 따라 바위들이 날을 세워있기도 하고,
때로는 여체의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내듯 매혹적이기도 하다.
살아 온 여건에 따라 달라진 사람처럼 말이다.

이 사진을 찍은 김보섭씨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얼핏 이 전시가 작가의 외도로 보이지만, 일련의 작업에 대한 연장선으로 본다.

여지껏 그의 카메라는 인천만 지켜보며 인천의 지역사만 기록해 왔기 때문이다.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83년도 ‘동아미술제’에 입상한 그의 작품을 접한 후다.
'얼굴'과 '곡마단 사람'의 연작인데, 서있는 사람 표정이 과히 묵시적이었다.
김보섭씨 사진의 특징이 바로 대상의 정면을 투시하는 시선의 집중에 있다.

그 입상작을 비롯하여 차이나타운, 바다사진관 등 후반에 발표한 작품들도

하나같이 ‘연평도 바위’처럼 묵시적으로 눈길을 끌며 깨우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단지 사람이냐 사물이냐 만 다를 뿐, 모두 세상사를 말하고 있다.

이날 개막식에는 작가 김보섭, 김혜영 내외를 비롯하여 사진가 주명덕, 한정식,

전민조, 최광호, 류은규, 김재영, 이규상, 최경자, 정영신, 도다 이쿠코, 곽명우,

권양수씨 등 100여명의 사진가들과 지역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전시는 인천 선광미술관(032-773-1177)에서 5월4일까지 이어진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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