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조준영 시인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인사동에 나갈 일이 있는데, 얼굴 한 번 보자는 전화였다.
요즘 통풍이 도져 다리가 절리지만, 오랜만이라 ‘유목민’으로 찾아갔다.
그 곳에는 시인 이승철, 김이하씨와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운성씨가

먼저 자리하고 있었는데, 골목을 지나치는 곽대원씨를 만나기도 했다. 

술자리에 앉았지만, 술을 마시지 못해 안주만 축내야 했다.
조준영씨가 "집에 책이 너무 많아 다른 곳에서 보관한다"는 말을 꺼냈다.
정년퇴직하면 인문학강좌도 열며 조그만 마을도서관하는 게 꿈이란다.
캐나다에 교환교수로 갔다 귀국할 때도, 헌 책만 잔득 사왔다.
다른 사람들은 그곳에서 사용하던 자동차까지 가져 오는데,

돈 되는 물건은 제켜두고 책만 가져 온 것이다.

그때 검색대에서 했던, 공항직원의 말이 재미있다. “건강하게 사시네요”

뒤늦게  행위예술가 무세중선생과 무나미씨도 오셨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1일 오후6시부터 인사동 ‘유목민’에서 인사동을 사랑하는 이들의 송년회가 있었다.


이 날 모인 인사동 꼴통들은 한 때, “創藝軒”맴버로 함께 한 사람들이다.
인사동을 지켜 우리문화를 살찌우자며, 인사동을 드나드는 예술인 100여명이 뭉쳤던 것이다.
당시 ‘아라아트’ 김명성씨가 총대를 메고, 아내 정영신이가 사무국장을 맡았다.

인사동에서 '천상병추모제'를 갖는 등, 5년 동안 일을 벌였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모두 들 개성이 강해 단합이 잘 되지 않는데다, 난재는 운영할 수 있는 재원이 없었던 것이다.
이사장 지원에만 의지했으니,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장터사진 찍느라 일에 쫒기든 아내가 사무국장을 넘겨주는 걸로, 그만 문을 닫게 되었다.
제일 아쉬운 건, 회원들 간의 경조사 연락이 끊겼다는 점이다.
더구나 회원가족을 모르니 신변에 이상이 생겨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걸 제일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강남대’에서 교편 잡는 조준영시인이었다.
지난 달 연락이 왔는데, “해 넘어 가기 전에 가까운 분들과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주변 분들만 연락하기로 했으나, 손발이 맞지 않아 빠진 사람이 더 많았다.

그 날은 충무로 ‘브렛송’에서 있었던 정진호씨 사진전과 겹쳐, 한 시간이나 늦었다.
약속장소에는 조준영씨를 비롯하여 이명희, 강경석, 전강호, 주승자, 유진오, 전활철, 김상현,

허미자, 전인경, 박혜영, 전인미씨가 마시고 있었다. 뒤이어 정영신, 하욱만, 노광래, 강성수, 공윤희,

김명성, 강찬모, 박인식, 김은경, 배성일, 오치우, 임채욱, 이세희, 이상훈, 이태규씨가 속속 나타났고,

뒤늦게는 울산의 오세필, 경주의 정기범, 부산의 김봉미씨도 합세했다.

마침, 그 날이 김명성씨 생일인지라, 하루 뒤인 아내 생일까지 합쳐 생일케익을 잘랐다.

오랜만에 김상현씨의 “봄날은 간다”를 들어가며 신나게 놀았다.
밤 11시가 넘어 퇴각했는데, 김명성씨를 비롯한 잔당들은 노래방에서 새벽4시까지 놀았단다.

모처럼 인사동에서 사람냄새 진하게 맡았다.

사진:정영신,조문호 / 글: 조문호


























































































설치 미술하는 단양의 김언경씨 딸, 자연이가 시집갔다.
지난 일요일 정오 무렵,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메종드 비’에서 결혼식을 했다.

김언경씨는 인사동에서 80년대 중반부터 어울린 오래된 벗이고 후배다.
인사동에서 ‘유목민’하는 전활철씨와 어울려 의형제의 연을 맺을 정도로 가까웠다.
하는 일에 허덕이느라 겨를도 없었지만, 단양에서 ‘낭만’이라는 카페를 열어도 아직 못 가봤다.

사는 것이나 인간관계나 다 편치 않았다.

그의 딸 자연이는 오래 전 한 두어 차례 만난 적이 있으나, 몰라보게 예뻐졌다.
그리고 너무 어른스러워져, 똘똘한 신랑 거느리고 잘 살 것 같았다.

요즘 결혼식은 너무 자유로워 좋았다.
그 지루하던 주례사를 없애고 춤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재미있게 끌어갔다.
바람직한 변화였으나, 서로에게 책임의식을 느끼게 하는 간단한 성혼례 같은 절차는 있었으면 했다.

새로운 가정을 꾸릴 신랑각시를 축하하러 온 분 중에는 반가운 분들도 많았다.
‘뮤아트’의 김상현씨, ‘유카리화랑’ 노광래씨 내외 시인 조준영, 이필두교수,

서양화가 김기이, 김치중씨 등 많은 분들을 만났다.


"자연아 잘 살아라~"



사진,글/ 조문호























 

 

6,25 전쟁난 날, 인사동에 술자리가 겹쳤다.
조준영씨와 약속하고 보니, 핸드폰에 ‘인사모’ 정기모임이 찍혀 있었다.
그의 치매 수준이다.

'6월25일 오후6시, 인사동 툇마루'
공교롭게 만나는 시간과 장소가 똑 같았다.
마치 내가 정한 것처럼... 

서양화가 장경호씨의 이른 연락에 ‘무다헌’부터 갔다.
정희성, 박 철, 강고운 시인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약속시간이 가까웠으나 장경호씨는 움직이지 않았다.

‘툇마루’에는 시인 조준영, 연극배우 이명희, 서양화가 전강호씨가
먼저 와 있었고, 시인 김신용씨는 펑크를 낸 모양이다.
평소 ‘인사모’는 지하에서 모였는데, 그날따라 2층에 있었다.

‘인사모’는 민건식회장을 비롯하여 김완규, 강봉섭, 강윤구, 박원식,
전국찬, 김근중, 송재엽, 박상균, 류미정씨등 10여명이 모여 있었다. 
한 동안 참석하지 못해 송구스러웠으나, 반가웠다.

이쪽저쪽 오가며 마시다 보니 너무 급하게 마셨는지 취해버렸다.
이차로 ‘유목민’까지 갔으나 이미 인사불성 되었다.
전강호씨와 택시를 기다렸으나, 아무도 세워주지 않았다.

버스에 오르기는 했으나 어떻게 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틀 날 오후 늦도록 끙끙댔는데, 이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 난리 통에 살아남은 것만도 용타 싶다.

아이구! 속 쓰려...

사진, 글 / 조문호

 

 

 

 

 

 

 

 

 

 

 

 

 

 

 

 

 

 

 

 

 

 

 

 

 

 

 

 

 

 

 

 

 

 

오랜만에 시인 강 민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 21일 오후1시경 ’하누소‘에서 만나 이행자시인과 함께 식사를 하였고,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한 잔 더했다.
강민 선생께서는 한동안 허리가 아파 고생했으나, 이젠 한결 나아졌다고 하셨다.
그날은 가난한 이행자 시인께서 밥값 술값을 계산했는데, 신발마저 예뻤다.

오후6시에는 조준영시인과의 만찬약속이 있었다.
정영신과 함께 한 ‘유목민’ 옆자리에는 노현덕, 정기영씨의 모습도 보였다.
나중에는 뜻밖에도 조해인시인 내외가 나타나 함께 어울렸다.

조해인씨는 명상에 관한 글을 탈고해 ‘해냄출판사’대표를 만나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천상병시인의 근거지를 빨리 인사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천상병문학상'의 선정기준도 작품의 우월성에만 한정하지 말고,
천선생의 시 색깔에 맞는 작가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고인의 친구 분들은 물론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등 돌린 의정부행사보다는
생전 선생의 삶과 창작의 근거지였던 인사동에서 주관할 것을 모두들 바라고 있다.
천상병시인을 내세워서라도 인사동문화와 풍류를 되살렸으면 좋겠다.

사진,글 / 조문호

 

 

 

 

 

 

 

 

 

 

서양화가 강찬모씨의 27회 개인전 ‘빛이 가득하니 사랑이 끝이 없어라...“ 오픈식이
지난 10일 오후5시 중학동 경제통신사빌딩 2층 ’갤러리 뫼비우스‘에서 열렸다.

개막식에는 작가 강찬모씨 가족, 김곤선관장, 조준영씨를 비롯한 컬렉터 몇몇 분이
참석하여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히말라야 설산의 거친 주름살과 꽃밭처럼 하늘을 수 놓은 별들이 아름다웠다.
이 전시는 오는 19일까지 이어지니, 많은 관람을 바란다.

 

개막식이 끝난 후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조준영, 정기영씨와 막걸리 한 잔 했다.


사진,글 / 조문호

 

 

 

 

 

 

 

 

 

 

 

 

 

 

 

 

 

 

 

 

 

 

 

 

 

 

 

 

 

 






 

봄이 오니, 인사동을 제집처럼 떠돌던 서양화가 이청운이 그립다.

그가 뇌경색으로 병원에 실려간지 벌써 두 달이 지나버렸다.

 

수술받기 직전, 얼굴은 보았으나 ‘장에 가자’와 ‘청량리588’의

두 전시 때문에 한 달 반을 허덕이다보니, 그를 잠시 잊고 있었다.

 

지난 13일 KBS에 인터뷰하러 가는 아내와 여의도에 갔다 오며,

이청운씨가 입원한 ‘강북삼성병원’에 잠시 들렸다.

 

피골이 상접한 그의 모습을 처음 본 순간,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굳어가는 몸을 주무르며 연신 눈물을 훔쳐대는 아내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반가워 웃고 있는 모습이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 표정이었다.

 

재활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아야 하나, 폐렴으로 보류되어 있는 상태란다.

목으로는 물 한 방울 넘길 수 없어, 호스를 통해 음식물을 넣어 주다보니,

기력이 회복되지 않는 것이다.

 

“너무 지겨워, 병원에서 도망치고 싶어!”

어눌한 그의 목소리가 자유롭게 살아 온 한 화가의 안타까움을 말하고 있었다.

작년에 청산포 바닷가에 핀 홍매화가 눈에 아롱거려, 기억에도 아물거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는 말에서, 이화백의 식지 않은 열정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병원비도 병원비지만, 가까운 벗들의 격려가 더 필요하다.

결국 병이란 자신감에 따른 스스로의 의지에 좌우되기 마련인데,

여지껏 인사동 사람으로는 시인 조준영씨와 서양화가 문영태씨가 다녀갔을 뿐이란다.

 

우리 모두 바쁜 일상에서 허덕이고 살지만,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그에게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자!

 

[강북삼성병원 신관 11층]

 

 

사진,글 / 조문호

 

 

‘장에 가자’ 전시에 이어 ‘청량리588’ 사진전을 또 열었다.

돈이 없는 게 결정적인 탈이지만, 너무 다급하다 보니 일은 뒤죽박죽이었다.
오픈을 하루 남기고 프린트를 시작했는데, 늦은 밤 기계마저 고장 나는 바람에 새벽4시경에야 간신이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잘 못된 프린트도 더러 보였으나 손 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정오 무렵에서야 아슬아슬하게  디스플레이를 끝내니, 아는 손님들이 한 분 두 분 찾아들기 시작했다.

연이은 전시라 오프닝 파티는 생략했으나, 전시장 찾은 분들과 와인 한잔 나누며 정담 나누는 시간은 가졌다.

시인 강 민선생을 비롯하여 강송림, 김승환, 방동규, 심우성선생, 만화가 박재동씨, 서양화가 정복수, 전강호씨, 연극배우 이명희씨, 시인 조준영, 조해인, 공윤희, 김명성씨를 만났고, 90년도 '사진집단 사실'에 함께 했던 사진가 김문호, 안해룡, 김봉규 씨 그리고 눈빛출판사의 이규상씨를 비롯하여 이주영씨,'한겨레신문'의 곽윤섭, 노형석 기자등과 어울려 ‘부산식당’에서 소주 꽤나 땄다.

 

술이 취해 ‘노래방’까지 갔다 나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안국동거리는 택시잡는 취객들만  바빴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