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작 〈별이 빛나는 밤〉 1889년작. 캔버스에 유채.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1941년에 릴리 블리스에 의해 유증되었다. 미술관 상당수의 유명작품들이 기증으로 소장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정형민 전 관장이 지난해 10월 직원 부당 채용 혐의로 직위 해제된 뒤 10개월째 관장 공석 상태다. 연초부터 진행한 새 관장 선임 절차가 지난 6월 ‘적격자 없음’으로 무산되면서 최종 후보와 인사권자인 문화체육관광부 사이에 원색적인 비난전이 벌어지는 등 논란이 일었다. 무엇이 문제이고 해결방안은 없는가. 최병식 경희대 교수가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라는 타이틀로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공공미술관의 개선안을 긴급 진단하는 글을 싣는다.


미술관의 역사는 기부와 함께 시작되었다

세기의 미녀스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2011년 3월 79세로 세상을 떠나자 그가 남긴 약 6726억원 2만 달러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다음날 새벽 런던의 한 미술관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고, 유산 중 일부라도 기부를 받기위한 다양한 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른 예이지만 서울 인사동의 갤러리 대표 한 분이 워싱턴 스미스소니언과의 인연으로 기부금을 냈더니 하원의장이 나와서 정중히 악수를 하고 예우를 갖추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였다.



*기부에 운명을 걸다

‘미술관의 역사는 기부와 함께 시작되었다’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설립부터 유수한 미술관들이 기증과 기부로 시작된 것은 대부분이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금 분명한 것은 운영의 승부 역시 키는 ‘기부’에 달려있다. ‘기부의 생활화’를 주창하는 외국 미술관들의 현장은 뮤지엄을 가본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별 희한한 아이디어를 동원한 기부함들이 코너마다 설치되었으며, 3달러나 파운드 정도의 작은 액수를 유도하여 관람객의 도움을 청한다. 기부함 디자인도 다양하여 동전을 집어넣으면 음악소리가 나거나 다양한 장식물을 거쳐 바닥에 떨어지게 함으로써 흥미를 돋운다. 특히나 ‘문화민주주의’를 내걸고 20여개 국립관이 무료로 개방하는 영국의 경우는 더욱 이러한 소액 기부가 활성화 되어있다.

이러한 소액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작품 기증은 재산기증과 함께 미술관 수입의 가장 많은 액수를 차지한다. 전 세계 유명 미술관의 명품 소장품 중 약 반 이상이 기증품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르세미술관 소장 밀레의 〈만종〉도 그렇지만, 반 고흐만 해도 애넌버그 파운데이션이 메트로폴리탄에 기증한 〈삼나무가 있는 밀밭〉, 릴리 블리스의 유증으로 모마에 기증된 〈별이 빛나는 밤〉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작들이 즐비하다.

기증, 기부자들에 대한 예우 또한 소홀하지 않다. 한 계단 오를 때 마다 기부자의 이름을 볼 수 있도록 명패를 부착한 워싱턴의 국립여성미술관도 그렇지만, 전시장마다 기부자의 이름을 새기고, LA카운티미술관처럼 건물 입구에 후원자 명단을 비석으로 세운 예도 많다. 고액기부자들은 이사회의 멤버가 되고, 중요한 의사를 결정하는데 의결권을 갖게 되며, 조언과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무엇보다 기부자들은 다른 어떤 일 보다도 미술관에 기부한 것을 가문대대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테이트 모던 옥상 층에는 기부자들만 갈 수 있는 카페가 마련되어 있고, 후원자들은 자신의 생일파티나 기업의 창립기념 파티를 전시장에서 개최할 수 있는 특권을 갖는 예도 많다. 신소장품을 가장 먼저 감상할 수 있으며, 테이트 브리튼의 새클러 옥타곤(Sackler Octagon)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컬렉션 혹은 특별 전시 중 하나를 비공식적인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350명의 리셉션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며, 저녁 식사는 120명까지 가능하다.

이미 선진국의 많은 미술관들은 기부, 기증, 후원에 운명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적극적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기부금에 따라 5개 그룹의 젊은 컬렉터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후원하기 위한 것이다. 매년 회원들의 지원금 중 일부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영구 컬렉션으로 구매한다. 후원회에서는 역시 5단계의 금액차등이 있고 공지내용에 아예 세금공제금액을 명시한다. 예를 들면 힐라 리베이 후원자 그룹은 가입비 5,000 달러에 세금 공제는 4,311 달러를 한다는 식이며 미술관에서 보답하는 혜택은 13가지 정도를 나열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세계적인 미술관이 탄생하는 데는 국가예산이 투입된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상당부분이 기증과 기부로 이루어졌으며, 현재 운영체계도 마찬가지이다. 메트로폴리탄은 2014년도 수입 한화 약 2885억원에서 기부금과 멤버십이 44%인 반면, 뉴욕시의 지원은 10%에 그친다. 스미스소니언 역시 1조 3520억원 규모의 2013년 예산에서 기부가 15.84%를 차지할 정도이다.



*초보적인 기부문화, 한국

한국의 미술관의 현실을 진단해보자. 국립현대미술관은 2015년 예산 약 484억원이 국고로 투입되지만 자립도는 여전히 한자리수이다. 전국의 공립, 대학미술관에서도 기증, 기부자를 위한 프로그램이나 적극적인 노력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뿐만이 아니라 미술 분야의 전문가들조차 전시소식을 받아보는데 매우 제한적이다. 아트숍은 아직도 매력있는 상품을 진열대에 올리는데 초보적인 수준이며, 멤버십은 미약하다. 직원들 중 마케팅이나 기부를 담당하는 전문 인력은 거의 없고 홈페이지에는 아예 기부, 후원에 대한 언급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최근 긍정적인 사례가 몇 가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들어 기증, 기부가 증가하여 현대자동차, 현대카드, SBS문화재단 등에서 총 20여 억원 정도를 후원으로 유도한 실적이다. 그 중 현대차는 2013년부터 120억을 10년간에 걸쳐 후원함으로써 한국 미술관 역사상 가장 큰 대형기부의 사례를 남겼다.

대전의 이응노미술관에서는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소들과 후원협약을 맺고, 매년 1회씩 로비와 야외 공간을 제공하면서 국내외 학회를 개최할 때 파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아트숍 할인 등으로 200만원을 책정하여 받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역시 후원회를 조직하여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기부자의 명단이 없고, 세금혜택을 상세하게 안내하는 자료가 없다.

대부분의 미술관에도 기부함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기부의 대상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시민들이 대부분이며, ‘국립박물관들은 무료인데 왜 유료로 입장해야 되는가?’하고 강하게 항의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현실 자체가 ‘기부문화’에 대한 기대를 갖기에 매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얼마만큼 노력을 하고 준비를 했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더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미술관이 비영리 기구 문화기반시설로서 문화 복지로 이어지는 정신문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기본기능에 대한 적극적 홍보가 요구된다. 고액기부가 어렵다고 한다면 1천원부터 시작하는 소액기부를 통해 인식전환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기부의 대상기관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가장 시급하며, 고액기부자에 대한 지혜로운 예우가 필요하다.

아직 우리나라의 공공미술관 전시실에는 개인의 이름이 명시된 곳이 한 곳도 없다.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전시실이나 건물까지도 개인의 이름을 명시할 필요가 있으며, 후원회 정도가 아니라 이사회를 조직하여 기부자 중 역량 있는 분들을 이사로 초빙하고 과감히 세금혜택을 확대하는 등 전폭적인 예우를 준비해야 한다.



*투명한 공개와 연대감 형성

기증이나 기부의 조건은 무엇보다 대의와 소명을 우선해야만 가능하다. 그만큼 자선의식이 고양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술관의 질적 수준과 진정성은 가장 중요한 요건이지만 여기에 공공성, 투명한 운영체계, 연대감, 신뢰도 역시 핵심적인 전제조건이다. 세계적으로 유수한 미술관들이 왜 1년간의 모든 사업을 정리하여 100페이지가 넘는 ‘연간보고서’를 발행하는지 바로 그 연유가 여기에 있다.

보고서 내용 중에는 연간 예산, 수입과 지출 세부내용, 전시, 교육, 주요 사업 소개와 성과, 관람객 통계, 기증기부자의 모든 명단, 액수, 후원회 종류와 등급별 안내 등을 망라한다. 자신이 마치 미술관의 주주처럼 착각하도록 연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공미술관의 ‘연간보고서’는 찾을 수 없으며, 국립현대미술관에서만 2년이 지난 2013년도 자료가 게재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실정이니 연간 예산과 사업, 전시, 소장품의 내역 등이 베일에 가려지게 되고 정보공개를 통해 신청해야만 어렵게 가능하다. 투명한 정보공개가 제로라면, 기부는 거리가 멀고, 연대감과 신뢰는 없다.



연대감은 세계적인 연예인들의 뮤지엄 기부에서도 잘 나타난다. 2009년에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은 디트로이트의 아주 작은 음악전문 사립 모타운 뮤지엄에 12만5,000달러를 기부하였다. 이 뮤지엄은 스티비 원더를 비롯한 많은 음악인들의 자료를 모아 놓은 곳이다. 최근 네바다 사막의 자연 변화를 담은 거대한 영상설치작품인 존 게라드 작 ‘솔라 리저브’는 환경재단을 직접 운영해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기증에 의하여 LA카운티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었다.

의미를 모를 지드래곤을 주제로 한 서울시립미술관의 ‘피스마이너스원’의 전시가 1만3천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국민일보] 최병식(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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