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미없이 사는 분들이 참 많다.

대부분 가족 중심으로 지내다 보니, 벗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가뭄에 콩 나듯 하다.

만난다 해도 대부분 술로 시간 보내다 헤어질 뿐이다.





마음 통하는 친구 십 여명이 뭉쳐, 봉고차 하나 빌려 타고 전람회 보러 다니는 재미는 어떨까?

다양한 작가들의 좋은 전시들이 지천에 늘려 있는데다, 그것도 우리나라 사람들 좋아하는 공짜가 아니던가?

좋은 나라인지, 착한 작가들인지. 돈 한 푼 받지 않고 보여주니, 황송할 따름이다.





좋은 전시를 엄선하여 하루 일정을 짠다면, 이보다 더 보람된 시간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긴 세월 씨름하여 일궈낸 여러 작가의 작업을 돌아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작품이야기로 시간 보내니,

메마른 감성을 꽃 피울 수 있는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막 판에 술까지 한 잔 곁들인다면 금상첨화 일듯하다.





당장 벗들과 조를 짜서, 서울서 열리는 좋은 전시를 한 번 검색해 보라.





지난 토요일은 전람회를 보기 위해 작심하고 집을 나섰다.

한 동안 두문불출하느라 못 본 전시가 많아 정영신씨 똥차로 한 바퀴 돈 것이다.

벗들과 함께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꿩 대신 닭이라듯 사진 동지 정영신씨와 속닥한 시간을 가졌다.






제일 먼저, 기라성 같은 작가 다섯 명의 전시가 한꺼번에 열리는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로 갔다. 

금보성, 조귀옥, 김영신, 이승철, 이인숙씨 등 각기 다른 색깔의 개성 있는 작품들을 골고루 볼 수 있었는데,

일거양득이 아니라 일거오득인 셈이다.





맨 먼저 이층에서 열리는 금보성 ‘한글’전 부터 들렸다.

금보성씨는 1985년부터 ‘한글’을 주제로 50회의 전시를 가진 속칭 ‘한글작가’다.

금보성 문자예술이 구성주의 작가들과 다른 점은 문자의 구성에 그치지 않고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글자의 뜻에 따른 제각기 다른 소리까지 더해 입체적 조형미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금보성의 작업은 한글이 단순한 도형으로 이루어진 상형문자를 넘어 구체적인 휴머니스트로서의 조형언어가 된다는 점이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절대주의란 비구상적 제작에 의한 새로운 리얼리즘이다‘고 한 로만 오팔카처럼

계3대 발명품 한글을 문자로 예술화시킨 자신의 회화에 개념적 접근을 시도하였으며,

지속적인 실험과 초월적인 작업을 통해 장르와 재료를 초월하여 한글 텍스트와 한글의 정신을

작업으로 추출해내는 최초의 ’문자 리얼리스트‘일 것이다”고 미술평론가 김종근씨가 적고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며 또 하나 놀란 것은 기존의 조용한 전시장 분위기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결시키는 예술의 대중화를 시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온 강온유의 돌잔치를 전시장에서 열었는데, 전시된 한글 작품들이 잔치마당의 장식으로도 더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아마 첫돌을 맞은 아이는 할아버지 나라 문자의 예술적 감성을 일찍부터 접할 계기가 되어 

또 다른 문자예술가로 성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시장 입구에는 금보성작가를 비롯하여 화가 박양진씨 등 여러 명이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잔치 음식을 가져다 먹으라지만, 집에서 밥을 먹고 와 더 먹을 수 없었다,

잔치 구경하랴 작품 구경하랴 바쁜 시간을 보냈는데,

예술이란 고고하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부딪히는 인간적이라는 것을 재인식시켰다.






1층 전시장에는 조귀옥의 ‘야생화’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마침 작가도 만날 수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은 마치 하늘에 풀꽃이 핀 듯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보면 볼수록 심연의 골짜기로 끌어들이는 매혹적인 그림으로, 작가의 시적 감성이 돋보였다.





지하1층에는 ‘하늘을 담은 그릇’을 내 놓은 이인숙씨의 작품과 이승철씨의 ‘제왕수닭’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릇을 그린 이인숙씨의 얌전하고 조용한 붓질은 사물의 내면까지 파고드는 치밀함이 있었다.





그와 반대로 이승철의 거친 붓 자국은 원시성이 꿈틀거렸다.

우직한 건강성을 느끼게 하는 대조적인 작품이었다, 



 


지하2층에서 열리는 김영신씨의 ‘벽과 담’전도 정겹게 다가왔다.

친근하게 묘사된 공간들은 세월의 층위가 쌓인 퇴적층처럼 그리움이 고여 있었다.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다섯 작가 초대전은 오는 28일까지 열린다.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인사동 ‘경인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인미술관' 입구에 버틴 도발적인 여인의 조각상을 훔쳐보며, 침을 질질 흘렸다. 



 


1관에서는 박야일씨의 초현실적인 풍경 ‘into’전이 열렸다.

박야일씨는 일하다 떨어져 하반신을 못 움직이는 큰 사고를 당했는데, 10년 만의 개인전이란다.

그의 투지가 베인 작품이라 예사롭지 않았다.

삶의 무게와 고통 속에 한 줄기 희망의 여운이 드리워진 몽상적 풍경이었다.

다시 세상을 향해 토해내려는 작가의 의지가 농익어, 그 무게감이 느껴졌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전시장이 붐볐으나, 아는 분은 작가 박야일씨와 성기준씨 뿐이었다.


이 전시는 19일까지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라인석씨의 ‘TOUCH'전이 열리는 충무로의 ’갤러리 브레송’으로 갔다.

이 전시는 사진을 이용한 미술이었다.

하기야! 이젠 사진을 활용하는 화가들도 많아져, 사진과 미술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작가 라인석씨가 제작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프린팅 되어 나오는 이미지의 잉크가 마르기 전에 펜이나 손으로 변형시켰다고 한다.





기존 사진과는 다른 새로운 발상이었다.

회화적 터치의 독창성은 높이 살 수 있지만, 이제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기법에 더해 작가의 메시지를 토해내야 할 일이다.


이 전시는 27일까지 열린다.






서울 구경이 아니라, 작품 구경 한 번 잘했다.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