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반가운 연락이 왔다.
고향친구인 박영국씨와 청춘시절을 함께 보낸 창원의 김의권씨가 상경했단다.
약속 장소인 낙원동 ‘먹고 갈래 지고갈래’로 가보니, 무슨 술집이 낮 시간인데도, 북적거렸다.
대부분 노인 손님들이었는데, 노인들은 '새나라의 어린이'라 일찍 놀고 일찍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대낮부터 노래방에 가잖다.
귀가 막혔으나,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젊은 시절 사진에 미쳐 다 털어먹고 오 갈 때 없을 때, 친구 박영국씨가 운영하는

수도관 설비업체 일을 잠시 도운 적이 있었다.

인부들 관리하는 역할이었지만, 내가 더 열심히 해야 그들도 따라하는 것이었다.

요즘이야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지만, 그 당시는 곡갱이로 땅을 파야했다.

삼 개월 정도 일하다 그만 두었지만, 생전 처음 노동의 힘겨움을 맛 본 시절이었다.

그렇게 도움을 준 친구였지만, 오랜 세월 서로의 길을 걷다보니, 삶의 방식이 달랐다.

‘유목민’에서 김의권씨가 기다리고 있어, 먼저 일어나야 했다.

‘유목민’에 들렸더니 김의권씨 만나러 ‘디자인클럽’을 운영하는 최영문씨도 와 있었다.

이 친구도 수 십 년 만에 만났는데, 길에서 만나면 모르고 지나칠 만큼 변해버렸다.

흐르는 세월에 바뀌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

그 곳에서 공윤희, 김명성, 오세필, 장경호씨도  만날 수 있었다.

술 마시다 한 사람 두 사람 사라져  장경호씨와 ‘무다헌’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술이 취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 결국 자정을 넘겨버렸다.
장경호씨가 차 잡아 준다며 따라 나와 택시비까지 챙겨 주었으나,

나 보다 갈 길이 더 먼 그는 어쩔지 걱정되었다.

남들처럼 적당히 마시고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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