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김문호씨의 ‘성시점경’전이 지난 30일 충무로 ‘반도갤러리’에서 개막되었다.


전시된 김문호 사진에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병든 영혼의 실체를 보았다.
마약보다 더 무서운 돈에 중독된 자들은 병든 자체도 모르고 살지만,
덜 중독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냥 세상 돌아가는 데로 관조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가 김문호씨가 병들어 가는 그 실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회 모순과 왜곡된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한 김문호만의 독보적인 사진세계다.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방황하는 군상들을 그만의 어법으로 하나하나 채집한 것이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끝장이다”며 날선 비판을 해댄다.
사회를 비판하고 문명을 비판하지만, 결국은 돈에 끌려가는 인간을 비판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살풍경이 펼쳐진 도회지로 나왔다. 하지만 번쩍이는 것들만 많고 빛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우리 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말해주는 최악의 지표들,

청년실업, 최저임금, 노인빈곤, 살인적 노동, 가계부채, 자살률, 무엇보다 일상화된 부패와 갑질....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쏘다니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내내 ‘헬조선’, ‘이생망’ 같은 몹쓸 단어들이 떠나지 않았다.”

고 그가 말한다.





그동안 ‘온 더 로더’(2009)와 '새도우'(2013)를 지나

이제 '성시점경'으로 한 차원 높은 다큐멘터리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전시장에는 30점이 걸렸지만, 그간의 작업들을 사진집으로 묶어냈다.

‘눈빛출판사’에 발행한 성시점경(盛示點景) IN THE CITY 김문호 사진집엔

80점 (168쪽 양장, 33,000원)이 실려 있고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의 인터뷰 글이 실려 있어,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의 작품들은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강렬한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 전시는 9월 5일까지라 서둘러야 볼 수 있다.





세상은 돈 맛에 눈먼 영악한 자들이 장악한, 가짜가 판친다.

사진판도 마찬가지다. 그는 원로에 가까운 베테랑 사진가지만, 아웃사이더다.
한마디로 낙동강 오리알이다.
줄 서지 않고 고개 숙이지 않는데다, 바른 말까지 해대니 미운 털 박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사진가가 그 흔해 빠진 상한 번 받지 못하고,
대표적인 기획전에서도 항상 밀려났다.
끼리끼리 해 먹던 예전에는 눈이 어두워 못 본 것인지,
학연이나 인맥이 없어 의도적으로 따돌렸는지 모르지만,
판이 바뀐 요즘에도 관습에 젖어 못 본채 지나친다.






이번 전시가 김문호씨를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할 정점인 것 같다.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으니, 아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손바닥만 한 국내보다 세계 사진시장이 먼저 알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오래 전부터 기다렸던 전시다.
전시 내용은 대략 알았지만, 사진을 비평한 이광수씨나 사진집 출판을 추진한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의 확신 찬 자신감에 나마져 들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전시 개막식엔 늦어 버렸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살지만, 매사 하는 일이 그렇다.
전시장에 도착하니, 파장이라 와인도 한 잔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술 마시랴, 반가운 사람 인사하랴, 작품 보랴, 똥 오줌 못 가렸다.





곧바로 뒤풀이 집으로 정해진 ‘명문해물탕’집으로 옮겼다.


그런데 술 맛이 귀가 막혔다.
안주가 좋아서가 아니라, 좋아 하는 사람들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거들먹거리는 똥파리들이 없어 기분이 좋으니, 술술 넘어갔다.






부산에서 올라 온 이광수교수를 비롯하여 이규상, 이주용, 이규철, 김남진, 성남훈, 양재문, 정영신,

김영호, 석재현, 임종선, 이동준. 국수용, 임성호, 권병준, 강제훈, 이수철, 마동욱, 남 준, 곽명우,

윤길중, 이주영, 김은환, 정장식, 송주원, 권 홍, 박춘화, 성윤미씨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들이 모였다.





특히 김문호씨와 초창기 함께 했던 ‘사진집단 사실’ 멤버들도 여럿 보였다.
안해룡, 김봉규, 이석필씨가 왔는데, 갑자기 추연공씨가 보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화가였으나 외국통신사 사진기자로도 일했었는데,
그를 못 본지가 20년 가까이 되었다. 마침 술자리에 있던 김봉규씨에게 이야기했더니,
가까운 시일에 자리 한 번 만들겠다고 했다.






골목 맥주 집으로 옮길 때는 이미 많이 취했다.
맞은 편에 앉은, 이름도 모르는 여인에게 주책을 떨기도 했는데, 언제 철들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술이나 처 마시지, 사진도 엄청 많이 찍어놨네.





“좀 지루하더라도 술 취한  찍사들, 표정이나 한 번 봐 주이소.”

사진, 글 / 조문호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의 자당 김영옥씨가 지난 26일 오전 7시10분 노환으로 소천하셨다.
장례식장은 신대방동 ‘보라매병원’ 8호실로,

8월28일 오전5시30분에 발인하여, 강화 선산에 안장되었다.





상주 : 이규수, 이규상, 이규현, 김연옥, 안미숙, 이호종





사진가 김문호씨가 페북에 올린 이규상씨 모친 부음을 접했다.
한 번도 뵙지는 못했으나, 이규상씨의 상심으로 미루어 마음이 찹찹했다.





지난 28일 6시경 정영신씨와 함께 보라매병원 장례식장으로 문상을 갔는데,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 갈 무렵, 하늘을 붉게 물들인 석양이 범상치 않았다.
마치 고단한 이승의 삶을 끝내고 떠나는 아름다운 저승 길인양,
고인을 맞아드리기 위해 하늘 길이 열리는 것 같았다.






빈소에는 상주인 이규수, 이규상씨가 문상객을 맞았는데,
무슨 말로 위안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연세는 구순을 넘겼으며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 해 다소 위안 되었다.





문상객으로 엄상빈, 김보섭, 김남진, 마동욱, 이재갑, 강제욱, 곽명우, 정영신, 김형진, 고정남,

곽윤섭, 유별남, 이규철, 박종우, 임재천, 하지권, 최연화, 이한구씨 등 사진인이 많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진즉 알려야 하는데, 인터넷도 없는 정선서 삼일을 개기다보니, 늦은 소식이 되어버렸네요.

지난 16일 외국 출장 간 김봉규씨가 김문호씨 자당께서 소천하신 가슴 아픈 사연을 페북에 올렸는데,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상주 김문호씨는 하는 수 없이 댓글로 하소연 했습디다.
행여 걱정할까, 편안하게 돌아가신 호상이라지만,
자신의 몸을 잉태한 어머니의 임종을 가슴 아파하지 않을 불효막심한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정선 가려던 일정을 바꾸어, 정영신씨를 대동하여 안양 장례식장 부터 들렸다.
찜통같이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장은 문상객들로 넘쳐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생 을의 입장이었던, 김문호씨 보고 찾아 온 문상객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또 하나 놀란 것은 김문호씨가 독자이거나 남매 한 둘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집 안에 형을 비롯하여, 딸만 넷이나 되는 딸부자였다.
김문호씨를 알게 된지가 어언 30여년 가깝지만, 그동안 아무 것도 몰랐던 것이다.






큰 절로 예를 올리고 나니, 그 많은 문상객 중 사진가는 부산서 올라 온 이광수교수 뿐이었다.
뒤늦게 사진가 강제욱씨를 비롯하여 김남진, 이규상씨가 나타났지만,

그 밖에 아는 분이라고는 중문학자 임계재선생이 유일했다. 
이광수교수의 쌍스럽고도 시원한 농아리를 안주삼아 졸라 빨고 싶었으나,
정선 갈려고 차를 끌고 갔으니, 어찌 술을 넘 볼 수 있겠는가?

소주 한 잔을 보약삼아 입만 적실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자리의 화두는 이광수교수가 다음 달 펴낼 사진 소설 ‘구보의 하루’였다.
눈이 나빠 글은 다 읽지 못했지만, 소설 형식을 따른 사진인들이 꼭 읽어야 할 내용이었다.
그런데, 실린 사진이 장난이 아니었다. 언제 그 좋은 사진들을 찍었는지 깜짝 놀란 것이다.
얼마나 바쁜 사람이던가? 동에 뻔쩍 서에 뻔쩍 종횡무진 하는 양반이 사진까지 잘 찍어 바리면,

사진에 목숨 건 찍사들이 어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역시 사진은 사진을 전공한 사진가보다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의 사진이 더 좋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기계의 장난에 불과한 사진에 전전긍긍하는 것 보다, 생각이 앞서고 규범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눈빛출판사’ 이규상씨는 오는 8월30일부터 충무로 '반도카메라'에서 개인전을 열게 될 

김문호씨 사진집 제작과 함께, 열반하신 범어사 관조스님 사진집을 준비하고 있다는 따끈따끈한 소식을 주었다.
사진판을 좌지우지하는 갑들이 긴장하게 될 김문호씨 사진집도 사진집이지만,

불교사진의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좋은 일들이니 쌍수로 환영할 뉴스였다.






그 무렵, 사진하는 양아치 한 놈이 나타난 것이다.
눈앞에 있는 선배들을 무시하고, 다른 자리에서 마신 후, 핫바지 방귀 새듯 사라져버렸다.
못난 놈, 그러니까 양아치 소리 듣는게지.

열차 예약시간을 놓쳐 난감해진 이광수교수 따라 일어나니, 그 많던 문상객은 대부분 사라졌고,
눈에 보이는 건, 국화로 뒤덮인 조화였다.
세상에! 저 많은 꽃 값을 돈으로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생각했는데,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 이광수교수가 말했다.
때로는 명사가 주위에 있다는 가오도 좀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가오 좋지! 그럼 난, 뭣으로 가오 세울 수 있을까?
돈도 명예도 인물도,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니 가오 세울 것이 없었다.
차마 입으로 뱉지는 못하고,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나도 한 때 가오 좀 세웠지. 요 모양 요 꼴 만든 계집 질로..,.”

내가 미쳤나보다. 문상와서 계집 질 타령이라니..

어머님 죄송합니다.
웃어려고 한 이야기니

그냥 웃어 넘기시고,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30일 황규태선생께서 점심을 산다는 연락을 받았다.
‘동강사진상’을 받아 한 턱 쏘는 것 같았으나,
이러다 신용카드 구멍 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상금도 사진계 발전을 위해 주최 측에 희사하셨는데,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 내심 걱정되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도 엄상빈씨와 이한구씨에게 전화해
남아있는 후배들을 위해 충분히 대접하고, 영수증만 달라하지 않았던가.






약속장소인 ‘한일관’에는 황규태선생을 비롯하여
한정식선생, 엄상빈, 이한구, 이규상, 이창남, 곽명우씨가 나왔다.


‘눈빛출판사’ 이규상씨는 따끈따끈한 김용철씨의 ‘경의선’ 사진집을 가져 왔더라.

오랜 추억으로 끌어들이는 좋은 사진이었다.


황규태선생께서 맛있는 갈비에다 냉면, 그리고 소주까지 사 주셨다.
그 날의 화제는 단연 ‘동강사진상’이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로 기절초풍할 일이 많더라.






몇년 전 노순택씨가 수상할 때 티셔츠 차림으로 참석했단다.
그런데 시상식에 참석한 사진가 윤주영선생께서
‘수상자 차림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셨단다.


그래서 영월장에 가서 촌놈 가다마이를 사 입고 상을 받은 것이다.
이번에도 오셨다면, 황규태선생도 영월장에 가실 뻔 했다.
황규태선생도 청바치에 티셔쳐만 걸치고 오셨으니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강홍구씨가 상을 받을 때의 일이다.
수상자가 결정된 후, 주최 측에서 작가에게 연락했더니,
강운구씨를 잘 못 알고 전화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단다.


나 역시 받을 군번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전혀 예상하지 못할 일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심사위원들의 귀띔도 없었을까 의뭉스러웠다.






또 하나는 작년에 수상한 정동석씨 일이다.
당시 병원에 있어 상도 아들이 대신 받았다는데,
문제는 수상자전이 끝난 후, 반송하는 과정하서 작품이 손상된 것이다.
작가가 문제를 제기했으면, 배상하거나 사과해야 할 텐데,
운영위원장이 병원에 찾아와 오히려 작가를 나무랐단다.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아, 법정에 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참 별일들이 많다.
사진박물관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허술하게 다룬다는 것도 그렇지만,
상이 도대체 무엇인지 되 씹는 시간이 되었다.
사진상을 심사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얼마나 전지전능하신 신의 심사위원인지도 궁금했다.






이제 상의 운영규정을 이원화해야 한다.
문제되는 것은 다 돈 때문이다.

더 이상 사진가들이 반목하는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상금은 가난한 젊은 작가들의 창작지원금으로 주고,
사진에 대한 가치나 공적을 높이사는 상은 명예만 주어야 한다.






그 날 이규상씨도 말했다.
일찍 황규태선생께서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선생께 상을 거절하라고 말리려했으나,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황규태선생께서는 진작 상을 받아야 할 분이었으니, 마지막 좋은 선례로 남기자,
어차피 상금도 받지 않았으니까....
더 이상 상 때문에 사진인들 조롱거리를 만들지 마라.

더러운 꼴 그만 보고 싶은데, 목숨이 너무 질기다.

사진, 글 / 조문호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한 사진집표지]


사진가 마동욱씨의 하늘에서 본 영암사진전이 지난 21일 오후 5, 남대문 벤로갤러리에서 개막되었다.

그는 1996년부터 고향 장흥을 꾸준히 기록해온 향토사진가다.

고향에 대한 지극한 애착은 탐진강의 속살’ ‘고향의 사계’, ‘하늘에서 본 장흥등 여러 권의 사진집을 출판하며 장흥을 기록해 왔다.

그러나 이젠 고향인 장흥을 넘어 영암의 전 마을을 기록하여 전시와 사진집을 출판하게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미 강진군 작업도 끝낸 상태인데다 계속 다른 곳으로 작업 반경을 확대해 가고 있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만이 아니라 드론을 띄워 곳곳의 도면 같은 부감사진을 찍어 신판 대동여지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발품 팔아 전국을 누벼 만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화가 김 억씨의 목판화 작품을 비견할 수 있으나,

드론으로 기록한 마동욱씨의 사진은 정확도에서 이에 비할 수 가 없는 것이다.


 

일관된 대상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집념이 다큐멘터리사진의 소중한 덕목이 아니던가?

그는 곁눈질 하지 않는 사람이며, 예술사진 한다며 폼 잡지도 않는다.

잘 살지도 못하는 형편에 숱한 돈을 작업에 쏟아 부으며 전전긍긍하는데, 사실 이런 공익적인 기록은 정부에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던가?

그 뿐 아니다. 지인들의 전시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축하해 주고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다.

서울 사는 나도 그처럼 찾아다니지 못하는데, 사람이 너무 좋아 탈인 것이다.

잔재주 좀 부린다고 온갖 똥 폼 다 잡으며, 인간성이라고는 전당포에 맡긴 덜 떨어진 사진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술에 앞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어느 원로 예술인의 말에 무릎을 칠 그런 사진가다.


 

그동안 얼마나 남을 도와주었으면,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단다.

어느 사진가의 전시회 뒤풀이에서 한 후배가 모자를 벗어 술값을 거두었다고 한다.

막상 거두고보니 실제 술값에 미치지 못하는 적은 액수였단다.

그렇다면 거둔 돈을 전시 작가에게 전해주어 계산하게 해야 하는데, 거둔 돈을 마동욱씨에게 주어 나머지를 계산하게 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너무 좋으니, 그를 무슨 호구로 보는 것이다.

왜 이 이야기를 새삼 꺼내느냐 하면 그렇게 도움 받았던 많은 사진가들이 정작 그의 전시 개막식에는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사진판에 싸가지 없는 사진가들이 너무 많다.

인사 받으려고 전시장에서 사진 찍어 블로그에 올리고, 전시리뷰 만들어 신문사에 투고한 것은 아니지만,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행여 잘못이라도 지적하면 두고두고 씹어 돌린다.

그 욕이 돌고 돌아 내 귀에까지 전달되는데, 그런 인간을 위해 일한 게 후회막급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물론 신문사에서 월급 받는 정식기자거나 원고료 받기 위해 일 한다면 인사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가난한 신문사를 돕는 뜻도 있지만, 오직 전시 작가에 대한 배려였다.

그것도 괜찮은 전시라면 간단한 일이겠지만, 안면 때문에 전시 가치도 없는 글을 쓸 때는 얼마나 머리 아픈지 모른다.

남에 대한 배려라고는 파리 뭐 만큼도 없는 사진인들이 도처에 늘려있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일본서 활동하는 양승우씨의 초대전이 인디프레스에서 열린 날이다.

양승우 전시리뷰를 작성하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는데, 그날따라 보조 건전지가 없어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았다.

마침 그의 전시에 사진 찍어주고 전시리뷰까지 써준 후배사진가가 옆에 있어 작가 프로필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고 부탁하며

사진 보낼 이메일을 건네주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감감소식이었다.

사진을 전해주기 싫었다면 처음부터 거절했으면 다른 분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는데, 정말 난감했다.

대관절 무슨 이유일까? 감히 예술사진가에게 신문에 게재할 프로필 사진이나 부탁해서 일까

아니면 원고료가 없어서일까? 그렇다면 입은 두었다가 어디에 쓸까?


 

이런 저런 일로 사진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많이 해 이젠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사진전엔 잘 들리지도 않는다.

그랬더니 나보다 더 바쁜 정영신씨가 그 일을 대신해 주고 있다.

정영신씨도 마동욱씨 처럼 사람이 좋으니, 아는 분들의 전시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아무튼 마음의 상처라도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판의 문제를 거론하다보니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다시 마동욱씨가 전시하는 하늘에서 본 영암으로 돌아간다.

이번에 펴낸 사진집을 살펴보면 영암읍 뿐 아니라 삼호읍, 덕진면, 금정면 등 11개 읍면 소재지 마을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사진에는 시골 논두렁, 밭두렁에서 집으로 연결되는 아기자기한 길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는데,

주민들이나 그곳이 고향인 분들의 입장에서는 더 없이 소중한 사진으로 얼마나 많은 추억이 담긴 장면 장면이겠는가?

수십 년을 살았어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고향산천을 훨훨 나는 새의 눈으로 구석 구석 볼 수 있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하늘에서 본 영암600여 개의 영암 마을 모두를 드론으로 촬영한 컬러사진 600여 장을 수록하고 있다.

자연경관이 수려한 국립공원 월출산과 영산강하굿둑을 중심으로 펼쳐진 영암군의 전형적인 취락구조와

자연생태를 보여주는 상공지리지인 것이다.

     


 75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는 영암군의 4계를 담은 컬러 사진 50여 점이

영암 특산품이 담기는 여러 가지 농산물 박스위에도 펼쳐져, 고향에 대한 정취를 더욱 더 일깨워 주고 있.


 

마동욱이 기록한 고향마을 사진은 이 땅의 모습과 생태가 어떠한 변모 과정을 거쳐 왔고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도 암시해 준다.

고향이 그리운 분은 고향 앨범처럼 펼쳐놓은 마동욱씨의 영암 사진전을 꼭 한번 관람하기 바란다


 

사진전 개막식에는 작가 마동욱씨의 내빈 소개에 이어 전남도의원 우승희씨와 무영스님,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 사진가 엄상빈씨가 차례대로 축사를 하였으며,

사진가로는 전민조, 김보섭, 김문호, 정영신, 남 준, 박찬호, 곽명우씨가 참석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사진, / 조문호



























































 

 



 2018년 01월 30일 (화) 10:31:45 조문호 사진가 press@sctoday.co.kr  


 


일제로부터 해방된 3년간의 역사를 사진으로 조명한 '미군정 3년사'가 '눈빛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미군정’기라 불리는 3년을 직접 겪지는 못했으나,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때로 기억되는 안타까운 시기였다.

이번에 발간한 '미군정 3년사'를 펼쳐보며, 경악스러움과 함께 힘없는 민족의 아픔을 절감하였다. 그 사진 한 장 한 장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는지, 보고 또 보며 쉽게 눈을 땔 수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보석 같은 역사적 기록을 정부에서 찾아 낸 것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에 의해 찾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소설가이자 역사저술가인 박 도씨와 박유종씨가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찾아가 오래된 기록물에서 하나하나 찾아낸 사진들이다. 그 외에도 '눈빛출판사'가 소장하고 있는 1948년 서울에서 찍힌 컬러사진 20점과 이경모, 성낙인, 김한용, 임응식, 구왕삼 등 원로사진가들이 찍은 기록사진들을 모아 집대성한 것이다.

카메라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 대개의 역사적인 장면은 미군들이 기록한 사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때로는 구술 자료로 시대상을 분석하며, 가능한 정치적 색깔에서 벗어나려 노력한 점도 돋보였다. 해방과 정부수립까지의 일들을 사진과 연표로 정리하고 분석하여, 일천한 한국근현대사 증언에 크게 기여한 책이다.

책에는 조선총독부 건물 앞에 걸린 깃발이 일장기에서 성조기로 바뀌는 장면에서 부터 미군이 인력거를 타고 서울 시내를 돌아보는 모습 등 진귀한 사진이 많다. 원폭이 투하된 나가사끼와 히로시마의 항공사진, 이승만과 김일성의 젊은 모습의 사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활동, 남한의 정부 수립, 북한 인민위원회 선거 등 모두가 처음 보는 사진이다.



    
총독부 앞 국기계양대에서 일장기를 내리는 미군들 1949



그리고 미군들이 북한에서 노획한 문서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북조선 민주주의 건설 사진첩'에서도 많은 사진들이 나왔다. 얼마나 기록을 소중하게 여겼으면, 구질구질한 것조차 싹쓸이한 점령국의 약탈이 얄밉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존경스러웠다. 그 진귀한 사진들을 어렵사리 찾아내어 책으로 편찬한 것이다.

잃어버린 역사로 불리는 미군정기 3년은 대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처럼 절름발이 역사교육이었기에, 이 책이 갖는 의미가 더 소중할 수밖에 없다. 더 분통 터지는 일은 미군정에서 일본에 빌붙어 반역을 저지른 군인과 관리는 물론 말단직까지 그대로 기용해 부끄러운 역사가 청산되지 않고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정희가 아니던가.



    
▲ 처음 진주한 미7사단 17보병연대 장병들 1949,9 

    
▲ 무기를 넘겨주려 미군의 호위 속에 이동하는 일본군 1945, 9



새로이 발견된 사진 외에도 당시에 발생한 사건을 정치·행정, 사회·경제, 문화·생활, 북한 등으로 나눠 월별로 실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회오리바람처럼 급박하게 분단으로 치닫게 한 미군정의 과오를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었는데, 병 주고 약주며 그들의 실속만 차려가는 가증스러운 미국의 짓거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 식량난으로 굶주린 사람들이 쌀배급소를 약탈하려고 몰려들자 미 헌병들이 제지하고 있다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미군정 3년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함축된 시기로, 정부 수립 70주년을 앞두고 이 시기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해방 후 미관말직에라도 오른 관리들은 여전히 백성위에 군림하며 수탈에 여념이 없었고, 미욱한 백성들은 정의감이 무뎌진 채 나라의 미래보다 내 땅이나 집값 오르는 데에 한눈을 팔고 살아 온 감이 없지 않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지난날도, 지금도, 앞으로도 나라의 백성들이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 삼일절 보고대회를 마친 철원 여중학생들의 축하행렬 1947, 3



백성들이 나라의 역량을 키워야 진정한 자주독립국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라의 지도자들이 정의롭지 않고 경천애민(敬天愛民)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의 신뢰를 받을 수 없고, 외세의 지배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고 책을 엮은 박 도씨가 후기에서 말했다.



    
▲ 서울 거리에서 만난 새댁 1948 

    
▲ 서울 거리의 행인들 1948



미군정 3년사’출판과 함께 28일까지 ‘류가헌’에서 열린 ‘1948년 서울 겨울’ 사진전에는 책에 수록되어 있는 서울의 생활상을 담은 컬러사진 20점이 전시되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정겨운 사진이라,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
 
   
 


'미군정 3년사' 눈빛출판사 / 680쪽. 3만3천원



일제로부터 해방된 3년간의 역사를 사진으로 조명한 '미군정 3년사'가 '눈빛출판사'에서 나왔다.

미군정’기라 불리는 3년을 직접 겪지는 못했으나,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때로 기억되는 안타까운 시기였다.



총독부 앞 국기계양대에서 일장기를 내리는 미군들 1949,9



이번에 발간한 '미군정 3년사'를 펼쳐보며, 경악스러움과 함께 힘없는 민족의 아픔을 절감하였다.

그 사진 한 장 한 장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는지, 보고 또 보며 쉽게 눈을 땔 수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보석 같은 역사적 기록을 정부에서 찾아 낸 것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에 의해 찾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3,1절 보고대회를 마친 철원 여중학생들의 축하행렬 1947, 3



소설가이자 역사저술가인 박 도씨와 박유종씨가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찾아가

먼지 뒤집힌 기록물에서 하나하나 찾아낸 사진들이다.

그 외에도 '눈빛출판사'가 소장하고 있는 1948년 서울에서 찍힌 컬러사진 20점과

이경모, 성낙인, 김한용,.임응식, 구왕삼씨 등 원로사진가들이 찍은 기록사진들을 모아 집대성한 것이다.

 


식량난으로 굶주린 사람들이 쌀배급소를 약탈하려고 몰려들자 미 헌병들이 제지하고 있다



카메라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 대개의 역사적인 장면은 미군들이 기록한 사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때로는 구술 자료로 시대상을 분석하며, 가능한 정치적 색깔에서 벗어나려 노력한 점도 돋보였다.

해방과 정부수립까지의 일들을 사진과 연표로 정리하고 분석하여, 일천한 한국근현대사 증언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독립문 건립52주년 기념식장에서 연설하는 김규식박사 1947,11


책에는 조선총독부 건물 앞에 걸린 깃발이 일장기에서 성조기로 바뀌는 장면에서 부터

미군이 인력거를 타고 서울 시내를 돌아보는 모습 등 진귀한 사진이 많다.

원폭이 투하된 나가사끼와 히로시마의 항공사진, 이승만과 김일성의 젊은 모습의 사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활동, 남한의 정부 수립, 북한 인민위원회 선거 등 모두가 처음보는 사진이다.

그리고 미군들이 북한에서 노획한 문서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북조선 민주주의 건설 사진첩'에서도 많은 사진들이 나왔다.

얼마나 기록을 소중하게 여겼으면, 구질구질한 것 조차 싹쓸이한 점령국의 약탈이 얄밉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존경스러웠다. 그 진귀한 사진들을 어렵사리 찾아 내어 책으로 펴낸 것이다.



무기를 넘겨주려 미군의 호위 속에 이동하는 일본군 1945, 9



잃어버린 역사로 불리는 미군정기 3년은 대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처럼 절름발이 역사교육이었기에, 이 책이 갖는 의미가 더 소중할 수 밖에 없다.

더 분통 터지는 일은 미군정에서 일본에 빌붙어 반역을 저지른 군인과 관리는 물론 말단직까지 그대로 기용해

부끄러운 역사가 청산되지 않고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정희가 아니던가.



동생을 업고 사과를 파는 소녀 1947,10



새로히 발견된 사진 외에도 당시에 발생한 사건을 정치·행정, 사회·경제, 문화·생활, 북한 등으로 나눠 월별로 실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회오리바람처럼 급박하게 분단으로 치닫게 한 미군정의 과오를 하나 하나 살펴볼 수 있었는데,

병주고 약주며 그들의 실속만 차리는 가증스러운 미국의 짓거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는 "미군정 3년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함축된 시기로,

정부 수립 70주년을 앞두고 이 시기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인천을 통해 처음 진주한 미7사단 17보병연대 장병들 1949,9



"해방 후 미관말직에라도 오른 관리들은 여전히 백성위에 군림하며 수탈에 여념이 없었고, 

미욱한 백성들은 정의감이 무뎌진 채 나라의 미래보다 내 땅이나 집값 오르는 데에 한눈을 팔고 살아 온 감이 없지 않다.

나는 이책을 통하여 지난 날도, 지금도, 앞으로도 나라의 백성들이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백성들이 나라의 역량을 키워야 진정한 자주독립국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라의 지도자들이 정의롭지 않고 경천애민(敬天愛民)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의 신뢰를 받을 수 없고,

외세의 지배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고 책을 엮은 박도씨가 후기에서 말했다.



서울 거리에서 1948



‘미군정 3년사’출판과 함께 28일까지 ‘류가헌’에서 열린 ‘1948년 서울 겨울’ 사진전에는

책에 수록되어 있는 ‘눈빛아카이브’ 사진인, 서울의 생활상을 담은 컬러사진 20점이 전시되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정겨운 사진이라,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



서울의 새댁 1948



지난 20일 오후4시부터 '류가헌' 2층에서 열린 저자와의 대화 '나의 책을 말한다'에는

심한 감기에도 불구하고 참석한 박도선생을 비롯하여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

전민조, 김보섭, 엄상빈, 박종우, 이한구, 정영신, 이재갑, 진천규, 김원씨 등 많은 사진가들이 자리하였다.


사진, 글 / 조문호



아래 사진은 저자와의 대화와 뒤풀이에서 찍은 사진이다.











































10여년간 지구의 자연변화를 기록해 온 다큐멘터리 사진가 강제욱의 “THE PLANET" 사진전 개막식이

지난 2일 오후 6시 강남 ‘스페이스22’에서 열렸다.

전시와 함께 그 장정의 기록을 집대성한 “THE PLANET" 강제욱 사진집도 ‘눈빛출판사’에서 나왔다.





개막식에는 강제욱 사진가 내외를 비롯하여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 부부, 이광수, 김문호, 엄상빈,

박종우, 김남진, 양재문, 성남훈, 김봉규, 정영신, 이규철, 남 준, 곽명우, 이은숙, 곽대원씨,

그리고 수원국제사진축제에 참여한 외국의 사진가 등 많은 분들이 전시를 축하하며 밤늦은 시간까지 축배를 들었다.






강제욱씨는 그동안 보르네오섬의 열대우림, 내몽골의 고비사막, 필리핀의 맹그로브숲을 비롯하여

인간과 자연의 치열한 대결이 이뤄진 쓰촨성 대지진, 아이티 대지진, 태국의 대홍수 등

세계 곳곳을 쫒아 다니며, 그 현장을 담담하게 기록해 온 배태랑 다큐 사진가다.






일단은 전시장에 걸린 사진을 돌아보며 받은 느낌이란, 온몸에 힘이 빠지듯 나른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햇볕이 강한 날씨나 화려한 색을 피한 흐린 날씨에 의한 회색 톤이 주는 나른함 일수도 있겠고,

사람이라고는 코때기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풍경이라 그랬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 말하는 방식에 앞서 물질문명이 가져 올 미래 풍경을 예견하고 진단했다는 점이다.

아마,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날의 미래 풍경을 내다보는 것 같은 참담함이 그런 나른한 느낌을 주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말하는 것은 자연예찬도 환경 비판도 아니고, 무엇을 강제하거나 계몽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지역과 년도 외는 아무런 구체적 정보도 없이 마치 독백처럼 구시렁대는 나른함이 이 사진이 주는 매력인 것이다.

때로는 인적 없는 원시림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고, 유령도시 같은 건축물과 황량하기 그지없는 재난의 현장들도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폐자재들이 뒤엉킨 파괴현장 사이로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자연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끝없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문명의 잔재들이 한 줌의 모래처럼 흩어진다는 것이다.





사진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자연과 문명에 대한 성찰로, 다 부질없는 것이란 말이다.
원시적 숲에서 비롯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며,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도시도 언젠가는 허물어져 밀려나고,

결국은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이란 게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흩어졌다 다시 생성되는 자연이치, 즉 윤회를 뜻하는 철학적 사유가 깔린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우주 변화의 대서사를 기록한 대표작 21점 외에도

옆 라운지에서는 작가 데뷔 초기부터 The Planet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이 전시는 강남역 1번 출구에 있는 ‘스페이스22’(전화 02-3469-0822)에서 오는 21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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