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2일 오찬 약속으로 아내와 함께 일찍부터 인사동에 나갔다.
대상포진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 이젠 우울증까지 생긴 사진가 한정식선생을 만났는데,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아내와는 동병상련의 심정일게다.
‘여자만’에서 식사하고, 선생의 오피스텔에서 차 마시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건강이야기, 사진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등등..

아내가 ‘허리우드’에서 조경석선생을 만나는 사이 인사동거리를 쏘다녔다.
관광객들로 번잡한 인사동 거리에서 송상욱시인과 고창수시인을 만났다.
오랜만이라 반갑다는 송상욱선생의 손에 끌려 ‘인사동사람들’에서 차도 한 잔했다. 
헤어진 후  심우성선생을 만났고, 통인가게 김완규회장과 세계일보 편완식기자도 만났다.

저녁 무렵에는  김명성시인과 사업가 정기범씨를 거리에서 만났고,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오랜만에 나온 김신용시인을 만났다.
“새를 아세요”(가칭)란 소설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왔다는데,
긴 작업을 마무리한 후련함이야 짐작할 만 했다.
'황야의 무법자'를 연상케 하는 그의 휘바람소리가 말해주었다.

예전에는 술자리에서 흰소리라도 지껄이고 노래를 불러가며 마셨기에

긴 시간 술을 마실 수 있었으나, 요즘은 조용히 마셔서인지 금새 취해 버린다.
조경석, 공윤희, 전은미, 김영길, 유진오, 노광래, 김상현씨 등 많은 분들을 만났으나
몸이 견디지 못해 먼저 줄행랑쳤다.

 

그 이틑 날은 마산에서 서양화가 이강용씨가 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서울만 오면 하는 일 없이 인사동에서 사람 만나느라 바쁘다.
‘서울순대’에 미술평론가 유근오씨와 패션디자이너 손성근씨와

함께 있었으나, 끌고 나간 자동차 핑게로 일찍 들어왔다.

 

정선은 정선대로, 서울은 서울대로 가는 곳마다 할 일이 밀려있다.

당장 출판사 넘길 사진원고 찾는 일이 급하지만 인사동이 가만 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떠도는 유목민마저 사라진다면 인사동이 얼마나 삭막해 질까...

 

 

 

 

 

 

 

 

 

 

 

 

 

 

 

 

 

 

 

 

 

 

 

 

 

 

 

 

 






지난 8월2일 장천아트홀에서 열린 ‘미주 영피아니스트 콘체르트 아벤트’ 에 참석한 인사동 사람들이 공연장 인근의 ‘서초동 연가’에서 맥주 한 잔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음악발전소’를 운영하며 원로음악인이나 재능 있는 신인들을 도와 온 최백호씨가 문화관광부의 지원으로 마포에 ‘뮤직스탕스’라는 공연장을 신축하게 되었다기에 모두들 축하해 주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최백호씨가 ‘효교’에 대한 포교에 나서 함께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으나, 그의 강론을 듣고는 모두들 공감하게 되었답니다.

 

이야기인즉슨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썩거나 불에 타지만, 그 영혼은 어디로 가겠냐?"는 것입니다, 결국 망자가 평소 애착을 가진 자식의 몸으로 들어가 자식들을 보살펴 주니 조상을 잘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없으면 망자의 넋은 구천을 떠돌게 된답니다. 자식들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과잉보호하지만 조상을 거들떠보지 않는 현 세태를 나무라는 이야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에 한 번씩이라도 만나 식사라도 하며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자는데 모두 합의 했고, 신도들이 내야하는 회비 만원씩은 그 날의 회식비로 사용키로 했습니다.

평소 바쁜 스케줄 때문에 자동차를 끌고 다녀 술을 잘 마시지 않던 최백호씨가 이 날은 술을 마셔가며 열변을 토했는데, 아무도 교주에게 반론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답니다.

 

그날 ‘효교’를 믿고 따르기로 한 사람은 김명성, 조문호, 정영신, 임태종, 조경석, 공윤희, 전인미씨 등 열 명이었습니다.

 

 

 

 

 

 

 

 

 

 

 



'인디프레스 서울'(대표:김정대) 개관 기념전으로 열린 구본주, 신학철, 박불똥, 장경호 4인전 개막식이 지난 8월1일 오후6시 무렵, 효자동 전시실에서 열렸다.
아담한 전시장을 대가들의 거작으로 꽉 채운 것도 모자라, 박불똥씨의 작품은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오프닝에 참석한 인사들도 만만찮았다. 좀 늦게 도착해 백기완선생은 만나지 못했지만, 작년에 결혼한 미술평론가 성완경씨와 소설가 공선옥씨 부부를 비롯하여 민미협 그림쟁이들이 총 출동했다. 그러나 많은 지인들이 전시를 축하해 준 건 고맙지만, 가난한 작가들의 뒤풀이에 짐을 지우지나 않았는지 마음이 편치 않다.

구본주의 유작 '칼춤'과 신학철의 '관동대지진'은 이미 보았던 작품이었지만, 장경호씨의 신작은 귀가 번쩍 뜨이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네오록 광고에 소개된 신학철선생의 작품, 풀밭에서 소변보는 여인네 엉덩이가 무척 보고 싶었으나 검열에 걸렸는지 광고에서도 사라지고 전시장에도 걸리지 않았다. 물방아 도는 내력 후속 탄인 모양인데, 선정적이기보다는 오랜 향수를 끌어내는 눈이 번쩍 뜨이는 작품이었다.

참석한 분은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씨 등 출품 작가들을 비롯하여 백기완, 임진택, 성완경, 이강군, 문영태, 김태서, 최석태, 김명성, 조준영, 공선옥, 정영신, 김정대, 황정아, 정유정, 전인미, 배성일씨 등 50여명

 

 

 


 

 


 

 

 


 


 

 

 

 

 

 

 

 

 

 

 

 

 

 

 

 

 

 

 

 

 

 

 

 

 

 

 

 

 

 

 

 

 



모두들 서울을 빠져 나가는 피서철에 서울로 돌아왔다.
전시 오프닝을 비롯한 몇 가지 일로 8월5일까지 체류할 작정이다.

지난 7월31일, 서울에 도착하자 말자 아내와 함께 인사동으로 나갔다.
오랜만이라 갈 곳, 볼 것도 많지만, 김명성씨와의 약속이 있었다.
비에 젖은 촉촉한 인사동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아라아트’에서 김명성씨를 만났다.
그리고 전인미, 김은경씨 등 '아라아트' 직원들과 함께 조계사 뒤편에 있는 생고기집에 들려 소주 한 잔 했다.

그 곳에서 개선장군처럼 등장한 한나라당 간부 김철기씨도 만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유목민'에 들려 전활철, 공윤희, 김대웅씨도 만났다.

 

 

 

 

 

 

 

 

 

 

 

 



강민선생의 시선집 ‘외포리의 갈매기’출간을 축하하는 모임이 지난 7월14일 오후6시부터 인사동 ‘노마드’에서 있었다. 그동안 시인들과의 출판기념회 자리는 몇 차례 있었지만, 인사동유목민 가족들을 위해 특별히 제안했으나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불참한 분이 더러 있었다.

 

함께 하신 분은 강 민선생님을 비롯하여 이행자, 전활철, 장경호, 조경석, 정영신, 이청운, 이승철, 조준영, 김상현, 김명성, 노광래, 공윤희, 권두현, 이명희씨가 참석하여 시집출간을 축하하며 시낭송의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몸이 불편한 이계익선생과 소설가 이단원씨를 노광래씨가 모시고 와 뜻 깊은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홍익대 미술대 회화과 교수로 재직 중인 최인선씨의 ‘미학오디세이 25년’ 초대전 개막식이 지난 5일 오후6시 ‘아라아트’지하4층 전시실에서 있었다.

개막식에는 최인선씨의 지인들과 축하객들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인사동 사람들’로는 아라아트 대표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박인식, 유근오, 최백호, 남궁옥분, 편완식, 김정남, 공윤희, 노광래, 홍성식, 이상철, 편근희, 황예숙씨 등 여러 명이 함께했다.

 

최인선씨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미학오디세이 25년’전은 전무후무한 대규모 전시로 ‘아라아트’ 지하4층부터 지상3층까지 전 7개층 1,200여평의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작 50점을 비롯한 400여점의 전시작들을 통해 25년 동안 진행되어 온 그의 작업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전시를 기획한 소설가 박인식은 전시서문에서 "그가 콜라주하는 오브제는 물체가 아닌 '시간'"이라며 "그는 자신만이 구사해내는 색채들로 인과관계의 경계를 뛰어넘어 신비함으로 빛나는 비개연성의 세계로 망명했다"고 말한다.

이 전시는 8월5일까지 이어진다.

 

 

 

 

 

 

 

 

 

 

 

 

 

 

 

 

 

 

 

 

 

 

 

 

 

 

 

 

 

 

 

 

 

 

 

 

 

 

 

 

 

 

 

 

 

 

 

 

 

 

‘용태형’ 추모식이 열렸던 장례식장은 전국각지의 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밤늦도록 문상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고, 자리를 옮겨가며 술상을 지키는 술꾼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새벽 무렵에는 대부분 곯아떨어지거나 사라졌는데, 신학철사단을 비롯한 최종원, 김명성, 성완경, 정인숙씨 등 10여명만 남아 콩팔칠팔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미 소주와 막걸리는 떨어졌고, 조금 남은 캔 맥주로 간신히 연료를 공급하고 있었다.

나도 의자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났는데, 아마 한 시간 쯤 지난 것 같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함께 마시던 최종원, 김명성, 성완경씨는 보이지 않았고, 호상 김태서씨와 신학철, 박불똥, 장경호씨만 남아 장례식장을 사수하고 있었다.
신학철사단의 용맹은 진작 인사동에서 보아왔던 터지만, 술이면 술, 작품이면 작품, 논쟁이면 논쟁, 그들을 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다음날 일이지만 노제, 화장터, 유골을 안치한 봉원사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이탈하지 않고, 술로 자리를 지킨 그들이다.
늦게는 그들과 헤어져, 김명성씨 일행따라 봉원사 이인섭선생 댁에 술 한 잔 더 하러 갔다. 그런데 돌아오던 길목의 어느 주막에서 술 마시며 논쟁하는 신학철씨와 류연복씨를 다시 발견한 것이다. 정말 대단한 깡다구였다.

이제 민중미술 판의 야전사령관이었던 ‘용태형’이 세상을 떠나, 그 역할을 대신할 인물이 절실하다. 시대적 상황이나 여건이 예전과는 다르지만 정신적 지주가 될 만한 인물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맡을 분이 바로 신학철선생이 아닌가 생각된다.
신학철선생을 제2대 민중미술의 야전사령관으로 모시는 취임 축하연을 인사동에서 한번 열어야겠다.


 




용태형’의 유언대로 유골은 신촌 봉원사에 안치되었다.

한 때 세들어 살았던 봉원사 사가에 대한 추억들이 많았을 것이다.

봉원사 주변 길들을 돌아다니며 오랜 기억 조각들도 찾아보았다.

저돌적인 성격에 상처받았던 생각도, 잔잔한 정에 코 끝이 찡하기도 했다.

 

 

추모회 때는 ‘용태형’의 정확한 나이를 알게 되어, 실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동안 나보다 한 살 많은 것으로 행세하며 항상 동생처럼 대했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도 한 살 적은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같은 입장이던 김정헌씨가 오죽하면 조사 제목을 “야 임마! 용태”를 추도함“

이라 적었겠는가?

 

 

“이젠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은 것이 더 서러운 처지가 되었으니,

그도 다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구나.

가끔 봉원사에 들려 술 한 잔 올릴테니 저승 소식이나 전해주고,

부디 극락왕생을 누리시게나

 

 


 



















                                              옛날 '용태형'이 살았던 봉원사 집이다










                                                아래사진 두 장은 사진가 정영신씨가 찍은 사진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