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은 국악인 조수빈씨와 언론인 정경호씨다.]


인사동에서 제일 좁은 ‘벽치기 길’은 길도 아닌 개구멍같은 통로다.
안국역 6번 출구 2-30m 전방의 담배 가게 맡은 편에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는 샛길인데,

주차장 주인과 건물 주인들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웃기는 골목이다,


오래전에는 취객들의 방뇨로 지저분하기 그지없었으나,

이젠 그런 놈은 없으나, 일단 멀리 내다보고 들어가야 한다.

젊은 남녀라도 부딪히면 설레기라도 하지만, 나 같은 놈 만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인사동 골목마다, 인사동 십 길이니 몇 길이니 다 이름이 있는데,

이 샛길은 이름이 없어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믿거나 말거나 ‘벽치기 길’로 명한다.

중요한 것은 이 샛길 안의 술집 터에 인사동 마지막 풍류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 안에는 ‘유목민’ 외에도 ‘푸른별 이야기’, ‘누룩나무’, '홍어가 막걸리를 만났을때', 스토그,

'백화'등의 술집과 '유담'찻집이 있고, 마지막에 있는 ‘이진옥 옷가게’자리를 꺾어 돌면,

'시골밥상', ''산골물' , '우리선희', '사랑채', '다미', +84'가 있고, 연애 걸 수 있는 PEARL모텔과

예술접경지 ‘인사아트스페이스’로 연결되는 인사동16길 입구가 나온다.

밤 늦은 시간 인사동을 기웃거리거들랑, 벽치기 길로 들어가 막걸리 한 잔 하시라.
가끔은 낮 익은 반가운 분들과 어울려 사라져 가는 인사동의 낭만을 맛보게 될 것이다.


사진,글 / 조문호



권태균사진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돕고 우리나라 다큐멘터리사진의 현 단계를 진단하는

‘한국사진과 권태균사진’이란 주제의 특강이 지난21일 오후4시 강남에 있는 ‘스페이스22’에서 열렸다.


그동안 이광수교수의 특강을 기다려 왔으나, 먹고 사는 일로 40여분이나 늦어버렸다.

30여명의 사진인들이 듣고 있었는데, 강의 중간에 들어가기가 좀 창피했다. 


이광수교수의 많은 이야기를 놓쳤지만, 강의의 요지는 가장 한국적 사진이라는 평가를 받아 온

권태균씨의 작품세계를 놓고, 과연 한국적 다큐멘터리란 어떤 사진이냐에 모아졌다.

대개 우리의 전통적 생활관습이나 한국적 정서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교수는 우리의 두레문화에 의미를 두었다.

끈끈한 정과 한으로 뭉친 우리민족의 정체성이란 공동체적 삶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즉 대동 문화를 말한 것이다. 88올림픽, 월드컵 등 스포츠에서부터 광주항쟁 등의 정치적 투쟁에 이르기 까지

다른 나라와는 또 다른 끈끈한 결집력을 보여 왔다는 점을 들었다.

다큐멘터리사진이란 주제나 소재가 정해지면 접근 방법, 즉 어떻게 찍을 것이냐에 많은 작가들이 고민하는데,

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대정신, 즉 문제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권태균씨의 80년대 작품 ‘노마드’는 그 방법론에서 갈등의 흔적이 역역하다고 말했다.

강운구선생께 체득했을 법한 자연스럽고 정갈한 구도였던, 평소의 접근방법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갑철씨 사진처럼 카메라앵글을 의도적으로 비뚤게 한다든지, 사람의 몸을 과감하게 잘라내는 등

서구스타일의 사진들도 뒤 섞인 걸 보면, 전통과 외래 사이에서 상당히 고민 했을거라는 거다.


결국 그의 사진적 관심은 우리의 삶의 자취가 사라져가는 아쉬움에 모아져 있었다.

“시간과 겨루기에서 슬프지 않은 것이 없다“는 강운구선생의 말처럼...

그러나 우리가 여지 것 본 권태균씨의 사진들은 대부분 80년대에 한정되어 있다.

그 이후의 작품세계가 어떤지는 앞으로 더 지켜보고, 연구할 문제다.

2시간 넘게 진행된 특강에서 김문호, 김봉규씨 등 여러 사진가들이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는 등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갔다.

 

강의가 끝난 후 ‘북촌’으로 자리를 옮겨 이광수교수 표현대로, 또 한 잔 꺾었다.

그 자리에는 전시와 특강을 주관한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 내외를 비롯하여 이광수, 김문호, 엄상빈,

김남진, 정진호, 윤승준, 이은숙, 이유홍, 김 원, 마동욱, 장수진, 고정남, 노형석, 이규철, 성남훈씨가 함께했다.

사진, 글/ 조문호










































정초부터 좋은 사진과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스페이스22’에서 개막된 권태균씨의 유작전에서다.

 

기다린 전시였으나 인사동에서 강 민 선생님을 만나 지체되었다.

부리나케 달려갔으나 30분이나 늦었다.

    



생전의 약속 따라 첫 유고사진집을 펴낸 눈빛출판사이규상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이 많아 운신이 어려웠지만, 곳곳에 반가운 사람들이었다.

    







몇 번이고 전시된 사진들을 돌아보았다.

보았던 작품도 몇 장 있었으나, 대부분 처음 보는 사진이었다.

잊고 있던 80년대 추억들을 얼마나 끌어내는지 가슴이 애렸다.

나른한 자세로 앉아있는 세 가족의 모습에서, 그 시절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 땐 몸은 피곤했지만, 곳곳에 화롯불 같은 온정이 있어 행복했다.






어찌할꼬! 이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이건 곡마단 광고판에 적힌 문구다.

우린 그런 기구한 삶을 보며 웃고, 울었다.

행여 누가 볼가, 곁눈질하며 눈물도 훔쳤다.






사진들이 너무 좋았다.

난 권태균씨가 의령 촌놈이라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맛을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런 맛을 낼 수 없다.

우연히 한 두 컷이면 모를까모든 사진에 특유의 애수가 묻어 있었다.

시골다방에서 담배피우는 남정네 표정이나 다방분위기 한 번 보라.



집에서 자판기를 두드리다, 또 열불이 터졌다.

그 흔한 사진상, 이런 사람한테 안주고 대체 누굴 주었나?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끼리끼리 돌려먹다, 이젠 그 제자들이 돌려 먹는다.

시류에 눈치 안보고, 초지일관 떠돌며 찍은, 이토록 진솔한 언어가

어떻게  빤짝 생각들에 밀려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제 그는 우리 곁을 떠나고 없다.

저승에서 잠시 내려와, 우리에게 말 걸고 있는 것이다.

이게 진짜 사진이라고...





다행스럽게 눈빛출판사의 이규상씨가 생전의 약속대로 근사한 책을 펴냈다.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마치 오리지널 프린트 같았다.

내 가난함을 불쌍히 여긴 한정식선생께서 책을 사 주셔서

이제 보물 상자 하나 두게 되었다.


'눈빛출판사'에서 주요작 100여점을 실어 펴낸 사진집 <노마드> 값은 70,000원

2월22일까지 서울 강남역 1번출구에 있는 '스페이스22'에서 작품들을 볼 수 있고, 사진집도  살 수 있다.






개막식에서 많은 분들을 만났다.

대구서 올라 온 양성철씨와 석재현씨도 만났고,

부산의 이광수씨, 광주에 사는 오상조씨, 장흥의 마동욱씨도 만났다.

그 외에도 한정식, 전민조, 엄상빈, 김보섭, 성남훈, 김남진, 이기명, 안해룡, 이갑철, 이상엽,

장 숙, 김상현, 마기철, 강재욱, 남 준, 김동희, 이재갑, 견석기, 이한구, 정진호, 최재균, 김영호,

박종우, 김대수, 구본상, 안미숙, 이순심, 정영신, 이은숙, 성윤미, 노형석, 고정남, 권양수씨를 만났다.

마치 심봉사 딸년 잔치 집에 온 듯 기분 좋았다.

















































전시를 주관한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 내외 따라 뒤풀이 장소로 옮겼다.

술집 북촌에서 술꾼들만 남아 더 마셨다.


! 서울 이빨과 부산 이빨이 주고받는데, 막상막하더라.

경상도와 전라도 말이 짬뽕된 이광수교수 구라도 대단했다.


술좌석에서 '사진예술'이기명씨가 이렇게 물었다.

"젊은 마누라와 살 수 있는 비결이 뭡니까?"

할 말이 없어 이렇게 말했다. "몸 안 아끼고, 최선을 다 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나중엔 총알이 떨어져 사진도 찍을 수 없었지만, 김보섭씨가 먼저 가라고 눈치주네.


 

촬영 : 2016.1.4. / 사진, : 조문호






권태균씨의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왠지 애잔하고 처연한 느낌이 든다.
아름다운 꽃과 천진난만한 애기를 찍었는데, 왜 그런 느낌이 들까?
애기의 표정도 한 몫 했겠지만, 꽃이 가진 양면성도 작용한 듯 싶다.
그래서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마치 권태균씨의 자화상 같았다.

권태균씨가 세상을 떠난 지가 어저께 같은데, 벌써 일 년이 되었단다.
신이 어찌 나같이 못된 놈들은 살려두고, 착한 사람들만 데려갈까?
그래서 지옥같은 이승보다는 저승이 좋다는 걸, 눈치 챈 것이다.

그 친구는 복 받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일찍부터 사진에 입문하여 좋은 직장에서 돈 걱정 안하고

유목민처럼 떠돌며 사진만 찍지 않았나?
사랑하는 처자식과의 잠깐 이별이 아쉬울 뿐,

더 좋은 천국을 찍을 수 있는 기회도, 일찍 준 것이다.

내일 그가 이승에 잠시 내려와 사랑하는 이들을 불러 모아 사진전을 벌인단다.
80년대에 기록했던 사람사는 모습이라기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 거린다.
분명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사진들이 나를 감동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 그를 만나, 저승에 먼저 가신 분들의 소식도 들어보고,

저승사자에게 와이로 쓰는 방법은 없는지, 한 번 물어봐야겠다.

글 / 조문호



권태균 1주기 추모전 "노마드"는 1월4일 오후6시에 개막되어 2월 20일까지 이어진다.

장소는 "스페이스22" 인데, 강남역 1번출구로 나가는 미진프라자22층이다.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한 권태균 '노마드'사진집 출판기념회도 있다.



열흘 동안 벌목한 나무 정리하느라 일에 파묻혀 지냈다.
느닷없는 친구의 부음으로 김해까지 내려 간 김에,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7월3일 오후 늦게 아내와 함께 인사동으로 나갔다. 

조준영씨와의 약속도 있었지만 ‘노마드’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조준영씨를 비롯하여 전활철, 조경석, 이청운, 김용문, 김민경, 공윤희씨 등 많은 유목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러 명과 어울려 대마막걸리를 마셨는데, 정선에서 너무 고생해 콩국수를 두 그릇이나 비웠다.

늘 하는 일이지만, 인사동 거리풍경도 찍었다.

길거리에서 김상현씨와 김완규씨를 만났고, 아라아트에서는 김명성씨와 김종근씨를 만나기도 했다.

결국은 노마드에서 합류하였지만...

 

 

 

 

 

 

 

 

 

 

 

 

 



지난 19일 오후, 오랜만에 인사동을 찾았다.

 

문학평론가 이정숙씨의 ‘낯선 듯, 낯익은 듯‘전에 갈 작정이었으나 같은 시간에

'학고재'에서 강요배씨의 전시 오프닝이 있다는 소식을 장경호씨로 부터 들었다.

매월 블로거에 올리는 인사동 전시들은 대개 알고 있으나 소격동 '학고재' 전시는

영역 밖이라 미처 파악하지 못했는데, 뜻밖의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먼저 ’아라아트‘에서 열리는 전시부터 촬영 한 후, 부랴부랴 ’학고재‘를 향했으나

그 곳에서 만날 작정이었던 박윤호씨는 다른 약속으로  떠나고 없었다. 

 

전시장에는 강요배씨를 비롯하여 박재동,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 김석종씨 등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분들과 함께 와인 한 잔 나눌 수 있었다.
부족한 술은 뒤풀이에서 마실 작정이었으나, 장경호씨가 인사동 ‘노마드’로 안내했다.

신학철, 박불똥씨와 함께 간 ‘노마드’에는 미술평론가 유근오, 설치미술가 김언경,

행위예술가 타이거 백, 패션디자이너 손성근씨가 자리하고 있었다.

뒤늦게 최혁배 변호사를 비롯하여 배성일, 안영상, 정기영씨가 나타나 술좌석이 무르익기

시작했고,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소주와 막걸리를 골고루 마셔 기분 좋게 취했다.

'아라아트'의 이정숙씨 전시장에 머물렀던 아내로 부터 갈 시간이 되었다는 전화를

두 차례나 받고서야 마지막 이별가를 불렀다.

 

찻집에는 아내와 박인식, 권영진, 전인경, 전인미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명성씨에게 전해 줄게 있어 인사동을 찾았다.
지난 5일 오후9시 무렵의 '노마드'엔 풍기에서 대하소설 쓰는 배평모씨가 왔었고,  

현장스님과 유진오, 정기영씨도 보였다.
안쪽 구석자리에는 김명성씨 혼자 앉아, 일찍 부터 술이 취해 있었다.
주변 사람들로 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문학평론가 구중서선생께서 김명성씨의 시에 대한 평론을 문예지에 쓰셨는데,
그의 시를 극찬하였다는 것이다.

뒤 늦게 술판은 무르익었고, 그 날 술 좀 마셨다.
새벽 세시가 넘어 녹번동 서부감자탕에서 한 잔, 우리 집에서 한 잔하는 것으로 끝냈지만,  

비좁은 방에서 개같이 끼어 자야했다. 

 

“아이구! 속 쓰려~” 

 

 

 

 

 

 

 

 

 

 

“장사꾼들만 판치는 인사동에 무슨 예술과 풍류가 남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인사동 골목골목을 돌다보면 인사동 기억을 소주잔에 부어 마시는 예술가들도 있고, 그들이 즐겨 찾는 아지트도 가뭄에 콩 나듯 한 두 곳은 남아있다.

 

인사동 술집하면 이미 고인이 된 서양화가 강용대, 사진가 김종구, 시인 적음스님을 비롯한 인사동 골통들이 죽치던 실비집(‘실비대학’이라 부름)부터 생각난다. 그 실비대학 총장님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행방조차 묘연하지만...

50여 년 전 민병산, 박이엽, 천상병, 강 민, 민 영, 신경림, 황명걸, 채현국씨 등의 여러 선생님들이 관철동에서 인사동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며 인사동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그 인사동의 선구자적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란 바로 목순옥 여사가 운영했던 ‘귀천’을 기점으로 ‘실비집’과 ‘누님칼국수’, ‘하가’, ‘시인통신’등 이다. 이젠 고담준론을 나누던 그 대폿집들은 물론 객들도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거나 사라지고 있다.

 

예술로 빌어먹는 술꾼들이 외상술에 개똥철학 풀던 그런 대폿집들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아직 인사동을 떠도는 사람들이 남아 있기에 그 풍류적 가치를 지키려는 술집도 생기는 것이다. 인사동을 떠도는 예술가들이 원하는 공간이란 흥에 겨워 즉석에서 유행가라도 한 곡 뽑을 수 있는 마음 편한 술집이다. 신용카드 때문에 외상술은 안 통하겠지만 안면 있는 벗들이 곳곳에 있어 공술도 가끔 얻어 마실 수 있고, 자정이 넘었다고 손님들을 칼같이 내쫓지도 않으며, 소주잔에 담배연기 날려가며 마실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술집 말이다.

 

인사동 16길에 있는 ‘노마드(유목민)'가 그러한 요건을 두루 갖춘 대폿집이다.

’노마드‘는 오랫동안 인사동에서 민예품을 만들어 왔던 전활철(60세)씨가 2년 전에 만든 술집인데, 인사동 술꾼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공간이 그리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본래 애주가로 아무리 마셔도 취기 한 번 보이지 않지만, 매일같이 손님들과 어울려 술을 마셔대니 몸이 성할지 걱정스럽다.

 

’노마드‘의 술집 문을 열면 어디에선가 본 듯한 예술가들이 구석구석 박혀 있고, 그 시절의 감정을 자극해가며 술집을 흥건히 적셔주는 음악 또한 기가 막힌다. 가끔은 ‘뮤아트’ 김상현씨를 비롯한 뮤지션들의 생음악도 감상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얼큰하게 취한 전활철씨의 열창도 들을 수 있다. 술 종류야 어느 집이나 다 비슷비슷하겠지만 이 집에서 자랑할 만한 술안주로는 홍어찜이나 가오리찜, 귤전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두부를 곰삭은 묵은지에 싸 먹는 두부김치 맛이 압권이다.

 

그 곳에 들락거리는 인사로는 철학자 채현국, 행위예술가 무세중선생을 비롯하여 시인 강 민, 김신용, 조준영, 김명성, 서양화가 이청운, 허미자, 장경호, 김언경, 차기율, 전인경, 전강호, 도예가 김용문, 신동여, 황예숙, 음악인 김상현, 가수 하양수, 김추자, 연극배우 이명희, 소설가 배평모,  패션디자이너 손성근, 그래픽 디자이너 김의권, 인사동 마당발 노광래, 현장스님, 덕원스님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입이 아프다.

 

‘노마드’ 위치는 인사동 16길인 ‘사랑방모텔’ 골목으로 들어가 종로경찰서 가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나온다.

근간에 한 번 들리시어  막걸리나 한 잔 드심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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