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하 시인이 만난 사람들이 종로2가 YMCA 골목의 와인주막에 걸렸다.

실제인물이 아니라 초상을 소환한 사진전이다.

지난 5월1일 다섯시에 ‘다섯시’에서 개막한다는 페이스북 소개 글을 보고 대뜸 가겠다고 댓글을 달았다.

요즘 전시장에 안 가기로 다짐했지만, 스스로 자청한 것이다.

전시될 작품은 한 장도 소개되지 않았지만, 사진이 문제가 아니라 그의 사진에 대한 열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를 볼 때마다 시인이며 사진가였던 박용수선생이 생각났다.




지금은 사진을 그만두고 ‘우리 말 갈래 사전’을 펴내는 등 우리말 연구에 빠져 있으나,

80년대 중반 민주화 시위현장에서 종종 만난 분이었다.

난청으로 소통은 잘 안 되었으나, 현장마다 찾아다니는 그 열정과 꾸준함을 존경해서다.

민주화 투쟁사뿐 아니라 문인들 행사기록도 빠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박선생의 작업을 이은 분이 바로 김이하시인인 것이다.




김이하 시인을 알게 된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광화문광장이나 인사동 지인들의 개막식에 어김없이 나타나 기록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만날 때 마다 별 말없이 빙그레 웃는 모습이 천하호인이었다.

난, ‘예술입네’ 하며 유별난 사진으로 폼 잡는 사진보다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더 중요시한다.

다들 별 것 아닌 것으로 터부시하지만, 그 기록들은 세월이 지난 후에는 가치를 발하기 때문이다.




사진계 행사 기록에 곽명우씨가 있다면 문단의 기록에는 김이하 시인이 지키고 있는 것이다.

요즘에는 문단의 기록 뿐 아니라 화가나 지인들 행사는 물론, 생태사진까지 찍는 등 점차 보폭을 넓히고 있으나,

그보다는 문인들 행사에 더 집중하고, 전시도 문인들 사진으로 압축했으면 돋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록은 꾸준하고 집약될수록 좋은 것은 두 말하면 입 아프기 때문이다. 



그동안 쪽방에서 꼼짝 안 하고 두문불출했다.

마침 쪽방상담소에서 ‘코로나19’ 위문품으로 일회용 죽을 열 개씩 배급해 주었는데, 외출할 필요가 없었다.

두 끼는 죽으로, 한 끼는 라면으로 때우면 닷새는 거뜬히 버틸 수 있는 편리한 식량이었다.

코로나 전염병 때문인지, 혼자 놀며 개기는 것에 재미를 붙여서다.



카메라가 말을 안 들어 정영신씨 카메라를 다시 빌려, 본인이 못 찍을 개막식 기록이나 해 줄 작정으로 갔는데,

제 버릇 개 못 주듯, 전시작가가 손님 맞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 손님들이 너무 많았다. 이 얼마 만인가?

코로나 때문에 오랫동안 전시 개막식이나 지인들 모임도 없었거니와,

전시장에 들려도 조용할 때 갔기 때문에 간만에 많은 분을 한꺼번에 만난 것이다.

입구는 최명철씨가 지켜 앉았고, 김 구, 최석태, 김효성, 도천수, 김명지, 이명옥, 장경호,임경일,

노광래, 정영철, 조원균, 안완규, 윤일균씨를 비롯한 잘 모르는 분들이 가득 자리를 메웠고,

이정환, 권양수, 박윤호, 성유나, 이미리씨 등 사진가도 여럿 있었다.




반갑기는 했으나, 사회적 거리두기에 익숙해 덜컥 겁도 났다.

이제 한 풀 꺾이기는 했지만, 혹시 잘 못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남아서다.

사진가들 자리에 합석하여 소주 한 잔 얻어 마셨는데, 정영철씨는 멧돼지 쓸개주라며 한 잔 따라주었다.



그러나 정작 보아야 할 전시작을 보지 못한 것은 손님 사이로 관람하기가 편치 않아서다,

한 달 동안 전시되는 사진전이라 조용할 때 다시 볼 작정을 했는데, 신단수씨가 “작품이 어떠냐?”며 자꾸 물어왔다.

사실, 내 사진도 어디 걸렸다고 했으나, 부산한 술집 개막식에서 찾아보기란 용이하지 않았다.




뒤늦게 페북에 올라 온 배경 속의 작품을 몇점 보았는데, 김시인이 만난 분들의 초상사진 같았다.

주로 스냅으로 인물을 크로즈 업 한 사진인데, 사진 중에 제일 어려운 사진이 초상사진이다.

찍히는 사람의 개성이나 내면을 드러내기도 어렵지만, 일단은 작가가 흡족하기 전에 본인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 작가들의 프로필 사진을 부탁받으면 엄청 신경 쓰는 편인데, 스냅으로 포착한 초상이라 기대도 되었다.




그나저나, 액자까지 제작된 작품이라 사진이 팔려야 할 텐데, 걱정스러웠다.

여력 있는 분들이야 사겠지만, 이승철씨가 페북에 올린 명단을 보니, 돌아가셨거나 개털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손해 보지 않는 전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나온 김에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분이 있어, 다시 올 작정으로 먼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시인의 사진전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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