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뀔 때마다 원로사진가 한정식선생께서 마련하는 신년 오찬회가 인사동에서 열린다.

십년이 넘었건만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데다, 매번 밥 값을 한정식선생님이 낸다는 것이 송구스럽다.






매년 1월에 치루어졌으나, 올 해는 한정식선생 사모님께서 위급한 상황이 생겨 어렵사리 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난 년 말, 폐렴으로 입원하신 사모님께서 이틀 만에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진단이 나왔다는 것이다.

의사인 며느리의 응급대처로 삼성병원 중환자실로 옮겼는데, 숨을 거둔 분을 기적적으로 살려 놓았다는 것이다.

최고의 의술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는 사람도 알아보고, 말도 알아들어, 한 숨 돌렸기에 자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옛 말이 생각난다.





지난 2일 정오무렵, 인사동 ‘수연’에서 가진 모임에는 한정식선생을 비롯하여 김생수, 이규상, 엄상빈, 김보섭, 이재준,

최경자, 정영신씨 등 아홉 분이 함께했다. 그 날 전민조씨는 집안에 응급환자가 생겨 모임을 잊어버렸다고 했다.





김기찬선생의 미망인이신 최경자씨는 요즘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아 바쁘다며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그 날의 화제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옛날이야기가 많았다.
주로 정식과 생수 두 분께서 배고팠던 시절의 말씀을 하셨는데, 이름자로 보면 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다.






휴지가 귀한 시절이라 신문지를 잘라 화장실에 걸어 둘 땐데, 한 번은 화장실에 갔더니 이태준선생 소설책이 달려 있었다고 한다.

책도 마음대로 사 볼 수 없는 시절이라 가져가서 감명 깊게 읽었다며, 화장실습득 1호로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하셨다.






디지털카메라 기능에 대해 해박하신 김생수씨는 최경자씨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었는데,

단종된 NIKON Coolpix P310카메라를 구할 수 없냐고 여쭈어 보았다.

지난 년 말, 노숙하는 이종민씨와 술 마시다 도둑맞은 카메라인데, 기능도 뛰어 나지만 손에 익은 카메라였다.

컴펙트카메라가 없으니 사진을 못 찍을 경우가 종종 생겨 여러 번 카메라점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가져가 팔 수도 없는 고물카메라이기도 했지만, 중고를 사도 몇 만원에 불과할 것이라고 아쉬워했더니,

엄상빈씨가 인터넷 중고시장에 알아보면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뜸, 최경자씨가 오만원을 내 놓으며 좀 구해주라고 부탁하는 통해, 엄상빈씨가 짐을 떠안게 된 것이다.






염치없지만, 그 카메라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뒤늦게 알아보니 중고가격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카메라점을 잘 아는 후배 사진가 마동욱씨 에게 한 번 알아보라고 부탁한 모양인데,

오찬 자리에도 없었던 마동욱씨 까지 카메라 구하는 일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결국은 마동욱씨가 십만원, 엄상빈씨가 오만원, 정영신씨가 오만원을 보태어, 25만원에 그 카메라를 구해 준 것이다.





아무튼 한정식선생의 신년오찬회 덕에 반가운 분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도 가졌지만,

한 달동안 고민하던 숙제가 해결된 고마운 자리였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 카메라로 사진이나 많이 찍어드렸으면 좋을텐데,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좋은 사진 찍을 때마다 도움주신 분들의 고마운 마음을 세길 작정이다,






오찬회가 끝난 후, 엄상빈, 이규상, 김보섭, 이재준씨와 함께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김용문 도판화전에 들려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도 가졌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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