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국제사진제’가 탄생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7회를 맞았다.


강원도 정선에 집이 있는 덕에 사진제가 열리는 여름이면 오며 가며 빠지지 않고 관람하는 호사를 누려왔다.

개막식은 못 들린 때가 더 많았으나, 공교롭게도 참석했던 두 차례나 비가 왔다는 사실도 특이하다.



    

 

동강사진제는 영월 사진박물관 건립을 추진한 다큐멘터리 사진가 윤주영씨의 공로가 크다.

강원도지사였던 김진선씨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성사되었는데, 음엔 다큐멘터리사진축제로 시작되었으나,

김승곤씨에서 김영수, 이재구씨로 운영위원장이 바뀌면서 그 구분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올해 동강국제사진제의 핵심은 인간성 회복이 아닌가 생각된다.

동강사진상을 수상한 황규태선생의 묵시록 그 이후전은 인간성을 상실한 현실에 대한 문명비판적 작품이었다.

오늘을 돌아보며, 사람답게 사는 방법에 고민하게 했다.

사랑의 시대라는 국제 주제전은 사랑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내용도 담고 있었다.



동강사진상 수상자전, 황규태, Usherette


 

현대사진의 경향을 보여주는 국제 주제전은 10개국 13명의 사진가가 참여했다,

특유의 시적 표현력을 보인 미국 사진가 알렉 소스의 초기작인 사랑을 찾아서와 리처드 레날디의 낯선이와의 접촉’,

이탈리아 파올로 벤츄라의 여행가방 속의 남자 2’야나 로마노바의 '기다림'등이 돋보였다.



국제주제전, 야나 로마노바, 기다림


 

또한, 전 세계 사진작가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국제 공모전 '올해의 작가'는 캐나다의 천 화 캐서린 동이 선정되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생전에 어머니와 친하게 지냈던 인물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모습과 함께 기록했다.



국제공모전- 올해의 작가상, 천 화 캐서린 동, 어머니

    

 

그리고 동강국제사진제의 또 하나 볼거리는 영월군의 주요 거리를 갤러리로 변신시키는 '거리 설치전'이다.

이는 공공미술 개념의 전시로 거리의 벽이나 계단에 설치되는데,

올해는 꿈과 희망의 영월이라는 주제로 단종과 정순왕후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었다.



거리설치전, 송석우, 장릉 정자각

    


이번에 어렵사리 개막식에 참석한 것도 황규태 선생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서인데,

수상전을 돌아보며 선생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선생께서 국내에서 사진 상 한 번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이 믿기지 않았다.

국내외적으로 알려진 유명세나 작품 가격 형성도 만만찮다.

우리나라 사진사에 끼친 영향도 무시하지 못하지만, 꾸준히 문제작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사진상의 실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전시장의 황규태선생

 


먼저 우리나라 사진상의 선례부터 한 번 돌아보자.

숱한 잡음을 일으키다 없어져버린 '최민식사진상'은 포토포트폴리오 심사로 결정했으니, 더 이상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지금은 없어져 유명무실한 상이되었지만, 그 당시 유명세 위주로 준 대표적인 상이 현대칼라에서 시상한 현대문화사진상

뒤 따라 ‘사진예술에서 시상한 이명동사진상을 꼽을 수 있겠다.

지금은 대한사협의 '이해선사진상', ‘대한항공조양호가 주는 '일우사진상',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모임에서 주는

온빛사진상등 여러 사진상이 있으나, 당시로서는 현대문화사진상’과 그뒤에 생긴 이명동사진상’이 주요 사진상이었.

문제는 현대문화사진상이나 이명동사진상의 역대 수상자를 보면 마치 순번을 정해 놓은 듯 비슷 비슷하게 받았다는 사실이다.

중견작가는 끼일 수도 없을 정도로 누군가 조종하는 막강한 힘이 느껴지는 그런 사진상이었다.


    

 



그러나 ‘동강사진상은 좀 달랐다. 처음부터 원로보다 중견작가 위주로 주었는데,

눈여겨 볼 것은 공교롭게도 육명심선생 직계제자인 최광호씨와 이갑철씨가 1-2회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그 많은 작가 중에 두 사람이 먼저 발탁된 것이 우연치고는 좀 그랬다.

사진이 좋아 그렇겠지!”라고 판단하기엔 미심쩍은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3-4회는 갑자기 원로인 김기찬씨와 최민식씨로 수상 세대가 바뀐 것이다.

두 분 다 충분히 받고도 남을 분이지만, 갑자기 원로 위주의 수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5회부터 성남훈, 김아타, 강홍구, 이상일, 강용석, 오형근, 노순택, 이정진, 구본창, 정주하, 김옥선, 정동석씨가 차례로 받아

몇몇 사람이 좌지우지한 예전의 사진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로는 함량미달의 작가도 더러있었지만, 딱 부러지게 자격 규정해둔 것도 없으니 시비 걸 수 없었다.

누가 심사를 해도 가까운 분을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겠으나, 수상에 대한 뚜렷한 명분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 아쉬운 것은 힘을 실어주어야 할 신진작가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지금은 신진작가도 아니지만, 그나마 노순택씨 정도로 위안할 수 있겠다.



 


그런데, 갑자기 원로사진가 황규태 선생께서 받게되어 좀 의아 했는데,

행여 뒷방에 계신 원로사진가들이 욕심 내지 않을까 염려되어서다.

물론, 황규태 선생처럼 눈부신 성과를 보이는 현역이라면 쌍수로 환영하겠지만,

이제 관록으로 주는 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상이란 그때 그때의 문제 작가에게 주어져 창작활동을 돕는 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개막식에는 만나기 껄끄로운 사진가들이 많아 맨 뒷자리 구석에 혼자 앉았는데, 갑자기 육명심선생께서 옆자리로 오신 것이다.

모처럼 만나 뵈어 반갑기는 했으나, 최민식사진상의 문제점을 까발린 죄로 뵐 면목이 없어 만나뵙기 꺼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 사건에 직계제자인 최광호씨가 수상자로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저런 말씀을 듣고 있는 중에 그만 시상식이 끝나버린 것이다.

다들 개막식 테이프 커팅을 위에 앞으로 나가고 있어 황급히 일어나야 했다.

황규태선생 수상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기다렸으나, 그만 놓쳐버린 것이다.



 


그런데, 개막식이 끝나고 커피숍에서 만난 황규태선생께서 상금을 주최 측에 기증하셨다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물론 사진계 발전을 위해 내 놓은 선생의 뜻은 높이 사겠으나,

오래 전 김아타씨가 상금을 내 놓아 젊은 사진가들에게 욕먹은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렵게 작업하는 후배 사진가들에게 부담 주는 그런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당시 여론이었다.

차라리 가난한 후배들을 위해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이 운영하는 온빛 사진상’ 같은 곳에 기증해,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에게 조금이나마 혜택을 주는 것이 훨씬 빛날 텐데 말이다.

문제는 주최 측인 영월군에서 은근히 바라게 되면, 심사위원도 가난한 작가보다 돈 많은 작가를 선호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예로 몇 년 전의 일이다.

잘 알고 지내는 '동강국제사진제'의 운영위원 한 분으로 부터 상을 받게 되면 상금을 주최 측에 기증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어이없는 제안이었다. 가난한 나로서는 명예 따위야 아무 소용없는데, 상금이 없다면 구린내 나는 상을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받지 못해 없던 일이 되고 말았지만, 그 소리를 들으며 운영위원들이 주최 측의 사주를 받거나 눈치를 본다는 것을 짐작한 것이다.


    

 


그리고 '동강국제사진제'의 운영해 대해 한 번 짚어보자.

수상자전이나 주제전 등의 본 전시는 발전해 가고 있으나, 강원도사진가전은 이제 고려해 볼 전시다.

국제전에 걸맞지 않는 구태한 전시를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반복한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과연 강원도에 내놓을 만한 작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무슨 뚜렷한 주제도 없이 마치 아마추어 동아리 전 같은 전시로 국제전에 티를 남긴다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차라리 전국의 신진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획전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원도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결국 나만 욕먹지만어쩔 수 없다.

사진판이 잘 못 돌아가도 다들 입 다물고 눈치만 보고 있으니 말이다.

제발 젊은 후배 사진가들에게 더러운 것은 물려주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지인의 말처럼, 철부지고 바보.

철부지는 겁이 없고, 바보는 곁눈질 않는다.

 

사진, / 조문호









동강사진상 수상자전, 황규태,  '묵시록 그 이후' 전시장


제17회 동강국제시진제 도록 표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