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사진상과 관련된 논란의 요지는 바로 예술지상주의 사진가들과

사진 고유의 기록성을 지키려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과의 한 판 싸움이 아닌가 생각한다.
먼저 결론부터 내놓고 싶다.
주관적인 사고로 작업하는 예술지상주의사진가들은 사진부문보다 미술부문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는 최민식선생의 사진철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미발표작이 아니라는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에 다름 아니다.    최민식상 운영위원회나 심사를 맡은 사람들은 선생의 이름으로 받은 수혜지만, 최민식선생을 뛰어넘는 사진예술상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은 여지 것 최민식선생의 작품을 아마추어 사진으로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니 말이다.

그래서 최민식사진상은 시작부터 잘 못 된 것이다.
최민식선생의 인본주의 정신을 이어받는 사진가들이 주축이 되어 집을 지어야 반석위에 세울 수 있는데,

선생을 허수아비로 세워 자기들만의 새로운 파라다이스를 만들고 싶었으니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니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설계가 잘 못된 집은 완성되기 전에 허물어야 한다.
나중에 넘어지면 낭비되는 재물도 재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친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새로운 최민식선생의 집을 한 번 설계해 보자.
최민식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은 훌륭한 사진가가 있으면 힘 모아 그들의 전시와 출판을 도와주어

인본주의 다큐멘터리를 부흥시키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새로운 스폰서가 생겨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위의 사진은 78년도 무렵, 부산 초량의 한 모퉁이에서 찍은 사진이다.
배고파 잠든 엄마와 울다 지친 아기의 모습을 보며 전생에 무슨 죄로 저렇게 고통 받을까 생각하며 찍었다.

당장 일으켜 세워 식당부터 데려가야 할 텐데 말이다.

잠든 머리맡에 천원짜리 지폐 한 장 눌러 놓고 스스로 위안했으니, 늘 마음의 빚으로 여기며 살아 왔다.

그래서 최민식선생을 따르는 사진방식은 버렸다. 그러한 큰 그릇이 되지 못했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찍어도 선생님을 뛰어 넘지 못 한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부터는 그 사람을 알아야 찍었고, 눈을 마주쳐가며 찍어왔다. 사진은 딱딱하지만...

그리고 사진으로 말아먹고 서울로 야반도주해 30여년을 힘들게 살아왔으나

한 번도 사진을 시작하게 된 최민식선생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다.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선생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을 바로잡아

선생의 이름을 기리는데 최선을 다할 작정이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도움받아 온 선생들까지 싸잡아, 가까운 후배들에게 막말 한 것이다.

 

널리 양해 바란다.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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