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호씨의 '미치도록' 전시가 끝나는 5월7일, 아내와 함께 ‘아라아트’로 갔다.
전시 철수를 도와주고 남은 시간을 활용해 인사동 골목을 찍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공윤희씨와 함께 작품을 포장해 댁으로 옮겨드린 후, 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요즘의 인사동 골목이 많이 달라졌다.
구청에서 인사동 골목이나 거리 구석구석에 나무들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 나무 몇 그루가 거리 분위기를 이렇게 바꿀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아라아트’가 있는 인사동11길에서부터 촬영을 시작하려는데,
맞은편에서 강 민선생님과 이도연씨가 걸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이라 무척 반가웠으나, 찍기로 한 골목작업은 끝난 것이다.

강 민선생님은 ‘포도나무집’에서 식사와 반주를 드신 후, 댁에 들어가는 길이셨다.
한 잔만 하자는 말씀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민충걸선생 전시 뒤풀이 때 함께 했던 ‘마중’으로 찾아갔다.

이도연, 강 민선생님과 도토리묵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셨는데,
생각치도 않은 김명성, 공윤희씨가 나타났고 뒤이어 아내와 조경석씨가 찾아 온 것이다.

그러나 오후8시부터 고인이 된 ‘용태형’ 추모식이 있어 오래 지체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장례식장에 가려고 나오는 길에서는 서양화가 문영태씨를 만났고,
서인사마당 주차장에서는 김상현씨도 만났다.

 

 

 

 

 

 

 

 

 

 

 

 




 

2014년 4월30일 오후3시, 연극 ‘레 미제라블’의 리허설을 촬영하기 위해 대학로로 나갔다.
이명희씨의 열연장면들을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오래전부터 약속해 두었으나,

지겹도록 반복되는 연습장면에, 어느 듯 저녁 때가 닥쳐왔다.

아내와의 약속으로 급히 인사동으로 왔는데, 뜻밖에도 ‘아라아트’대표 김명성씨, 소설가 박인식씨,

화가 조경석씨와 마 틴, 국악인 윤혜성씨 등 한꺼번에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툇마루’에서 같이 식사하고 나오는 길에서는 화가 손연칠씨와 감정인 류상동씨를 만난 것이다.

반가움에 ‘노마드’로 안내했는데, 그 자리에서 패션디자이너 손성근씨도 있었다.

인사동은 이래서 좋은 것이다.
약속도 없이 반가운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고, 덤으로 공술까지 마실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자리 저 자리 옮겨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술도 마셨으나,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웠다.

 

이틑 날 새벽일찍 장터로 떠나야 할, 이 장돌뱅이 신세를 어쩌랴...

 

 

 

 

 

 




지난 16일은 모두들 술이 거나하게 취했다.

민충근선생 전시 뒤풀이에서도 많이들 마셨지만, 2차로 간 ‘여자만’에서 진탕 마셨기 때문이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으나, 구중서 선생님의 단골집 ‘불가’에서 

구선생님을 비롯하여 조준영, 김명성, 박구경, 박은주, 전인경씨 등 일곱 명이 이름도 모르는

흑맥주를 홀짝거리며, 거룩한 시 낭송의 시간까지 가졌다.

 

문 닫아야 한다는 종업원의 안달에 일어나긴 했지만,

뭔가 좀 부족했던 김명성씨가 ‘노마드’에서 한 잔만 더 하자는 것이다.

아마 술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서 일게다.

 

구중서, 조준영씨를 떠나보낸 잔당들이 문 닫힌 ‘노마드’를 공략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나중에 술 취한 여성동무들을 남겨두고 온 게, 영 마음에 걸린다.

 

 

 

 

 

 

 

 

 

 

 

 

 

 

 

 

 

 

그동안 좋지 못한 일로 휘말렸던 김명성씨가 다시 인사동으로 돌아왔다.

사흘 동안 경북 청송과 포항 등지의 장터를 떠돌다 돌아오던 지난 11일 오후,
김명성씨의 동생 효성씨로 부터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빨리 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생각에 차안에서 카톡을 날렸지만, 너무 성급했다.
소식을 접한 인사동사람들이 하나같이 전화를 하거나, 인사동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당사자로서는 당장의 업무파악이나 가족들과의 상면이 더 시급했을텐데...

서울 톨게이트에 진입 할 오후8시무렵, 김명성씨로부터 첫 전화를 받았다.
너무 반가워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지인들의 연락을 받아 박인식씨네 “로마네꽁띠”로 간다기에 함께 만나기로 했다. 


한시간 쯤 후에 도착해 보니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채현국, 최혁배, 박인식, 이세희, 강선화, 공윤희, 전인미씨가 모여 반가운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뒤늦게 ‘경북매일’의 최재왕씨와 정기호선생의 부인이신 조경석씨도 나왔다.
근 50일만의 첫 만남이니 얼마나 할 말들이 많았겠나?

사흘 동안의 강행군으로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새벽녘까지 술을 마셔댔으니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내일 강민선생님과의 오찬약속에서 부터 줄줄이 약속을 잡아 놓았으니,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조용한 서울의 새벽길인지라 안심하고 달릴 수는 있었으나, 집에 도착하니 또 다른 일이 벌어져 있었다. 장모님께서 넘어져,

밤새 일어나지도 못하고 방바닥에 주저앉아 계시는 것이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으나, 결국 집을 비우면 않된다는 말이었다. 낮에는 몇 시간씩 간병인이 찾아와 도와주니 괜찮은데, 밤 시간이 항상 문제였다.

다음 날 잠이 들깬 상태에서 혼자 인사동으로 나갔다.
꾸물대다 시간도 늦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안국역을 놓쳐 종로3가에서 걸어가야 했다.
약속장소인 ‘포도나무집’에는 강 민선생님께서 30여분이나 기다리고 계셨다.
5월초순 무렵, 강민선생님의 ‘인사동 아리랑’ 시집이 나온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뒤이어 이행자, 채현국, 이계익선생께서 나오셨으나, 술이 들 깬 상태로 마신 탓인지 금새 취했다.

오후6시 무렵 ‘노마드’로 자리를 옮겼더니 김신용씨와 전활철씨가 있었다.
뒤이어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박인식, 윤재문, 정인경, 정기범, 이명희, 임태종, 권영진,
이청운, 김상현, 노광래, 편근희씨 등 많은 지인들이 나타나 오랜만의 회우를 즐겼다.

김명성씨는 몸도 좋아졌지만,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밀린 일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갈 의지도 엿보였다.
그리고 인사동사람들의 뜨거운 성원에 고마워했다.
보답하는 길은 성공하는 일 뿐이라며, 결코 잊지않겠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 모두를 위해, 다 같이 잔을 듭시다”

 

 

 

 

 

 

 

 

 

 

 

 

 

 

 

 

 

 

 

 

 

 



 

 

 

 

 

 

 

 

 

 

 

 

 

 

 


어려움에 처한 김명씨를 돕기 위해 인사동 예술가들이 발 벗고 나섰습니다.
가난하기 그지없는 예술가들이지만 김명성씨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분들이

하나같이 주머니를 털어 모금운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액수보다는 평소에 가까웠던 지인들의 마음을 모우려 했으나

몇 일만에 모금액이 무려 천만 원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인사동예술가들의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났겠지만,

평소에 김명성씨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며 거두었는가를 알 수 있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사실 인사동에 김명성씨가 마지막 희망입니다.
오랜 동안 인사동이 전통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예술가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톡톡히 해왔습니다.

그러나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전통문화보다는 돈이 앞서는 상업지구로 급변했습니다.

그렇지만 김명성씨는 사재를 털고 남의 돈까지 빌려가며 인사동에 지하4층, 지상5층의 대형 전시문화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인사예술제(가칭)를 비롯하여 인사문화상(가칭) 창설을 준비하는 등, 인사동이 문화예술로 거듭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인사동을 드나드는 많은 문화예술인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아 왔습니다.

주위에서 돈 되는 호텔이나 백화점을 만들지 가망 없는 전시공간이 무어냐고 나무랐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 저런 일로 주변에 그를 시기하고 모략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작은 물방울이 강을 이루듯, 그가 다시 현장에서 일 할 수 있도록 인사동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지난 6일 제일 먼저 소설가 박인식씨가 성금을 기탁함으로서, 심지에 불을 붙였습니다.

정영신, 전인경, 전활철씨 등 가까운 분들의 동참아래 카페 '인사동 연가' 와 카톡으로 소식을 전했지만,

많은 예술가들이 아날로그 세대라 소식을 접하지 못한 분들도 많았습니다.

대부분 어렵게 사는 분들이라 돈 내라는 전화를 못드려 망설이는데, 원로시인 강민선생으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원로선생님들 중에 유일하게 강 민선생만 카페도 보고 카톡도 이용하는 분이셨습니다.

인사동 '포도나무집'으로 나갔더니 기꺼이 동참하겠다며 준비해 온 성금봉투를 주셨습니다.

정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강민 선생의 참여에 힘 입어, 술 한 잔 마신 김에 여기 저기 전화했지요. 

황명걸, 민 영, 채현국, 임재경, 송상욱선생을 비롯하여 서정춘, 이청운씨 등 많은 분들이 동참하겠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포도나무집'에 강 민선생을 만나러, 친구 분들이 갑자기 들어 닥쳤습니다.
소설 쓰시는 김승환씨, 한국화가 홍용선씨, 서양화가 강녹사씨, 진부령미술관장으로 계시는 전석진선생께서 오셔서

함께 술 한 잔 나누었습니다.
꽃피는 4월이 되면 '진부령미술관'에서 홍용선선생께서 전시한다는 말씀에, 노래'봄날은 간다'를 질질 짤며 불렀으니

술만 마시면 정말 눈치코치도 없습니다. 안절부절하는 마누라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포도나무집'을 나오는 길목에서 심우성선생을 만났고, '허리우드' 찻집에서는 채현국, 임재경선생을 만나 성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인사동 거리에서는 중앙일보에서 일하다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긴 사진가 최재영씨도 우연히 만났습니다.

 

모두들 반가웠고, 힘을 실어 준 하루였습니다.

 

 

 

 

 

 

 

 

 

 

 

 

 

 

 

 

 

 

 

 

 

 



-김명성씨로 부터 보내 온 편지-

 

 

 

힘내라! 김명성, 인사동이 뭉친다.

 

인사동 사람들이 김명성씨를 돕기위해 나섰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김명성씨를 돕기 위해 인사동 예술가들의 마음을 모우기로 했습니다.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평소에 그렇게 껴 안고 싶어했던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그 증표로 조그만 정성들을 모우는 모금운동을 펼칩니다.

많고 적음을 떠나 보다 많은 분들의 동참이 필요합니다.

 

-모금에 동참한 분-

 

3월6일 입금하신 분

박인식 : 200,000원 (소설가)

공윤희 : 100,000원 (사업가)

조문호.정영신 : 300,000원 (사진가)

전활철 : 500,000원 (전통공예가)

허미자 : 200,000원 (서양화가)

이인섭 : 100,000원 (불화작가)

전인경 : 200,000원 (서양화가)

강기숙 :  50,000원 (서양화가)

강혜숙 : 100,000원 (서양화가)

소계 : 1,750,000원

 

3월7일 입금하신 분

김언경 : 150,000원 (설치미술가,화가)

이명희 : 100,000원 (연극배우)

이종호 : 300,000원 (사업가)

윤재문 : 200,000원 (방송PD)

신명덕 :   50,000원 (목공예가)

박영현 : 100,000원 (시인,도예가)

조준영 : 100,000원 (시인)

김신용 : 200,000원 (시인)

고선례 : 200,000원 (한국화가)

장소임 : 100,000원 (출판인)

편근희 : 100,000원 (사업가)

노인자 : 100,000원 (사회봉사 활동)

김의권 : 100,000원 (그래픽 디자이너)

이상철 : 100,000원 (문화기획사 대표)

이세희 : 100,000원 (의사)

소계 : 2,000,000원

 

3월8일 입금하신 분

강   민 :  100,000원 (원로 시인)

황명걸 :    50,000원 (원로 시인)

채현국 :  200,000원 (교육사업가)

임재경 :    50,000원 (원로 언론인)

홍인호 :1,000,000원 (서양화가)

유진오 :  100,000원  (회사원)

김병호 :    50,000원 (극단 대표)

김형구 :  100,000원 (출판인)

소계  :  1,650,000원

 

3월9일 입금하신 분

김진규 :   50,000원 (시인)

조경석 :   50,000원 (서양화가)

오세필 : 200,000원 (기와장)

박운호 : 100,000원 (사진가)

박구경 ; 100,000원 (시인)

황종학 : 100,000원 (공무원)

김재식 : 100,000원 (사업가)

소계 :    700,000원

 

3월10일 입금하신 분

최백호 : 500,000원 (가수)

황예숙 : 300,000원 (도예가)

변형주 : 100,000원 (사업가)

김혜련 : 300,000원 (연극연출가)

이경오 : 300,000원 (성악가)

이만주 :  50,000원 (무용평론가)

강선화 : 100,000원 (사업가)

이   성 :1,000,000원 (구청장)

정명수 : 100,000원 (도예가)

소계 :  2,750,000원

 

3월11일 입금하신 분

최혁배 : 500,000원 (변호사)

박중식 : 200,000원 (시인)

소계 : 700,000원​

 

3월12일 입금하신 분

송상욱 :  50,000원 (시인)

서정춘 :  50,000원 (시인)

민   영 : 100,000원 (원로시인)

이청운 :  50,000원 (서양화가)

무세중 :  10,000원 (행위예술가)

임태종 : 500,000원 (건축가)

소 계 :   760,000원

 

3월13일 입금하신 분

강찬모 : 300,000원 (서양화가)

목영태 : 100,000원 (사업가)

노광래 :  50,000원 (갤러리관장)

목영선 : 100,000원 (귀천 주인)

황인숙 : 100,000원 (가정주부)

정채은 : 100,000원 (갤러리관장)

심우성 :   50,000원 (민속학자)

최일순 :   50,000원 (연극배우)

한정식 : 100,000원 (사진가)

소 계 :   950,000원

 

3월14일 입금하신 분

구중관 : 100,000원 (소설가)

이행자 :   50,000원 (시인)

손성근 : 100,000원 (패션디자이너)

소 계 :   250,000원

 

3월15일 입금하신 분

전강호 :   50,000원 (서양화가)

김용문 :  100,000원 (도예가)

손연칠 :1,000,000원 (한국화가)

반민규 :  100,000원 (여행작가)

소 계   :1,250,000원

 

3월16일 입금하신 분

임경숙 :  50,000원 (행위예술가)

정연순 :  50,000원 (가정주부)

소 계   : 100,000원

 

3월17일 입금하신 분

이정옥 : 200,000원 (사업가)

소 계   : 200,000원

 

3월26일 입금하신 분

김가배 : 100,000원 (시인)

유재만 : 300,000원 (사업가)

소 계   : 400,000원

 

4월2일 입금하신 분

주승자 :   50,000원 (동양화가)

소 계       50,000원

 

4월3일 입금하신 분

이미례 : 1,000,000원 (영화감독)

소 계  :  1,000,000원

 

합계 : 14,460,000원

 

지    출 

3월  7일   :      50,000원 (박인식씨 영치금)

3월 27일  : 10,000,000원 (공탁금)

 

차인잔액  :  4,410,000원

 

참여하실분은 아래 계좌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하나은행 (정영신) 593-810222-39907

 010-2955-8926 (정영신)

 

 

 


김명성씨에게 전해 줄게 있어 인사동을 찾았다.
지난 5일 오후9시 무렵의 '노마드'엔 풍기에서 대하소설 쓰는 배평모씨가 왔었고,  

현장스님과 유진오, 정기영씨도 보였다.
안쪽 구석자리에는 김명성씨 혼자 앉아, 일찍 부터 술이 취해 있었다.
주변 사람들로 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문학평론가 구중서선생께서 김명성씨의 시에 대한 평론을 문예지에 쓰셨는데,
그의 시를 극찬하였다는 것이다.

뒤 늦게 술판은 무르익었고, 그 날 술 좀 마셨다.
새벽 세시가 넘어 녹번동 서부감자탕에서 한 잔, 우리 집에서 한 잔하는 것으로 끝냈지만,  

비좁은 방에서 개같이 끼어 자야했다. 

 

“아이구! 속 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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