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정오 무렵, 제주 사는 변순우씨로 부터 전화가 왔다.

이웃에 있는 조해인씨 집 부근의 ‘산호다방’에 왔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불과 500미터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는데,

커피숍에 밀려난지 오래된 다방이라기에 도대체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했다.

 

지하로 들어가는 너절한 입구를 보며, 보나 마나 짐작은 되었다.

대낮인데도 술 마시는 손님이 두 테이블이나 있는 걸로 보아

다방이라기보다 술집에 더 가까웠다.

한가롭게 쉬는 남정네들도 있고, 의자에 누워 곤하게 자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동네 사랑방처럼...

 

변순우씨와 조해인씨도 일찍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빠 나 쥬스 한 잔 마실게"

옆에 있던 다방레지의 꼬드김을 들으니

오래 전 끊긴 필름이 다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지하실의 퀴퀴하고 음산한 분위기는 시골 다방을 연상시켰다.

실내는 푸르둥둥한 형광 빛을 받은 대형수족관이 칸막이 노릇을 하고,

옆 좌석의 소리를 가려주는 음악은 흘러 간 옛 노래 일색이었다.

때로는 느닷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 튀어나와 잠자는 격정을 건드리기도 했다.

 

마담과 레지가 교대로 오가며 술시중을 들어 번잡스럽기는 했으나, 술은 잘 넘어갔다.

변순우씨는 치과에 일이 있어 올라 와 앞니 만 몇개 달랑거리며 술을 마셔댔다.

뒤늦게 부천에서 중고차매매상사를 운영하는 신영철씨가 찾아왔는데,

원로영화배우 신영균선생의 자손답게 신영균씨를 빼 닮았었다.

그리고 조해인 시인의 명상집이 8월경 ‘해냄출판사’에서 나온다는 소식도 들었다.

 

마치 술병에 구멍 난 듯 순식간에 맥주 열 몇병과 소주 세병을 비웠다.

오랜만에 음숭한 생각마저 들어 꼬불쳐 둔 ‘팔팔’까지 입에 털어 넣었다.

어느 한 곳에 힘이 쏠리면 쉽게 뻗지 않는 효과는 있지만, 괜한 호기를 부린 것이다.

낯 술에 취해 모두들 헤어졌는데, 텐트 친 가랑이를 움추린 채,

동내사람 볼까 조심스럽게 돌아와야 했다.

 

그 곳 ‘산호다방’은 도라지위스키 한 잔 시켜놓고 시시덕거렸던

80년대의 다방풍속 그대로였다.

시덥잖은 한 시절의 풍속이지만, 지나고 보니 아련한 향수는 있었다.

불현듯 최백호씨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가 생각났다.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그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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