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고귀하다.

우리는 때로 사회적으로 서로를 나누며 서열과 가치를 매기곤 한다.
사진작가 조문호는 그 서열의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소외된 사람들에 렌즈를 돌린다.
강원도 두메산골 사람들을 찍거나 인사동 풍류객들을 조명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세상을 살핀다.

작가 조문호가 지난 21일 출간한 책 '청량리 588'도 우리 사회의 주류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온 이들의 이야기다.

老작가를 만나다

'청량리 588'은 출간과 함께 지난 25일부터 10일까지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전시가 열렸다.

인터뷰를 위해 전시장에서 만난 조문호 작가는 진한 녹색의 외투와 갈색 모자,
그리고 보라색 스카프를 걸치고 있었다.

길게 삐져나온 머리카락과 입술 위 정리되지 않은 수염이 그의 자유로운 삶을 대변했다.

스스로를 70세에 가까운 노인이라고 지칭했지만 인터뷰 내내 눈을 지그시 마주하고,
가끔은 이야기 중 상념에 빠지거나 이를 드러내고 천진하게 웃는 모습이 어린 소년 같았다.

'청량리 588'은 1984년부터 89년까지 5년간 윤락녀들의 생활을 담은 사진들이다.
인터뷰는 사진을 찍으면서 겪었던 일들과 사진에 대한 생각, 그리고 철학을 담았다.

[ 작가와의 대화는 경어체였으나, 편의상 평어체로 작성되었습니다.]

 

 

80년대 홍등가 '청량리 588'

- 왜 많은 직업군 중 '윤락녀'를 촬영하게 됐는지?

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다른 부분(직업군)은 다른 사진가들이 다 손을 댔다.

그런데 윤락가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자칫하면 이 부분은 묻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 83년도인가 동아미술제에서 사진부분 공모를 발표했다. 그 주제가 '직업인'이었다.

나도 그들을 직업인으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기회에 한 번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주제로 30년 전 전시회를 열었다가 금방 닫고, 올해 다시 전시를 가진 것으로 들었다.

시대상과도 관련이 있는가, 혹은 개인적인 이유인가?

그 전 전시는 사실 실패다.
전시를 하게 된 동기도 그들(윤락녀)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고,

사람대접 받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오프닝 때도 그녀들이 참석하기로 했다. 자축하자고 했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선정적인 보도가 느니까 주눅 들었는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실패라 생각하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처박아뒀다.

중간에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자는 제의가 들어왔는데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다 30년이 지나니까 이것도 우리 사회의 기록이고 자료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 책을 내게 됐다.

그 때 그녀들을 보고 싶기도 하고...

- 30년 전 전시와 지금 전시 분위기가 다른가?

사진 선정부터 달랐다. 그 때는 주로 얼굴위주였다.

이번에는 책을 만들다보니 전체적 그림을 보여주는 사진을 선택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예술지상주의다. 나는 예술보다는 사람들의 삶을 더 좋아한다.

 

 

 

 

- 촬영 허가는 어떻게 받을 수 있었나?

직업여성이고 건달이고 마음 주면 안 통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진정성이 보일 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아니겠나?


- 꽤 긴 시간동안 같이 생활을 했겠다.

거기를 찍기는 5년을 찍었어도, 살기는 5달 밖에 못 살았다. 왜냐면 방세가 비싸니까.

지금도 빈털터리지만 그 때도 돈이 없으니까. 다큐멘터리 작가는 가난하다.

그나마 5달도 있을 수 있었던 게 동아미술전에 작품을 출품했는데 대상을 받았다.

상금을 100만원 받았고, 동아일보에서 작품 산 돈도 받았다.

그 돈으로 방을 얻고 그 친구들에게 다 썼다.

결국 돈 더 쓰고, 그 집에서 나와 왔다 갔다 하면서 찍었다.

 

 

- 손님은 어떻게 촬영한 것인지?

손님들은 찍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걔들이 카메라 안보이게 제 몸으로 손님 눈을 가려줘서 찍을 수 있었다.

- 사진을 찍을 때 사진전과 책에 대한 계획이 있었나?

이런 다큐멘터리 사진들로 그녀들이 당당하게 나설 수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그녀들도 동의했고. 그랬는데 막상 문을 여니 그렇지 않았다.

내가 왜 이 짓을 하나 싶었다. 불태워버릴까 했는데, 그냥 처박아두길 천만 다행이다(웃음)

- '청량리 588' 전시와 책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들을 불쌍하게 보지도 말고, 천하게 보지도 말아라. 그냥 같은 사람으로 대해준다면 좋겠다.

그리고 우려되는 점이 요즘은 SNS에 사진을 가볍게 올린다.

하지만, 그 진위가 왜곡되면 (성노동자에 대한) 모욕이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몸을 팔고 있는 것 아니겠나. 방법이 다를 뿐이지.

 

 

 

청량리 588'의 여인들

- 그녀들에 관해 시대의 희생양이라고 했는데?

그렇다. 단지 부모를 잘 못 만난 죄 뿐이다. 거기에 가고 싶어 간 사람이 누가 있겠나?

- 지금 연락되는 분은 없는지?

아무도 없다. 요즘처럼 핸드폰이 있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 다 연락이 됐을 텐데....

-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는가?

정숙이. 걔가 도움을 많이 주었다.

어느 날 정숙이와 다투어 방에 가보니, 촛불을 켜놓고, 몇 시간 동안 말을 안 하고 앉아있더라.

참! 힘든 고문이었다. 걔는 시간이 돈인데, 손님을 안 받고 있으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자기가 물어야해

생활은 더 어려워지니까.


 

 

 

 

 

- 힘들었던 만큼 애착이 가겠다.

그렇다. 어제는 매체에서 기자들이 와서 현장에 한 번 가보자고 했다.

가보니까 서너 집만 남은 줄 알았는데, 더 많은 것 같더라고...

물론 낮이니까 영업 안하는 집도 있겠지만, 낮에도 몇 사람 나와 있고 그랬다.

심지어 60이나 먹은 노인도 오고 20대 총각도 오고 다양한 사람이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지구상에 인간이 있는 한 (윤락행위는) 없을 수 없다.

 

어제 갔을 때도 가슴이 먹먹했다.

30년이 지나도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싶었다. 사회적 시선이나 그네들 삶이나...

사람을 찍는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조문호

-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사진 할 생각 없었다. 부산에서 음악주점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집 단골로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이 있었다.

어느 날 선물로 '휴먼 1집'이라는 개인사진집을 주더라. 보니까 이거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강하다'는

것을 말하더다. 그래서 사진을 시작하게 됐다. 사진이라는 게 돈이 안 된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더하다.

그래도 나는 가치 있다고 생각하니까 (계속 한다).

-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다면?

최민식씨 사진의 초점이 사람들이었다. 보통 사진가들을 보면 주변의 기록을 너무 우습게 안다. 

가족은 물론, 사진 행사에도 카메라 가지고 오는 작가가 별로 없다.

그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다. 그 또한 세월이 지나면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인사동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술을 마셔도, 아무리 취해도 카메라를 떨어트리지 않는다.

카메라가 막걸리에 얼룩져 그렇지, 항상 내 손에 잡혀있다.

 

 

 

 

-사진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지??


정처 없지 뭐. 지금 아내 만나기 전엔 실패도(이혼)했다.

지금은 같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를 만났다. 생각이 같으니까 너무 좋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마누라는 장터만 30년 찍었다. 돈 떨어지면 인사동에서 개기고(웃음)

가난하면 아내가 힘들지만, (많은 사진들이 있으니까) 나는 항상 부자라고 생각한다

 

 

 

 

- 조문호에게 카메라는 어떤 의미인가?

카메라는 기계일 뿐이다. 화가로 치면 붓이랑 마찬가지다. 자기 이야기를 담아낼 뿐이다.

그래서 무슨 렌즈고 그런 거 아무 필요 없다. 자기 손에서 편하게 찍을 수 있는 카메라면 좋다.

- 다음 작품으로 준비 하고 있는 것은 있나?

지금 하는 것도 마무리 못하고 있는데 무엇을 찾고 있겠나(웃음).

인사동과 장터도 계속 찍어야 하지만, 청량리 588도 철거할 때까지 기록해야  한다.

- 꿈이 있다면?

개인적인 꿈은 없다. 나는 행복하니까. 큰 꿈이 있다면 다들 잘 산다면 좋겠다.

돈이 많다고 잘 사는 건 아니다. 주변에 돈 많은 친구들은 나보다 걱정이 더 많다.

돈 때문에 머리를 싸맨다. 그런 거 보면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다.

 

일단 집안이 편하고, 자기 하고 싶은 거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못 하는 게 제일 불행하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나. 죽고 나면 아무 소용없다.

주위 친구들 죽는 거 보면, 그렇게 아웅다웅하며 살다 죽을 때, 뭘 가져가나 싶다.

가족들끼리 원망하고... 그래서 옛 노래 말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가 참 솔직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제발! 자유롭게 열심히 일하고, 재밌게 놀아라.

 


작가의 눈은 깊었다. 정숙이를 이야기할 때나 꿈을 이야기할 때 그의 눈은 청년처럼 반짝였다.

'직업을 불문하고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일흔의 노작가는 말했다.

'붉은색 조명 아래 그녀들은 언제쯤 세상의 차가운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http://www.youtube.com/watch?v=Pau-zvFYzio

 

[MBC 인터뷰 내용 중 어휘가 잘 못되거나 내용이 충실하지 못한 것은 일부 수정했다 /사진가 조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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