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영갑 작가가 즐겨 찍던 제주 용눈이 오름의 가을녘 풍경.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 밭 너머로 도톰한 오름과 수평선이 펼쳐진다. 도서출판 다빈치 제공

사진작가 김영갑 10주기 특별회고전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생전 김영갑 사진작가가 글로 남긴 ‘몰입의 순간’

웅웅거리는 바람 탓이다. 제주섬 오름 둔덕의 꽃풀들이 휘휘 눕고 일어서는 것도, 능선 위 하늘구름과 석양이 천변만화 색깔을 바꾸는 것도. 분화구 너머 수평선, 오름 풀밭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 풍경 어디에도 그 바람결의 흔적이 빠지지 않는다. 1982년 이래 20여년을 제주 중산간의 기생화산 오름을 오르내리고 기어다녔던 사진가 김영갑(1957~2005)의 생전 작업들은 거의 다 바람을 맞는 오름의 풍경들이다. 보이지 않는 바람 기척을 포착하는 데 삶을 바친 그는 “제주의 속살을 엿보려면 온몸으로 바람을 느껴야 한다”고 했었다. 제주 사람들의 눈물 어린 역사를 기억하는 바람은 작가의 화폭을 그려내는 붓이었으니, 붓이 되길 열망한 작가는 끝내 스스로 바람이 되어 지금도 제주바다와 오름을 떠돈다.

올해는 오름 사진의 거장으로 이름 높은 고 김영갑 작가의 10주기다. 오는 27일부터 그의 제주 대표작들을 처음으로 망라한 큰 회고전이 열린다. 고인이 제주 성산읍에 세운 갤러리 두모악이 9월28일까지 서울 견지동 아라아트센터에서 펼치는 ‘오름에서 불어오는 영혼의 바람’전이다. 작가가 제주와 처음 인연을 맺은 82년부터 2005년 몸근육이 마비되는 루게릭 병으로 타계할 때까지 오름과 주변 자연, 사람의 사철 풍경을 찍은 컬러작업 70여점을 초기, 중기, 후기작들로 나눠 선보이게 된다.

평생 제주 오름의 사계절에
자신의 삶 일체화시켜 작업
가장 치열하게 지역 성찰한 대가
하늘과 땅, 바다 무위적 풍경 포착
사진마다 ‘바람의 기척’ 느껴져

사진기자 권혁재씨가 찍은 생전의 김영갑 작가. 권혁재 제공

 

 

 

제주 사진의 대명사로 통하는 김영갑 작가는 한국 사진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지역과 자연을 성찰하고 탐구한 대가로 평가받는다. 단순한 취재여행이나 출사가 아니라, 평생 숭배했던 제주 오름의 사계절 풍광 속에 삶을 일체화시키며 작업했다는 점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작가적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실제로 출품된 초기, 중기, 후기 작품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제주 오름과 자연의 생명력을 담아내려 한 그의 시선이 ‘삽시간의 황홀’이란 화두 아래 점차 확장되어가는 흐름을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다. 초창기엔 황량한 바람이 부는 자연 속에서 정착 생활의 고단한 정서가 얼비치는 작품들을 주로 찍었지만 사계절 오름의 변모하는 이미지에 시선을 몰입시키면서 중후기 작들은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맑고 청량한 감각이 부각되는 하늘, 땅, 바다의 무위적인 풍경들로 점차 수놓아진다. 사진들의 화면이 가로로 확장되는 파노라마 구도로 점차 바뀌면서 바람의 존재감이 곳곳에 드러나는 태곳적 대자연의 적막한 순간들이 주된 피사체로 포착되는 작품들이다. 그런 몰입의 순간을 작가는 이렇게 글로 적고 있다.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작가에게 황막한 오름은 인간에게 곁을 내주는 꿈과 희망의 무대다. 오름의 현무암 바위 틈에 자라나고 피어나는 야생화와 풀, 바람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가지를 뻗는 나무의 생명력, 그 사이에 똬리를 튼 제주사람들의 삶 속에서 작가는 단단하고 아름다운 희망을 이야기한다. 오름자락에서 뒹굴고 서성거리면서 일상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은 끝에 뽑아낸 사진 한점 한점은 누구도 찍을 수 없는 그만의 영원으로 남았다. 회고전 ‘오름에서…’는 바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내면의 자연 감성을 일깨우는 작가의 존재감을 새삼 느껴볼 수 있는 자리다. 전시장에서는 출품작 외에 갤러리 두모악의 상설전 작품들까지 포함한 작가의 ‘오름’ 연작들을 슬라이드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출품작들을 담은 사진집 ‘오름’(다빈치 펴냄)도 함께 나왔다. 7월6일, 8월3일, 9월7일 휴관. (02)737-250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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