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전북 완주로 보름 대목장 찍으러 가는 정영신씨를 따라 나섰다.
그 날은 인사동 ‘통인갤러리’에서 김용문씨 막사발 전이 개막되는 날이지만,
그 보다 문 닫는 삼례 ‘세계막사발미술관’이 더 궁금해서다.






삼례 역사를 개조하여 개관한 ‘세계막사발미술관’은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문전에 흩어져 있는 우편물에는 먼지만 수북이 쌓여있고,
건물 입구에 세워진 막사발 조형물과 도공을 기다리는 장작가마만 반겼다.






주변에 있는 주민에게 '세계막사발미술관'이 문 닫게 된 이유를 물어 보았다.
“지역 텃세에 쫓겨 난거지요. 단체장이 바뀌면 이전 업적을 뒤집는 것도 문제고요.”
그렇다면, 맞은편에 있는 ‘삼례문화예술촌’은 문제가 없냐고 물었더니,
‘막사발은 미운털이 박혔던지, 아니면 그 자리를 탐내는 모함이 있었던 게 아니겠냐“는 것이다.





짐작은 했지만, 어이가 없었다.
우리문화의 가치도 모르는 사람들이 '세계막사발박물관'을 유치한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문제는 관청의 담당부서에 전문가가 없다는 점과 좀 알만하면 다른 부서로 옮기는 조직의 현실이었다. 

다들 제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다.






나선 김에 '삼례문화예술촌'도 둘러보았다.
평일인데도 관람객이 더러 있었는데, 특히 농협창고를 개조한 미술관이 인상적이었다.
삼례양곡창고는 일본 놈들이 양곡을 수탈해 간 대표적 저장고가 아니던가.
삼레역 철도를 이용하여 군산으로 양곡을 실어 나르는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오래된 건물을 허물어 무조건 토목공사부터 벌여 뒷돈이나 챙기는 현실에,
역사적인 장소를 보존해 문화공간으로 활용한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모모미술관’을 비롯하여 ‘김상림목공소’, ‘책공방’ 등 여러 곳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며 삼례장에도 한 번 들려 보았더니, 몇 년 전에 본 장터의 모습은 오 간데 없었다.
오일장이 아니라 상설시장으로 바뀌었는데, 신축된 상가 건물들이 낯설기 짝이 없었다.
난, 오일장 자체를 포기한지 오래지만, 낙심한 정영신씨의 표정이 안 서러웠다.






지난 토요일엔 김용문씨 막사발 전시가 열리는 인사동 ‘통인갤러리’에 들렸는데,
마침 전시 작가인 김용문씨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터키에서 만든 막사발을 서울로 옮겨 왔다는데, 한 점 밖에 파손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용문 막사발 특유의 투박한 질감이나 다채로운 빛깔이 매혹적이었다.





한 점에 15만원에서 최고 30만원까지 구분되어 있었지만, 그 정도면 싼 편이다.
한 평생 막사발에 바친 도공의 작품을 어디에서 그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겠는가?






틈틈이 그려 온 묵화도 걸렸는데. 도공의 그림 솜씨도 보통은 아니었다.
긴 세월 익혀 온 옹기의 지두문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도공에서 화가로 전업하지 않을가 걱정되더라.

돈 안 되는 막사발보다는 그림 값이 더 비싸기 때문이다.






폐관 직전에 있는 삼례 ‘세계막사발미술관’을 둘러 본 이야기를 전해 주기도 했는데,
어느 지역에서 옮겨가겠다는 제안이 들어 와 협의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들었다.



정영신사진



부디 곡마단처럼 떠도는 막사발박물관이 아니라,
영구히 못 박을 수 있는 막사발 박물관으로 자리 잡길 기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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