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의 날에 즈음하여 다큐사진가 박병문의 “아버지의 그늘” 사진집(눈빛출판사) 출간과 전시회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려 애잔한 가족애를 일깨우고 있다.

5월6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박병문 사진전은 검은 분진으로 휩싸인 탄광촌 철암의 오늘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 사진들은 쇠퇴해가는 탄광촌의 현실에 앞서 광부였던 아버지를 그리는 사진가의 애틋한 마음이 곳곳에 배어있다.

사진들을 보면 왠지 슬퍼진다. 그 삭막한 폐광에서 인간애를 느끼는 것은, 사진들이 주는 잔잔한 울림 때문이다.

사진가가 보여주려 한 것도 사라져가는 탄광의 빛바랜 풍경이 아니라 아버지가 힘겹게 살아 온 공간과,

그 안타까운 삶이었다. 숨을 몰아쉬며 올랐던 삼방동 언덕길, 빛바랜 월급봉투, 칠흑의 냉기에 휩싸인 지하막장,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까치발 건물과 분진이 날리는 저탄장 등 아버지가 살아 온 자취들이

마치 한 편의 흑백영화처럼 나른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가 박병문이 유년시절의 기억까지 들추어내며 추억 속 아버지의 발자취를 기록해 온지도 어언 십여 년이 넘었다.

꾸준히 아버지의 흔적들을 추적해 온 것은 아버지의 자취를 통해 탄광촌의 아픔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었을 게다.

한 편으론 사진가의 기억을 통해, 보는 이의 아버지와 고향, 그리고 슬픈 기억들을 떠 올리게 하였다.

여지 것 탄광을 촬영한 사진가들이 여럿 있으나 대개 한 차례의 작업으로 끝냈지만, 박병문씨는 달랐다.

탄광 바깥에서 들여다 본 사진가의 시선이 아니라, 탄광은 그가 살아온 추억의 공간이고 아버지의 혼이 박힌 곳이었다.

선탄부(여자광부)에 이어 진폐에 대한 기록으로 이어갈 것이라는 그의 다짐은 한 개인의 가족사기 전에

우리 탄광의 소중한 역사로 길이 남을 것이다.

박병문씨는 2010년 강원도사진대전 대상과 2013년 제1회 최민식사진상 특별상 대상을 받으며 사진계에 알려졌다.

2014년에는 “아버지는 광부였다”란 사진전을 열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사라져가는 탄광의 아픔을

슬픈 가족애로 이끌며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새까만 얼굴에 맺힌 아버지의 눈물은 한 개인의 슬픔을 넘어

우리의 시대적 아픔으로 닥아 왔던 것이다. 아버지를 기억하는 작업은 그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난 해 “검은 땅 우금에 서다”에 이어 또 다시 ‘아버지의 그늘’을 펼쳐 보이는 등,

아버지에게 바치는 세권의 사진집을 연이어 펴낸 것이다.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는 “기록으로 불러들인 기억 그리고 광부 아버지“란 서평에서

박병문의 사진은 아버지께 바치는 헌시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6일 오후6시에 열린 사진전 개막식에는 전시작가 박병문씨를 비롯하여 ‘갤러리 브레송’ 김남진 관장,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 사진비평가 이광수, 사진가 엄상빈, 황규범, 김문호, 강제훈, 김봉규, 노형석,

강제욱, 최영진, 하지권, 성남훈, 은효진, 김재영, 김가중, 정태만, 박영환, 방종모, 남 준씨 등

많은 사진가들이 자리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사진, 글 / 조문호



사진가 박병문 사진집 아버지의 그늘’ (눈빛출판사) 책표지


삼방동, 2014


삼방동, 2012년


폐가, 2007년


선탄장, 2012


대한석공, 2012년


퇴근하는 선탄부, 2007


선술집, 2007


철거 중인 철암시장, 2014


철거 중인 철암시장, 2014


눈 속의 광부 동상, 2015

 

철암 전경, 2012년


-전시 개막식 사진들-






















-전시 뒤풀이 사진-














































한정식선생님 모시고, 식사 한 끼 하자는 말을 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로 부터 전해 들었다.

지난 20일 정오무렵, 선생님의 경운동 오피스텔로 찾아뵙기로 한 것이다.

인사동 '양반댁'에서 가진 그 날의 오찬 모임은 파리 도서전에 다녀 온 후, 첫 자리기도 했지만,

, 수정하고 있던 ‘87민주항쟁원고를 그 자리에서 넘겨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규상 대표는 파리 도서전에서의 성과가 무척 좋았다고 한다.

사진가는 물론 출판, 사진관계자 등 많은 분들이 부스를 방문해 우리나라 사진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주최 측에서는 한정식선생의 북촌’, 전민조씨의 서울’, 오상조씨의 당산나무’, 정영신씨의 한국의 장터’,

임재천씨의 제주도’ 등 다섯가지 사진집을 다섯 권씩 구입하였다고 한다.


이젠 눈빛출판사도 외국 독자들을 위해 영문표기를 하는 등, 글로벌한 경영체재를 갖추겠다고 말했.

이번 도서전에는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을 비롯하여 발스총리까지 참가해 힘을 실어주었는데,

우리나라는 주빈국 임에도 불구하고 주불대사 조차 참석하지 않았다니 귀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리고 도서전을 끝내고 귀국하며 선물로 향수까지 사왔는데, 너무 황송스러웠다.

아무튼, 반가운 소식 실어 온 즐거운 자리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처럼 책 안보는 민족이 또 있을까?

그저께 술 취해 들어가다 지하철의 책 파는 진열대를 들여다 보다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소설과 수필집 세권을 묶어 만원씩 팔고 있었다. 제작비는 고사하고 종이 값 정도에 불과한 가격이었다.

당장 볼 시간도 없고, 꼭 필요한 책이 아닌데도 소주 한 잔이란 책 제목만 보고 산 것이다.

술김에 샀지만, 평소 같으면 사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술이 이것 저 것 계산하지 않고, 더 인간적으로 만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규상대표와 함께 가나인사아트에서 열리는 한국화가협동조합창립1주년 기념전에도 들렸다.

입구에서 이종승 화백을 만나기도 했고, 인사동을 떠도는 관광객에 휩싸여 거리를 떠돌았지만,

내 머리에 남은 건 지리산밥집 앞에서 문짝을 들어내 창호지를 바르는 모습이었다.

향수에 비롯되었겠지만, 우리나라의 생활 풍습인 이런 모습이 더 인사동답지 않을까?

 

사진, / 조문호











































다큐멘터리사진가 남 준씨의 '갤러리 시이'초대전 ‘무경계(無經界)’ 개막식이

지난 16일 오후5시, 신촌 홍대부근에 위치한 ‘갤러리 사이’[02-323-0308]에서 열렸다.

난, 옛날 사진들을 급히 정리해야 할 일이 생겨, 요즘 일에 쫓겨 산다.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지만, 작정한 사진전이라 모처럼 나들이를 한 것이다. 

지하철 홍대 역에서 구자호 선생을 만났다. 주말이라 사람들에 끼어 밀려 나와야 했다.

번잡함에 촌놈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내 몸은 기상측후소나 마찬가지다.

비가 오려 그랬는지 아침부터 온 몸이 쑤셨는데, 진짜 비가 내린 것이다.

전시장에는 작가를 비롯하여 최은경관장, 미술평론가 홍경한씨,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

구자호, 엄상빈, 김남진, 성남훈, 강제욱, 김영호, 정영신, 김재훈, 유별남씨 등

많은 사진가들이 함께해 전시를 축하하고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은 작가가 티베트 히말라야 산맥의 오지에 들어가 찍은 사진이었다,

종교적 신앙심 하나로 살아가는 원주민의 전통과 문화적 풍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범접하기 힘든 오지를 여행 삼아 찍은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며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에 나오는 장면처럼, 오체투지로 찍은 것이다,


그리고 예술을 모방한 비틀어진 사진이 아니라, 정석의 앵글로 참 잘 찍었더라.

직설적인 그의 사진언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인간의 존재 의미를 일깨우고 있었다.

생생하게 드러난 어린이 눈동자에서 그들의 현실과 꿈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뒤풀이 장소로 옮겨서는 사진계 많은 뒷이야기들을 들었다.

유별남씨는 요즘 물의를 일으킨 장국현사진전을 반대하는 일인시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연일 이어지고, 전시 작가는 '예술의 전당'전시장에 뒷구멍으로 들어가

뒷구멍으로 나온다는데, 쥐새끼같은 부끄러운 전시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구자호 선생은 신문의 위기를 말하기도 했다.
10년내에 모든 신문사들이 사라진다지만, 벌써 신문사 교열부는 없어졌다는 것이다.

사진부는 물론 취재 기자들까지 외주업체에 위탁할 처지이고, 심지어 사무실에 컴퓨터가 없는

언론사도 있다는 것이다. 모든 기자가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 현장에서 직접 일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조선일보' 사진부장에서 퇴임한 그가 지난 번 '대구사진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을 맡을 때 일이란다.

조선일보에 비엔날레 기사가 나지 않아, 4면으로 된 색션지를 만들어 신문에 나오게 하였다고 한다.

담당기자는 물론 문화부장도 모르는 대구사진비엔날레 특집이 나온 것이다.

세상, 참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사진,글/ 조문호








"내면으로 건져 올린 삶의 숨결, 시선에 덧대다."



미술평론가  홍경한























































정초부터 좋은 사진과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스페이스22’에서 개막된 권태균씨의 유작전에서다.

 

기다린 전시였으나 인사동에서 강 민 선생님을 만나 지체되었다.

부리나케 달려갔으나 30분이나 늦었다.

    



생전의 약속 따라 첫 유고사진집을 펴낸 눈빛출판사이규상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이 많아 운신이 어려웠지만, 곳곳에 반가운 사람들이었다.

    







몇 번이고 전시된 사진들을 돌아보았다.

보았던 작품도 몇 장 있었으나, 대부분 처음 보는 사진이었다.

잊고 있던 80년대 추억들을 얼마나 끌어내는지 가슴이 애렸다.

나른한 자세로 앉아있는 세 가족의 모습에서, 그 시절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 땐 몸은 피곤했지만, 곳곳에 화롯불 같은 온정이 있어 행복했다.






어찌할꼬! 이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이건 곡마단 광고판에 적힌 문구다.

우린 그런 기구한 삶을 보며 웃고, 울었다.

행여 누가 볼가, 곁눈질하며 눈물도 훔쳤다.






사진들이 너무 좋았다.

난 권태균씨가 의령 촌놈이라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맛을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런 맛을 낼 수 없다.

우연히 한 두 컷이면 모를까모든 사진에 특유의 애수가 묻어 있었다.

시골다방에서 담배피우는 남정네 표정이나 다방분위기 한 번 보라.



집에서 자판기를 두드리다, 또 열불이 터졌다.

그 흔한 사진상, 이런 사람한테 안주고 대체 누굴 주었나?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끼리끼리 돌려먹다, 이젠 그 제자들이 돌려 먹는다.

시류에 눈치 안보고, 초지일관 떠돌며 찍은, 이토록 진솔한 언어가

어떻게  빤짝 생각들에 밀려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제 그는 우리 곁을 떠나고 없다.

저승에서 잠시 내려와, 우리에게 말 걸고 있는 것이다.

이게 진짜 사진이라고...





다행스럽게 눈빛출판사의 이규상씨가 생전의 약속대로 근사한 책을 펴냈다.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마치 오리지널 프린트 같았다.

내 가난함을 불쌍히 여긴 한정식선생께서 책을 사 주셔서

이제 보물 상자 하나 두게 되었다.


'눈빛출판사'에서 주요작 100여점을 실어 펴낸 사진집 <노마드> 값은 70,000원

2월22일까지 서울 강남역 1번출구에 있는 '스페이스22'에서 작품들을 볼 수 있고, 사진집도  살 수 있다.






개막식에서 많은 분들을 만났다.

대구서 올라 온 양성철씨와 석재현씨도 만났고,

부산의 이광수씨, 광주에 사는 오상조씨, 장흥의 마동욱씨도 만났다.

그 외에도 한정식, 전민조, 엄상빈, 김보섭, 성남훈, 김남진, 이기명, 안해룡, 이갑철, 이상엽,

장 숙, 김상현, 마기철, 강재욱, 남 준, 김동희, 이재갑, 견석기, 이한구, 정진호, 최재균, 김영호,

박종우, 김대수, 구본상, 안미숙, 이순심, 정영신, 이은숙, 성윤미, 노형석, 고정남, 권양수씨를 만났다.

마치 심봉사 딸년 잔치 집에 온 듯 기분 좋았다.

















































전시를 주관한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 내외 따라 뒤풀이 장소로 옮겼다.

술집 북촌에서 술꾼들만 남아 더 마셨다.


! 서울 이빨과 부산 이빨이 주고받는데, 막상막하더라.

경상도와 전라도 말이 짬뽕된 이광수교수 구라도 대단했다.


술좌석에서 '사진예술'이기명씨가 이렇게 물었다.

"젊은 마누라와 살 수 있는 비결이 뭡니까?"

할 말이 없어 이렇게 말했다. "몸 안 아끼고, 최선을 다 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나중엔 총알이 떨어져 사진도 찍을 수 없었지만, 김보섭씨가 먼저 가라고 눈치주네.


 

촬영 : 2016.1.4. / 사진, : 조문호





늦가을 비가 추적 추적내리는 18일 오후 김정일씨의 ‘기억의 풍경’전이 열리는 ‘포토그래퍼스 갤러리’를 찾았다.
출판사에 들려 그의 사진집에 실린 작품들을 보았기에 나이가 지긋한 사진가인줄 알았는데, 만나보니 엄청 젊었다.
혹시 아버님께서 찍은 사진인가도 생각했으나, 저도 환갑이 되었다는 작가의 말에 깜짝 놀랐다.

영화배우 남궁원씨 처럼 잘 생겼는데, 잘 생기면 늙지도 않나 생각되었다.

중요한 건 사람도 사람이지만 사진들이 좋았던 것이다.
80년대 초반 경제개발이 시작될 때의 사진으로, 그 때는 우리 주변에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변해 간 시절이었다.

땅이 파헤쳐지고 오래된 집들이 헐려나갔던 그 당시의 아련한 풍경들이 김정일씨의 렌즈에 고스란히 포착되어 있었다.

난개발로 땅 투기까지 불러일으키며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역사의 현장이

세월의 먼지를 털어내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사진들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케 하는 향수나 기록에 머물지 않았다.

기억 안에 잠재되어 있던 문제의식을 살아 꿈틀거리게 함으로, 기록을 뛰어넘는 울림을 안겨준 것이다.

개막식에는 작가 내외를 비롯하여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박재호 대표,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

사진가 엄상빈, 윤한수, 탁기형, 정영신, 김봉규씨 등 많은 사진가들이 참석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축사를 한 이규상씨는 젊은 유학파들이 수평전이란 전시로 예술사진 바람을 일으킨 것은

우리나라 사진사에 큰 재앙을 불러 온 중대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김정일씨 처럼 훌륭한 사진들이 빛을 못 보고 잠들었던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때부터 우리나라의 기록사진은 첩에게 쫓겨 난 신세가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큐멘터리사진의 침체로 한국사회사 기록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사진 : 정영신,조문호 / 글 : 조문호




















 

 

30여 년 동안 사라져가는 서울의 골목풍정을 기록한 김기찬선생께서 세상을 떠난 지도 어언 10년이 되었다.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께서 10주기를 맞는 지난 8월 27일, ‘골목을 사랑한 사진가’란 제목의 책을 펴내며,

중학동에 있는 '한일관'에서 김기찬선생을 추모하는 조촐한 자리를 만들었다.

 

그 자리에는 미망인 최경자여사를 비롯하여 사진가 한정식, 황규태, 이완교, 전민조, 엄상빈, 김보섭, 정영신,

윤한수씨, ‘눈빛’ 편집장 안미숙씨, 한겨레신문 임종업기자 등 생전에 가까운 지인들과 글을 쓴 필자들이 모였다.

안미숙편집장은 인사말에서 “이 책을 지궁스럽게 만들었다”며 잘 쓰지 않는 말부터 끄집어냈다.

이번에 나온 사진 에세이에 김기찬선생께서 ‘지궁스럽다’는 말을 썼는데,

그 뜻이 책을 만든 우리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낸 것 같다는 것이다.
윤한수씨가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마음 쓰는 것이 지극히 정성스럽고 극진한데가 있다“로 찍혀 나왔다.

정말 ‘눈빛출판사’의 이규상, 안미숙 두 내외는 김기찬선생을 지극하다 못해 끔찍히도 모셔왔다.

한정식선생께서도 그의 지극한 마음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규상씨가 “지난 번 김기찬선생의 ‘골목안 풍경’사진집이 재판되었을 때,
고인의 무덤까지 사진집을 가져갔다”는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김기찬 사진에세이 '골목을 사랑한 사진가'


 

제본소에서 책 나오기를 안절부절 기다리던 이규상씨가, 뒤늦게 책을 안고 허겁지겁 나타났다.

내 놓은 책들은 금방 구워낸 붕어빵처럼 따끈따끈했다.

10주기에 맞추어 선보이려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그의 지극한 마음이 전해졌다.

그 마음이야 김기찬선생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되었겠지만, 오래전부터 싹터 온 인간적 정리도 한 몫 한 듯하다.

그 분에게만 잘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진을 위해 그만큼 애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사진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한다.

뻔히 안 팔릴 줄 알면서도 기록적 가치만 있으면 무조건 출판하는 그의 뚝심에 모두들 걱정이 대단하지만.

그의 집념은 아무도 꺾을 수 없다.

우리가 그에게 보답할 수 있는 일은 한 권의 책이라도 더 많이 사 보는 방법뿐이다.

결국 스스로를 기름지게 하는 자양분이지만...

 

 

 

책에 실린 김기찬선생의 생전 모습 / 한정식선생께서 찍었다.


 

책을 펼쳐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선생의 주옥같은 사진과 글들이 마치 당시의 상황과 애잔한 마음을 직접 들려주는 것처럼 다정하고 생생했다.
그리고 사진가 한정식선생과 전민조씨는 평소에 지켜 보았던 작가의 따뜻한 인간적 면모를 적었고,

사진가이자 건축가인 윤한수씨는 선생께서 다녔던 골목 골목을 답사하며 사진과 함께 글을 썼다.

사회학교수 김호기씨와 사진평론가 정진국씨, 역사학교수 이광수씨, 한겨레신문 임종업기자,

‘사진책도서관’대표 최종규씨 등 여러 필진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김기찬선생의 작가론과 골목이야기들을 풀어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부산대 사회학 교수 윤일성씨의 ‘도시 빈곤에 대한 두가지 시선’

-최민식과 김기찬의 사진연구-란 논문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를 하찮게 여기는, 서양귀신 씬 사진가들은 꼭 읽어야 한다.

“최민식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의 작가이고 김기찬은 ‘따사로운 온기’의 작가이다.”
그 논문에 쓰인 이 한마디가 양대 다큐멘터리 대가의 성격을 잘 말해 준다.



 

 

 

각설하고, 이야기를 다시 추모 만찬장으로 돌린다.
추모사를 겸한 이규상씨의 인사말과 이완교선생의 추억담 등 고인을 기리는 이야기들은

시종일관 김기찬선생을 그립게 만들었다. 그토록 골목을 사랑한 분이 어디 있었는가?

 

그리고 어려운 형편에 음식은 얼마나 푸짐하게 차렸는지, 너무 황송스러웠다.

고맙게도 누가 몰래 밥값을 냈으나  계산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짐작컨데 황규태선생께서 내신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짐을 들어주고 싶은 따듯한 마음이 이심전심 전해졌다.

이차로 자리를 옮긴 맥주집에는 이규상, 안미숙 내외와 엄상빈, 김보섭, 정영신, 임종업씨가

자리를 함께 했는데, 한 잔 마신김에 좀 과음했다.

뒤늦게 '한겨레신문'의 김봉규씨가 온 것으로 기억되나 카메라에 그의 흔적이 담겨있지 않았다. 너무 취했나?
아무튼 무소의 뿔처럼 돌진하는 ‘눈빛출판사’ 이규상씨의 기개에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 글 / 조문호

 

 

 

 

 

 

 

 

 

 

 

 

 

 

 

 

 

 

 

 

 

 

 

 

 

 



 

 

‘2015 북경국제사진제’에 참가할 한국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첫 미팅이
지난 18일 오후3시 인사동 ‘귀천’에서 있었다.

그 자리에는 한국사진가들의 참여를 추진한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를 비롯하여
기획자인 류은규씨, 다큐사진가 엄상빈, 김보섭, 조문호, 임재천씨 등
모두 6명이 모였다.

 

오는 10월24일부터 11월1일까지 열리는 축제에 다섯명의 국내 작가가 참여하게 되는데,

각각 20여점씩 출품하게 된다고 한다.

류은규씨의 진행 상황을 전해 듣고, 준비할 것들을 챙기기도 했다.
참가할 사진가들의 소통을 위해 엄상빈씨가 통역원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모임이 끝난 후, 인사동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대낯부터 술 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술집으로 내가 이끌어 놓고, 술값은 엄상빈씨가 내 버렸다.
그 술값이 만만 찮을텐데...

사진 : 류은규, 조문호 / 글 : 조문호

 

 

 

 

 

 





 

 

 

 

 

 

올해로 열네 번째 맞는 '동강국제사진제'가 지난 24일 오후7시 영월 사진박물관에서 개막되었다.
차가 밀려 개막시간 한 참 지나 당도하였고, 장대비가 쏟아져 진행 과정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다.

사실 개막식보다는 오후1시30분부터 시작된 '오늘의 한국사진과 사진문화를 진단한다'라는 주제의 

워크샵에 참여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았다.

나머지 워크샵을 위해 2박3일 동안 머물며 '동강사진제'의 이모저모를 유심히 살펴보게 된 것이다.

정선 갔다 오는 길에 영월 사는 장꾼 정수옥씨를 만나 '동강사진제'에 대한 주민 반응도 접할 수 있었다.
정씨에게 사진축제는 가봤냐고 물었더니 아는 손님이라도 오면 같이 가 볼 생각이란다.

그런데 해마다 가지만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했다.

“어린 조카 놈이 사진 보며 물어 보는데 뭘 알아야 답을 하지..."

하기야 사진하는 우리도 이해 안 되는 작품이 많은데, 어찌 시골 장꾼의 눈높이에 맞겠는가.

그러나 최소한의 궁금증은 풀어주어 소통할 수 있도록 해 줘야한다.

전시장을 지키는 도우미라도 교육시켜 궁금증을 풀어주게 하면 안될까? 

그리고 '동강사진제' 문제점을 지적한 '한겨레신문' 노형석기자의 글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본 것이다.

'동강사진제' 집행부에서는 이 지적을 불쾌히 여기지 말고, 시정할 수 있는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나 역시 '동강사진제' 만의 뚜렷한 색깔, 즉 정체성이 없다는 생각은 늘 했었다.

타 도시에서 열리는 사진축제들과의 변별력도 없었다.

오히려 기록사진에 초점을 맞추었던 2002년 출범 당시가 더 나았다.

무분별한 현대사진의 수용으로 마치 양공주 낯짝에 분칠한 격이었다.

작가주의로 시상되어 온 역대 수상작가 선정도 마음에 걸렸다.

한 때는 오형근씨와 노순택씨가 받아 뭔가 제대로 되나 싶었는데, 다시 원상복귀 되길래 그건 양념이란 걸 알았다.

'한국사진의 현재와 미래'란 주제를 내걸고 시작한 워크샵은 주제 자체가 너무 포괄적인 것 같았다.

좀 더 부분적이고 집중적으로 논의해 대안을 찿아내야 하는데, 노기자 말처럼 용두사미 꼴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 날 진행된 '사진전문지, 사진전문 출판의 현황과 문제'는 들을 만 했다.

그러나 참석률이 너무 저조했다. 다른 워크샵에는 200여명 가까이 되었으나 그 곳은 불과 20여명 밖에 참가하지 않았다.

마지막 날은 두군데서 동시에 열려 분산되기는 했으나 기실 사진 책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뜻 일게다.
참석자는 적었으나 가장 눈높이에 맞았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발제자들의 워크샵에 임하는 자세도 달랐다.

발제문들을 프린트해 나누어 주는 것은 물론, 오래된 사진 책까지 들고 와 참석자들의 이해를 높였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동강사진제'에 초를 쳐 미안하다.
그렇지만 대꾸없는 침묵이 더 무섭다. 부정적이라고 여론을 수렴하지 않으면 자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사실 새로 구성된 '동강사진제' 운영위원회에 커다란 숙제가 안겨진 것이다.
각계의 의견을 수렴 논의하여 이 사진제를 반석 위에 앉힐 방법을 찿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체성 있는 성공적인 '동강사진제'가 되기를 다시 한 번 기대한다.

사진,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