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영씨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사진전이 오는 27일까지 충무로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다.




요즘은 사진전에 아예 관심을 끊어 어디서 뭐가 열리는지 알려 하지도 않는다.

씨잘때기 없는 사진도 너무 많지만 뒷말은 또 얼마나 많은지, 사진전 소개 글은 일체 쓰지 않겠다고 작심했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오후, ‘갤러리 브레송김남진 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별 일 없으면 술이나 한 잔하자기에, 방구석에 처박혀 있어 온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저녁이나 먹을 생각으로 털고 일어났다,

멀다면 모르겠으나 동자동에서 충무로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 아니던가?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로 다들 집에서 도를 닦아 산중에 계신 도사들 자리가 위태로울 지경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김남진씨 혼자 텅 빈 전시장을 지키며 일하고 있었는데, 사는 게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유럽으로 유학 간 딸과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가고 싶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

비행기 삯이 걱정되어 사지에 있는 딸을 못 오게 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전시장을 둘러보니, 손은영씨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시골 사람들이 여기 저기 서 있는 정면 사진들인데, 돈 안 되는 사진 찍었구나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다른 사진이면 몰라도 사람 사진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오로지 사람을 찍어 오기도 했지만, ‘두메산골 사람들을 비롯하여 인사동 사람들’, ‘장터 사람들에서는

손은영씨가 보여주는 정면사진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이 집이나 일하던 자리에 담담하게 서 있었다.

한 인물의 정면사진이란 모든 걸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 많은 것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모든 걸 받아들일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이러한 정면사진은 독일의 아구스트 잔더가 대표적이다. .

그의 사진은 찍힌 개인보다 사람을 직업군으로 보아 작가는 존경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진이 좋아도 사람을 대하는 근본 자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국내 작가들도 작고하신 홍순태선생의 '농촌 사람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찍어왔으나,

모두가 시대적, 지역적 환경이 달라 백번이고 천 번이고 계속되어야 할 작업임이 틀림없다.

다들 찍는 스타일에 변별력을 가지려 애 쓰지만, 중요한 건 사람에 대한 정신이지 방법은 사족에 불과하다.



손은영씨의 사진은 여지 것 보아왔던 입상사진과는 사뭇 달랐다.

대개 보아 왔던 흑백사진과는 달리 컬러사진인데다, 색조도 강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았다.

 

대개의 사진가들이 찍을 때, 장소와 화면을 이루는 구도, 그리고 사람의 자세나 표정에 신경쓰며 일관성을 유지한다.

그러한 의도적 개입보다 자연스러운 접근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상황에 처한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일터인 밭이나 살고 있는 집 또는 만난 장소에서 찍은 사진들인데, 사람과 환경은 물론이고 자세나 표정이 모두 달랐다.

인물보다 주변환경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 가운데, 이 땅을 지키며 한 시대를 살아가는 농민들의 담담한 모습이 자리했다.



대부분의 다큐 사진가들이 흑백으로 기록했지만, 사실은 컬러사진이 훨씬 사실적이다.

부쩍 그런 생각이 앞서는 것은 50년대 찍은 컬러사진들이 요즘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이전에 보아왔던 흑백기록에 비해 더 진한 감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색이 더 해지니 당시의 분위기나 감성까지 읽혀졌다.

손은영씨의 사진 역시 세월이 한 참 지난 후에는, 오늘의 의상 감각까지 생생하게 보여주게 될 것이다

 

전시장을 장식한 사진들은 수레나 자건거를 끌고 가다 마주쳤거나, 텃밭에서나 제초잡업을 하다 멈춰 선 정지된 장면이었다.

급박하게 사라져가는 시간의 자취를 기억하려는 의도에 붙잡혀 있었다.

장소나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찾아 볼 수 없었으나, 오로지 사람과 자연, 삶의 공간, 노동의 현장만 함께 했다.

 

급속한 근대화 속에서 빠르게 망각되어가는 우리네 삶과 문화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시선도 깔려있다.

민초들의 순박한 모습에서 인간적인 비애도 느껴졌다.



손은영씨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이 땅에 의지해 살아 온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강인한 정신력일 것이다.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은 그 시대에 대한 기록이며 표상이다.’작가의 한마디에 이 사진전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사람의 얼굴이란 세상의 시작이고 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를 만나지 못해 물어보지 못한 의문점도 몇 가지 있었다.

첫째, 기록이 우선인지 예술이 우선인지 묻고 싶었다. 기록이 먼저라면 찍힌 사람이나 찍은 곳의 이름과 지명은 밝혀야하기 때문이다.

둘째, 인화 작업할 때 인물을 강조하기 위해 주변을 흐리게 한 트릭을 발견했는데,

의도적 개입보다 자연스러운 접근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처음의 내 말과 배치되는 유일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기록보다 말하기 좋은 예술을 원한다면 할 말 없지만, 예술도 기록에 충실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좌우지간, 손은영씨가 보여 준 민초들의 얼굴과 몸은 우리네 전통이며 역사임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사유해 보는 일에 다름 아니다.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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