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을 우리나라 미술시장 메카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참 많다.
‘통인가게’의 김완규씨, ‘아라아트’의 김명성씨, ‘아리수’의 김준영씨 등 갤러리를

운영하는 분들은 물론이고, 장경호씨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들과 기획자들이 머리를 맞대어 그 방법을 찾고 있다.

그 중 사진계의 한 사람으로는 단연 ‘갤러리 나우’ 이순심 관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대학에서 사진을 가리키다, 10년 전 인사동에 ‘나우’라는 이름의 사진전문 갤러리 문을 열었다.

교육자 경험을 바탕으로 포트폴리오 리뷰, 전시기획, 전시 카운슬링 등의 갤러리와 관련된 일도 열심이었지만,

사진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척박한 사진 시장을 타개하려 “아트 나우”의 작가 지원 및 교육 프로그램도 꾸준히 운영 해왔다.

그리고 해외 아트 페어 참여로 한국 작가와 사진을 알리는데 주력해 우리나라 사진시장을 형성, 확장하는데도 기여했다.

그 중 사진 대중화를 위해 벌인 ‘한 방에 한 작품 (ONE ROOM onE PHOTO)’ 캠페인은

여러 언론매체에 소개되며 대중의 호응을 받기 시작했고, 기업체를 비롯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도

사진작품에 대한 해외의 위상 사례를 들며 사진이 대중화에 다가가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 공적을 인정받아, 오늘 시상되는 제2회 ‘수림사진문화상’의 공로상도 받게 되었다.


지난 13일 거리에서 손님 배웅하는 그녀를 만나, 차 한 잔 하자는 권유에 전시장으로 따라 들었다.

차를 마시며, 사진가들의 중구난방식 작품가 형성과 일반인들의 사진에 대한 오해를 물었더니,

팔리지도 않는 작품에 가격만 높여 놓은 게, 사진 대중화에 가장 큰 장애요인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작가가 아무리 비싸게 불러도 소용없어요. 갤러리에서 거래된 가격이 기준이지요.

그리고 사진은 한 컷으로 수없이 프린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어요.”

그래서 판화처럼 작가마다 프린트 할 수 있는 에디션 넘버가 정해져 있다며 고객을 이해시킨다는 것이다.

 

아트마켓 확장을 위해 꾸준히 판로를 개척하며 인사동 미술시장 대중화 에 이바지하는

이순심관장의 수림사진공로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앞으로 더 큰 발전 있기를 바란다.

 

사진,/ 조문호




 




 

인사동을 짝 사랑해 상사병 난 사람들이 여럿 있다.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더러는 변해가는 풍정에 등 돌리지만,

인사동을 못잊어 안타깝게 방황하는 사람들도 많다.

고향처럼 정들었던 인사동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 아름다운 낭만의 시절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이다.

제주도에 멀쩡한 집 두고, 인사동 여관방 얻어 혼자 지내시다, 이제 요양원에 갇힌 분이다.

매일 유령처럼 인사동을 떠돌며 아리랑 춤을 추셨다.


 

 

 

그 다음은 시인 강 민 선생이다.

두 시간이나 걸리지만, 인사동 나오지 않으면 온 몸이 쑤시는 분이다.

몸이 불편해도, 만날 사람이 없어도 상관없다.

 '인사동 아리랑'을 노래하며, 인사동을 기웃거리신다

 

 

 

 

음유시인 송상욱선생도 계신다.

인사동에 콧 구멍만한 사무실 하나 얻어놓고, 매일 같이 나오신다.

그 곳에서 시 쓰며, 흘러간 노래를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다.

몇 일전 길거리에서 만나 통 사정하셨다.

"조형, 인사동에 재미있는 일 좀 만들어봐. 심심해 미치겠어!"

 

 

 

 

인사동에 제일 좋은 갤러리 세워서 망한 김명성시인도 있다.

인사동 르네상스를 꿈꾸며, 전 재산을 털어 넣은 사람이다.

정말 의지의 사나이다.

인사동에서 리어커를 끌지라도 떠나지 않겠단다.

 

 

 

 

인사동에서 미술관장 지낸 화가 장경호씨도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인사동에 반기는 사람 하나 없지만, 나오고 싶어 안달이다.

술을 좋아하지만, 인사동 나와서만 마신다.

꼬장꼬장한 성질머리로 문전박대 당해 "다시 안 나온다"면서도 또 나온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골목 안 천정 낮은 주청에는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콩알처럼 박혀 있다.

그런 사람들이 남아 있기에, 나 역시 인사동을 방황하는 것이다.

 

 예술과 풍류가 넘실대던 그 때의 인사동은 온데 간데 없고, 얄팍한 상혼만 무성한 인사동. 

천상병, 민병산, 중광을 비롯한 인사동 예술가들의 자취하나 찾아 볼 수 없는 무정한 인사동.

옛 소문에 밀려드는 관광객에게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한채, 실망감만 안겨주는 인사동. 


인사동 장사꾼들이 모인 '인사전통문화보존회'와

장사꾼 말만 듣는 '종로구청'이 인사동을 망친 공범자다.

 제발, 상사병 난 사람들과, 인사동 살려 낼 방안 좀 연구하라.


 

사진,글 / 조문호

 

 


 

 

 

 

 

 

 

 

 

 

 

 

 

 

 

 

 

 

 

 

지난 23일 중복 날, 김명성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형 어디 있어? 신용이 형이 인사동에 나왔어, 별 일 없으면 나와”

오후8시경 ‘유목민’에 도착했더니 김신용, 김명성, 박인식씨가 앉아 있었는데,

테이블에 빈병들이 그득한 걸 보아, 제법 마신 모양이었다.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기에 무슨 바람이 불었냐고 했더니 초창기 시집 ‘버려진 사람들’과

‘개같은 날들의 기록’ 두 권이 동시에 복간되었다는 것이다.

88년에 나온 ‘버려진 사람들’은 ‘도서출판 포엠포엠’의 포엠포엠 시인선9집으로 복간되었고,

90년에 나온 ‘개 같은 날들의 기록’은 ‘문학의 전당’의 시인동네 시인선31집으로 복간 되었다며 시집 두 권을 내 놓았다.

 

처음 나왔던 시집이 우리 집 책장에 아직 꽂혀 있으나 이미 사인을 해 두어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지갑이 비어 난감했다.

사진집 출판 경험에 비추어 저자의 심정을 헤아리기에 그냥 받기가 이젠 부담스러운 것이다.

자비 출판으로 주위에 나누어 보는 책이 아니라면 가난한 저자의 주머니를 터는 일이기 때문이다.

 

박인식씨가 내일 파리로 떠나야 한다며 먼저일어나자 김신용씨 마저 술이 취한다며 따라 일어섰다.

김명성씨와 단 둘이 마셨으나, 그날따라 왠지 술맛이 나지 않아 소주 한 병을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그의 첫 시집 ‘버려진 사람들’을 펼쳐 보았다.

황량한 삶 속에서는 모든 버려진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생존방법이며 시의 명제이자 출발점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요즘 정선에다 사진전시를 벌여놓고, 영월의 동강사진제에다 여기저기 다니느라 혼자 바쁘다.

문제는 정선 집에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데다 스마트 폰마저 없어 찍은 사진이나 전할 소식이 있어도 올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게 서울에 가야만 가능하니 소식들이 늦을 수밖에 없다. 늘 뒷북치는 이바구지만 오늘 있는 일인 냥 보아주기 바란다.

 

 

경주의 목판화가 정비파씨의 전시 뒤풀이가 지난 15일 오후7시경 인사동 '부산식당'에 마련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의 술자리 인데다 부산식당의 명물 생태찌개 맛이 너무좋아 과음해 버렸다.

이 날은 정비파씨 전시 외에도 도예가 김용문, 서양화가 이강용씨 등 인사동에 전시오픈이 여러 군데 있어

여기 저기 오가느라 불알에 요령소리가 났다.

와인에다 막걸리에 소주까지 섞어 마시다보니 이차로 간 '무다헌'에서는 너무 취해 뻗어 버렸다.

잠들기 전까지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으나, 얼마나 취했는지 이틀 날 확인해보니 카메라에 CF카드가 없었다.

부산식당에서 빼내며 갈아 끼우지를 않았던 모양이다.

부산식당 뒤풀이에는 작가 정비파씨를 비롯하여 서양화가 신학철, 박진화, 정복수, 김정대, 성기준씨 목판화가 류연복, 김영만씨 제주4,3연구소 김상철이사장, 아라아트 김명성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종률총장, 국회의원 임수경씨, 미술평론가 최석태씨, 손예진, 오덕훈, 이도윤, 김영진씨 등이 함께 했다.

 

 

사진, 글 / 조문호

 

 

 

 

 

 

 

 

 

 

 

 

 

 

 

 

 

 

 

 

 

 

 

 



 

 

경주의 목판화가 정비파씨의 기획초대전 '국토'가 지난 15일 오후5시30분,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지하1-2층 전시실에서 성황리에 개막되었다.

우리나라 산과 강의 혈맥들을 섬뜩하게 드러낸 정비파씨의 방대한 목판화 작품들을 보며 기가 번쩍 솟는 느낌을 받았다.

한 작가의 끈질긴 집념이 이루어 낸 결과들인데, 그 6미터에 달하는 대작들을 경주 작업실에서 어떻게 옮겨 왔는지도 궁금했다.

이 날 개막식에는 작가 정비파 가족들을 비롯하여 우리의 건달 할배 채현국선생, 서양화가 신학철, 임옥상, 박진화, 정복수, 김정대, 성기준씨 목판화가 류연복, 김영만씨 제주4,3연구소 김상철이사장, 아라아트 김명성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종률총장, 국회의원 임수경씨,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미술평론가 곽대원, 최석태, 유근오씨, 무도가 하태웅씨, 문학평론가 구중서씨, 사진가 정영신씨, 소설가 구중관씨, 손예진, 오덕훈, 신상철, 한소라, 김영진씨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광복7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정비파 목판화전은 오는 8월 20일까지 계속된다. 꼭 한 번 볼만한 전시다.

사진,글 / 조문호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전시 공간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광복70주년 특별기획전을 마련했다.

경주의 목판화가 정비파(국토)씨와 마산의 서양화가 이강용(소멸의 시)씨의 작품들로,

우리의 뿌리를 찾으며 광복의 의미를 되새긴다. 

이 전시는 7월15일부터 시작하여 8월 20일까지 계속된다.

'국토'를 주제로 한 정비파의 목판화전은 1,000호에 가까운 대작들로 지하1, 2층을 가득 메우게 되고,

지상 4, 5층에서 전시되는 이강용의 '소멸의 시'는 80년도 중반, 한강미술관에서 선보인바 있는 초창기 작품,

고인돌 시리즈를 펼쳐 놓았다.

정비파씨의 '국토' 시리즈는 우리나라 산과 강의 혈맥들을 섬뜩하게 드러내며,

기운 생동하는 장엄함을 보여주고, 이강용씨의 '소멸의 시'는 우리 조상들의 혼불이 서린

고인돌로 우리민족의 자취를 더듬게 한다.

민초들과 함께해 온 민중미술가 두 명이 펼치는 이 신토불이 기획전은
광복70주년을 맞아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된다.
관람료 내가며 보는 외국전 보다야 아무 부담 없이 영혼을 살찌우는 이 전시가 훨~ 낫다.

도록 발문에 쓴 박인식씨의 말이 생각난다.

"토종은 맛있다.
토종은 힘이 세다.
토종은 아름답다."

조문호

 

 

이강용 "소멸의 시"

 

 

 

 

 

 

 

 

 

 

 

 

 

비파 "국토"

 

 

 

 

 

 

 

 

 

 

 

 



 

 

인사동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게 술이다.

친구와 술은 너무 오랜 세월 같이 했기 때문이다.

 

 

지난15일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 거닐기도 좋았다.

누구라도 만나면 소주 한 잔 나누고 싶었다.

 

 

일주일 동안 대마초 고백에 연루되어 꼼짝하기 싫었다.

그러나 긴 세월 가슴에 묻고 산 걸 털어내니 속은 후련했다.

 

 

인사동 거리는 여전히 메리야스에 겁먹어 한산했다.

사람들이 줄어드니, 얼핏 예전의 인사동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손님 없어 한숨짓는 사람들 보니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인사동에서 만난 아내가, 술 생각나는 내속을 눈치 챈 것 같다.

지나치다 들린 '유목민'에서 시인 김명성씨를 만났다.

"김선생님 오늘은 제가 술 한 잔 대접 할게요." 아내가 선수를 쳤다.

아직 술시간이 이르니 광화문의 '북한사진전'부터 가잖다.

 

 

오늘은 너무 많이 돌아다녀 다리가 아팠다.

거리에서 사진가 박진호씨와 서양화가 성기준씨, 현장스님

만났으나 아쉽게 헤어졌다.

매번 그렇지만 내가 만든 자리가 아니라 눈치가 보여서다.

 

'나주곰탕'에서 같이 소주 한 잔 했으면 딱 좋으련만.....

 

 

사진,글 / 조문호

 

 

 

 

 

 

 

 

 

 

 

 

 

 

 

나는 대마초 피운 범법자다.

 

나른한 현충일 오후, 시인 김명성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형! 국서형 집에 갈 건데, 인사동 나올 수 없어?"

알았다고 했으나 하던 일을 마무리하느라 좀 늦었다.

 

 인사동 '유목민'에는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시인, 연극배우, 사업가 등

여러 명이 둘러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었는데, 모두들 이미 취해있었다.

연출가 기국서 댁에 가기는 너무 늦었다며 술을 더 시켰다.

술은 같이 취해야 하는데, 서로 사이클이 맞지 않아 약간의 거부감도 생겼다.

후배가 정선에 간 것은 대마농사 지으러 갔느냐고 물었다.

 

정선에 들어 간 것은 20여년 전에 동강 사진 찍기 위해 들어갔다.

당시 캠프로 빌려 쓴 주변 환경에 정들어 그냥 눌러 앉았을 뿐이다.

떠돌며 사는 유랑기질 때문에 행여 떠날까봐, 어머니까지 그 곳에 묻었다.

 

그동안 전국 장터와 인사동을 떠돌다 보니 정선보다 서울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다람쥐 쳇바퀴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바쁜 현실에 지쳤을 때,

자연 속에 몸과 마음을 던지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꺼져가는 등불처럼 가물거리는 삭막한 인사동을 지켜보며,

이제 막 내리고 정선으로 떠날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마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60년도 쯤, 내가 어린 시절이었다.

겨울철, 양지바른 담벼락에 기대어 마른 삼 잎을 비벼 신문지에 말아 피우던 이웃 머슴을 보았다.

담배가 없어 피우는데, 피울 만 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대마초가 뭔지도 모르고 피웠겠지만 엄청 행복했을 것 같았다.

 

지금은 길삼 삼는 일부지방에서만 관리재배 되지만, 옛날에는 없어서는 안될 작물이었다.

 

종이, 알콜, 담배 등 미국의 거대한 재벌들 음모에 놀아나 대마가 마약으로 둔갑했는데,

우리나라는 그 놀음에 등 떠밀려 70년도부터 습관성의약품관리법으로 규제한 것이다.

만약 대마가 여러가지 산업 용도로 활용되었다면 엄청난 변화를 맞을 수 밖에 없는데, 

기존의 특권자들이 그냥 둘리 없었다.

 

반전과 평화의 상징인  대마를 처음 피운 것은 7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부산 에덴공원에서 ‘하늘목장’이란 음악실을 운영할 땐데, 미군들이 자주 들락거려 대마초를 얻어 피울 수 있었다.

정말 기쁨과 행복을 주는 신비로운 풀이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었다.

 

 

 

 

당시는 길거리에서 대마초를 피워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75년 김추자를 비롯한 연예인들의 대마초 흡연사건이 터져 된서리를 맞았고,

78년도 무렵, 교사들이 대마초 피운다며 나팔 분 사건에 엮여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부산 대연동의 ‘마약중독자진료소’라 써 붙인, 수용소인지 고문실인지 분간 안 되는 음습한데 끌려 가

쇠파이프에 두들겨 맞기도 하고, 다른 친구를 불라며 코에다 물까지 부어재켰다.

그렇게 짐승처럼 주무러다 결국 구속시켰는데, 그들 말처럼 마약중독자라면 병원에 보내 치료 받게 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단속하는 경찰 공무원들이, 압수한 대마초를 피워대는 아이러니도 엿보았다.

 

담배나 술보다 해가 적은 대마에 마약이란 덜미까지 씌우는 이유는 바로 습관성인데,

습관성이라면 술과 담배가 더 하다.  무엇이든 좋으면 계속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요즘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밤낮으로 끌려 다니는 사람들을 보듯,

술이나 담배, 대마초도 끌려 다니지 않고 스스로 끌고 다니면 된다.

필요할 때, 있으면 하고 없으면 구차하게 구걸하지 않았다.

 

술과 대마를 비교한다면, 술은 업 필이고 대마초는 다운 필이라 술처럼 폭력성도 없고 오히려 온순해 진다.

그리고 청각, 미각, 시각, 지각 등 감성적인 부분이 예민해져 집중력이 생긴다.

입맛이 돋아 식욕이 생기고 천식이나 이뇨, 간질, 진통에도 효과가 있어 한약재로서도 유용하다. 

그리고 뛰어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더러는 너무 앞서거나 현실적이지 않을 경우도 있다.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는 등 평범하고 안정적인 일에는 효과적이지만,

대마 본성이 스포츠나 바쁘게 움직이는 활동에는 부적합하다.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다 갑작스런 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뭐든 스스로 길들여 기본과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긴 세월 지켜본 바로는 대마초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아직까지 건재하지만,

술을 좋아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죽었다는 점이다. 술이 더 무섭다는 걸 입증한 사례다.

 

 

 

80년대에는 대마초를 쉽게 구할 수 없어, 자주 피울 수 없었다.

그러다 80년도 중반쯤 동강 댐 건설 논란으로 시끄러울 때, 정선 귤암리에 갔는데,

그 곳 동네는 곳곳이 삼을 키우는 대마 밭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마 재배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삼베용이나 씨앗을 필요로 하는 재배용 삼 잎은 곁가지 없이 키만 크기 때문에, 별 효능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잘못 채취하면 농작물 재배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힌다는 것이다.

그 이후 동강에 관광객들이 몰려들며 지역주민들은 대마농사를 포기하게 되었다.

 

 

 

난, 예전에는 세 가지 경우에 한해서만 대마를 피워왔다.

첫째는 울화가 치밀 때이고, 둘째는 장거리 운전에서 졸음이 올 때이고,

셋째는 좋은 일이 있어 무한한 행복감을 느낄 때였다.

 

첫째, 화가 날 때 대마를 피우게 되면 화를 다스릴 수 있어 좋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화가 수그러들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러니 가족들과의 불화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둘째, 나는 오랜 기간 전국 사찰과 장터를 돌아다녀 상당한 시간을 운전에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장시간 운전에 최고의 적은 졸음이다. 졸음이란 아무 생각 없는 무료함에서 오는데,

대마초를 피우면 무언가 생각에 빠져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안성마춤인 것이다.

운전에 위험하다는 사람도 있으나, 자제력과 침착성이 생겨 더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

단지 옆 좌석의 돌출행동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엉뚱한데 집중력을 뺏겨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행복감을 느낄 때이다. 그 행복함을 오래 유지하려 피우는데, 그 사치스러움을 맛본지가 오래다.

 

 

 

보성에서 길삼용 대마를 수확하고 있다.

 

난, 오랜세월 대마초를 피워왔으나 아직 건강하다.

 

대마초로 인한 신체적 문제점이나 교통사고를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리고 대마초를 사서 피우거나 팔아 본 적도 없다.

대마는 서로 나누어 피우는 깨달음의 풀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긴 세월 나를 지켜 본 아내가 증인이다. 문제가 있었으면 그냥 둘리 있겠는가

 

그런데도 대마를 마약에 포함시켜 강력범으로 처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색하게도 관문이론, 또는 단계론을 내놓고 있다. 즉 대마초를 피우다 더 강한 마약으로 발전해 간다는 말이다.

 

본인의 경험에 의하면 그건 절대 아니라고 단정한다.

포도주 애호가들이 더 취하기 위해 위스키에 빠지지 않는 논리와 같다.

70년대 중반 무렵 우연히 미군에게 얻은 LSD와 친구에게 얻은 필로폰을 각각 한차례씩 투약해 본 적이 있다.

 

LSD에서는 마치 진리를 깨우치듯 초월적인 의식을 경험하며 무섭도록 빠져 들게 하였고,

필로폰은 주사바늘을 빼는 순간 기(氣)가 번쩍 솟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둘 다 무서웠다. 아! 이것이 마약이구나. 한번 맛보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다른 마약에 호기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대마초가 제일 안전하다며 대마초 최고 론을 주장했다.

그리고 대마초를 피워도 스스로 정한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필요성을 느낄 때만 피웠다.

 

이젠 쉬쉬하며 강제할 것이 아니라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하여 일반인들에게 대마나 마약에 대한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시켜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델란드에서는 대마를 오래전부터 합법화하여 관광상품으로 활용했고,

최근 미국의 50개주 중 콜로라도나 워싱턴, 알래스카 등 거의 절반에 가까운 주에서 기호식품이나 의료용으로 대마초를 합법화 했다. 이에 맞추어 ‘뉴욕타임스’에서는 논설위원 전체 명의로 된 사설을 통해 “연방차원의 대마초 합법화 운동”을 선언했다.

오히려 합법화한 콜로라도주에서는 살인사건이 절반이상 줄어드는 등 강력범이 많이 감소하였고, 단속에 따른 예산액 절감과 대마 사업에 의한 세수확대, 그리고 수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다는 통계도 나왔다.

늘어나는 세수 때문에 모두들 합법화 분위기로 가고 있고, 새로운 자원 개발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철학자 채현국선생의 말씀처럼 국가나 법 자체가 민중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지만,

잘 못된 엉터리 법들은 빨리 고쳐야 한다.

잘 못된 것을 알면서도 서로의 이해타산에 물려 애 궂은 국민들만 범죄자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지금도 수많은 대마흡연자들이 마약중독자 취급받아가며 지하에서 가슴 졸이고 있다.

사실상 습관성을 이유로 술이나 담배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면 국가체제가 흔들리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또 그 엄청난 세금은 다 어디서 메우고...

 

결론적으로 대마를 권장하지는 못할지라도 마약이란 올가미에 씌워 대마를 모르는 국민들에게 범죄자로 인식시켜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한 때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만 생기면 만만한 연예인들을 줄줄이 대마올가미에 엮어 여론을 피해가지 않았던가?

 

영화배우 김부선씨의 헌법소원을 기각한 재판관들이 과연 대마초를 얼마나 알며, 소신 껏 하기는 했을까?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고 반 평생을 죄인으로 살게 하는지 모르겠다.

 

이제 잘 못된 것은 모두 바뀌어져야 한다.

우리는 잘 못된 법을 바꿀 권리도 있고, 행복을 누릴 권리도 있다.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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