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사는 재미중의 하나가 군불 지피는 것이다.

여름철에도 밤이 되면 쌀쌀해지는 산 중이라 군불을 지펴놓고

방문을 열어 놓은 채 잠자리에 들곤 한다.

따뜻한 온돌에 닿는 등짝의 온기와 찬바람을 받은 얼굴의 한기가 이루는

묘한 쾌감으로 일 하느라 지친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간밤에는 보름가까이 집을 비운 탓에 방이 눅눅해 불을 좀 많이 지폈다.

그러고는 평소처럼 아궁이 주변의 불 단속을 하고 잠들었는데,

새벽녘에 타닥거리는 소리가 난다며 아내가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눈을 떠보니 방 문짝에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깜짝 놀라 불길은 잡았으나 조금만 늦었으면 통닭구이 신세 될 뻔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20년 가까이 군불을 지피고 살았으나 철저한 불 단속으로 한 번도 화재를

일으킨 적도 없거니와, 불이 날려면 불씨가 옮겨 붙을 수 있는 저녁이어야 하는데

이미 불이 사거라든 새벽 무렵이었다는 점이다.

만약 서생원이 불씨를 후벼 내어 신발까지 옮겼다면 가능하겠지만...

 

차라리 불이 날려면 아궁이 옆에 쌓인 갈비더미가 훨씬 가깝고 인화력도 강하다.

어떻게 축대 위에 놓인 고무신에 불이 붙어 문짝으로 옮겨 붙었는지 모르겠다.

문짝 수리할 일도 걱정이었지만,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에 머리가 더 아팠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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