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 있는 사진전문갤러리 ‘브레송’에서 색다른 전시 하나 열렸다.

바로, 화가 김기호씨와 사진가 권 홍씨가 보여 준 암울한 시대의 초상이다.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두 사람의 작품들은 많은 여운을 남기게 했다.
어디로 갈지 모를 표류하는 배처럼, 막막한 현실을 말했다.

다들, 카메라와 연필이라는 도구만 달랐을 뿐이지,
오늘의 시국을 안타까이 바라보는 기록이고, 하나의 시어였다,
직설적인 표현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김기호씨의 드로잉 작업은 현실을 우화적으로 꼬집었고.
권홍의 사진은 다중노출이나 팬닝기법으로 현실을 비껴가며,
아픈 기억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또 다른 ‘시대의 기록 전’ 이었다.






이인전에 부쳐 송효섭씨가 쓴 글의 일부를 옮긴다.

“김기호는 주로 연필로 한 드로잉 작업을 보여준다. 작은 화면에 매일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 때 그때 그린 것들이다. 드로잉은 모든 조형작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무한한 미래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드로잉을 보는 재미는 미완결 된 것처럼 보이는 작업 앞에서 앞으로 펼쳐진 수많은 조형적 가능성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따라서 드로잉은 그 자체로 ‘날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나친 가공을 거치지 않은 날 것의 상태는 전문적인 기법이나 기교 이전의 것으로 삶의 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지금의 기록이다”라고 외치는 드로잉 작품은 마치 시절인 으로서의 자기선언처럼 보인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일상적 사물들은 그가 살고 있는 현재 속에서 교묘하게 뒤틀려 제시된다.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것을 말하는 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권홍은 사진작업을 보여준다. 일상생활 속에서 포착된 형상들을 단지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그 때 그 때 떠오른 정서에 따라 적절히 가공한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다중노출의 패닝기법은 있는 그대로의 형상에 마치 수묵과도 같은 번짐과 모호함을 주어, 시간 속에서의 기억을 축적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나의 풍경은 지금의 풍경이기도하고, 또한 바로 이전의 풍경이기도 하다. 우리의 느낌이 시간의 기억을 토대로 하듯, 권홍의 사진에서 드러나는 형상은 이러한 기억을 불러일으켜 현재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촛불광장을 그려내는 방식 도한 사실적 제시를 목적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아닌, 그것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는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광장의 촛불은 시절인으로 그가 경험한 매우 사적인 것이며, 그래서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들 두 작가가 격변의 시대를 사는 시절 인으로서의 삶의 체험을 각기 다른 매체를 통해 담담하게 그려낸다. 

시절 인으로서의 관객이 이들 작업을 통해 예술적 열락에 쉽사리 감염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지난 5일 오후6시 ‘브레송’에서 열린 개막식 풍경은 평소와 사뭇 달랐다.
전시 축하객들의 면면이 사진하는 분에서 미술인으로 바뀐 것이다.
내가 아는 사진가로는 전시작가와 김남진 관장, 박영환씨 밖에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 안면 있는 화가들이었다.
장경호씨를 비롯하여 배인석, 천호석, 이재민, 최석태, 김영중, 송효섭, 양상용, 탁영호, 정영철, 이승완,

변대섭, 이원석, 최연택, 강기욱, 안창길씨가 보였고, 정동용 시인도 왔었다.

그리고, 다른 일에 빠져 개막식에서 찍은 사진을 그동안 깜빡 잊고 있었다
뒤늦게 올리게 되었는데, 지인이나 전시 보실 분들은 서둘러야겠다.

이번 토요일(14일)에 끝나는 ‘빛과 선으로 시절을 그리다’를 잊지 마시라.

사진,글 / 조문호










































































갑작스런 전시 준비로 보름 가까이 똥 오줌 못 가렸다.

갤러리 앞에 서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담배 한 대 피워 물었다.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가지며, 지난 시간을 돌아 본 것이다.
그동안 동자동에선 두 분이나 돌아가셨다는데,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
어제 밤에는 일주일 만에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을 꺼내보며,
그걸 정리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이번 전시는 느닷없이 코가 꿰인, 억지춘향격의 전시였다.
오래전 만들어 둔 포토포트폴리오에서 사진은 골라 썼지만,
초창기사진들은 필름 수정하느라 어깨가 빠질 것 같다.

돈도 시간도 없어, 전시를 안내하는 엽서도 만들지 못했다.
별도의 연락과 우편물은 보내지 않고 SNS만 알렸더니, 주위에서 말들이 많다.
왜 연락을 안했냐며, 삐친 친구들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젠 그런 형식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처음엔 전시 비용을 걱정했으나, 다들 주변에서 도와주셨다.
고향의 후배사진가 하재은씨가 도와주었고, 이광수교수는 뒤풀이 비용까지 내 주셨다.
사는 것 자체가 빚지고 사는 인생이었으니 어쩌겠는가? 저승에서라도 갚을 날이 있을지...
애써, ‘사진인을 찾아서’ 기획 자체가 갖는 사진적 의미로 위안한다.
남는 장사인지, 손해 보는 장사인지, 그런 걱정마저도 정영신에게 떠 넘겨버렸다.

전시 디피는 일본에 사는 사진가 양승우와 시나리오작가 최근모가 도와주었다.
그들이 일복이 많은지, 내가 인복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오픈 날은 광화문광장으로 가야 하는 토요일이라
가능하면 평일에 오라고 알렸으나, 많은 분들이 찾아 오셨다.

한정식선생을 비롯하여 이광수, 이규상, 김남진, 강제훈, 정진호, 윤철중, 양재문, 김준호,

권 홍, 이경희, 오윤석, 장경호, 김문호, 김 구, 김보섭, 임계재, 조준영, 나떠구, 김주혁,
박병문, 채재웅, 고정남, 고광석, 마기철, 박진호, 김봉규, 이윤기, 이은영, 황일환, 이정환,
이석필, 김 원, 김성규, 최근모, 조햇님, 유진오, 오윤택, 노광래, 정영신, 문진우,
박영환, 강제욱, 윤진원, 양승우씨등 전시를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갑자기 끄집어 낸 사진들을 펼쳐보이니 부끄럽기 짝이없었다.
박근혜 말처럼 ‘이럴라고 사진을 했는지 자괴감마저 든다.’
반 평생 동안 사진 사진 노래를 불렀는데, 겨우 이건가 싶다.
어쩌면 이것조차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일지 모른다.

아무튼, 돈 한 푼 없는 개털 주제에 전시까지 열며 기분 좋게 놀고있다.
모두들, 고맙고 고맙다.

이제 즐겁게 여생을 보낼 동자동으로 돌아갈 때가 닥아오고있다.
전시 오픈에서 찍은 이런 저런 모습을 기념으로 펼쳐 놓는다.

글 / 조문호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지난 11월24일 오후1시 무렵, ‘갤러리 브레송’으로 이광수교수를 만나러 갔다.
사흘 전, 김문호씨의 ‘사진인을 찾아서’기획전 개막식에서,

김남진관장이 나를 마지막 작가로 지목해 인터뷰 하러 올라 오셨는데,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길바닥에 돈 뿌려가며, 연이은 서울 나들이를 하셨는데, 미처 인터뷰에 필요한 사진 파일을 보내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전시 결정에 정신을 못 차려, 사진을 선택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약속장소인 ‘갤러리 브레송’에 갔더니, 전시중인 사진가 김문호씨와 ‘한겨레‘ 곽윤섭기자도 나와 있었고,
뒤늦게는 울산의 산신령이란 분이 나타나서, ‘사진에게 위로받다’라는 사진집도 한 권 주었다,

이광수교수께서 여러 가지 물어보았으나, 사진보다 살아 온 내력을 주로 물었다.
그동안 어떠한 사진을 찍은 것이야 대략 알겠지만, 자료가 없으니 사진에 대하여 물어 볼 수가 없었던 게다.
그러면 나라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 주어야 할텐데,

술 마시지 않으면 주변머리가 없어 꾸어다 놓은 보리쌀자루처럼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에서 상대방을 김빠지게 만들 때가 종종 있는데, 특히 방송사의 인터뷰 요청은 지레 겁먹어, 가급적 사양한다.

아무튼, 이 선생께서 널리 양해하시어, 매서운 비판으로 꾸짖어 주었으면 좋겠다.
대신, 글 쓰다 의문점이 생길 땐 연락주시면, 충실히 답해 드리겠다.

그리고, 한 가지 자문 받고 싶은 것도 있다.
전시제목을 ‘사람중심’으로 생각하다, “人本主義‘로 바꾸려는데, 선생께서 생각하는 적절한 제목은 없으신지?
그리고 김관장 께서는 사진들을 이 것 저 것 다 걸고 싶어 하지만, 모든 걸 정영신씨께 일임해 버렸다.
그러나 나름으로 최선은 다할 작정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토요일은 불알에 요랑 소리 나도록 바빴다.
오전에는 주민들에게 배급되는 교회 빵 봉지 따라 다녀야하고, 정오에는 '빈곤철폐 퍼레이드' 찍으러 동대문 가야하고,

오후3시부터는 동자동 새꿈 공원에서 열리는 쪽방주민들을 위한 공연을 찍어야 한다.

퍼레이드를 끝까지 지켜보진 못했지만, 아쉬운대로 마무리했다.

다섯시가 넘어서야 모든 일이 끝나 주민들도 뿔뿔이 헤어졌다.

바쁘게 쫓아다니느라, 오전에 빵 한 조각 얻어먹은 것이 고작이라 배도 고프고, 술 생각도 났다.

‘어디서 끼니를 해결할까?’ 걱정하고 있는 차에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태백에서 활동하는 광부 사진가 박병문씨 였다.
충무로 ‘브레송’으로 오라기에, 옷 갈아입으러 쪽방부터 올라갔다.

그날따라 4층 올라가는 계단이 왜 그리 힘든지, 끙끙대며 몇 번을 쉬었다.
그냥 갈 수도 있었으나, 카메라 전지도 갈아야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하기 때문이다.
온 종일 땅바닥에서 헤맨 옷을 입고, 어떻게 지옥에 갈 수 있겠나?

기다리다 지친 김남진씨와 박병문씨 내외는 갤러리 밖에 나와 있었다.
지난 8월, 정영신의 ‘장날’ 전시장을 찾아줘 만나기는 했지만, 엄청 반가웠다.
멀리 떨어져 살긴 하지만, 여러 방면으로 챙겨주는 고마운 후배다.

그 날은 모처럼 영양 보충시켜 준다며, 고기 집으로 끌고 같다.
갈비 살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더니, 술맛이 꿀맛이더라.

한 잔 먹은 김에, ‘서울도시빈민프로젝트’에 대한 기획과 진행을 김남진씨가 맡아 줄 것을 부탁했다.

일전에 페북을 통해 복안을 밝히기는 했지만, 직접 말문을 연 것은 처음이었는데, 흔쾌히 받아주었다,

큰 짐 하나 벗었는데, 동자동에만 전념할 수 있어 홀가분했다.

술자리에서 김남진씨의 이태원 촬영길에 따라 나서기로 했으나, 서울역에서 내려 버렸다.
몸도 지쳤지만, 박병문씨가 챙겨 준 음식이 마음에 걸려서다.
태백에서 가져 온, 삶은 고구마를 비롯하여 만두와 밥 등, 한 보따리였다.
이 정도 음식이면 이틀 동안 끼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이 웬수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걱정스럽다.


사진, 글 / 조문호





















촛불시위 (2002)


’사진가를 찾아서‘ 여덟 번째 브레송 기획전 ‘신동필론, 부르지 못한 노래“ 개막식이 지난 22일 오후6시30분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렸다.

그 자리에는 신동필씨를 비롯하여 김남진관장,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 사진가 엄상빈, 김문호, 김보섭, 김봉규, 성남훈, 강제욱, 안세홍, 고정남, 김영호, 윤길중, 남 준, 곽명우, 정영신, 이영욱, 이한구, 차홍규, 김진석, 박홍순, 고형모, 양재호, 안옥철, 임지원, 최승희, 김종현, 장병국, 신미식, 신희수, 이현동, 이영준, 노원섭, 조태용, 유승준, 박춘선, 김명정, 우종성, 최문선, 조웅현, 최지은, 정윤숙, 김현숙, 한선정, 한선희, 이정원, 민선희씨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부르지 못한 노래’전은 거리의 투사로 역사의 증인으로 온 몸을 내던지며 기록해 낸 작업으로 새로운 형식이나 창의력보다 모두가 힘들게 살아 왔던 그 시대 상황 자체만으로 감동을 준다. 이 번 전시와 함께 징용인들의 한을 담은 ‘교토40번지’ 사진집이 눈빛사진가선 30호로 출간되기도 했다.



광부 이춘하



여지 것 사진가 신동필 사진을 본 것은 2005년도 ‘강원다큐멘터리 사진사업’에 내놓은 사진이 전부였다. 그 당시 난 ‘두메산골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었고, 그는 “탄광촌을 지키는 막장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사진들이 강원다큐멘터리 사진 사업에 선정되며 알게 되었는데, 그 때 그의 사진을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의 작품은 잿빛 탄광촌이 카지노의 화려한 불빛에 묻혀가는 아픈 시대상을 기록하고 있었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탄광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은 인간 존재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줄기차게 민족으로서의 핏줄을 내세워 온 그의 작업이 인간의 노동에 대한 문제로 옮겨 간 시점인 것 같았다.



교토 40번지



그리고는 한동안 사진판에 비켜 서 있던 그가 10여년 만에 사진을 내놓은 것이다. 처음 보여 주었던 “탄광촌을 지키는 막장 사람들”과는 달리 광부 이춘하 개인의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한 막장 노동자를 통해 노동자들의 위기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초창기 작업이었던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록에서부터 비전향장기수문제, 입양아문제, 강제징용 일세대인 ‘교토 40번지“, 위안부문제, 원폭피해자문제 등 한 민족의 아픔을 골고루 다루고 있었다.

사실 말은 쉽지만, 돈 안 되고 힘만 드는 이 같은 작업을 꾸준히 이어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아픔을 지켜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함께 아파하지 않고 찍을 수도 없지만, 찍더라도 금방 본색이 드러난다.



명동성당 (1991)


그런데, 그가 초창기에 작업한 민주화운동은 나도 기록했는데, 왜 신동필을 그 당시엔 몰랐을까? 모두 민주화를 열망하며 분노한 것은 같았지만, 그는 민주화운동의 주체인 학생 측 입장이었고, 난 한 걸음 물러난 일반인의 입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 완장 없이 현장을 어슬렁거렸으니, 그의 눈에는 경찰 프락치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한국외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권 철, 양승우와 함께 각각 정치, 사회, 민족 문제들을 일본에서 기록한 삼대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특히 그가 작업했던 강제징용자 일세대의 삶을 다룬 ‘교토40번지’를 유배된 조선인을 가둔 유형지로 해석하고 있었다.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채 버려 진 그들이 겪는 가난과 질병, 정신분열증 등을 보여주며 파렴치한 일본인들의 염치와 치욕의 역사를 눈감은 대한민국 정부를 나무라고 있었다.



비전향장기수 (2000)


그런데, 사진전을 열며 그가 사진을 그만 두겠다는 말을 다시 끄집어냈다. 왜 사진에 대한 미련을 떨치려는지, 그를 좌절케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가난하게 살아 갈 수밖에 없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설음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건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한국 사회의 암담한 현실이나 끼리끼리 나눠 먹어 온 사진판의 오래된 갑질 권력에 대한 환멸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전시한 사진들을 조건 없이 관련 사회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단다. 정신대할머니들의 사진을 비롯하여 민주화운동을 기록한 자료를 모두 내놓겠다는 것이다. 그 사진이란 결국 당사자들의 몫이기는 하지만, 사진을 그만 두겠다는 그의 말에 구체성을 띈 것이라 더 가슴 아프다.


예술은 신동필의 사진처럼 인간의 존엄, 진리, 정의 등을 담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의 사진들은 어두웠던 터널을 함께 뚫고 왔던 우리 모두로 하여금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우리 시민 공동체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는, 그리고 그 위에서 전율하도록 하는 작품이다. 작품이란 이처럼 심장을 열어젖히는 것이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사진비평가 이광수씨가 말했다.

이 전시는 갤러리 브레송(02-2269-2613)에서 30일까지 이어진다.



사진가 신동필씨





-아래 사진들은 개막식과 뒤풀이 모습이다-




























































































덥지근한 장마철에 눈이 번쩍 뜨이는 사진전이 열렸다.
오는 20일까지 충무로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리는 양승우의 청춘길일이다.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숱한 전시를 하였건만, 고국에서는 처음 있는 전시다.





개막식에 참석하지 못해, 아내가 쉬는 날을 택해  함께 전시장을 찾았다.

여기 저기 볼일이 많아 차를 끌고 나왔는데, 정차 중에 브레이크가 밀려 경미한 접촉사고가 난 것이다.

간신히 처리하고 전시장에 들렸더니, 양승우씨 내외를 비롯하여 김남진 관장도 있었다.



몇 일전, 인터넷에 올라 온 사진들을 보아 기대는 했으나, 전시를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전시장 가득 돈 냄새와 여자냄새, 마약 같은 찐득한 냄새들이 진동했는데,

인간의 존재 의미를 되묻는 듯, 내면에 숨어있는 원초적 욕망을 꿈틀거리게 했다.

오랜만에 사진다운 사진을 보았다.





시를 보고 말한 미술학자 이태호 교수의 말이 적확했다.
고급스런 하위문화가 넘쳐나는 세상에 저질스런 고급문화를 본다.

양승우의 사진을 보면 그동안 우리 다큐가 세상의 한쪽 구석에서 참으로 소심하고

착하게만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서 본 작가의 첫인상은 폭력배처럼 우락부락한 것이 아니라, 내성적이고 온순한 사람이었다.

또 겸손했다. 단지 그의 눈빛에서 강한 의지력을 읽었을 뿐이다.






조직 폭력배로 삶을 살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친구가 사진 찍는 동기부여를 했다고 한다.

대개의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이 내세우는 사회에 감춰진 이면을 기록하려는 사명감에 앞서,

사진가로서 죽은 친구 사진이 한 장도 없음을 후회하며 살아남은 친구들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솔직한 말인가? 사실, 잘 모르는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을 찍는 게 스스로에게 더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명분 있는 사회적 약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양승우 사진에 등장하는 조직폭력배들도 돈 없는 죄와 못 배운 죄를 짊어 진

사회적 약자에 다름 아니며, 똑 같은 인간일 뿐이다.

사진에 드러난 찐득한 모습 뒤에 인간적인 애잔함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양승우의 사진이 껄끄럽거나, 그 사진 속의 사람을 손가락질 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밖으로 들어내지 않아 그렇지, 어느 정도의 양면성은 다 있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고, 섹스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앞서 언급했지만, 충무로 역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차가 밀려 앞 차를 받은 일이 있었다.

경미한 충격이지만 내려 보니, 차에 아무 이상도 없었다. 그러나 당연한 듯 인사사고로 접수하라는 것이다.

영업용 기사야 힘들게 일하는 것 보다 병원에서 지내며 일당을 받아 낼 욕심인지 모르지만,

뒷자리에 앉은 보험회사원까지 병원에 가겠다는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예전에는 목이라도 움켜지며 아픈 척이라도 했지만, 지금은 아주 당연하다는 식이다.
이런 지저분한 세상에, 의리 하나로 뭉쳐 사는 그들을 누가 욕할 수 있겠는가?






양승우는 2006년 도쿄공예대학 미디어아트 박사전기과정을 수료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청소를 비롯하여

온갖 잡일에 전전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그 사이 가부키초의 야쿠자를 시작으로 고토부키초의

일용직 노동자, 노숙자 곤타씨 등 서너 개의 테마를 동시에 찍었다.


20여 년 동안 열 번 이상의 사진전과 네 권의 사진집을 냈고, 열 번 이상의 사진상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일본 도쿄의 젠 포토 갤러리와 프랑스 파리의 인 비트윈 아트 갤러리소속작가지만,

여전히 일용직 노무자로 일하고 있다. 이것이 다큐멘터리사진의 비참한 현실이다.






언급한 이력이나 유명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진들이 주변을 오가며 찍은 것이 아니라

그 조직폭력배의 일원으로 찍었다는 것이다.

함께 즐기며 찍지 않고는 이렇게 강력한 소구력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교도소는 물론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각오로 온 몸을 바쳐 즐기는 사진가가 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겠는가?

전시된 사진들은 옛 친구들과 놀던 2003년부터 2006년 까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찍은

우리나라 조폭집단의 실상이지만, 일본의 야꾸사들을 찍은 사진집도 펴낸 적이 있었다.

한국에선 조직폭력배 친구들이 많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일본은 달랐다.

찍으려는 작가의 진정성을 알아보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피사체와 작가의 경계가 없다

주변의 누군가에 카메라를 쥐어 주고는 자신이 사진화면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혹자는 그게 어떻게 양승우의 사진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가 셔터를 눌렀나 보다 함께 교감하는 작가의 의도가 더 중요한 것이다.






사진가가 찍어 온 야쿠샤, 노숙자, 동성애자 사진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듯 친밀하다.

어디가 진실이고 허구인지가 궁금할 정도로 기록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자신이 당하는 현실 속의 분노와 욕망의 찌꺼기까지 과감하게 드러내 보여 주었다.
밑바닥 인생의 솔직하고 과감한 접근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한 충격을 안겨 준다.
우리사회의 숨겨진 일면을 담아낸 이 자전적 기록들은 누가 뭐래도 역사로 길이 남을 것이다.

이토록 훌륭한 사진가이건만, 살아가는 현실은 비참하다. 한국에 들어 와 살고 싶지만,

한국에는 일거리 얻기가 힘들어, 그나마 아르바이트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본에서 산단다.

그 것도 몇 년 동안 길거리에 노숙하며 살았는데, 사진과 재학 때 후배였던 지금의 아내가 결혼을 서둘렀다고 한다.

 


 


전시 개막식에서 했다는 그의 말에서 고집스런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오늘 여기 오신 여성분들이 볼 때는 제 사진이 좀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사진이냐? 라고 하시는 분이 계시면 싸울 수 밖 에 없습니다.

예술이란 답도 없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앞으로 계속 해 나갈 것입니다.





전시와 함께 눈빛출판사의 눈빛사진가선 27양승우사진집 청춘길일이 나왔다,
가격은 12,000원이다.


글 / 조문호








좌로부터 필자 조문호, 양승우 부부, 뒷줄 김남진 브레송관장과 장터사진가 정영신


 



가부키초

가부키초


'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여섯 번 째 작가로 ‘권철 론’이 전시되고 있다. 6월20일 오후6시30분에 개막된 권철의 사진전은 오래 전부터 기다려 온 전시였다.

개막시간을 맞추려고 기다리는 중에 ‘아라아트’ 김명성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미스터 브레인워시전' 기자회견이 열리는데, 왜 오지 않냐는 것이다. ‘브레송’가는 길에 들릴 생각으로 서둘러 나갔으나, 전시장은 기자들로 만원이었다. 그 많은 기자들이 취재하는데, 나 까지 끼어들 필요가 있나 싶었으나, 인사동에서 열리는 대형전시라 사진만 찍고 충무로의 ‘갤러리 브레송’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철로 가는 중에 아내로부터 독촉이 왔다. 개막식을 못하고 기다리니, 빨리 오라는 것이다. 사진판의 기록자 곽명우씨가 늦어, 대신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데, 사진도 사진이지만, 시간이 늦어 마음이 바빴다.

전시장에 도착하니 주인공 권 철을 비롯하여 ‘브레송’ 김남진 관장,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 ‘눈빛출판사’ 이규상씨, 사진가 김문호, 성남훈, 강제욱, 신동필, 마동욱, 양시영, 이한구, 이일우, 김 원, 정영신, 김지연, 이정용, 이주영, 김진석, 송주원, 나떠구, 홍윤하, 김영호, 박영환, 마기철, 김주혁씨 등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나중에는 하재은, 구자호, 곽명우씨도 나타났다.

개막식에서 이광수교수의 작가론과 작가 권철의 힘들게 사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라앉았던 분노가 또 다시 치밀어 올랐다. 한 동안 정치, 사회적으로 만연한 부조리와 사진판 비리에 목소리를 높여 왔던 것도 권철 같은 고통 받는 다큐멘터리사진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민식 사진상이 끼리끼리 해 처먹는 것도 모르고, 작년에 권철씨가 들러리를 선 적도 있었다. 사진을 모르는 어린애가 보아도 수상작보다는 권철의 사진이 뛰어나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사진도 사진이지만, 권철은 어렵게 작업을 이어가는 의지의 사진가가 아니던가? 




 야스쿠니. 군국주의의 망령


 야스쿠니. 군국주의의 망령


 야스쿠니. 군국주의의 망령


 야스쿠니. 군국주의의 망령



'브레송'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사진인을 찾아서’란 이 기획전은, 사진은 좋지만, 속칭 진골 성골에 가려있는 진정한 사진가를 찾아 내어 작가의 전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라, 한 가지 주제로  보여주는 일반 전시와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보아왔던 회고전 형식의 원로전과도 다른 것은 이건 종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생각이나 형식들이 변해가는, 작가들의 주제와 접근방식, 그리고 진전하는 과정들을  한 눈에서 본다는 것은 한 작가를 이해하는데 안성마춤인 것이다.


이번에 초대된 다큐사진가 권철은 못 말리는 독고다이다. 이십대 중반에 사진 공부하러 일본 들어가 환락가 신주쿠 가부기초를 촬영했다. 보통 깡다구가 아닌 것이다. 자칫하면 야쿠자 한데 맞아 죽는다. 18년 동안 기록한 그 사진으로 고단샤 출판문화상 사진상도 수상했다. 그렇다고 주먹들의 세계만 보여주는 소재주의에 빠진 사람도 아니다.


그는 모두가 외면하는 한센병회복자의 삶은 담은 ‘텟짱’으로 데뷔한 인간미 넘치는 사진가다. '텟짱' 이야기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작업들이 진실을 찾아내어 밝히고 그것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텟짱’은 소외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에서 소외당하고 멸시당하는 '조선인'의 모습을 일본 한센병회복자 요양원에서 찾았는데, 주인공은 요양소에 살았던 시인이자 한센병 회복자인 텟짱이었다. 권철은 텟짱이 사망하기 까지, 14년 동안 그의 삶을 사진으로 담아 온 것이다.

중요한 것은 권철이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헌신적인 정신으로 무장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결정적인 사진 한 두 장만 찍으면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안정된 기자 자리를 사진을 위해 박차고 나온 사람이다.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을 취재하다, 무너진 건물에 끼여 양 다리를 절단하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한계를 느낀 것이다. 사람에게 닥친 고난이 자신의 밥벌이라는데, 어찌 회의감이 들지 않았겠는가?

 


이호테우

이호테우

이호테우




저널리즘 사진기자는 뉴스를 찾아가지만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스스로 뉴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권철은 조직이나 배경보다 세상과 독대하며 세상을 찍어 왔다. 그러면서도 외양이나 현상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 그리고 구조와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가 만들어내는 풍경을 자신의 주제로 삼았는데, 가부키초, 야스쿠니, 오오쿠보 코리안타운, 우토로 등 모두가 일제 식민 경험과 연결된 사건들이다.

그 이후, 그의 자식이 태어난 지 100일째 되는 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터졌다, 가족을 위해 안정된 생활권을 모두 버리고, 무작정 한국으로 귀국하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 사회와 사진계의 현실을 주위에서 알려주었으나, 그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제주 거리에서 풀빵 장사로 연명하며 어려운 작업을 어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제주에 정착하며 시작한 ‘이호테우’작업은 중국 자본 침탈의 역사를 한 해녀를 통해 풀어 간 것이다, 돈이 얽히면서 뺏고 빼앗기는 추악한 인간 세계를 들춰내는 작업이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평생을 살아 온 해녀 할망의 집념과 쓸쓸함이 사진에 묻어있다.

그리고 신 자유경제 물결로 인해 서서히 중국인들이 점령해가는 제주의 모습을, 바다 멀리 중국인 관광객들을 가득 실은 어마어마한 크루즈선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권철은 작년 여름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기도 했다.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을 사진으로 고발하기 위해 제주시 제주목관아 안에서 사진전을 열겠다고 요청하자 제주시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허가 해줬다. 그런데 광복회 회원 몇 명이 나타나 일장기가 드러난 사진을  광복 70주년에 걸려 하느냐고 항의하자, 제주시는 그 항의를 받아들여 사진전을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린 것이다. 일장기가 있으면 친일이라는 그 단순 무지한 문맹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어찌해야 좋은가?,

그래서 야스쿠니 사진들을 이호테우 해변 길거리에서 전시 한 후, 모두 불태워버렸다.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항거였지만, 잘못된 사회구조에 대한 항거의 뜻도 담겨있다. 그는 있는 사건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있는 사건을 이미지화 한 후 그것을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사건으로 만들어가는 사진가다.


그는 야스쿠니 사진을 불 태웠던 곳 이호테우 매립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제주 전 지역을 순회 전시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에서 행동하는 사진가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권철이 세상을 독대한다는 것은 곧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망각해버린 역사에 대해서만도 아니다. 자기들끼리 나눠 먹고, 예술이라 이름붙여 노닥거리는 한국 사진판에 대해서도 저항하고 있다. 




텟짱

텟짱



권철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걸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사진판 자체가, 일그러진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그가 20년간 살아온 일본은 많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나쁘고, 무식한 나라가 아니다. 일부 정치인들이 제국주의적 근성을 버리지 못해 판을 깨고 욕을 먹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 대해 배려할 줄 알고, 돈이 없거나 힘 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무시하지 않는다. 실력이 있으면 그만큼의 대접을 해 준다.


그렇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약육강식의 정글이고, 철면피의 세계다. 비단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진판은 더욱 심하다. 권력 있는 기득권자는 자기 패 끼리 판을 짜고, 어중간한 사진가는 그 주변을 서성거리며 온갖 추파를 보낸다. 권철이 좌절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한국 사진계의 연줄과 인맥이었다. 실력은 뒷전이고, 줄서기를 잘 해야 하는 이 썩어 문드러진 사진판에 어찌 구역질이 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의 작업은 중단되지 않는다. 2011년 일본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와 후쿠시마 원전을 취재한 후 국내 노후 핵발전소도 찍는 중이다. 두 나라의 핵발전소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만으로 메시지 전달은 분명하다. 그의 다음 작업은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제주에서 땅을 침탈하는 중국인들이라고 한다.

비평가 이광수교수는 권철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면서  문학적으로 약간의 표현 방식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개 두 마리가 서성거리는 이미지에서 세상이 망해 인류가 사라진 후의 지구를 암시하고, 새끼줄에 묶인 죽은 굴비의 쭈그러진 모습에서 인간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미래를 말한다는 것이다. 


갤러리 브레송’ (02-2269-2613)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630일까지 이어진다.

 


글 : 조문호 / 아래사진 : 정영신, 조문호




-권 철 사진전 개막식과 뒤풀이 사진이다-
































































































































'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다섯 번째 사진가,
이재갑의 ‘역사, 사진을 만나다“ 전이 지난 23일부터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다.
전시와 함께 ‘눈빛사진가선 24호로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사진집도 출판됐다.

지난 23일 오후6시30분부터 열린 개막식에는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 김남진관장,

사진비평가 이광수씨를 비롯해 구자호, 엄상빈, 정진호, 김문호, 박신흥, 성남훈, 이상엽,

강제욱, 마동욱, 방종모, 하지권, 이경문, 정재열, 노승장, 이은숙, 윤승준, 남 준, 곽명우,

이한구, 오혜련, 이혜숙씨등 많은 사진가 들이 참여해 전시를 축하했다.

개막식에서 사진비평가 이광수, 이규상대표가  말했듯이. 사진이 너무 좋았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들이 독버섯처럼 피어 있었다.
일제의 잔재와 한국전쟁에 의해 희생된 동족의 처참한 학살현장,
베트남에서 저지른 잔혹행위와 우리민족 치욕의 현장들을 샅샅이 찾아냈다.


이재갑의 사진들은 자극적이거나 이상적으로 치장되지 않고,
조용히 대상을 관조하며 사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3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사진작업들은 하나같이 역사의 이면을 조명했다.
정면에 기록된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고 묻힌 침묵의 역사였다.
바로 국가가 감춘 치욕의 역사였다.


또한 사족을 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 울림이 더 크다.
울분을 삼켜야 했던 사진가의 감정이 보는 이에게 바로 전달되었다.
이건 예술지상주의에 빠진 사진가들에 대한 일대 경종이기도 하다.

그는 처음부터 광대들의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무대 뒤의 쓸쓸한 풍경을 보여주며 사진판에 등장했다.
모두들 무대의 화려함에 관심 가질 때, 그는 뒤에 숨겨진 것들을 보여준 것이다.

사회적 소수인 혼혈인 역시 냉담하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세상에 항변했다.
경산코발트 광산 민간인 학살현장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 그들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과 일본에 흩어진 조선인들의
유산 작업, 베트남의 증오비 등 하나같이 패자의 한을 들춰냈다.

그는 머리로 찍은 게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작업해 왔다. 
상처투성이의 현장과 정면으로 맞서는 아픔 또한 컸을 것이다.
그 트라우마에 벗어나려 시작한 ‘뇌안의 풍경’ 역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 건 기록과 기억의 역사를 넘어 개인의 주관적 기억을 담은 역사였다.   

가슴아픈 역사를 담은 대 서사시,  이재갑 ‘역사, 사진을 만나다“ 전은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눈빛출판사 발행, 12,000원














개막식과 뒤풀이의 이모 저모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