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사진가 이명동선생을 모시는 자리가 인사동 '양반집'에서 있었다.

이명동선생을 비롯하여 육명심, 한정식, 이완교, 구자호, 유병용, 이기명씨 등

십 여 명이 만나 점심식사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리가 파한 후, 얼큰하게 취하여 육명심선생을 미행했다.

선생께서 인사동 나오시면, 늘 백상사우나에 들려 따라붙은 것이다.

인사동을 찍으며 인사동사람들이 더나드는 목욕탕도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염탐꾼처럼 목욕탕에 잠입해서 옷을 벗고 카메라만 타올에 감아 나갔다.

지나치던 목욕탕 때밀이가 소리친다.

“어~ 빨래 가지고 들어가면 안 됩니다.”

“빨래가 아이고 내 연장이요”했더니 아리숭한 눈길로 쳐다본다.

 

탕 안에 진입해 마치 암살할 요인 찾듯 사방을 훑다 한 쪽 구석에서 샤워하는

육선생을 발견하고는 무조건 카메라를 들이댔다.

아! 그런데 갑작스런 기온차이로 렌즈에 김이서려 조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눈이 동그라진 육선생께서는 얼른 눈치 채고 탕에 몸을 담가버렸다.

눈 닦고 렌즈 닦아 박긴 박았으나 때를 놓쳐버려 빙그레 웃으시는 사진만 박았다.

 

그런데, 그 때부터 목욕탕에 난리가 난 것이다.

손님들은 남의 집 불구경하듯, 쳐다만 보고 있는데,

주인이 난리를 피우며 종로경찰서에 신고 해 버린 것이다.

 

출동한 경찰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였으나 주인은 막무가내다.

다른 손님을 찍지 않았다며 확인시켜주었으나 도통 믿질 않는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경찰관이 ‘일단 경찰서가자’며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지만,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텃밭만 망쳐버린 꼴이 되었다.

 

차후로 오가며 사진을 찍어 얄 텐데, 주인한테 찍혔으니 앞일이 난감했다.

필요하면 주인 양해아래 확실하게 준비 해야하는데, 깽판을 친 것이다.

 

이제 어쩔까? 그놈의 술이 원수다.

몸 팔아서라도 주인에게 와이로(뇌물) 좀 쓸까보다.

때밀이라도 시켜주면 확실하게 밀어 주고, 찍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구멍이 있다 하지 않던가?

 

사진은 눈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돌아봐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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