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역 6번 출구에 인사동의 갖가지 기억들을 백자 타일 150장에 담은 도화벽이 있다.

'인사동 풍물에 류를 더하다" 란 서울시의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는데,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도화 벽은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나, 기념사진 찍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날로 찾는 이들이 늘어, 이제 인사동 명물로 자리 잡았다.

 

지난 13일 이곳을 지나치다, 인사동을 자주 오가는 시인들의 낙서 조각들을 주워 보았다.

인사동에 현대시학사무실을 두었던 정진규시인의 나의 골목이란 글도 보였고,

이재무시인의 "인사동은 추억의 출구이자 입구", 그리고 “인사동 봄날을 노래한 이승철시인의 글도 있었다.


인사동은 고장 난 피아노의 건반 속 같다음유시인 송상욱씨의 인사동요

귀천의 목순옥 여사가 떠나는 꽃길을 엮은 김명성씨의 시도 찾았다.

 

인사동은 문화예술인들의 숨구멍이고, 남도 바닷가의 찰지디 찰진 개펄이라

김여옥시인의 낙서를 보며, 잠깐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 찰진 개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비쳐졌기 때문이다,


나의 천상병선생사진을 비롯해, 박재동, 여 운 등 많은 이들의

붓길 흔적들이 가슴에 그리움만 쌓이게 했다.

사진, / 조문호


















지난 12일 한정식선생께서 마련한 신년오찬회가 인사동 ‘수연’에서 있었다.
이 날 모임에는 한정식선생을 비롯하여 사진가 전민조, 김보섭, 엄상빈, 이규상,

이재준, 최경자, 정영신, 안미숙씨 등 열 명이 함께했다.

새해에는 만사형통을 바라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함께 축배를 들었다.
이 날의 주요 화제는 불황에 따른 사진시장에 대한 우려였다.
국내에서 최고가를 형성한 사진가의 작품가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우울한 소식도 들렸다.

얼마 전, 갤러리를 운영하는 한 지인으로부터, 심각한 상황을 들은 적이 있다.
주요 고객인 강남아줌마들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작품이 좋아서 사기보다, 돈을 남기려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작품을 모르면 무조건 비싼 작품을 사면 남는다는 게, 그들의 철칙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투자 했는데 남기는커녕, 더 싸게 살 수도 있는 현실에 마음이 바뀌었단다.

이젠 적은 돈으로 희소성에 가치 둔 작품에 눈독을 들인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열외겠지만, 어쩌면 시장질서 개편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 자리에서 작가마다 에디션 넘버가 들쭉날쭉해 시범 사례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엄상빈선생의 제안이 있었다.

한정식선생께서 그런 건 필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으나,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진의 태생적 한계라는 선생님 말씀도 일리는 있으나, 단 한 장뿐인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에디션 넘버가 적고, 흔치 않은 작품을 선호하는 소장자들의 취향을 무시해서 안 되기 때문이다.
작가마다 다르겠으나, 엄선생 말씀처럼 사진계에서 어느 정도의 원칙은 만들어 두는 게 바람직하다.

커피 집으로 자리를 옮겨 이재준씨가 제안했다.
“사진옥션을 만들어 사진을 공매하면 어떠냐고?“
모두들 좋은 생각이라고 환영했고, 추진을 권하기도 했다.

자리에서 헤어진 후, 인사동을 떠돌아 다녔다.
따사로운 햇살이 비쳤지만, 날씨는 더 추웠다. 카메라 잡은 손이 얼 것 같았다.
‘허리우드’에서 김명성씨를 만나기도 했고, ‘설악산’전시장에서는 작가 임채욱씨와 김준기씨를 만났다.

그 곳에서 김보섭씨와 엄상빈씨도 다시 만났으나, 인사동이나 사진판이나 하나같이 걱정되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1일 오후6시부터 인사동 ‘유목민’에서 인사동을 사랑하는 이들의 송년회가 있었다.


이 날 모인 인사동 꼴통들은 한 때, “創藝軒”맴버로 함께 한 사람들이다.
인사동을 지켜 우리문화를 살찌우자며, 인사동을 드나드는 예술인 100여명이 뭉쳤던 것이다.
당시 ‘아라아트’ 김명성씨가 총대를 메고, 아내 정영신이가 사무국장을 맡았다.

인사동에서 '천상병추모제'를 갖는 등, 5년 동안 일을 벌였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모두 들 개성이 강해 단합이 잘 되지 않는데다, 난재는 운영할 수 있는 재원이 없었던 것이다.
이사장 지원에만 의지했으니,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장터사진 찍느라 일에 쫒기든 아내가 사무국장을 넘겨주는 걸로, 그만 문을 닫게 되었다.
제일 아쉬운 건, 회원들 간의 경조사 연락이 끊겼다는 점이다.
더구나 회원가족을 모르니 신변에 이상이 생겨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걸 제일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강남대’에서 교편 잡는 조준영시인이었다.
지난 달 연락이 왔는데, “해 넘어 가기 전에 가까운 분들과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주변 분들만 연락하기로 했으나, 손발이 맞지 않아 빠진 사람이 더 많았다.

그 날은 충무로 ‘브렛송’에서 있었던 정진호씨 사진전과 겹쳐, 한 시간이나 늦었다.
약속장소에는 조준영씨를 비롯하여 이명희, 강경석, 전강호, 주승자, 유진오, 전활철, 김상현,

허미자, 전인경, 박혜영, 전인미씨가 마시고 있었다. 뒤이어 정영신, 하욱만, 노광래, 강성수, 공윤희,

김명성, 강찬모, 박인식, 김은경, 배성일, 오치우, 임채욱, 이세희, 이상훈, 이태규씨가 속속 나타났고,

뒤늦게는 울산의 오세필, 경주의 정기범, 부산의 김봉미씨도 합세했다.

마침, 그 날이 김명성씨 생일인지라, 하루 뒤인 아내 생일까지 합쳐 생일케익을 잘랐다.

오랜만에 김상현씨의 “봄날은 간다”를 들어가며 신나게 놀았다.
밤 11시가 넘어 퇴각했는데, 김명성씨를 비롯한 잔당들은 노래방에서 새벽4시까지 놀았단다.

모처럼 인사동에서 사람냄새 진하게 맡았다.

사진:정영신,조문호 / 글: 조문호


























































































아내 생일을 맞아, 전 후 사흘을 코가 비틀어지게 마셨다.


‘아라아트’ 김명성씨와 생일이 하루 차이라, 근 10년 동안 생일잔치를 같이 해왔다.
생일 하루 전부터 인사동 ‘유목민’에서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셨다.
인사동 꼴통들의 송년회와 겹쳐, 많은 사람들이 어울린 술 잔치였다.

그 이튿날, 진짜 생일에는 깜빡 잊어버렸다.
도서관에서 늦게 들어 온 아내의 냉냉한 표정에 화들짝 놀라, ‘이마트’로 뛰쳐나갔다.
사온 케익을 안주삼아 오붓한 축하연을 벌인다는 게, 너무 과했다.

이제 끝났나 싶었으나, 다음 날은 처제와 동서가 술과 안주를 사들고 쳐들어왔다.
메기 매운탕의 시원한 안주는 술이 술을 마시게 했다.
취한 김에 노래방까지 진출해 야단법석을 떨었는데, 완전히 녹초 되었다.

그 이틑 날 온 종일 이불 밑에서 끙끙대고 있는데, 아침부터 이명희씨 전화가 왔다.
강민 선생님 뵈러 인사동 나가는데, 같이 점심 먹자는 내용이었다.
아내더러 전하랬다. “조가는 저승길 문턱에서 헤맨다고...”

원님 덕에 나팔은 잘 불었으나, 그 지나친 대가를 톡톡히 치룬 생일잔치였다.


사진,글 / 조문호













인사동 거리를 어슬렁대다 산돼지 같은 낮 익은 사람 하나 만났다.


바로 시 쓰는 이승철씨였다.


이 사람은 울 애편내랑 고향과 나이까지 똑 같은데다,

지는 글판에서 나는 사진판에서 실속없이 넘 밑 구중 닦는 일을 많이 했다.

다만 지는 시를 잘 쓰는데, 나는 사진을 잘 못 찍는 게 문제다.


사람이 말문이 막히면 나오는 소리를 반복한 노대통령 추모시를

비롯한 많은 그의 시편들은 얄미울 정도로 좋다.

 

그런데 인사동 모두의 애인이었던 미녀 마담을 보쌈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이 시인은 펄쩍 뛴다. 조용히 사는 그녀가 알면 살아남을 길이 없단다.

그래서 내렸다가 다시 올리는 것이다.


이 사진들은 지난 22일 찍었는데, 사진보따리 푼 데를 몰라 늦게 올렸다.

그 날 김명성씨도 만났고, 이인섭선생도 만났다.


사진, 글 / 조문호






















구로구청장 이 성씨와 홍현숙씨의 장남 홍일군의 결혼식이
지난 10월24일 오후6시, 신도림 테크노마트 웨딩시티에서 있었다.


홍일 군은 오래 전에 한 번 보았는데, 너무 어엿하게 자라 있었다..

지금은 '우리은행' 두뇌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한다는 소개도 있었다.
긴 주례사가 이어졌으나, 아무 소리 안 해도 잘 살 커플 같아 보였다.

축하객들이 많았으나 인사동사람으로는 최혁배 변호사 내외를 비롯하여 ‘아라아트’ 김명성씨와

공윤희씨, 소설가 박인식씨, 화가 전인경씨, 큐레이트 전인미씨를 만났을 뿐이다.

모두들 ‘아내는 왜 오지 않았냐?’지만, 어찌 심사임당 지폐 한 장 넣고,

두 사람이나 먹을 수 있단 말인가. 벼룩도 낯짝이 있지...

피로연장은 8층에 있는 뷔페식당이었는데, 여러 곳에서 이용하는 곳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연회장이 얼마나 넓은지, 음식 가지러 갔다가 가방 둔 좌석을 찾지 못해 뷔페식당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함께 있던 공윤희씨가 가방을 들고 다른 자리로 옮겨 버렸는데, 더 황당한 것은 자리는 찾았지만,

챙긴 음식 놓은 자리를 몰라 다시 찾으러 다닌 것이다. 완전 시골 노인 서울서 헤맨 격이었다.

기둥에 적힌 구역번호만 기억했으면 그런 곤욕은 치루지 않았을 텐데...

좀 있으니 이성씨 내외가 식사하러 왔으나, 이곳은 혼주의 테이블도 별도로 마련되지 않았다.

식사를 끝낸 우리가 일어나고 두 내외가 앉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축하객에게 인사 드리려,

국수 몇 젓가락만 들고 바삐 일어서야 했다.
오늘 같이 경사스러운 날, 한 끼쯤 굶어도 괜찮겠다마는, 왠지 안 서러워 보였다.

사진,글 / 조문호










김효성씨 딸이 시집간다는 기별에 정선에서 새벽부터 설쳤다.

이태원의 크라운호텔 예식장에서 신부를 처음 보았는데, 너무 예뻤다.
나처럼 지지리도 못 생긴 지네 아버지에서,
어쩌면 저렇게도 예쁜 딸이 나왔을까 신기했다.

예식장에서 반가운 사람들도 여럿 만났다.
그의 형 김명성씨 가족은 물론이고, 서양화가 강찬모, 연극배우 이명희,

성악가 이경오, 가수 신현수, 인사동지킴이 공윤희씨를 만나 함께 식사 했다.

급히 오느라 아침밥도 거른 상태라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는
무의식 결에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것이다.
붙인 김에 한 모금 길게 빨고는 불을 끄려는데, 종업원이 소리친다.

“어르신 여기서 담배 피면 큰일 납니다.”
“아이구! 지송함니더. 촌에서 금방 와, 잘 몰라 그렇심더”
장초를 버렸으나 엉겹 결에 피운, 그 한 모금의 담배 맛이 진짜 좋았다.

역시 실수도, 수는 수로구나.

2015, 10, 10

사진,글 / 조문호




















지난24일부터 이틀 동안 아내와 추석 대목장 촬영하느라 충청도 지역을 돌아 다녔다.

판교, 해미 같은 조그만 장들은 초장에 빤짝하다금방 한산한 파장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당진 같은 군소재지 장들은 온 종일 사람들로 붐볐다.

제수용품은 구해두었는지, 평소 자식들이 좋아한 음식들 찾느라 여기 저기 기웃거리신다.

 

우리내외도 서울에 들려 다시 정선으로 떠나야하기에 마음이 바빴다.

서둘러 올라 오던 중에, 미국에서 오신 최정자시인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추석 다음 날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얼굴 좀 보자는 것이다.

열흘 전에 서울 왔다는 연락은 받았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터라

급히 인사동으로 차를 몰았다.

 

인사동 '아라아트'에는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정자 시인을 비롯해 김명성 시인, ‘유목민주인장 전활철, 그 아들 시원이,

인사동지킴이 공윤희, 사업가 이상훈, 이태규씨 등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은 급하지만, 밥 먹고, 차 마시고, 술까지 마시느라 하루를 다 보내버렸다.

 

밤늦은 시간 유목민골목에 모여 앉아 술잔을 나누는데, 김여옥 시인과 화가 서길원,

최경태, '유카리'관장 노광래, 번역가 이지연씨 등 주객들이 차례 차례 등장했다.

시에 관한 시잘데 없는 이야기 끝에 "안 팔리는 시집은 왜 만드냐?" 는 김여옥시인의 말에

시집은 팔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서 만든다.“는 명답을 최정자시인이 했다.

 

좀 있으니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현국 선생께서 쫄랑쫄랑 골목으로 들어오신다.

매일같이 강연에 끌려 다니시다 모처럼 술 한 잔 하신 모양이다.

요즘 돈 되는 강연회 요청은 다 물리치고, 가난한 모임의 강연회만 부지런히 다니시는데,

선생님이 계시는 시골 중학교 학생이야기로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얼마 전 조그만 학생 한 녀석이 채선생께 다가와 할배! 이런 말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너무 귀엽습니다

해 놓고 줄행랑을 치는대도, 선생님께서는 기분 좋아 그냥 깔깔 웃으셨단다.

그 이야기에서 채선생님의 교육철학이나 자유분방한 학교 분위기가 그대로 입력되었다.

 

또 한 가지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아라아트김명성씨가 병원에 누워있는 화가 이청운씨를 비롯하여 어려운 예술가 열 명에게

명절 쉴 돈을 일일이 보내 주었다는 것이다. 자기 코가 석자인 명절 직전의 온정이라 더 크게 다가왔다.


년에 최정자 시인이 귀국했을 때는,  어려움에 처한 김명성씨가 안 서러워 모아놓은 달라 천불을 놓고 가셨단다.

그러나 가난한 시인의 돈을 차마 쓸 수 없어 책상 서랍에 넣어둔 채, 여지 것 재기를 다짐해 왔다고 한다.

그 날, 돈을 다시 돌려 주려는 김명성씨와 안 받겠다는 최정자씨의 실랑이를 들으며 발길을 돌렸는데,

인사동 예술가들의 애틋한 정은, 꺼져가는 인사동의 한 가닥 등불 같았다.


"사람나고 돈나지, 돈나고 사람났나?"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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