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강원도 영월에서 제14회 동강국제사진제가 개막되었다.

비에 가리고 우산에 가려 행사 진행은 볼 수 없었지만, 군데군데 반가운 얼굴들은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빗속에서 마시는 막걸리 맛도 일품이었지만, 곧바로 숙소인 '동강시스타'로 들어가야 했다.

이규상씨와 동강사진제 운영위원 엄상빈씨의 안내를 받았는데, 숙소마다 사진가들 판이었다.

옆방에 들렸더니 그 자리에는 구자호, 김남진, 신동필, 이광수씨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어떻게 알았는지 손흥주, 이규철, 김종진, 김상훈, 성남훈, 남 준씨 등 사진인 들의 발길이 줄줄이 이어졌다.

안주래야 24시 슈퍼에서 사 온 과자 부스러기가 전부이지만 모두들 잘도 마셨다.

그 날 술자리에서 1987년도에 사진기자들이 모여 창립했던 '투영'동인회 이야기를 구자호씨가 꺼냈다.

근 30여 년 전의 이야기라 젊은 사진가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기억이 뚜렷했다.

'한국일보'의 고명진, '조선일보'의 구자호, '동아일보'의 김녕만, 'TV저널'의 조성휘, '중앙일보'의 채흥모씨 등 다섯 명의

사진기자들이 만든 모임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포토저널리스트 동인회가 결성되었던 것이다.

바쁘게 사건현장을 쫓아다니는 사진기자가 개인적인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기에 그들의 활동은 사진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 이듬해인 88년에 경향신문의 우종원씨가 합류하여 여섯 명으로 늘어났지만, 6-7년 정도 활동하다 아쉽게도 해체되어 버렸다.

80년도 후반에는 '투영'동인 뿐만 아니라 이기원씨가 주축이 된 사사연(사회사진연구소)과

최민식선생을 회장으로 모시고 김문호, 김봉규, 안해룡, 이석필, 조문호, 추연공씨 등 기자들과 다큐사진가들이 모인

'사진집단 사실'이 태동하는 등 다큐사진가들의 그룹 활동이 두드러진 시절이었다.

살롱사진들이 판치는 무렵이라 다큐 동인회의 태동과 활동은 우리나라 사진사의 중요한 기점으로 판단된다.

자정이 가까워 옆방으로 돌아 온 것은 술이 취하기도 했으나 김남진씨 일행과 어울리면 밤을 지새야한다는

소문이 돌아 지레 겁먹은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다슬기 해장국집에서 만나들은 바로는 술이 없어 아쉽게도 2시 정도에 마무리했단다.

 

"이젠 나이도 있는데 몸 좀 생각해야지"라며 혼자 구시렁거리자 뒷말이 들려온다.
"사돈 넘말 하네"

사진, 글 / 조문호

 

 

 

 

 

 

 

 

 

 

 

 

 

 

 

 

 

 

 

 

 

 

 

 

 

 

 

 



 

 

내가 이광수선생을 좋아하는 건 단지 588사진집의 발문을 써주어서만이 아니라
불의를 두고 보지 못하는 피 끓는 그의 정의감 때문이다.

이광수 교수를 알게 된 것은 오래지 않았다.

올 들어 전시장에서 몇 차례 만나 인사를 나누었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마침 지난 동강국제사진제에서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는데,

그의 강직한 의지와 소탈한 인간적 면모에 매료된 것이다.

무슨 일이던 개혁을 하려면 혁명가기질의 총대를 멜 사람이 필요하다.
바른말을 쏟아내는 이규상선생의 투사정신도 이광수선생 못지않지만

'눈빛출판사'를 운영하며 긴 세월 얽혀 온 사진판의 인맥들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느지막에 사진평론가로 등장한 이광수선생은 그 부분에서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두 분 모두 일신상의 손해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왕따에다 직업 또는 사업상의 불이익을 당 할 건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약자들을 위해 강자들과 싸울 전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면 사진판 개혁을 운운하는 네가 직접 나서 칼을 휘두르라 할지 모르지만, 난 그렇게 나설 자격을 이미 상실했다.

긴 세월 이어져 온 공모비리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여러 사진단체 일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기에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낼 수는 있을 것 같다.

지난 14회 동강국제사진제 워크샵의 첫 날 최민식사진상 문제가 언급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몇몇 사람의 문제 제기에 대부분의 사진인들이 입을 다물었고, 특히 2-30대의 젊은 사진인들이 나서지 않아 힘을 얻지

못했다는데, 왜 사진인들이 남의 일처럼 등짐을 지고 지켜보고만 있었을까? 귀찮아서, 아니면 찍힐까봐.. 

 

그리고 동강사진제에 다녀 와 올린 어느 사진가의 글도 이해는 되었다.

기득권에 줄 대려 살살거리는 꼬락서니에 염증을 느껴 이후로 아예 신경을 끊겠다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10여 년 전 똑 같은 생각을 하며 내 일만 하고 지냈으나, 뿌리만 더 깊어졌다.

이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일이기에 끝까지 물고 널어져야 하는 것이다.

똥이 무서워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 피한다는 말도 있지만, 더러워도 밟아 짓이겨버려야 한다.

이 명경알 같이 밝은 세상에 아직까지 개 같은 일들이 계속된다는데 분통이 터진다.
힘들어도 자부심 하나로 살아가는 많은 다큐사진가들의 좌절감을 생각하니 속이 뒤집힌다.

최민식사진상에서 터져 나온 논란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사진판의 병폐 중 조그만 불씨에 불과하다.

이제 시작된 기득권과의 전쟁에서 기어이 이겨내야한다.

사진, 글 / 조문호

 

 

 

 





 

 

 

눈빛출판사의 안미숙선생께서 지난 달 제주도에서 다리를 다쳐 한 동안 꼼짝을 못하셨다고 한다.

고생 끝에 사무실에 출근하였다기에 아내가 점심을 쏜다며 자리를 만들었다.

 

겨우 회덮밥 한 그릇 대접하고, 차 값에다 선물까지 받는 민폐를 끼쳐 버렸다.

안선생께서 아끼는 오미자 원액을 한 병 가져 온 것이다.

안선생, 선물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보약 먹고 힘 넘치면 어쩌지?



사진, 글 / 조문호

 

 




 

7월3일 오후7시, ‘갤러리 브레송’에서 김상훈씨의 ‘살기 품은 풍경’전이 개막되었다.
전시와 함께 눈빛 사진가선 열네 번째 사진집 ‘가자전쟁-미로의 벽’도 출간되었다.

가자지구의 참상을 기록한 사진들은 포화에 물든 전장의 긴장감이 가득했다.
분쟁지역의 아픔에 앞서 한 사진가가 목숨을 걸고 기록한 장면 장면들이라 존경심마저 일었다.

 

전시장에는 김남진, 김보섭, 엄상빈, 이규상, 박종우, 신현림, 이규철, 박순기, 장 숙,

곽명우, 채승우씨 등 50여명의 사진인들이 사진을 관람하며 전시를 축하했다.

나는 김상훈씨를 처음 알았다.
신문, TV는 물론 사진잡지 한 권 사보지 않았으니, 사진뿐 아니라 모든 정세에 어두웠다.
10여일 전 아내에게 등 떠밀려 페이스북에 발 들여놓으므로, 이 전시도 알게 된 것이다.

덕분에 사우들을 만나 술 한 잔 했는데, 사진상의 무성한 뒷이야기에 부화가 치밀었다.

아마추어 단체의 공모전 비리논란만도 부끄러운데, 프로들의 사진상까지 한몫한 것이다.

하기야 여지 것 수상자 명단이 오를 때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생각은 떨칠 수 없었다.

작품의 질은 차지하고 인맥으로 엮여온게, 오랜 사진사와 같이 하기 때문이다.

한 때는 원로사진가들이 편 가르기를 하더니, 이젠 그의 직계 제자들이 이어받았다.

어떤 원로사진가는 영향력 있는 큐레이트를 앞세우며, 모두들 끼리 끼리 논다.

그 기득권에 밀려난 아웃사이드들만 설 곳이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나, 왕따가 두려워 말 못할 뿐이다.
나 역시 모두들 가까운 분들이라 망설였으나, 늦었지만 할 말은 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가?
제발! 사진찍는 사람들 쪽 팔리는 일은 그만하자.
이젠 소신 있게 일 하는 능력 있는 운영자들이 나서주어야 한다.

김상훈씨처럼 목숨 걸고 찍는 유능한 사진가들에게 힘 실어주는 사람 말이다.

돈 명예, 죽고 나면 다 무슨 소용인가?
제발 우리 사진들을 넓은 안목에서 껴안아주자.

조문호

 

 

 

 

 

 

 

 

 

 

 

 

 

 

 

 

 

 

 

 

 

 

 

 

 

 

 

 

 

 

 

 

 

 

 

 

 

 

 

 

 

 

 

 



 

 

5월16일은 군사 구테타가 일어 난 날이다.
그 끔찍한 날, '눈빛출판사'의 윤미양이 시집간다는 것이다.
더러운 세상 바꾸려고, 명표군과 윤미양이 구테타 작심을 했나보다.

따뜻한 봄날, 들뜬 마음으로 아내 정영신과 함께 결혼식장에 갔다.
그 곳에는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 내외를 비롯하여
박 도선생과 전민조, 엄상빈, 최경자씨 등 아는 분들이 많았다.

그 날 주례는 원주에서 오신 박 도선생께서 서셨다.
박 도 선생께서 주례 선 커플은 여지 것 이혼한 사람이 없다고 하니,
머리가 파 뿌리되도록 ​행복하게 잘 살기 바란다.

그러나 '눈빛출판사' 일을 생각하니 은근히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 곳은 이규상, 안미숙씨 두 내외와 윤미씨가 꾸려가는
가내 수공업 수준인데, 이젠 두 내외가 도맡아야 할 형편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 처럼 어떻게 되겠지..

동갑내기 친구라는 인연으로 시작되어 연인과 부부로 바뀌어 간
홍명표군과 성윤미양의 행복한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세상일이나 사랑이나 모두 한결 같아야 하는 것이니라.

사진,글 / 조문호

 

 

 

 

 

 

 

 

 

 

 

 

 

 

 

 

 

 

아내는 한정식선생 생신 날에 식사 한 끼 대접하겠다는 약속을 작년부터 했다.

 

지난 18일 정오 무렵, 한정식선생을 비롯하여 김보섭, 이규상, 정영신, 안미숙씨 등

여섯 명이 추억이 많았던 ‘한일관’에 모여  축하 자리를 가졌다.

모두들 선생님의 건강하심을 바라는 축배를 들며, 웃는 시간을 가졌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친구'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곳에 주명덕선생과 최재균씨가 있었다.

주명덕선생의 단골집이라 행여 뵙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뵙게 된 것이다.

만나자 마자 “전시하며 왜 연락도 안 했냐?”며 나무라셨다.

 

할 말이 없었다.

장돌뱅이 노릇하며 정신없이 살다보니, 그동안 사진가들과 교류가 뜸했다.

전화번호도 없어 가끔 만나는 몇 몇 분을 제외하고는 알리지 못했는데, 너무 송구스러웠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한 해만에 없어 진 ‘최민식사진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주명덕선생께서 말씀을 꺼내셨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마추어가 주는 상을 프로가 받는 것은 스스로의 자존심을 다치게 한

일이라며 작년 수상자 이갑철씨를 나무랐다.

 

프로와 아마추어, 그 차이에 대한 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아픈 하루였다.

 

사진, 글 / 조문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한일옥

 

 

 

 

 

 

 

 

 

 

 

 

 

 

찡하다. 알듯 모를듯...

 

 

 

 

누가 더 편할까?

 

눈빛이 힘들다.

 

 

 



 

‘청량리588‘전시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전시 종료를 이틀 앞둔 지난 주말에는 시인 강 민, 김가배 선생께서
김수영시인의 미망인이신 김현경선생을 모시고 오셨다.

김현경선생께서는 구십을 넘긴 연세지만 아직 짱짱하시다.
기억력이 너무 좋아 김수영선생의 생전 일화들을 심심찮게 들려주신다.
‘청량리588’전시를 둘러보신 후, 익숙한 풍경이라며 말씀을 꺼내셨다.

돌아가신 김수영선생께서 옛 홍등가인 ‘종삼’에 가끔 들리셨다는데,
한 번은 술이 취해, 아끼는 군용 털내의를 두고 나와 통탄해 하셨다고 한다.
어느 집, 어느 방인지도 몰라 안타까워하시기에, 다시 사주겠다며 달랬다는 것이다.
정말 간 큰 남편이고, 통 큰 아내였다.

그 날은 가수 최백호씨와 기와장 오세필씨도 들려 김명성씨와 함께 '툇마루'에서 점심을 먹었다.

최백호씨는 축구를 하다 넘어져 한 달 넘게 고생하였다고 한다.

점프를 하다 그만 발에 걸려 넘어졌는데, 머리로 바닥을 쳤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큰 일 날뻔한 사고로, 좋아하는 축구도 이제 못하게 됐다.

 

사진가로는 한정식, 전민조, 변홍섭씨가 오셨고,

눈빛출판사 이규상씨는 사진가 구본상, 이경수, 김봉규씨와 함께 들려 기념사진을 찍었다.

전 날엔 막차로 서양화가 장경호, 김정대씨가 찾아 와 ‘화신포차’에서 소주 한 잔하였는데,

이 날은 이대훈, 노인자 내외가 늦게 와 염소 고기집에서 소주 한 잔 했다,
옆 자리에는 서양화가 김종숙씨를 비롯하여 김명성, 박인식, 조근숙씨 일행도 있었다.

 

술, 웬수같지만 난 버리지 못한다. 세상이 술 취하지 않고는 살기 힘들게 만드니까.

술, 담배, 섹스, 모두 마약처럼 중독성을 가졌지만, 버릴 수 없고 버리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그 것 다 버리면, 사는 재미가 뭘까?.... 

 

 

글:조문호/사진: 정영신, 조문호

 

 

 


 

 

 

 

 

 

 

 

 

 

 

 

 

 

 

 

 

 

 

 

 

 

 

 

 

 

 

 

 

 

 

 


‘장에 가자’ 전시에 이어 ‘청량리588’ 사진전을 또 열었다.

돈이 없는 게 결정적인 탈이지만, 너무 다급하다 보니 일은 뒤죽박죽이었다.
오픈을 하루 남기고 프린트를 시작했는데, 늦은 밤 기계마저 고장 나는 바람에 새벽4시경에야 간신이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잘 못된 프린트도 더러 보였으나 손 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정오 무렵에서야 아슬아슬하게  디스플레이를 끝내니, 아는 손님들이 한 분 두 분 찾아들기 시작했다.

연이은 전시라 오프닝 파티는 생략했으나, 전시장 찾은 분들과 와인 한잔 나누며 정담 나누는 시간은 가졌다.

시인 강 민선생을 비롯하여 강송림, 김승환, 방동규, 심우성선생, 만화가 박재동씨, 서양화가 정복수, 전강호씨, 연극배우 이명희씨, 시인 조준영, 조해인, 공윤희, 김명성씨를 만났고, 90년도 '사진집단 사실'에 함께 했던 사진가 김문호, 안해룡, 김봉규 씨 그리고 눈빛출판사의 이규상씨를 비롯하여 이주영씨,'한겨레신문'의 곽윤섭, 노형석 기자등과 어울려 ‘부산식당’에서 소주 꽤나 땄다.

 

술이 취해 ‘노래방’까지 갔다 나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안국동거리는 택시잡는 취객들만  바빴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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