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이자 빈민운동가인 최인기의 ‘청계천 사람들’ 사진전이 지난 11일부터 ‘갤러리 브레송’에서 개막되었다.




전시된 사진들은 청계천 투쟁의 역사고 최인기의 삶 자체였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노동운동에 불을 붙인 전태일 열사가 떠올랐다.
최인기 역시 카메라를 도구로 가난한 청계천 사람들을 지키려 온몸을 던지고 있었다.




사진들을 돌아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청계천 빈민들 피를 빨아 대통령 자리까지 꿰 찬 도둑놈 이명박의 반들거리는 대갈통을 도끼로 갈기고 싶었고, 오세훈은 밟아 버리고 싶었다.
한 놈은 청계천을 뒤집어 가난한 노점상과 철거민을 내 몰았고, 한 놈은 시민들의 추억과 삶의 공간인 동대문운동장을 허물었다.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설 때마다 죽어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뿐이었다.
그 긴 시간의 긴박한 순간순간을 최인기의 카메라는 놓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본령이 무엇이던가?
약자의 편에서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는데 기여해야 하지 않는가.
그는 카메라를 저항의 도구로 활용했다.
핍박받는 노점상을 대변하며, 그들의 삶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그가 찍은 모든 것은 사람이 우선이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나쁜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삼 년 가까이 지켜보았는데, 최인기씨 처럼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어떻게 돌 콩처럼 착해 빠진 양반이 악바리로 맞서는지 모르겠다.




청계천은 최인기씨가 청소년기를 보낸 고향 같은 곳이다.
아버지는 청계천에 있는 출판사에 다녔고, 어머니는 신 평화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그가 살았던 삼일아파트의 옥상과 복도는 그들의 놀이터였다.




도시를 돈으로 보는 돈 벌레들이 빈민들의 삶은 물론 최인기씨의 유년기 추억마저 송두리째 앗아갔다.
권력에 눈깔이 뒤집혀 청계천을 완전히 갈아엎은 것이다.
그에 맞선 최인기는 더러운 세상을 갈아엎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위한 사회’를 부르짖으며 '기록하는 빈민운동가'로 나선 것이다




원로사진가들이 찍은 오래된 청계천 판자촌 사진들이 지나치며 눈으로 찍은 사진이라면,
노무라 목사의 청계천을 이어받은 그의 사진은 빈민들 속에 들어가 온 몸으로 찍었다.
그 사진들은 청계천이 바뀌는 과정부터 핍박받는 모습까지 하나의 일지처럼 담아 낸 청계천 저항의 역사다.




사진치유자 임종진씨는 최인기의 ‘청계천 사람들’사진집 서문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청계천 사람들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형상들은 아마도 치열한 빈민운동가이자

단호한 어조로 인간의 존엄성을 전하고자하는 최인기의 존재적 의미의 기호이자 발원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예술이라는 미학적 표현의지를 타고 넘어 너나 할 것 없는 인간의 실존적 가치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소소한 이들의 삶 안으로 들어가는 최인기의 시선은 늘 사람이 우선이고 가장 최선이다.

그럼으로 최인기의 사진은 정녕 사람이요 삶이다.“




최인기씨는 “저는 이 사진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불편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편하지 않음을 통해 이 공간에 대한 의미를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합니다”고 말한다.




난, 사진가 보다 빈민운동가로서의 최인기를 더 좋아한다.
난, 사진보다 최인기의 따뜻한 마음을 더 좋아한다.

사진으로 사회를 바꾸려고 싸우는 그 투지를 좋아한다.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20일까지 이어진다.




청계천사람들, 삶과 투쟁의 공간으로서의 청계천
최인기 사진집

펴낸 곳 : 리슨투더시티
270페이지, 가격 35,000원



전시가 개막된 11일 오후6시에 들린 전시장에는 사진인보다 그와 함께 한 분이 더 많았다.
노점상을 비롯하여 ‘민주노련’ 사람들이라 성함을 잘 모른다.



아는 분이라고는 73년부터 76년까지 청계천 사람들을 기록하여 ‘노무라 리포트’를 펴낸 노무라 모토유키,
노점상대표 우종숙씨, ‘빈곤사회연대’ 윤애숙씨, ‘동자동사랑방’ 전도영씨 뿐이고,
사진가로는 김남진관장을 비롯하여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 ‘사진하는 공감아이’ 임종진대표,
사진가 엄상빈, 김문호, 안해룡, 김영호, 이세연, 곽명우, 김 헌, 안미경, 이광숙씨가 고작이다.




노무라 모토유키선생과 임종진, 우종숙씨 등 내빈의 축사와 최인기씨의 인사말을 들은 후

뒤풀이 장소인 ‘충무해물탕’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가지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뒤풀이 비용을 모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뒤풀이 장소에서 최인기씨를 말하는 이규상씨의 열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역시 이규상씨는 술이 한 잔 들어가야 투사적 기질이 나오더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14일 오후6시 무렵, 충무로에 있는 ‘갤러리 브레송’을 찾았다.
김남진 관장과 홈페이지 제작에 따른 의논할 일이 생겼는데,
마침 이윤기씨의 ‘시간을 담다’ 사진전이 마무리되는 날이었다.






얼마 전, 김남진관장이 내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나,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한 게 잘 못이었다.
김남진관장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해, 결국 바쁜사람 고생만 시킨 셈이다.






나 역시 사진전 했던 서문과 작업노트 등 여러가지 기록들을 다시 쳐야 했는데,
돋보기를 치켜세워 독수리 타법으로 토닥거리려니 예삿 일이 아니었다.






15년 전에 홈페이지를 만든 적이 있으나 2-3년 운영하다 그만 둔적도 있다.
효용성이 없는데다 매년 도메인 사용료만 들어가 ‘창예헌’ 카페로 대체한 것이다.
'인사동 유목민'으로 명칭을 바꾸어 인사동 사람들의 소통공간으로 만들었으나 불협화음에 문 닫았다.

 6년 전 ‘인사동 사람들’이란 블로그를 만들어 개인정보 창고로 활용하고 있다. 



 


어차피 시작된 일이라 사진동지 정영신씨와 ‘브레송’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홈페이지 접속방법이나 활용방법을 알아보려면, 정영신씨 도움이 필요해서다.






김남진관장은 5박6일의 필리핀 촬영 여행에서 어제 돌아왔다고 했다.

정영신씨가 관장실에 들어가 설명 듣는 동안 전시장에서 김윤기씨 작품을 다시 보았는데, 
보리 흉년에 빨간 딱지가 무려 열 여섯 점이나 붙어 있었다. 완전 봄 사건이었다.






좀 있으니, 사진가 김문호씨와 이수철, 이주영씨 등 반가운 분들이 여럿 들어왔다.
아마 전시 쫑파티를 겸해 연락한 것 같았다.






어울려 술 한잔하러 갔으나 갈 때마다 어디 갈까? 망설인다.
그토록 음식점이 많지만, 딱 이거다 하는 음식점이 없어서다.
재고 재다 결국 ‘김삼보’로 들어갔는데, 만만한 게 돼지고기였다.






작품이 많이 팔려, 얻어먹는데 부담이 없어 좋았다.
김문호씨는 작가가 덕을 쌓아 작품이 많이 팔렸다고 했다.






나도 덕 좀 쌓으면 좋으련만, 요놈의 주둥이 때문에 되질 않는다.

덕은 커녕 원수만 만들고 있는 셈이다.

팔리지 않을 사진, 전시를 안 하니 팔 걱정은 없다.






한 때는 비싸지 말 것(가격 합리화), 보기 쉬울 것(작품의 대중화), 덕을 쌓을 것(고객 관리)등
삼대 고수레로 침을 튀긴 적도 있으나, 말짱 도루묵이었다.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욕심을 내려놓아 생활보호대상자가 되니 팔자가 늘어졌다.
거지 팔자 상팔자라는 걸 새삼 실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이윤기씨의 빛 그림 사진전 ‘시간을 담다’가 지난 2일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렸다. 





전시된 사진들은 그림처럼 아득한 그리움을 안고 있었다.

싱그러움이 느껴져, 젊디 젊은 사진가의 작업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은 이윤기씨는 칠순을 훌쩍 넘긴 노사진가라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은 유수같이 빠르다.
그의 사진에는 인생무상에 대한 안타까운 그리움이 배어있다.
이윤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흘러가는 그리움의 시간이고 세월이었다.
연분홍 빛 아름다웠던 사랑의 시간도 담겨있고, 힘겹고 암울한 고난의 시간도 담겨있다.
돌이킬 수 없는 억겁의 세월은, 장면 장면마다 그리움이 절절했다.






이윤기씨는 바람에 날려가는 시간과 세월을 붙들어 인화지에 뿌려 놓았다.
얼핏 보면 느린 셔터로 쉽게 찍을 수 있는 이미지로 볼 수도 있으나,
그의 사진에는 깊은 내공이 쌓여있다.
어쩌다 한 두 장이라면 우연성에 기대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아니었다.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형상화하기 위해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찾아낸 기억이다.





그리움의 시간들은 너무 아름다웠다.
불어오는 바람에 그리움이 꽃비처럼 흩날린다.
그렇게, 봄날은 가는 것이다.






사진 평론가 최연하씨는 서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작가가 붙잡고 싶은 십 분의 일초는 그가 사진에서 되찾고 싶었던 시간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근거인 풍경-세계 속으로 들어가, 살아왔고 살아가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겹쳐 운동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특이한 것은 무엇이 어떻게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인 풍경이지만, 시간의 눈들이 분명하게 포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매 순간 세계가 선사하는 빛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작가의 눈빛도 반짝인다. 자유롭고 귀한 몸짓이다.

작가는 아마도 작가 속으로 들어 온 바람과 더불어 ‘바깥’의 바람을 사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바깥(피사체)이 사진가의 내적 원리가 될 수 있음을 이윤기의 빗금 그어진 풍경을 보며 생각한다."






이 전시는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15일까지 열린다.






지난 6일 정오 무렵 ‘갤러리 브레송’을 찾았다.
누구 전시인지 어떤 사진인지도 모른 체, 김남진관장의 부름에 따른 것이다.
마침 밥 먹으러 갔는지, 김남진씨도 전시작가도 없었다.
사진을 돌아보며, 작가 이윤기씨가 누군지 궁금했다.




아름다운 풍경만 찾아다니며 복제하듯 찍어대는
아마추어 사진들에 진저리를 내 온 터라 신선하게 다가왔다.
많은 생각을 끌어내는 사진에서 어렴풋이 작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몽환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에서 젊은 감성이 묻어났다.
전시장에 들어오는 작가를 만나보니, 성함만 기억 못했지, 잘 아는 분이었다.
전시 오프닝마다 숱하게 만나왔고, 술잔도 여러 차례 나누었던 분이 아니던가.
그 분의 사진도 처음 보았는데, 사진으로 이윤기씨를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전시를 돌아 본 후, 사무실에 들어가 김남진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사진가 박옥수씨가 들어왔다.

충무로에서 숱한 세월을 보낸 분이라, 이야기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젊은 시절에는 문선호선생 스튜디오에서 일한 적도 있다며,
문선호선생의 세심한 성격과 사업적 수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금성출판사’와 손잡고 현대미술가100인선 화집을 만들어 돈도 많이 벌었단다.
어느 날 스튜디오에서 누드 모델을 촬영하신 후, 그 이틑 날 갑자기 돌아가셔서
복상사하셨다는 풍문이 돌았는데, 사실이 아니란다.






한 때는 제일 행복한 죽음이 복상사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차피 죽을 것, 황홀하게 마감하고 싶지만 살아남은 사람 생각에 안 될 것 같았다.
이윤기씨 사진처럼, 아름다운 꽃비를 날리고 싶었는데...



사진, 글 / 조문호








































요즘 재미없이 사는 분들이 참 많다.

대부분 가족 중심으로 지내다 보니, 벗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가뭄에 콩 나듯 하다.

만난다 해도 대부분 술로 시간 보내다 헤어질 뿐이다.





마음 통하는 친구 십 여명이 뭉쳐, 봉고차 하나 빌려 타고 전람회 보러 다니는 재미는 어떨까?

다양한 작가들의 좋은 전시들이 지천에 늘려 있는데다, 그것도 우리나라 사람들 좋아하는 공짜가 아니던가?

좋은 나라인지, 착한 작가들인지. 돈 한 푼 받지 않고 보여주니, 황송할 따름이다.





좋은 전시를 엄선하여 하루 일정을 짠다면, 이보다 더 보람된 시간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긴 세월 씨름하여 일궈낸 여러 작가의 작업을 돌아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작품이야기로 시간 보내니,

메마른 감성을 꽃 피울 수 있는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막 판에 술까지 한 잔 곁들인다면 금상첨화 일듯하다.





당장 벗들과 조를 짜서, 서울서 열리는 좋은 전시를 한 번 검색해 보라.





지난 토요일은 전람회를 보기 위해 작심하고 집을 나섰다.

한 동안 두문불출하느라 못 본 전시가 많아 정영신씨 똥차로 한 바퀴 돈 것이다.

벗들과 함께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꿩 대신 닭이라듯 사진 동지 정영신씨와 속닥한 시간을 가졌다.






제일 먼저, 기라성 같은 작가 다섯 명의 전시가 한꺼번에 열리는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로 갔다. 

금보성, 조귀옥, 김영신, 이승철, 이인숙씨 등 각기 다른 색깔의 개성 있는 작품들을 골고루 볼 수 있었는데,

일거양득이 아니라 일거오득인 셈이다.





맨 먼저 이층에서 열리는 금보성 ‘한글’전 부터 들렸다.

금보성씨는 1985년부터 ‘한글’을 주제로 50회의 전시를 가진 속칭 ‘한글작가’다.

금보성 문자예술이 구성주의 작가들과 다른 점은 문자의 구성에 그치지 않고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글자의 뜻에 따른 제각기 다른 소리까지 더해 입체적 조형미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금보성의 작업은 한글이 단순한 도형으로 이루어진 상형문자를 넘어 구체적인 휴머니스트로서의 조형언어가 된다는 점이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절대주의란 비구상적 제작에 의한 새로운 리얼리즘이다‘고 한 로만 오팔카처럼

계3대 발명품 한글을 문자로 예술화시킨 자신의 회화에 개념적 접근을 시도하였으며,

지속적인 실험과 초월적인 작업을 통해 장르와 재료를 초월하여 한글 텍스트와 한글의 정신을

작업으로 추출해내는 최초의 ’문자 리얼리스트‘일 것이다”고 미술평론가 김종근씨가 적고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며 또 하나 놀란 것은 기존의 조용한 전시장 분위기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결시키는 예술의 대중화를 시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온 강온유의 돌잔치를 전시장에서 열었는데, 전시된 한글 작품들이 잔치마당의 장식으로도 더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아마 첫돌을 맞은 아이는 할아버지 나라 문자의 예술적 감성을 일찍부터 접할 계기가 되어 

또 다른 문자예술가로 성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시장 입구에는 금보성작가를 비롯하여 화가 박양진씨 등 여러 명이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잔치 음식을 가져다 먹으라지만, 집에서 밥을 먹고 와 더 먹을 수 없었다,

잔치 구경하랴 작품 구경하랴 바쁜 시간을 보냈는데,

예술이란 고고하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부딪히는 인간적이라는 것을 재인식시켰다.






1층 전시장에는 조귀옥의 ‘야생화’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마침 작가도 만날 수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은 마치 하늘에 풀꽃이 핀 듯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보면 볼수록 심연의 골짜기로 끌어들이는 매혹적인 그림으로, 작가의 시적 감성이 돋보였다.





지하1층에는 ‘하늘을 담은 그릇’을 내 놓은 이인숙씨의 작품과 이승철씨의 ‘제왕수닭’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릇을 그린 이인숙씨의 얌전하고 조용한 붓질은 사물의 내면까지 파고드는 치밀함이 있었다.





그와 반대로 이승철의 거친 붓 자국은 원시성이 꿈틀거렸다.

우직한 건강성을 느끼게 하는 대조적인 작품이었다, 



 


지하2층에서 열리는 김영신씨의 ‘벽과 담’전도 정겹게 다가왔다.

친근하게 묘사된 공간들은 세월의 층위가 쌓인 퇴적층처럼 그리움이 고여 있었다.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다섯 작가 초대전은 오는 28일까지 열린다.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인사동 ‘경인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인미술관' 입구에 버틴 도발적인 여인의 조각상을 훔쳐보며, 침을 질질 흘렸다. 



 


1관에서는 박야일씨의 초현실적인 풍경 ‘into’전이 열렸다.

박야일씨는 일하다 떨어져 하반신을 못 움직이는 큰 사고를 당했는데, 10년 만의 개인전이란다.

그의 투지가 베인 작품이라 예사롭지 않았다.

삶의 무게와 고통 속에 한 줄기 희망의 여운이 드리워진 몽상적 풍경이었다.

다시 세상을 향해 토해내려는 작가의 의지가 농익어, 그 무게감이 느껴졌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전시장이 붐볐으나, 아는 분은 작가 박야일씨와 성기준씨 뿐이었다.


이 전시는 19일까지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라인석씨의 ‘TOUCH'전이 열리는 충무로의 ’갤러리 브레송’으로 갔다.

이 전시는 사진을 이용한 미술이었다.

하기야! 이젠 사진을 활용하는 화가들도 많아져, 사진과 미술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작가 라인석씨가 제작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프린팅 되어 나오는 이미지의 잉크가 마르기 전에 펜이나 손으로 변형시켰다고 한다.





기존 사진과는 다른 새로운 발상이었다.

회화적 터치의 독창성은 높이 살 수 있지만, 이제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기법에 더해 작가의 메시지를 토해내야 할 일이다.


이 전시는 27일까지 열린다.






서울 구경이 아니라, 작품 구경 한 번 잘했다.


사진, 글 / 조문호




























충무로 상권이 을지로를 비롯한 주변지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와 사진을 대표한 충무로였지만, 요즘은 밤만 되면 한산하단다.



 


지난 11일 충무로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김남진씨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술 한잔하자며 630분까지 갤러리로 오라기에, 전시 오프닝이 있는 줄 알았다.



 


전시장에 들렸더니, 박승만, 송석우, 정휘동씨 삼인전이 열렸는데, 작가들은 보이지 않고 반가운 분만 여럿 있었다.

오늘 오프닝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어제였다며 오늘은 술 한 잔 하기 위해 모였단다.




 

먼저 전시된 사진부터 돌아보았다.

박승만씨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사용했던, 사물에 대한 존재 이유를 나름으로 해석하고 있었고,

송석우씨는 살면서 겪는 두려움과 트라우마를 정체성의 키워드로 풀어갔다.

바다를 찍어 화면을 분할시킨 정휘동씨는 삶의 공허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 보였다.

젊은이들의 아픔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공통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진 작업에 고민이 많은 분이나, 매너리즘에 빠진 사진가들은 꼭 한번 볼만한 전시였다.




 

이 날 전시장에 모인 분은 브레송김남진 관장을 비롯하여 비움갤러리김상균씨, ‘꽃피다갤러리 김유리관장 등

충무로에서 사진갤러리를 운영하는 세 분이 모여, 의외로 생각되었다.

그 외에도 눈빛출판사이규상씨와 사진가 김문호, 김영호, 이수철씨도 와 있었다.



 


다들 충무로에 있는 중국집 서동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동관은 오랜만에 갔지만, 20여 년 전에는 자주 들린 단골집이다.

삼성카메라클럽에서 현대사진가회로 바뀌며서 옮겼던 사무실이

지금의 해물탕집인 조방낙지 맞은편에 있었기에 종종 들린 것이다.



 


주인도 그대로였지만, 오래된 집기까지 눈에 익었다. 골동품에 가까운 금성에어컨이 아직까지 붙어 있었다.

모든 게 수시로 바뀌는 세태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오래된 것들은 가게나 물건이나 모두 정겨웠다.



 


요리가 나오기 시작하니 정영신씨도 왔는데, 충무로에서 50여년을 살았다는 손필수씨가 나타났다.

중부거북상조회회장이라 적힌 명함을 돌렸는데, 충무로 상권을 살리기 위해 애쓰시는 분이었다.



 


아마, 김남진씨에게 충무로 사진축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자리를 주선한 것 같았다.

그래서 충무로에서 사진갤러리 운영하는 분이 모두 모인 것 같았다.

사진 인들이 힘을 뭉쳐 충무로에 사진바람을 다시 일으켰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때는 충무로가 사진인들의 메카가 아니었던가?

필름현상에서부터 전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들이 충무로에서 이루어졌는데, 사진이 디지털화되며 사진인들 발길이 점차 줄었다,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반가운 사진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으나, 요즘은 가뭄에 콩나기 수준이다.



201512월 이해선사진상을 수상한 구와바라 시세이선생과 함께한 김한용선생, 오른쪽은 윤주영선생

 


충무로 사진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돌아가신 김한용선생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이 누구인가?

한 평생을 충무로에서 광고사진을 위해 몸 바친 분이다.

선생께서 사용하신 연구소 자체가 우리나라 광고사진의 역사며, 충무로 역사다.



 20147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이명동선생 개인전에서.. 좌로부터 김한용, 정범태, 이명동선생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집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웃으시던 선생의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그러나 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시며 건물이 매각된다는 이야기를 오래전에 들었는데,

김남진씨 말에 의하면, 45억에 팔려 철거되었고, 이미 신축건물 완공이 목전에 있다는 것이다.

예상은 했으나 막상 현실로 닥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20147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이명동선생 개인전에서.. 좌로부터 최봉림, 김한용, 강운구, 이명동, 한정식선생

 


그런데 서동관식사비를 손필수씨가 모두 계산해 버려 부담스러웠다.

그 밥 값을 위해서가 아니라, 충무로 사진축제를 비롯하여 충무로가 다시 사진의 메카로 발돋움하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자리가 파하여 김남진씨가 생맥주 한 잔씩만 더 하자지만 사양했다.

통풍으로 맥주는 못 마시지만, 과음하면 숨이 가빠 가급적 자제하는 편이다.




 

집에 돌아왔으나, 사라진 김한용선생 스튜디오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일찍 서울시에 청원을 넣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상황이 어떻게 진행 되었는지 살펴보려, 이튿날 아침 다시 충무로에 나갔다.





큰 길 가의 건축물은 마무리 중이었고, 선생의 스튜디오가 있던 골목도 마찬가지였다.

꿈의 공장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 곳에 있던 집기나 장식물은 다 어디 갔는지,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김한용선생께서 임종할 무렵에 스튜디오가 있었던 골목길


 

그 곳은 광고사진의 대부이신 김한용 선생께서 60여 년 동안 희망을 키워온 꿈의 공장이며,

우리나라 광고사진의 요람이었다.

선생의 사진 속에는 추억의 스타들과 함께한 추억이 있고, 우리나라 산업 발전사가 담겨있다.

사실, 그 건물은 서울시에서 구입해 광고사진 박물관으로 영구 보존해야 했다.



 


돈 앞에는 역사고 인륜이고 모두 무너지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이제부터라도 사진 인들이 똘똘 뭉쳐야 한다.

사진가들의 권익을 찾는 것은 물론, 우리 사진의 역사는 우리가 지키자.

 

사진, / 조문호

    

















김한용 선생의 모습이 담긴 사진 몇 장을 찿아 보았다.


2016년 5월29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김한용선생께서 운명하신 해 겨울, 충무로 스튜디오를 찾았다.

굳게 닫긴 정문 앞에는 낙엽만 딩굴었는데, 김남진,이규상, 엄상빈씨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정영신


20147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이명동선생 개인전에서..

20147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이명동선생 개인전에서 장사익씨와 환담을 나누는 김한용선생

20133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홍순태선생 개인전에서..

좌로부터 주명덕,강운구,이완교,황규태,홍순태.김한용,구본창,한정식선생

20133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홍순태선생 개인전에서..

김녕만씨가 찍은 사진으로  왼쪽부터 윤세영, 권태균, 김남신, 이완교, 조문호, 강운구,

황규태, 송영숙. 민병헌, 홍순태, 김한용, 주명덕, 한정식, 구본창, 박영숙, 최봉림씨



 




지구 나이가 45억년이다. 그 영겁의 시간 동안 지구의 환경은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변하고 있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인류의 문명은 지구의 종말을 재촉할 뿐이다.

지질학자들은 빙하기가 도래한 후에는 지구도 화성처럼 죽을 것이라고 했다.

이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중심에서 벗어나, 인간 또한 생태계의 일부라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문명의 첨단화로 편리하게 사는 대신 환경오염은 날이 갈수록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그리고 사람 사는 것 또한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성 상실로 몰아가는 문명의 첨단화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기계처럼 살아가는 비정한 현실을 알면서도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중독성에 어쩔 방도가 없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인간의 욕망은 부풀어 올라, 터지기 직전에 있다.



    

 

지난 15일부터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는 김남진씨의 ‘Time Landscape’는 자연의 준엄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

광활한 자연 배경에 끌어들인 조그만 인간의 형상으로, 자연회귀를 바라는 그만의 목소리를 토해내었다.


전시 작가인 김남진씨는 사진가이지만, 다방면에 재능을 가진 팔방미인이다.

기획자이자 갤러리 관장으로 사진 전반에 관한 일을 하지만, 돈 벌이 와는 거리가 멀다.

월말이면 갤러리 임대료 마련하느라 허우적거리지만, 결코 가난의 늪인 사진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의 사진에 대한 열정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사진기획자 답게 사진의 경계도 자유롭게 넘나든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태원의 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선보였으나.

이번에 내놓은 작품은 기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식의 사진이다.

사진이라기보다 자연과 인간을 디지털과 아날로그로 융합시킨 개념미술에 가깝다.



    




배경을 이루는 장면들은 미국 서부의 사막과 협곡을 지나치며 바라본 풍경이라고 한다.

데스밸리를 시작으로 유타 주의 에스컬란티, 브라이스, 캐니언랜즈, 모아브, 아치스와 지온 국립공원에서 만난 지구의 모습은

적게는 수백 만 년 전에서, 수십 억 년 전에 형성된 지구의 모습으로 비쳐졌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낸 형형색색의 암석이 빚어 낸 경관과 여러 겹의 퇴적암층으로 이루어진 협곡지대에서

지구의 깊은 속살을 본다는 경이로움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 풍경을 끌어들여 자연 속에 존재하는 미미한 인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시간의 지층 속에서 과거의 단초를 찾는 고고학자의 상상력처럼, 태고에 존재했을 것 같은 자연의 생명 이미지를 찾아내고자 했다.

광활한 자연을 담은 디지털 사진을 바탕으로, 20여 년 전에 찍은 알몸의 아날로그 필름 이미지를 디지털 스캔 작업을 통해 합성시킨 것이다.

시간과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만의 이미지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가 찍은 자연 풍경 속에는 작은 프레임에 갇혀, 오므리거나 뛰쳐나갈 것 같은 다양한 자세의 알몸이 중첩되어 있는데,

태초로 돌아가려는 부질없는 인간의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원초적인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사진에는 자연 생명 이미지가 세월의 시공을 넘나들며 꿈틀대고 있다.

야성의 자연 속에서 벌이는 인간의 몸짓이 또 다른 시간 풍경을 연출했다.

결국 거대한 자연 속의 인간이란 미미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작가 김남진씨는 “Time Landscape’을 통해 자연에 동화되고 화합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자연적 삶을 나타내면서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자연의 엄준한 힘을 드러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 오프닝은 지난 15일 오후630분에 있었다.

별도의 오프닝 행사도 없이 양재문씨와 김영호씨가 사진전을 갖게 된 동기와

작품성향을 이야기했고, 김남진씨도 마지못해 나와 작가의 변을 풀어놓았다.


전시는 갤러리브레송’(02-2269-2613)에서 오는 30일까지 이어진다.

평일은 오전 1030분부터 오후 630분까지이고, 공휴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그런데, 남의 전시에는 사방팔방으로 연락해 불러 모우는 양반이,

정작, 자신의 전시는 연락을 안 해, 페북 보고 찾아 온 사람뿐이었다.

하기야! 스스로 자기 광고하기도 껄거롭겠지만, 사진가들이 작품 살 형편도 되지 않잖은가?

주위에 사진 좋아하는 컬렉터들에게 작품 추천이나 좀 해주길 바란다.

유명도가 있는 중진작가의 작품(95cm x 140cm 규격) 가격이 300만원이라면 싼 편이다.





그 날 참석한 분은 사진가 김문호, 양재문, 김영호, 이수철, 정영신, 박춘화, 박신흥,

이주영, 권 홍씨 등 20여명 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냥 헤어질 수는 없잖아...

충무로 명문 해물탕집에서 호프집으로 전전하며, 축하주 핑계 삼아 퍼 마셨다



사진, 글 / 조문호





































박춘화의 "홀씨, 빛을 머금다"



지난 토요일은 근육통으로 아픈 다리를 끌고 충무로에 갔다.
한가하게 전시장 돌아다닐 처지가 아니건만, 약속을 마루는 것도 편치 않아서다.
박춘화씨의 ‘홀씨, 빛을 머금다“전은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고,’
김용철의 ’추억으로 간 기차‘는 반도갤러리‘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경의선을 찍은 김용철의 ‘추억 속으로 간 기차’는 제목처럼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했다.
80년대부터 90년대 까지 10년간 한 가지 주제로 기록한 끈기도 대단하지만,

주제를 바라보는 사진가의 시선이나 전시된 사진 프린트 까지 빈틈 없었다.

세월의 무게가 실린 사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했다.

장에 가는 할머니와 연인들, 휴가 나온 군인들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아득한 추억을 불러들였다.



김용철의 ’추억으로 간 기차"



대개의 다큐사진가들이 먼 훗날을 의식하며 찍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김용철씨의 사진을 둘러보며 느낀 생각은 마치 오늘을 내다 본 듯 보였다.

왜냐하면 사진 한 장 한 장에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전을 소개하는 텍스트에 나란히 붙여놓은 승차권도 뒷 받침했다.

사진을 찍기 위했거나, 연애를 걸거나, 직장을 가거나,

기차 탈 때 구입한 승차권을 보관해 둔 것이다. 마치 역사학자처럼...

그 열차표에 찍힌 역명과 요금, 개찰 때 펀치로 찍은 승차권 구멍까지, 그 시절로 되돌렸다.

열차요금도 170원에서 250원 등 도착역에 따라 다양했다.


“그래, 좋은 사진이란 바로 이런거야! 거창한 내용이 아니라 소소한 삶을 일깨우고 잔잔한 감정을 건드리는...”


전시작을 돌아보고 나오며 한 가닥 기대도 가졌다.

"문산역에서 끈긴 경의선이 평화무드에 편승해 신의주까지 가는 날을 생전에 볼 수 있지 않을까?"



박춘화의 "홀씨, 빛을 머금다"



‘갤러리 브레송’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전시장을 지키고 있던 사진가 박춘화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 분과의 첫 만남은 ‘민족사진가협회’ 회원전에서 처음 만났으니, 20년은 족히 된 것 같다.


지난 해에는 ‘닿음 내림’이란 제목 처럼 다소 난해한 전시를 열었고,

이번에 보여주는 전시는 마치 민들레의 생태사진 같은 ‘홀씨, 빛을 머금다’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생태사진이 아니라 홀씨의 외형을 통해 작가의 종교적 사유를 담고 있었다.


김용철씨의 ‘경의선’이 객관적인 사진이라면 박춘화씨의 사진은 철저하게 주관적이다.

작업노트는 물론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아 관객에게 불친절하기도 이를 데 없다.

당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의미를 찾으라는 것이다.


작년에 보여준 작품들은 말라비틀어진 나목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허무주의로 이끌었고,

이번의 ‘홀씨’전은 또 다른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박춘화의 "홀씨, 빛을 머금다"



‘홀씨’전에 등장하는 소재는 대체로 네 가지로 한정되어 있다. 즉 민들레 홀씨와 해, 그리고 십자가와 나비다.

홍순원 목사의 말처럼, 해는 하나님이요 십자가는 예수, 나비는 부활을 뜻할게다.

홀씨는 바람타고 자유로이 날아가 곳곳에 전파되는 성령이요.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생명을 의미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차라리 몇 장 사진으로 크게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그리고 희망을 상징하는 대부분의 홀씨가 어둡게 묘사되어 있었다. 지옥도 같은 오늘의 현실을 말하는 것일까?

아무튼 많은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사진이다.





박춘화 “홀씨, 빛을 머금다“전은 8일까지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리고,

김용철의 ”추억으로 간 기차“는 14일까지 ‘반도갤러리”에서 열린다.



그리고 ‘눈빛출판사’에서 김용철의 ‘경의선’ 사진집도 나왔다.

132쪽에 100여점 실린 사진집 가격은 20,000원이다.




 
전시장에서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다. 몸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일거리를 만들지 않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약속도 술만 한 잔 들어가면 사정없이 무너진다. 어떻게 술만 들어가면 그렇게 용감해 질 수 있을까?

그래서 요즘 찍은 사진들은 대부분 음주사진이다.






이날 저녁에는 전시작가 박춘화씨를 비롯하여 ‘브레송’의 김남진관장, 사진가 김영호씨가 어울려

충무로 해물탕(옛 조방낙지)에서 한 잔 했다.


그 넓은 가게에 손님이라고는 우리 뿐 이었는데, 날씨가 더워 그런지 요즘 장사 되는 집이 별로없다.

그런데, 환장하겠더라. 나보다 더 잘생긴 문호가 아니라 문어가 안주로 나왔는데, 

문어 킬러 김남진씨와 김영호씨 한 테 문어 좆 돼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김동진, 문진우, 정남준의 다른 시선, 28일까지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려  


2018년 07월 25일 (수) 17:32:16 조문호 사진가 press@sctoday.co.kr



이 무슨 날벼락인가? 전시리뷰를 작성하려 컴퓨터를 열어보니, 노희찬 의원 자살 소식이 떴다. 눈을 의심했으나,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현실이었다.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의 한사람으로 우리나라에 그만한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있더냐?

지난 일요일은 여야 원내대표 다섯 명을 싸잡아 욕하기도 했다.

미국을 방문한 원내대표들이 워싱턴DC 의사당 앞에서 연예인들처럼 뜀박질하는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연출시킨 사진기자 탓으로, 여기며 잘 다녀오기만 바랬는데, 어찌 이런 일이 생겼더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온 종일 밖에 나가 공원을 싸돌아다녔으나, 도저히 슬픔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어찌 좋은 사람은 먼저 데려가고, 나쁜 놈들이 잘살게 할 수 있는가? 세상을 원망하며 분노했으나, 아무 소용없었다.

난 노무현 전대통령이나 노회찬씨를 정치인으로 보지 않고 지도자로 본다.

정치하는 장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기에, 인간적으로 가슴이 따뜻한 그들은 그러질 못한다.

이제 그 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이 기회에 정치자금법의 대수술과 함께 정치개혁을 이루어 내야 한다.

슬픔은 뒤로하고 우리 모두 냉정을 찾자.


당신이 추구해온 가치가 꼭 실현되길 바라며,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 <부산사견록> 전시장에서 왼쪽부터 정남준, 문진우, 김동준 (사진=조문호)



‘부산 사(思)견록’전이 지난 20일 충무로 ‘갤러리브레송’에서 개막되었다.

부산의 중견 사진가 김동준, 문진우, 정남준씨 등 세 사람이 각기 다른 생각의 시선으로 바라 본 부산이다.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범5동 매축지의 골목풍경을 찍은 문진우의 ‘매축지’는 마치 죽음의 그림자처럼 짙은 어둠이 깔려 있다.

정남준의 ‘영도 수리조선소’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노동의 의미을 일깨운다.

삶의 본질을 비틀지 않고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김동진의 ‘해운대’는 소외, 외면, 박탈, 욕망, 갈등 등 사회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자기만의 목소리로 기록했다.

각기 다른 삼색의 ‘부산사견록“은‘갤러리 브레송’ 3-3시리즈 두 번째 기획전이다.



    


▲ 사진-정남준



‘부산사견록’이란 제목 차체가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추진한 '부산참견錄을 떠올리게 한다.

'부산참견錄'은 매년 중견사진가 한 명을 선정해 부산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개인적 친분에 의한 작가선정으로 결과가 들죽 날 죽 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서 태어나고 자란 부산의 사진가가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는 사실은 지역작가들의 소외감을 살 수도 있지만,

자칫 뿌리 없는 사진이 될 수도 있다.



    

▲ 사진-김동진



때로는 외지인의 낯선 시선이 필요할지 모르나 바닥에 뿌리내린 자의 익숙한 눈빛에 따르지 못한다.

문진우의 ,매축지의 소시민들과 해변에서 잡아 낸 김동진의 부조리한 장면,

정남준이 찍은 조선소 노동자의 정면 사진은 또 다른 부산의 모습이다.

각기 사진들이 갖는 의미나 우열은 풀이하는 바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일단은 ‘부산참견록’을 의식한 전시라는 느낌도 든다.

전시 기획자는 사견록의 ‘사’자가 생각 사(思)자라 했다.

생각하고 보고 기록한다는 의미로 세 사람의 작품 성격을 한 마디로 나타내고 있다.



    

▲ 사진-문진우



“문진우의 사진은 부산의 아주 오래된 마을, 아직도 그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매축지라는 장소를 기록한 것이다. 문진우가 기록한 그 장소성은 사람이 이 땅에서 추방되어야 하는 슬픔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그림자 안에 있거나 온전치 않은 형태로 나타난다. 사진가의 슬픔이 배어 있으니 슬픔으로 읽어내지 않을 도리가 없지만 그 읽기는 과학적 읽기가 아닌 문학적 읽기다. 정남준은 노동자의 삶을 담았다. 인간은 일 하는 기계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임을 말하는 전형적인 사회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노동이 정당하게 인정되지 않은 이 세상에서 사는 노동자의 모습을 어둡게 그리지 않은 것은 역설적이거나 그들이 세계의 주체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김동진의 사진은 역사 인식이 강한 사진이다. 세상은 일반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게 아니고 개별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보편이란 과학성을 숭모하다 보니 사람이 소외되고 세계가 비정상이 되어 감을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다른 이들은 세계를 그렇게 보지만 나는 세계를 이렇게 본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의 사진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진의 문법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은 바로 그런 그의 역사 인식 때문이다.”고 사진비평가 아광수교수가 서문에 적고 있다.

이 전시는 28일까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02-2269-2613)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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