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응식 회고 사진집에서 스크랩-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될 무렵, 서울 명동에서 촬영한 위의 ‘구직’사진은

사진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잘 아는 원로사진가 임응식선생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모자를 눌러쓰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벽에 기대선 사람은 구직(求職)이란 팻말을 목에 걸고 있다.

좌절한 표정이나 몸짓이 얼마나 처절하게 느껴지는가?

그러나 시대적 실업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이 사진은 연출에 의한 사진이었다.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95년 ‘삼성항공’ 카메라 사업부에서

‘삼성포토스페이스’ 개관 초대전으로 임응식선생 회고전을 열 때였다.

당시 삼성카메라 사업부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는데, 그 회고전엔 ‘구직’사진도 전시되었다.

전시기간 중 관람객을 상대로 한 작가와의 만남에서

그 사진은 연출에 의한 사진이라고 밝힌 것이다.

 

임응식선생께서 초창기에는 토속적인 소재나 회화적 사진을 추구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나섰는데,

우리나라 리얼리즘의 대표적 사진가로서의 말씀으로는 너무 뜻밖이었다.

 

사진에서 묘한 연출냄새가 풍기기는 했으나, 전혀 생각 못했던 일이었다.

그 자리에는 사진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여럿 있지 않았던가.

더 황당무계한 것은 연출의 당위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냥 지나치다 찍은 것이 아니라 작가의 창의력에 의한 연출로

시대적 실직 난을 알리기 위한 캠페인적 의도였다고 한다.


물론 사회적 실상을 홍보하는 사진으로는 이해가 되나,

선생께서는 우리나라에 ‘생활주의 리얼리즘’을 최초로 주창하고 실천해 오신 분이 아니던가?

문제는 처음부터 그 사진이 홍보사진으로 발표된 것이 아니라, 기록사진에 편승해 왔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임응식선생은 우리나라 사진 일세대로서 최초의 사진교육에 이바지해 오신 분이었다.

서울대를 비롯한 유명대학에 출강 하셨고, 최초로 사진과가 생긴 ‘서라벌예술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들을 양성하신 원로사진가 말씀으로는 도무지 이해 되지 않았다. 


난. 그 일에 더 이상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사진계 일각에서도 그 사실을 아는 분이 있겠지만, 다들 모르는 일처럼 쉬쉬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 임응식 선생의 ‘구직’사진이 '서울옥션' 경매에 나와

사회적 관심이 모아짐에 따라 자칫 역사적 왜곡을 불러 올 수 있기에, 더 이상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사진은 기록 사진이 아니라 연출사진이라는 것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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