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포항 송도의 코모도호텔에서 이색적인 사진 장터가 열렸다.
올 해 처음으로 열린 포항 ‘사진인의 밤’은 사진가 안성용씨가 소장으로 있는

‘포항예술문화연구소’에서 기획 추진한 포트폴리오 특별전으로, 늦가을의 한가한 송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2017 사진의 섬, 송도’에는 사진전문 갤러리와 출판사를 비롯한 40여명의 사진가들이 참여한 사진 페어였는데,

주최 측에서 송도 코모도호텔 객실 40개를 빌려 40여명의 사진가들이 독자적인 포트폴리오 전시를 열도록 한 것이다,

아무튼, 서울의 사진가들과 지역사진가들을 연결해 주는 교두보로서 유능한 신인 발굴을 위한 행사로 자리매김하길 바랄 뿐이다.






이번 포트폴리오 전에 구닥다리 늙은이가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모처럼 쪽방에서 벗어나 호텔에서 한 번 쉬어가라는 후배들의 배려 같았다.

덕분에 2박3일 동안 서울과 지방의 여러 사진인 들을 골고루 만나며, 또 다른 사진들을 감상하는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었다.



 



27일 오후 6시부터 열린 ‘사진인의 밤’ 개막식에서 들려 준 ‘포항팝스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축제 분위기를 더 높였다.

호텔 주변을 뒤덮은 소나무의 솔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가운데 진행된 와인 파티도 인상적이었다.






부산의 이광수 교수를 비롯하여 서울에서 내려 온 사진가 김문호, 김남진, 양재문, 조성기, 곽명우씨, '눈빛출판사'의 이규상씨 등

반가운 분들을 수없이 만났는데, 대구에 사는 오래된 친구 은석이 까지 불렀으니 신바람 난 것이다.

난, 술이 취해 기분이 너무 좋아도 탈인 것은, 너무 오버하기 때문이다.

그 이튿날 술이 깨어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인데, 포항에서 인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장기봉, 김정혜 내외도 있었고,

친하지 않은 후배들도 많지 않았던가?






그 이튿 날의 술자리에서는 조심하느라 말을 삼간 채 술만 마셨더니, 술이 더 빨리 취했다.

이차로 한겨레 곽윤섭기자가 호텔 복도에 마련한 사진인 들의 대담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아무런 기억도 없었다.

사실상, 명목은 전시하러 왔지만, 반가운 사람 만나 술 마시는데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이 나이에 더 알려져 전시 한들 어디에 쓸 것인가?






호텔 객실을 사진으로 장식한 이번 전시는 소나무 숲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호텔 객실에서 누리는 여유라 그 재미가 쏠쏠했으나,

객실을 지키기도 쉽지는 않았다. 좁은 방을 지키고 앉았으니 들어오던 관객도 걸음을 멈추기 일 수였고, 들어와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방을 비워두고 차 안에서 졸거나 바닷가를 거니는 등 쓸데없는데 시간을 보낸 것이다.

호텔에 컴퓨터가 있는 줄 알고 노트북을 챙겨오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포트폴리오 특별전 참여 작가로는 김남진, 김문호, 김형섭, 문제남, 석재현, 안성용, 양재문, 유용예, 이수철, 이재갑, 이한구, 조성기씨 등의

알려 진 작가 외에도 강레아, 권순종, 김덕수, 김동진, 크리스탈, 나호권, 노영이, 박종효, 서경애, 손진국, 신병문, 오상칠, 유소피아, 이두순,

이인식, 이우노, 최흥태, 하정은씨 등 40여명의 프로와 아마추어를 망라한 다양한 사진가들이 참여하였다. 그 외에도 ‘눈빛’출판사를 비롯하여

서울의 ‘갤러리 브레송’, ‘인덱스 갤러리’, ‘나우 갤러리’가 참여했고, 부산에서는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를 비롯한 ‘리빈 갤러리’ 관계자도 참여했다. 



 


참여 작가인 김문호씨의 ‘온 더 로드’나 양재문씨의 ‘비천몽’ 등 기존에 발표된 포트폴리오는 더 이상 언급 할 필요도 없지만,

현대인들의 고독감을 다룬 문제남씨의 'Untitled', 자연 이미지를 압축시켜 보는 이의 심연을 건드리는 박종효씨의 '소소한 풀잎이야기‘

시내버스 안의 일상적 단편을 날카롭게 잡아낸 김동진씨의 포트폴리오가 눈에 띄었다.

리고 사회적 시대성이나 역사성이 내포된 다큐멘터리사진보다, 아름다운 그림 같이 미를 추구하는 사진이 많아 아쉬운 감도 있었다.





‘제1회 사진의 섬 송도’ 포토폴리오전시는 무엇보다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싶다.

첫 호텔 사진 페어라는 점을 잘 활용하였고, 신인들과 기성작가들을 연결시키는 의미 있는 행사였다. 



 


그러나 서둘러 시작된 행사라 문제점도 여럿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로 홍보가 부족하여 타지의 사진가들이 잘 몰랐다는 점이다.

둘째는 참여 작가들과 주최측간의 행사 진행에 대한 충분한 교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작가가 그 방에 알맞은 디스프레이를 할 수 있도록,

개인에게 배치될 방의 구조를 사전에 알려주었어야 했다. 나 역시 전시 할 사진을 준비하라는 연락은 받았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몰랐다.

지난 번 전시에 걸었던 사진들과 미발표 작이 대부분인 ‘장터 사람들’ 포트폴리오를 챙겨 갔으나, 디피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처음 생각처럼 포트폴리오만 책상위에 내 놓았으면 될 걸, 관람객들이 뒤적거려 사진이 망가질 것을 우려하여

이 것 저 것 오래된 사진들을 펼쳐 놓은 것이다. 옛 속담처럼 약은 고양이 밤눈 어둡다는 말이 딱 맞았다.






그리고, 앞으로는 많은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한 곳에 모아두고 볼 수 있는 별도의 큰 방도 하나 쯤 있었으면 한다.

가난한 사진가들의 참가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참관자들도 효율적으로 살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포트폴리오 전시는 방에 사진을 주렁주렁 걸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번 포트폴리오전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은 것은,. 가난한 사진인 들이 무리하게 많은 돈 들여 개인전을 여는 것보다

포토폴리오전으로 데뷔할 수 있는 풍토 조성과 그 통로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이다.





전시된 객실에는 침대에도 사진이 진열되었고, 소나무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틀을 비롯해 심지어는 화장실에도 사진이 걸렸다.

창문을 통해 보여주는 바깥 풍경과의 대비 또한 흥미로웠으나, 일부 객실은 조명이 너무 어두워 사진이 잘 보이지 않는 문제점도 남겼다.

사진을 살피다 그만 보조조명으로 설치한 스탠드를 걷어차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는데, 조도를 좀 높일 수 있는 방법도 강구했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인 29일 오후3시부터 호텔 1층 로비에서 열린 사진경매에는 출품작 30여점이 경매에 붙여졌다.

저렴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사고파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좀처럼 사겠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경매 진행자가 좋은 작품들을 싸게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러 차례 외쳐댔지만, 사진 보는 안목이 부족한지,

나서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10만원에서 50만원 사이의 비교적 싼 가격에 낙찰되긴 했지만, 그 중 12점이 판매되는 성과도 있었다.


나 역시 경매에 한 점이라도 내놓으라고 종용받았지만, 사람사진을 쉽게 살 사람도 없겠지만, 자칫 아는 분들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어 사양했다.
또한 살만한 사진의 대부분이 에디션 넘버를 다섯 장으로 한정해 놓았기에 추가 프린트가 불가능한 사진이 많았다.

그리고 전지 규격의 사진 한 장에 3백만원에 팔았는데, 경매로 싼 가격에 판다면 먼저 구입한 분들에게 도리가 아닌 것이다.






아무튼, 포항에서 처음으로 열린 ‘사진의 섬, 송도’ 포트폴리오 전시가 우리나라 포트폴리오 전시의 주축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전국에 흩어진 신진작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신인발굴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길 바라며,

주최 측과 참여사진가들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사진, 글 / 조문호































































































































오랫동안 좁은 공간에서 꼼짝 않고 앉아 놀았더니 허리에 문제가 생겨 생각지도 않은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지난 10일 오후6시에는 숭례문에서 이광수교수를 비롯한 몇 분들과 술 한 잔하기로 몇 일전부터 약속해 두었는데,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못가 걱정스럽기 그지없었다.

많은 분들에게 걱정 끼쳐 송구스럽지만, 정영신씨가 날 감금시켰다고 페북에 올려, 술자리가 병원부근으로 변경되었단다.

덕분에 반가운 분들과 마음껏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더니, 아픈 허리 통증까지 사라져버렸다.

 

이 날은 오후2시 무렵부터 병문안이 이어졌다. 물리치료를 받는 중에 인사동 유목민주인장 전활철씨가 찾아왔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페북하는 혜영씨에게 들었다고 했다. 장사 준비할 시간에 찾아주어 송구스러웠지만 어쩌랴!

민폐이긴 하지만 정 나눌 수 있는 자리라 고맙고 또 고마웠다.

가고나니 사진가 김수길씨와 하형우씨가 차례대로 찾아주어, 오랜만에 얼굴 보며 희희낙락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반가운 분을 만났으면 사진을 찍어야하는데, 환경이 변하니 찍는 걸 잠깐 잊어버린 것이.

하형우씨와 인근 공원에 가서야 생각나 카메라를 끄집어냈다.





 

오후6시 무렵에는 반가운 분들이 때 거리로 몰려왔다.

부산의 이광수교수를 비롯하여 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 ‘갤러리 브레송김남진 관장, 사진가 김문호, 강제욱씨 등인데,

반갑고 미안한 마음에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병원 부근의 먹거리를 꽤고 있는 정영신씨의 안내로 오리장터로 들어갔다.

허리가 불편하니 오리걸음으로 나와도 재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술자리 대화는 이광수씨와 이규상씨가 만나면 죽인. 요즘은 이규상씨가 좀 자제하는 편이지만, 코메디 수준이다.

세상에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이 들어 점잖게 살아야 한다지만, 죽고 나면 자연스럽게 점잖아지니 재미있게 사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다.

이 날은 이광수교수의 구라로 시종일관 희희낙락했다. 폐북에 올라오는 글도 그렇지만, 일상적인 대화도 마찬가지다.

학자로서의 빈틈없는 논리를 바탕으로 시정잡배들이나 즐겨 쓰는 막말에 속이 다 후련하다.



 


그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싸움꾼이다,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악바리다,

이미 SNS를 휘저어 그 영향력은 왠 만한 언론 빰 칠 정도다. 그동안 실검 1위에 오른 건만 몇 차례나 된다,

대표적인 것이 고 최민식 선생의 사진상 문재 제기, 더불어 민주당의 사표 론에 따른 문재인 저주론 등을 펼쳤는데,

끈질긴 공격 끝에 결국 다 손들게 했다. 그래서 정의를 향한 혁명가 기질의 이광수씨를 존경하는 것이다.

난, 부산외대 교수라 부르지 않고, 교주님으로 따른다.


그런 분이 멀리 서울까지 병문안을 와 주셨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환자복 입은 체 졸라 빨아버렸다.

교주님의 그침 없이 쏟아내는 구라에 얼마나 웃었던지, 술을 마셔도 취하지를 않더라.

이차로 '새벽'이한 맥주집에 가서는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되는 새마을 주제가도 불러버렸다.



 


그런데 사진가 강제욱씨가 이광수교수의 광주대동고등학교 후배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정도면 대동고등학교도 명문이다,

서당 훈장 같은 김문호씨의 덕담이나 광대같은 이규상씨의 유모어가 뒤섞여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런 와중에도 의미 있는 일 하나 하기로 합의했다,

이광수씨의 제안으로 사진단체들이 뒷짐 지고 있는 사진가들의 권익을 찾기 위한 모임을 결성하기로 한 것이다,

일단 단체결성에 앞서 사진저작권문제의 구심점을 이규상씨가 운영하는 '눈밫출판사에 두기로 했다.

사진저작권에 대한 문제가 있다면 서로 협력해 대처하기로 했다. 사진가의 권익은 사진가가 지켜야 하니 많은 분들의 동참을 바란다.

 

역시 교주님이 나타나면 술만 마시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일도 만든다.

사진가들이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런데 뱉고보니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네...

 

사진, / 조문호






































 

 

 

 

 






지난 22일 오후3시, 강남 ‘스페이스22’에서 사진가 엄상빈씨와 함께하는 ‘또 하나의 경계’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작가 엄상빈씨의 작품 이야기뿐만 아니라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와 사진가 이재갑씨의 감상평도 들었다.


‘스페이스 22’의 정진호, 오윤택, 이은숙씨를 비롯하여 김보섭, 안미숙, 정영신, 곽명우, 남 준씨 등

40여명의 사진가들이 모여 작가의 사진세계를 돌아보며, 그 뒷이야기 듣는 보람된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참가자들의 질문과 답변 듣느라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버렸다.

광화문으로 달려갔으나, 노동악법철폐를 위한 예술인대회‘가 끝났지만 어쩌겠는가?

좋은 사진전 이해한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이 전시는 5월2일까지 이어지고, ‘눈빛출판사’에서 ‘또 하나의 경계’ 사진집도 출판되었다.

사진, 글 / 조문호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에 나가는 게 습관이 되어 토요일만 되면 엉덩이가 들썩인다.

지난 토요일은 집회가 없었지만 나갈 채비를 했는데, 마침 ’눈빛출판사‘의 이규상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류가헌‘ 전시장에서 만나 점심식사나 같이 하자는 것이다.

사실 ’류가헌‘이 옮긴지가 제법 되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더구나 나도 출품한 ’촛불의 구술사‘전이 열리고 있지 않은가.

첫 날 일이 있어 못 들리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것이다.

길눈이 어두워 물어물어 찾아 갔는데, 가보니 촛불집회 때마다 들락거린 청와대 가는 청운동이었다.

전시장에는 황규태선생을 비롯하여 이규상, 이규철씨가 나와 계셨고, 뒤이어 석재현, 박진영, 하지권씨도 만났다.

다들 반가웠으나 황규태선생을 뵈니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몇 일전까지 ‘류가헌’에서 열었던 황선생님 개인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사치레가 아니라 좋은 전시를 못 본 건 내 손해인데, 스스로의 게으름을 자책해야 했다.






2관에서는 강제훈씨를 비롯한 13명의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이 찍은 ’촛불의 구술사‘전이 열리고 있었고,

1관에서는 사진가 이규철씨가 컬렉션한 ‘我 之 我’전이 열리고 있었다.

매년 한 장씩 20년 동안 모은 작품 20점을 전시하고 있었다.

가난한 사진가가 매년 사진작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사진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품이기에 허턴 작품은 있을 수가 없었다.

이미 잘 알려진 작품도 있었는데, 사진보는 안목이 덜한 분은 믿고 살만한 작품들이었다.

전시된 작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작가와 연결시켜 주는데, 부담 없는 가격이라 제법 팔렸다고 한다.

또한 사진집을 구입한 분께는 작품사진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열고 있었다.

사진 컬렉션에 다시 한 번 관심 갖게 하는 좋은 사진나눔운동이었다.






이규상, 황규태 선생과 전시장 옆에 있는 떡 만두국 집에서 식사를 하고 ‘광화문광장’까지 걸어왔는데,

경복궁 앞길에는 유난히 한복 입은 아가씨들이 많았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은 여느 때와 달리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이순신동상 부근에는 ‘사회를 위한 대학생공동행동’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누가 뒤에서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인사동터줏대감 강 민시인과 방동규선생이 계셨고 옆에는 미모의 소설가 김단하씨의 모습도 보였다.

술 한 잔 하자는 강 민선생의 말씀에 간재미집으로 안내했다.

방배추선생의 구수한 옛 이야기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방동규선생 사모님께서 광장에 기다린다는 전갈이 받고야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화문광장에서는 ‘사드저지 및 세월호 진상규명, 적폐청산의 날‘이란 퇴진행동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사진가 고 헌씨의 모습도 보였고, 무대에는 장순향교수가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문제는 눈앞에 닥친 대선에서 이러한 난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는 분은 이재명, 심상정 후보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드철회는 물론 모든 진상규명과 적폐가 청산될 때까지 촛불을 꺼서는 안 된다.

토요일마다 ‘광화문광장’을 문화예술난장으로 만들어 촛불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전진기지로 만들자.


사진, 글 / 조문호













































김준호의 ‘애오개’ 사진전이 지난 17일부터 26일까지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다.

전시된 사진들은 마치 전쟁터에서나 볼 수 있는 잔해더미 같았다.

집들은 폭격 맡은 것처럼 산산히 부서져 버렸고, 유령처럼 아슬아슬하게 버틴 것도 있었다.

멀리 버티고 있는 아파트 숲은 마치 점령군 무리처럼 보였다.






이미 전쟁의 판세는 정해졌으며, 앞으로도 백전백패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문명의 속성을 어쩌겠는가마는,

최소한 흔적마저 지워버리는 무차별적이라는데,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았다.






무엇이든 옛 것을 허물고 새로 만들기는 쉽지만, 옛 것을 보전하고 그 것을 다시 기억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기억하고 보존할 역사가 없거나 지워버리는 국가는 미래 역시 오래가지 않는 법이라 했다.






김준호가 찍은 ‘애오개’사진은 속삭임이 아니라 아우성에 가까웠다.

대개 사진가들이 즐겨찾는 그리움에 대한 향수보다 사회비판적인 시각이 앞서 있었다.

세월의 변화를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분노가 곳곳에 똬리 틀고 있었다.

지금 애오개는 재개발에 의해 모든 것이 사라졌다.

김준호의 사진 속에서만 잔재가 남아 그렇게 사라졌음을 말해주고 있다.






‘애오개’는 아현동과 만리재 사이에 있는 작은 고개로, 서울의 대표적인 서민 지역이었다.
아기고개에서 유래되었다는 애오개 일대는 마포에서 청량리를 잇던 전철이 지나가던 지역이었다.

자그마한 집들이 모여있는 고개 마루의 달동내로 서민들의 진득한 삶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옛 것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향상을 내세우는 재개발은 동전의 앞뒤 같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사라진 후에는 항상 그리워하기 마련이지만, 돈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몇몇은 철거되기 이전의 모습도 남아 있었다.

빗물이 새지 않도록 천막을 뒤덮어 놓은 지붕, 행여 바람에 날아갈까 돌이나 기왓장을 올려놓은 궁상맞은 풍경들,

가파른 골목 계단과  터져 나온 시멘트벽들이 마치 복잡한 우리네 인생처럼 굽이져 있었다.

그 속에서 일어났던 사연 또한 얼마나 많겠는가?

그 곳에 살았던 사람이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사연들이 다 있을 것이다.

옆집 순이와 연애 걸며 가슴조린 사연에서 친구와 코가 깨지도록 싸웠던 이야기까지 다들 절절할 것이다.





잘 모르는 재개발지역을 촬영하는 것과 자신이 어릴 적 살아 온 마을의 흔적을 찍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래서 김준호의 비판적 시각 속에 보이지 않는 그리움이 차곡차곡 녹아 있는 것이다.


“그리움은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고, 서러움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다”는 싯귀가 떠오르는 그런 쓸쓸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사라지는 사물처럼, 사람 또한 차례차례 사라질 것이다.





“이미지는 자신이 의미하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언어가 그것이 의미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미지는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에게 낯설게 남아 있어야 한다.

매체로서 비춰지지 말아야하고, 하나의 이미지로 이해되지 말아야 한다.

그 자체가 하나의 허구로, 우화로 남아야 하고, 그럼으로써 사건이라는 풀리지 않는 허구에 공명해야 한다,

자기 고유의 덫에 잡히지 말아야 하고, 이미지의 이미지의 이미지로 한 없이 이어지는 이미지재생 속에 갇히지도 말아야 한다.”는

장 보드리야르의 ‘사라짐에 대하여’ 한 단락을 여기 옮겨본다.



전시와 함께 ‘눈밫사진가선’ 38호 ‘애오개’ 김준호사진집(12,000원)도 발간되었다.



전시개막식에서는 주인공 김준호씨를 비롯하여 ‘브레송’ 김남진관장, ‘눈빛출판사’의 이규상대표,

엄상빈, 김문호, 곽윤섭, 정영신, 남 준, 김 원, 제이안, 나떠구씨 등 여러 사진가들도 만날 수 있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스크랩] 서울문화투데이 2016년 9월26일

▲조문호 사진가

부정심사 의혹 매듭짓기 위한 토론회 열렸으나 사진인들 분노만 사

일 년 넘게 끌어 온 최민식사진상 부정심사 의혹 문제를 매듭 짓기 위한 “최민식사진상을 말하다”라는 토론회가 열렸으나, 매듭은커녕 사진인들의 분노만 샀다.

다큐사진가 석재현씨의 사회아래, 이상일 당시 운영위원장과 정주하 심사위원장, 그리고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싸워 온 이광수 사진비평가와 ‘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가 패널로 자리했다.

그런데 수상작에 반대의견을 낸 송수정씨는 물론 다른 심사위원들은 왜 부르지 않았을까? 특히 심사위원이었던 이갑철씨는 1회 수상자로서 2회 수상자 최광호씨와 아주 가까운 사이다. 그 심사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불러내어 의혹을 푸는 것이 당연하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제2회 최민식사진상을 최광호씨에게 주기 위해 운영위원장인 이상일씨가 공모요강까지 변칙적으로 바꾸어가며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것이 드러났다. 공모요강에서 인본주의와 사회정의를 추구한 '최민식선생의 사진철학을 지향한다는 공모 목표를 삭제했고 '미발표작'으로 제한한 규정도 삭제했다. 이 두 가지를 삭제하고도 아무런 공지도 하지 않았다.

최광호씨 사진은 기 발표작인데다, 최민식선생의 사진철학과는 전혀 동 떨어졌으니, 어찌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하지 않겠는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볼 수 없는 최광호씨의 ‘천제’라는 출품작에 대한 평가는 잘 알려진 사실처럼, 내세울 만한 사진이 아니다. 심지어 ‘천제’라는 출품작 제목의 한자까지 틀려 ‘천제’에 대한 정확한 뜻도 모른다는 의혹까지 샀다. 이처럼 문제투성이 작품을 밀어 붙인 것이 부정심사가 아니고 도대체 무어라 말인가?

당시 운영위원장인 이상일씨는 최민식상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최민식 사진 철학이나 심사 기준보다 명망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옳다고 했다. 작품보다 출품자의 유명세가 권위를 세워준다는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논리가 어디 있나? 그래서 가난한 친구인 최광호씨를 지지했다는 이상일씨 발언 자체가 부정심사임을 스스로 밝힌 처사다. 그리고 이상일씨 스스로 독주한 사실들을 자랑처럼 늘어놓았다. 반성이나 사죄의 기색은커녕, 야유 섞인 웃음만 흘렸다.

여러 사람들이 사과를 권했으나, 끝까지 변명과 자기자랑만 하다 사과 한 마디 없이 끝냈다.

이것은 출품자는 물론 우리나라 전체 사진인을 능멸한 처사다. 오죽하면 이 사진상의 문제를 제기한 이광수교수가 사진인들에게 대신 사과했을까?

사실, ‘팔이 안으로 굽 는다’는 말처럼 이왕이면 가까운 사람에게 상을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 문제에서는 대부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공모전이나 각종 시상의 운영시스템 자체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왔다.

훌륭한 원로나 중진에겐 돈보다 명예를, 열심히 현장에 매달리는 가난한 작가에게는 조그만 지원금이라도 나누어 주는 실질적인 사진상이 필요한 것이다. 제도적 개선이 더 시급했던 사진상이라, 이 문제의 핵심인 이상일씨의 사과로 화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했으나, 예상은 한참 빗나갔다.

먼저, 우리나라 사진판에 끼리끼리 나누어 먹는 관행은 원로사진가들이 먼저 만들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비리들도 선생들께서 만들어 놓은 구태를 직계 제자들이 이어받아, 돌려 먹은 것이다. 이런 일이 터졌으면 진작에 제자들을 불러 타이르거나 이런 공론의 자리라도 나오시어 발전적으로 이끌 수 있는 충언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데,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하기야, 무슨 면목으로 나서겠냐마는, 그래도 나서야 했다. 대선배로서 사진계 발전에 앞서, 사회정의를 위해...

이제 시상주체였던 ‘협성문화재단’도 ‘얼씨구나’하며 '최민식사진상' 폐지로 막을 내렸으니, 저승에 계신 최민식 선생을 만나 뵐 면목조차 없다.







지난 21일의 일이다.

전통시장에 문화의 옷을 입히는 하재은씨와 ‘눈빛출판사’ 이규상씨를 인사동에서 만났던 일을 깜빡 잊어버렸다.

요즘 정신이 빠져서인지,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진파일을 들여다보니 정리하지 않은 사진들이 너무 많았다.

이까짓 사진들을 정리하면 뭐하고, 블로그에 올리면 뭐하냐는 생각도 들지만,

일기처럼 찍어 온 사진들을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미국, 캐나다 등 세계 10대 글로벌명품시장을 연구 분석하여 사진집을 만들고,

전시회를 열려는 하재은씨의 부탁으로 이규상씨와 만찬의 시간을 마련했던 것이다.

각종 전시들이 시작되는 수요일의 인사동은 관람객들로 전시장마다 붐볐다.
아내와 함께 약속장소인 ‘귀천’에 갔더니, 탐스러운 국화꽃이 반겨주었다.
‘귀천’은 천상병선생의 사모님이신 목순옥여사께서 좋아한 꽃들이 가득했다,

이젠 조카가 이어받아 꽃밭을 만들어 놓았는데, 꽃을 보니 돌아가신 목여사가 그리워졌다.

모과차로 추억을 달래고, ‘부산식당’으로 옮겨 생태찌개를 안주로 술 한 잔했다.
하재은씨가 이번에 다녀 온 맨하탄의 파머스마켓, 캐나다 토론토의 쎄인트로렌스 마켓 등

선진시장의 모범사례들을 귀동냥하며 오붓한 만찬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하재은씨는 사진가이기 전에 시장경영을 연구하는 박사로 신한경영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전통시장 특성화 육성사업에 많은 사업 실적을 가지고 있다.

세계10대 글로벌 명품시장을 대상으로 연구 촬영한 사진으로

올 11월 초순경 전시회와 사진집을 출판한다니, 기대하는바가 크다.


돌아오는 길에 ‘유목민’에 잠시 들렸더니, 임경일씨가 반겨주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루하게 끌어 온 제2회 최민식사진상 부정심사 의혹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자리가 ‘온빛사진가회’의 주선으로 지난 22일 오후4시부터 충무로에 있는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렸다.

다큐멘터리사진가 석재현씨의 사회아래, 이 문제의 핵심이었던 이상일 당시 운영위원장과 정주하 심사위원장, 그리고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이광수 사진비평가와 ‘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가 패널로 자리했다,

그런데 안성용씨 작품을 지지한 송수정씨는 물론 다른 심사위원들은 왜 부르지 않았을까? 그들은 이 문제에서 아무런 관계가 없단 말인가? 특히 심사위원 이갑철씨는 1회 수상자로서 최광호씨와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그 심사에 관련되었던 전원을 불러내 의혹을 푸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다 알고 있는 내용의 질의나 변명으로 일관된 토론보다 방청석에 앉은 사진인들의 질의 듣는 시간을 더 많이 할애했어야 했다

인본주의와 사회정의를 추구한 최민식선생의 사진철학을 지향한다는 1회 때의 공모 목적도 슬그머니 사라졌고, 미 발표작으로 한정된 공모요강이 한마디 언급도 없이 기 발표작도 가능하다는 등, 엿쟁이 마음대로 방향을 바꾸었다. 최광호씨의 출품작이 발표작인데다, 최민식선생의 사진철학과는 전혀 동 떨어진 작품이었으니, 어찌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하지 않겠는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볼 수 없는 최광호씨의 ‘천제’라는 출품작에 대한 평가는 이미 박진호씨가 세세하게 밝힌 내용처럼, 일고의 가치 없는 사진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천제’라는 출품작 제목의 한자까지 틀려 ‘천제’에 대한 정확한 뜻도 모른다는 의혹까지 샀다. 그 외에도 의혹을 살만한 일이 한 둘이 아닌데, 이처럼 문제투성이 작품을 밀어 붙인 것이 부정심사가 아니고 도대체 무어라 말인가?

사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이왕이면 가까운 사람에게 상을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라 그 문제에서는 대부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공모전이나 각종 시상의 운영시스템 자체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왔다. 훌륭한 원로나 중진에겐 돈보다 명예를, 열심히 현장에 매달리는 가난한 사진가에게는 조그만 지원금이라도 나누어 주는 실질적인 사진상이 필요한 것이다. 제도적 개선이 더 시급했던 사진상 문제였기에, 이 문제의 핵심인 이상일씨의 사과 한마디로 사진계의 화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했으나, 예상은 한참 빗나갔다.

“최민식사진상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는 유명 사진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가난한 친구인 최광호씨를 지지했다”는 이상일씨 발언 자체가 부정심사임을 스스로 밝힌 꼴이다. 그리고 이상일씨의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자신이 이 상의 주체로서 마음대로 주물렀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나 반성이나 사죄의 기색은커녕, 야유 썩힌 웃음만 흘리고 있었다.

토론의 장을 지켜보던 온빛사진가회 조대연회장과 ‘스페이스22’의 정진호 대표께서 사과를 유도하는 발언을 하였으나, 그는 변명과 자기자랑에만 치중하다 끝까지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끝냈다. 이 건 우리나라 전체 사진인 들을 능멸한 처사다. 오죽하면 토론자로 나선 이광수교수가 사진인들에게 대신 사과했을까?

“아! 이 사람 정말 구제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아마추어 단체인 ‘사협’에서 일어 난 문제라면 신경 쓸 일고의 가치조차 없다. 배울 만큼 배웠고, 옳고 그럼을 훤히 아는 자가 저지른 일이라 더 화가 난 것이다. 안타깝지만, 더 이상 토론할 대상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매장시켜, 그 뿌리 자체를 뽑아야한다는 판단을 했다.


먼저, 우리나라 사진판에 끼리끼리 나누어 먹는 관행은 원로사진가들이 먼저 만들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비리들도 선생들께서 만들어 놓은 구태를 직계 제자들이 이어받아, 돌려 먹은 것이다. 이런 일이 터졌으면 진작에 제자들을 불러 타이르거나 이런 공론의 자리라도 나오시어 발전적으로 이끌 수 있는 충언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데,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하기야, 무슨 면목으로 나서겠냐마는, 그래도 나서야 했다. 노학자로서 사진계 발전에 앞서, 사회정의를 위해...


공론의 장에 참석한 사진가로는 엄상빈, 박진호, 정진호, 김문호, 김남진, 성남훈, 신동필, 강제욱, 이상엽, 조대연, 이기명, 천수림, 박이찬, 이규철, 박영규, 김주혁, 서준영, 윤정원, 황서진, 남 준, 곽명우, 이은숙, 이혜숙, 강홍구, 이세연씨 등 60여명이 좁은 토론장을 가득 메웠다.


공론의 자리가 파한 뒤에는 모두들 술집에 모여앉아 독주로 분노를 다독여야 했다. 그 파편이 튀어 우리 마누라의 가슴에 박혔다.

이제 내 갈 곳은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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