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기 '노량진수산시장' 사진집

눈빛출판사, 184, 25,000

 

 

최인기의 노량진수산시장눈빛출판사에서 펴내는 오늘의 다큐일곱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오늘 발생한 사회 제 문제를 사진가들이 어떠한 관점으로 사진에 담아냈는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사진집 총서다.

 

 

 

이 책은 서울시민의 집단기억이 숨 쉬고 있는 노량진 구수산시장이 선진화와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어떻게 풍비박산되었고,

그곳을 생계의 터전으로 살아온 시장 상인들의 삶이 변모하였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서울시민들에게 수산물을 제공하고 있는 노량진수산시장의 역사는 멀리 일제강점기까지 올라간다. 1928년 서울역 염천교 근처에 경성수산주식회사가 생겨난 이래 서울의 대표적인 이 수산시장은 1975년 한국냉장()이 시장을 인수해 노량진으로 장소를 옮긴다. 겉으로 보면 싱싱한 해산물의 도소매가 이뤄지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날 것 같은 수산시장이지만 2002년 공기업 민영화가 시작되면서 갈등이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2008년 수산물유통체계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현대화사업이 추진돼 2016년부터는 신시장에서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되었지만 40퍼센트 가량의 구시장 상인들은 신시장 입주를 거부하고 노량진 구수산시장 부분존치와 생존권 보장을 주장하며 농성을 벌여오고 있다.

 

 

 

이 사진집은 다큐멘터리 사진가 최인기씨가 지난 3년 동안 노량진 구수산시장 상인들의 생업과 투쟁 현장을 기록한 컬러 사진으로 구성돼 있다. 비린내 물씬한 수산시장과 활기 있는 상인들의 모습을 통하여 그들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다.

 

 

 

킹 크랩을 자랑스레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 손님이 뜸한 틈을 이용해 좌판 옆에서 잠이 든 할머니, 수조에 생선을 넣는 청년 등 수산시장의 일상적인 장면들로 이 사진집은 시작된다. 연탄난로에 발을 녹이는 할머니, 주문한 음식을 머리에 이고 배달 가는 식당 아주머니 그리고 장이 파한 후 한데 모여 여흥을 즐기는 시장 상인들의 모습을 통하여 현대화 이전 구시장의 평온한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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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의 생계 터전은 현대화와 법을 앞세운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린다. 경찰의 비호 아래 용역들이 들이닥치고 상인들은 이들과의 힘겨운 공방 끝에 202010월 지하철이 다니는 25천 볼트 고압선 위 육교로 쫓겨나 지금까지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생업에 열중하면서 손님을 맞이하고 주변 동료 상인들과 어울려 살아온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이 갈등과 투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과정을 사진가는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기록하였다. 결국 이 사진들은 국가와 사회가 소시민의 삶을 보호하지 못하고 투쟁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직권남용에 대한 분노의 서사인 것이다.

 

 

 

지난 64일 오후630분경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최인기의 노량진수산시장사진집 출간을 기념하는 사진전이 개막되었다.

 

 

 

전시장에는 사진가 최인기를 비롯하여 김남진관장,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 엄상빈, 김보섭, 김문호, 정영신, 김동진, 김영호, 곽명우씨 등의 사진가들이 함께하여 최인기의 노량진수산시장전시와 사진집출간을 축하했다.

 

 

 

이 전시에는 다큐멘터리 은석 감독이 촬영한 '시장으로 가는 길' 도 함께 방영되었다.

 

 

 

눈빛의 이규상대표는 작가를 소개하는 인사말에서 사진가이기 이전에 투쟁현장의 전사로서 최인기의 부지런한 모습을 전하며 키가 작아 용역 깡패들 가랑이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촬영 한다는 우스개 소리를 했는데, 진짜 그는 못 말리는 전사고 못 말리는 찍사다.

 

 

 

60년대 말 청계천을 기록한 빈민들의 성자 노무라목사의 영향을 받아 사진의 길로 들어선 사진가답게 특정 도시공간 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들을 기록해 왔다3년 전에는 '청계천 사람들'이란 주제로 노점상들의 투쟁을 다룬 전시와 사진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삶의 투쟁을 기록한 이번 사진집 표지 사진은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식칼을 허리 뒤에 감춘 크로즈 업 사진 한 장으로 전체 투쟁의 내용은 물론 사진집에 실린 상인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적 표현은 작가나 사진기자들이 쓰는 표현 방법이지, 당사자와 같이 살거나 함께 투쟁하는 사진가는 잘 선택하지 않는 접근법이다. 왜냐하면 사진보다 사람이 먼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인기의 표지 사진은 연출이 아니라 실제 상인의 현장 모습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당사자와 함께하는 사진가는 일상적 기록 이외의 사진가적 욕심을 버리는 것이 도리이기도 하지만, 눈에 띄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 사진 앵글을 과장하는 트릭이나 연출은 일체 용납할 수 없는 짓거리다.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의 6-70년대 청계천 사진이나 최인기 사진이 대표적으로 당사자와 함께하는 사진인데, 튀는 사진이 없어 지루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민중들의 삶은 원래 자극거리가 없어 지루하고 따분하다. 그러나 이런 사진들이 우리에게 너무도 값진 진실 하나를 일깨워주고 있다. 세상에 따분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은 것들은 이상하게도 금방 싫증을 느끼게 되고, 또 싫증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은 대개 지루하거나 따분한 것들이라는 사실 말이다.

 

 

 

같은 눈높이에서 찍은 평범하고 소소한 기록들이야 말로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가치를 발휘해 인간 삶의 중요한 역사적 단서와 함께 사료가 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려운 현실에서도 출판과 전시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진가 최인기씨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라.

사진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어떤 사진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촉매제가 된다는 것이 제가 지속해서 전시와 출판을 하는 이유입니다. 가난은 드러내 공론화시킬 때 해결이 모색된다는 것도 평소 제가 가진 지론이기도 합니다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는 최인기의 노량진수산시장사진전은 13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 조문호

 

 

 

 

 

 

어제는 정영신씨 전시 준비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빠진 프린트를 위해 '스마트협동조합'부터 들려야 했다.

오후4시가 되어서야 '갤러리 브레송'에 들렸는데, 여러 명의 젊은 사진가들이

  ’‘The Last Dreamer’ 기획전을 철수하고 있었다.

 

전시를 기획한 김남진관장의 구상에 따라 프린트한 장터사진이 77장이나 되는데,

어떻게 펼쳐야 할지 난감했다.

대형사진에서부터 손바닥만 사진에 이르기까지 크기도 가지가지였다.

그런 우려와는 달리 이미 펼칠 도면을 준비해 두었다.

 

김남진관장과 남태영씨에 의해 전시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하러 따라간 나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전시장을 오르내리며 죄 없는 담배만 죽였는데, 앞에서 자동차 사고가 났다.

시내버스와 포르쉐 승용차가 부딪힌 경미한 사고였다.

 

승용차의 실수로 일어났지만 시내버스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버스의 후렌다만 살짝 긁혔지만 그냥 넘어가지 않고, 차에 탄 승객을 모두 내리게 했다.

연락처를 교환하고 나중에 처리해도 될 텐데, 승객들 불편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그 무렵, 인천에서 사진가 박춘화씨가 왔는데, 스카치위스키 한 병을 선물로 주었다.

멀리서 찾아 준 것만도 고마운데,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전시가 마무리되면 정영신씨와 자축파티나 벌여야겠다.

모처럼 정염을 불태울 밤을 만들어준 박춘화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그럭저럭 전시준비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한 쪽 벽에는 오래된 흑백사진이 차지했고, 벽면마다 주제별로 구성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 장에 오기도 하지만, 먹는 사진으로 한쪽 벽을 채우기도 했다.

난장에서 장사하는 모습 등 정감 있는 장터 분위기가 두드러지도록 만들었다.

 

김관장의 전시기획력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다시 한 번 혀를 내 둘렀다.

불과 두시간 만에 모든 전시준비를 끝낸 것이다. 수고한 분들과 밥 먹으러 갔다.

정영신, 김남진, 남태영씨 등 네 명이 ‘김삼보’에서 묵은지 갈비찜을 시켜 먹었는데

의외로 맛있어 개막 뒤풀이 집으로 낙점해부럿다.

 

그런데, 뒤늦게 나타 난 사진가 손은영씨가 밥값을 계산해 버렸네.

이 원수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고맙고 예쁘서 뽀뽀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미투가 겁나 참았다.

운전 때문에 술 마시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정영신씨의 ‘장에 가자’ 전시는 20일까지니, 충무로 나오는 걸음에 놀러 오세요,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사진, 글 / 조문호



얼마 전 독방에 갇혀 있을 때, 다짐한 것이 여럿 있었다,
휴대폰과 페북에서 해방되는 것과 전시장을 멀리 하는 것 등인데,
쓸데없는 일에 끌려 다니지 않고, 내 일만 열심히하며 재미있게 살기위해서다.

그 중 유일하게 페북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은 중독성이 강하기도 하지만,
그 마저 없다면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될 것 같아 하루에 한 차례만 접속하기로 했다.
그리고 습관처럼 들락거리던 전시장 출입을 삼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며칠 전에는 파주 헤이리에 간적이 있었다.
정영신씨 따라 잘 아는 분 전시에 갔는데, 나만 들리지 않고 차에서 기다린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멀리까지 와서 안 볼 일은 아니었다.


전시장에 들리면 전시리뷰 쓰는 버릇 때문인데, 보아도 안 쓰면 될 것 아닌가?
전시 작가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성질이 모질지 못해 하던 일은 쉽게 끊지 못한다.
더구나 인사동에서 열리는 좋은 전시는 알려야 한다는 부담 같은 것도 따른다.




문제는 열심히 취재해 소개해주어도, 칭찬은커녕 욕이 바가지라는 점이다.
속된 말로 국 쏟고 뭐 데이는 격이라 진즉부터 그만두고 싶었던 일이다.
대개 작품에 대한 칭찬은 좋아하지만, 쓴 소리는 원수되기 십상이다.

사실 평론가도 아닌 주제에 비판할 자격도, 할 필요도 없다.
작업노트나 서문 등의 보도자료에 근거하거나 직접 인터뷰하여 쓸 수는 있다.
그렇지만, 월급 받는 기자도 아니면서, 입에 발린 소리는 하기 싫은 것이다.
이제 글을 쓰더라도 보도자료 대로 소개할 뿐 사견은 달지 않기로 했지만,

청탁에 의한 글이라면 사정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김동진씨 전시가 열리는 것은 페북을 보고 알았지만,
정선에서 농사 준비하느라, 전시가 끝나는 지난 토요일에야 부랴부랴 찾아갔다.
그것도 급하게 오느라  정선 집에 가방을 두고 와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그의 치매수준이지만, 그 먼 길을 다시 갈 수야 없지 않은가?
오월 초순 모종 심으러 갈 때 가져올 생각으로 돈과 카메라를 빌려야 했다.



김동진씨 전시작품이 궁금하여 구경만 할 작정으로 갔으나, 습관차럼 글을 쓰게 된다.

이미 전시는 끝났으나, 안내 글이라기 보다 그동안의 일기에 불과하다.


'갤러리 브레송'으로 가다 전시장 입구에서 사진가 김영호씨를 만나기도 했다.
전시작가 김동진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으나, 작품은 일찍 철수해 버렸더라. 

포장하던 작품을 다시 한 장 한 장 꺼내 보여주었는데,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비린내 물씬한 인간들의 광기어린 욕망이 꿈틀대는 사진이었다.
‘눈빛사진가선’ 63호로 출판된 김동진 ‘해운대’사진집이 잘 말해 준다.


-눈빛사진가선63 / 김동진사진집 / 해운대 / 가격12,000원-


시인 김수우씨가 쓴 사진집 서문 일부로 대신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태어난 해운대는 몸의 중력으로 가득했다. 바다는 근원을 묻지만, 현대인은 근원에 익숙하지 않다. 근원에 익숙하지 않는 현대인에게 ‘정체성’이란 정말 애매한 개념이다. 작가의 사진 속 몸의 실재들도 애매했다. 그 불투명과 애매함은 곧 통증이었다. 통증은 어디선가 투명한 진실이 긴 발톱을 내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다 앞에선 누구나 쉽게 벗고 쉽게 맨발이 된다. 제 몸뚱이를 항상 날것으로 내놓는 물결 때문일까. 옷이라는 중력을 벗으면서 원래 자기가 되었다고 착각한다. 벗는 방식도 살아온 방식만큼이나 비슷하지만 다양하다. 닮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남다르고 싶지도 않은 현대인은 자기분열로 인한 갈등의 몸을 가지고 있다. 그 몸을 던지기도, 눕히기도 하면서 모래알처럼 데리고 놀다가 날아오르듯 물결 속으로 뛰어든다. 몸이 근원적인 자연일까. 벗은 몸이 자신의 본래일까. 문제는 그것이다.”




그런데, 기념사진이라도 몇 장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었으나, 빌려 온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마치 전시장은 들리지 않는다는 초심을 지키라는 저항 같았다.




작가 김동진씨를 비롯하여 김남진관장, 김영호, 류현동씨와 함께 ‘사랑방’이라는 백숙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함께 축배를 들며 전시를 마무리했는데, 좌우지간 술만 들어가면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여 큰일이다.

요즘 술상에 자주 오르는 오거돈시장 덕분에 색깔 섞인 이야기가 튀어 나왔는데, 자나 깨나 입조심해야 한다.


좋은 시간 만들어준 김동진씨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다시 한 번 전시를 축하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이광수교수의 페북 대화창 ‘서울사진가와 소총수’에 술꾼들 모이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한국언론정보학회’의 세미나 토론자로 서울 올라가는 김에 술 한 잔하자는 것이다.

 

 

 


모처럼 반가운 자리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겨버렸다.
전 날 저녁 동자동에 갔더니 방문 앞에 우편물 한 통이 꽂혀 있었다.
뜯어보니 용산구청에서 보낸 ‘복지대상자 자격 및 급여변동 안내문’이었는데,
자격중지(급여중지)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격 중지될 이유가 없었다.

 

 


11일 작성된 공문으로, 이미 소명기간이 지나버렸다.
우편물이 왜 이리 늦게 왔는지도 모르겠고, 왜 중지되었는지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공무원들 퇴근 후라 확인해 볼 수도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짤릴 것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혜택 받은 3년 동안 돈 걱정없이 잘 살았는데, 이제 끝났구나 싶었다.
당장 내야 할 방세부터 걱정되었다.

 

 


난데없는 걱정에 밤을 꼬박 샌 후, 아침에 구청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별 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다. 당하는 사람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요한 일인데,
어떻게 별 일 아닌 것처럼 말할 수 있을까?

 

 

 

이유는 아들 햇님이 재산에 변동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들어보니, 결혼 후 방을 얻기 위해 처가에서 빌린 전세자금이 재산으로 둔갑된 것 같았다.

 

 


충분히 소명할 수 있는 문제라 걱정은 덜었으나, 잠 안 자고 신경을 많이 쓴 탓에, 힘이 쫙 빠졌다.
스트레스 받아 그런지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어지럽기 까지 했다.

 

 

그대로 누워 있을 수가 없어 녹번동 정영신씨 집으로 찾아갔다.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해소에는 최고인 비상약을 먹었다.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해져, 저녁 술 약속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25일 오후8시 북창동 ‘행복전집’으로 김남진, 김문호, 김봉규, 김태진, 이규상, 정영신씨가 호출되었는데,

그 날이 신문사 당직인 김봉규씨만 못 나왔다.

 

 


김태진씨가 미리 예약해 둔 북창동 ‘행복전집’에 가보니 김문호씨가 먼저 와 있었다.
좀 있으니, 그리웠던 분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들 막걸리를 마셨지만 혼자 소주를 마셨는데, 이광수씨가 추천해 준 ‘진로’가 참 좋더라.
술병은 파리약병 처럼 못 생겼으나, 술이 순하고 부드러웠다.
그 날 모임은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술 마실 일 밖에 없었다.

 

 


술독을 얼추 비웠으나, 그냥 헤어질 수 없었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노래방이 최고가 아니던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노래방으로 따라 갔는데, 다들 잘 부르더라.

 

 

 

이광수씨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불렀는데,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났다.
어디서 그토록 시원하게 욕 할 수 있겠는가? “이 씨발넘들아~”
듣는 내가 다 속이 후련했다.

 

 


나도 한 곡 뽑기는 했지만, 이제 끝난 것 같았다. 젠장~ 소리가 나야지...
분명 봄날은 갔고, 노래라기보다 지랄발광에 가까웠다.
그러나 윤석렬로 받은 스트레스까지 모두 풀었다.
교주님께서 다음엔 부산에서 한 판 벌이자지만, 어디엔들 못 갈소냐?

 

 


기차 시간을 넘긴 이광수씨만 여관에 들어가고, 다들 뿔뿔이 헤어졌으나 자정이 넘어 택시가 없었다.
시청 앞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선동하는 앰프 소리만 요란스러웠다.
대형 전광판에는 목사란 자가 ‘문재인을 구속시켜야 된다’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전광판 대 여섯 개가 나란히 들어선 걸 보니 광화문광장까지 연결된 것 같았다.
택시 잡으러 광화문까지 가보니, ‘구국철야기도회’란 이름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라, 다들 담요 같은 걸 뒤집어쓰고 구호를 외쳤다.

 

 


무슨 찬양가 인지도 모를 신나는 곡도 있었다.
술이 취해 엉덩이춤을 추가며 사진을 찍었는데,
나만 미친 것이 아니라 다들 미쳐가고 있었다.

"할렐루야~"

글 / 조문호

 

 

 

 

 

 

 

 

 

 

 

 

 

 

 

 

 

 

 

 

 

 

 

 

 

 

 

 

 

 

 

 

 

 

 

 

 

 

 

 

 

 

 

 

 

 

 

 

 

 

 

 

 

 

 

 

 

 

 

 

 

 

 

 

 

 

 

 

 

 

 

 

 

 

 

 

 

 

 

 

 

 

 

 

 

 

 

 

 





사진가이자 빈민운동가인 최인기의 ‘청계천 사람들’ 사진전이 지난 11일부터 ‘갤러리 브레송’에서 개막되었다.




전시된 사진들은 청계천 투쟁의 역사고 최인기의 삶 자체였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노동운동에 불을 붙인 전태일 열사가 떠올랐다.
최인기 역시 카메라를 도구로 가난한 청계천 사람들을 지키려 온몸을 던지고 있었다.




사진들을 돌아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청계천 빈민들 피를 빨아 대통령 자리까지 꿰 찬 도둑놈 이명박의 반들거리는 대갈통을 도끼로 갈기고 싶었고, 오세훈은 밟아 버리고 싶었다.
한 놈은 청계천을 뒤집어 가난한 노점상과 철거민을 내 몰았고, 한 놈은 시민들의 추억과 삶의 공간인 동대문운동장을 허물었다.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설 때마다 죽어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뿐이었다.
그 긴 시간의 긴박한 순간순간을 최인기의 카메라는 놓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본령이 무엇이던가?
약자의 편에서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는데 기여해야 하지 않는가.
그는 카메라를 저항의 도구로 활용했다.
핍박받는 노점상을 대변하며, 그들의 삶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그가 찍은 모든 것은 사람이 우선이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나쁜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삼 년 가까이 지켜보았는데, 최인기씨 처럼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어떻게 돌 콩처럼 착해 빠진 양반이 악바리로 맞서는지 모르겠다.




청계천은 최인기씨가 청소년기를 보낸 고향 같은 곳이다.
아버지는 청계천에 있는 출판사에 다녔고, 어머니는 신 평화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그가 살았던 삼일아파트의 옥상과 복도는 그들의 놀이터였다.




도시를 돈으로 보는 돈 벌레들이 빈민들의 삶은 물론 최인기씨의 유년기 추억마저 송두리째 앗아갔다.
권력에 눈깔이 뒤집혀 청계천을 완전히 갈아엎은 것이다.
그에 맞선 최인기는 더러운 세상을 갈아엎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위한 사회’를 부르짖으며 '기록하는 빈민운동가'로 나선 것이다




원로사진가들이 찍은 오래된 청계천 판자촌 사진들이 지나치며 눈으로 찍은 사진이라면,
노무라 목사의 청계천을 이어받은 그의 사진은 빈민들 속에 들어가 온 몸으로 찍었다.
그 사진들은 청계천이 바뀌는 과정부터 핍박받는 모습까지 하나의 일지처럼 담아 낸 청계천 저항의 역사다.




사진치유자 임종진씨는 최인기의 ‘청계천 사람들’사진집 서문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청계천 사람들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형상들은 아마도 치열한 빈민운동가이자

단호한 어조로 인간의 존엄성을 전하고자하는 최인기의 존재적 의미의 기호이자 발원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예술이라는 미학적 표현의지를 타고 넘어 너나 할 것 없는 인간의 실존적 가치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소소한 이들의 삶 안으로 들어가는 최인기의 시선은 늘 사람이 우선이고 가장 최선이다.

그럼으로 최인기의 사진은 정녕 사람이요 삶이다.“




최인기씨는 “저는 이 사진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불편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편하지 않음을 통해 이 공간에 대한 의미를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합니다”고 말한다.




난, 사진가 보다 빈민운동가로서의 최인기를 더 좋아한다.
난, 사진보다 최인기의 따뜻한 마음을 더 좋아한다.

사진으로 사회를 바꾸려고 싸우는 그 투지를 좋아한다.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20일까지 이어진다.




청계천사람들, 삶과 투쟁의 공간으로서의 청계천
최인기 사진집

펴낸 곳 : 리슨투더시티
270페이지, 가격 35,000원



전시가 개막된 11일 오후6시에 들린 전시장에는 사진인보다 그와 함께 한 분이 더 많았다.
노점상을 비롯하여 ‘민주노련’ 사람들이라 성함을 잘 모른다.



아는 분이라고는 73년부터 76년까지 청계천 사람들을 기록하여 ‘노무라 리포트’를 펴낸 노무라 모토유키,
노점상대표 우종숙씨, ‘빈곤사회연대’ 윤애숙씨, ‘동자동사랑방’ 전도영씨 뿐이고,
사진가로는 김남진관장을 비롯하여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 ‘사진하는 공감아이’ 임종진대표,
사진가 엄상빈, 김문호, 안해룡, 김영호, 이세연, 곽명우, 김 헌, 안미경, 이광숙씨가 고작이다.




노무라 모토유키선생과 임종진, 우종숙씨 등 내빈의 축사와 최인기씨의 인사말을 들은 후

뒤풀이 장소인 ‘충무해물탕’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가지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뒤풀이 비용을 모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뒤풀이 장소에서 최인기씨를 말하는 이규상씨의 열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역시 이규상씨는 술이 한 잔 들어가야 투사적 기질이 나오더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1일부터 '갤러리 브레송'에서 김동진의 ‘Another City 2’ 사진전이 열렸다.




김동진의 ‘또 다른 도시’는 인간성이 상실되고 개인주의로 치닫는 심각성을 비판하며 고발하고 있다.




정상보다 비정상이 판치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때로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마저 혼란스럽다.

삶의 구조가 비정상으로 치닫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비정상이 정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그 구분 자체가 인간이 규정해 길들어 온 것이겠지만, 그 기준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인간성일 것이다. 




소외와 박탈, 욕망, 갈등 등 현대인들의 심리적 불안상태와 비정한 도시의 단면을 형상화하여,

앞만 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개막식에는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를 비롯하여 김남진관장, 사진가 김문호, 이수철, 이윤기,

김영호, 정영신, 함인선, 하춘근, 이세연씨 등 20여명이 참석했지만,

같은 시간대에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개막된 중국사진가 왕칭송 전시에는 200여명이 참석하였단다.

너무 대조적이다. 그 전시는 3개월이나 열린다는데...




이수철, 이광수, 김문호, 김남진씨가 차례대로 나와 사진에 대한 감상평과 격려의 말을 전해 주었고,

작가 김동진씨가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서로 개막식이 진행되었다.




전시작이 작년에 전시된 사진보다 더 좋아진 것은 틀림없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사진 평을 해 주신 분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사진비평가 이광수씨의 표현으로는 사진이 더 독해졌다고 말했고, 김문호씨는 사진이 진득하게 찰지다고 표현했다.


 

난, 김동진씨가 주제를 잘 선택했다고 생각되었다.

비정상으로 돌아가는 세상인지라 모든 게 찍을 대상이 아니겠는가?

사진가 김문호씨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작업도 비틀어진 사회상의 기록이지만, 그 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주제는 비슷하나 김문호씨의 사진이 동적인 편이라면 김동진씨 사진은 정적이다.




개막식이 끝난 후, 다들 충무 해물탕 집에 몰려 가 뒤풀이를 했다.
전시작가 김동진씨도 부산사람이지만, 이광수씨도 부산서 올라 와 더 반가웠는데,

이광수교수의 시원시원한 입담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오기로 한 이규상씨가 빠져 다들 아쉬워했다.

바쁜 분이 후배들 사진전을 위해 마음 써주는 것이 고맙기 그지없는데, 다 사진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김남진관장이 이차로 안내한 곳은 후미진 골목 안쪽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의 통행이 없는 골목인데, 분위기가 오붓해 좋았다.

더구나 술 마시며 담배까지 피울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었다.




뒤늦게 사진가 고정남씨도 찾아 왔는데, 술 마시다 사진 촬영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초상권 문제로 사람은 물론 거리스냅도 어려운 실정이 아니던가?

김문호씨는 카메라 파인더를 보지 않고 찍는 노 파인더 기법을 많이 활용한다고 했다.

이젠 숙련되어 대부분 의도한 화각을 얻어낼 수 있단다.




가로등이 조는 어두컴컴한 골목 풍경도 김문호씨가 놓칠 리 없었지만,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사랑 놀음하는 남녀가 타깃이 되기도 했다.




그 날 김동진씨가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자리했었는데, 결혼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남편 될 김동진씨의 사진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니, 찰떡궁합인 것 같았다.

다들 축하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런데, 김남진관장과 김동진씨가 나란히 앉았는데, 찬찬이 살펴보니 너무 닮았더라.

이름까지 비슷한데, 혹시 숨겨 논 아들이나 동생은 아닐까?




다들 술이 취했으나 삼차로 호프집을 찾았다.
김남진 관장이 앞으로 추진할 사진기획을 말했는데, 이광수교수도 흔쾌히 돕겠다고 했다.



헤어지기 아쉬워 계속 마시다 보니, 자정이 가까워 전철이 끊어 질 시간이었다.

부산사람들은 여관을 잡아 놓았으나, 멀리 가야할 김문호씨가 걱정이었다.

택시비로 주머니 좀 털렸을 거다.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가 되었다




이 전시는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10일까지 열린다,
안 보면 손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14일 오후6시 무렵, 충무로에 있는 ‘갤러리 브레송’을 찾았다.
김남진 관장과 홈페이지 제작에 따른 의논할 일이 생겼는데,
마침 이윤기씨의 ‘시간을 담다’ 사진전이 마무리되는 날이었다.






얼마 전, 김남진관장이 내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나,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한 게 잘 못이었다.
김남진관장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해, 결국 바쁜사람 고생만 시킨 셈이다.






나 역시 사진전 했던 서문과 작업노트 등 여러가지 기록들을 다시 쳐야 했는데,
돋보기를 치켜세워 독수리 타법으로 토닥거리려니 예삿 일이 아니었다.






15년 전에 홈페이지를 만든 적이 있으나 2-3년 운영하다 그만 둔적도 있다.
효용성이 없는데다 매년 도메인 사용료만 들어가 ‘창예헌’ 카페로 대체한 것이다.
'인사동 유목민'으로 명칭을 바꾸어 인사동 사람들의 소통공간으로 만들었으나 불협화음에 문 닫았다.

 6년 전 ‘인사동 사람들’이란 블로그를 만들어 개인정보 창고로 활용하고 있다. 



 


어차피 시작된 일이라 사진동지 정영신씨와 ‘브레송’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홈페이지 접속방법이나 활용방법을 알아보려면, 정영신씨 도움이 필요해서다.






김남진관장은 5박6일의 필리핀 촬영 여행에서 어제 돌아왔다고 했다.

정영신씨가 관장실에 들어가 설명 듣는 동안 전시장에서 김윤기씨 작품을 다시 보았는데, 
보리 흉년에 빨간 딱지가 무려 열 여섯 점이나 붙어 있었다. 완전 봄 사건이었다.






좀 있으니, 사진가 김문호씨와 이수철, 이주영씨 등 반가운 분들이 여럿 들어왔다.
아마 전시 쫑파티를 겸해 연락한 것 같았다.






어울려 술 한잔하러 갔으나 갈 때마다 어디 갈까? 망설인다.
그토록 음식점이 많지만, 딱 이거다 하는 음식점이 없어서다.
재고 재다 결국 ‘김삼보’로 들어갔는데, 만만한 게 돼지고기였다.






작품이 많이 팔려, 얻어먹는데 부담이 없어 좋았다.
김문호씨는 작가가 덕을 쌓아 작품이 많이 팔렸다고 했다.






나도 덕 좀 쌓으면 좋으련만, 요놈의 주둥이 때문에 되질 않는다.

덕은 커녕 원수만 만들고 있는 셈이다.

팔리지 않을 사진, 전시를 안 하니 팔 걱정은 없다.






한 때는 비싸지 말 것(가격 합리화), 보기 쉬울 것(작품의 대중화), 덕을 쌓을 것(고객 관리)등
삼대 고수레로 침을 튀긴 적도 있으나, 말짱 도루묵이었다.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욕심을 내려놓아 생활보호대상자가 되니 팔자가 늘어졌다.
거지 팔자 상팔자라는 걸 새삼 실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이윤기씨의 빛 그림 사진전 ‘시간을 담다’가 지난 2일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렸다. 





전시된 사진들은 그림처럼 아득한 그리움을 안고 있었다.

싱그러움이 느껴져, 젊디 젊은 사진가의 작업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은 이윤기씨는 칠순을 훌쩍 넘긴 노사진가라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은 유수같이 빠르다.
그의 사진에는 인생무상에 대한 안타까운 그리움이 배어있다.
이윤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흘러가는 그리움의 시간이고 세월이었다.
연분홍 빛 아름다웠던 사랑의 시간도 담겨있고, 힘겹고 암울한 고난의 시간도 담겨있다.
돌이킬 수 없는 억겁의 세월은, 장면 장면마다 그리움이 절절했다.






이윤기씨는 바람에 날려가는 시간과 세월을 붙들어 인화지에 뿌려 놓았다.
얼핏 보면 느린 셔터로 쉽게 찍을 수 있는 이미지로 볼 수도 있으나,
그의 사진에는 깊은 내공이 쌓여있다.
어쩌다 한 두 장이라면 우연성에 기대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아니었다.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형상화하기 위해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찾아낸 기억이다.





그리움의 시간들은 너무 아름다웠다.
불어오는 바람에 그리움이 꽃비처럼 흩날린다.
그렇게, 봄날은 가는 것이다.






사진 평론가 최연하씨는 서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작가가 붙잡고 싶은 십 분의 일초는 그가 사진에서 되찾고 싶었던 시간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근거인 풍경-세계 속으로 들어가, 살아왔고 살아가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겹쳐 운동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특이한 것은 무엇이 어떻게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인 풍경이지만, 시간의 눈들이 분명하게 포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매 순간 세계가 선사하는 빛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작가의 눈빛도 반짝인다. 자유롭고 귀한 몸짓이다.

작가는 아마도 작가 속으로 들어 온 바람과 더불어 ‘바깥’의 바람을 사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바깥(피사체)이 사진가의 내적 원리가 될 수 있음을 이윤기의 빗금 그어진 풍경을 보며 생각한다."






이 전시는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15일까지 열린다.






지난 6일 정오 무렵 ‘갤러리 브레송’을 찾았다.
누구 전시인지 어떤 사진인지도 모른 체, 김남진관장의 부름에 따른 것이다.
마침 밥 먹으러 갔는지, 김남진씨도 전시작가도 없었다.
사진을 돌아보며, 작가 이윤기씨가 누군지 궁금했다.




아름다운 풍경만 찾아다니며 복제하듯 찍어대는
아마추어 사진들에 진저리를 내 온 터라 신선하게 다가왔다.
많은 생각을 끌어내는 사진에서 어렴풋이 작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몽환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에서 젊은 감성이 묻어났다.
전시장에 들어오는 작가를 만나보니, 성함만 기억 못했지, 잘 아는 분이었다.
전시 오프닝마다 숱하게 만나왔고, 술잔도 여러 차례 나누었던 분이 아니던가.
그 분의 사진도 처음 보았는데, 사진으로 이윤기씨를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전시를 돌아 본 후, 사무실에 들어가 김남진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사진가 박옥수씨가 들어왔다.

충무로에서 숱한 세월을 보낸 분이라, 이야기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젊은 시절에는 문선호선생 스튜디오에서 일한 적도 있다며,
문선호선생의 세심한 성격과 사업적 수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금성출판사’와 손잡고 현대미술가100인선 화집을 만들어 돈도 많이 벌었단다.
어느 날 스튜디오에서 누드 모델을 촬영하신 후, 그 이틑 날 갑자기 돌아가셔서
복상사하셨다는 풍문이 돌았는데, 사실이 아니란다.






한 때는 제일 행복한 죽음이 복상사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차피 죽을 것, 황홀하게 마감하고 싶지만 살아남은 사람 생각에 안 될 것 같았다.
이윤기씨 사진처럼, 아름다운 꽃비를 날리고 싶었는데...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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