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부터 쥐띠부인과 박광호



불운의 화가 박광호가 불쌍하다.

한 평생 가난하게 살다 희귀병에 걸렸는데, 쥐띠부인을 만나며 마음 고생이 너무 심했다.

그 불 같은 성격에 다 참고 견디며, 아들 둘 데리고 얼마나 힘들게 살았던가?

그런데, 박광호가 요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박광호작 [지구촌 영상문학 카페에서 스크랩]



그는 앙상한 생선뼈를 그려 온 화가로, 만난 지 40년이 된 동생 같은 후배다.

생명이 도려내 진 물고기 뼈를 통해 인간의 가학성과 소외문제로 절규했으나,

때로는 꽃이나 새 같은 서정적인 내면 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박광호작 [꽈꼴다원 카페에서 스크랩]



물고기 뼈로 그 만의 조형언어를 그려 낸 그림들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은 작업이다.

물고기 뼈를 통해 소외된 자들의 고통을 담아왔는데, 그의 초창기 그림들은 너무 처절했다.



박광호작 [유카리화랑 카페에서 스크랩]



지금은 없어진 인사동 ‘실내악’에 걸린 그림 한 점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외상 술값으로 그려 준 그 그림은 빈 접시에 앙상한 생선뼈만 그렸는데, 마치 불행한 박광호 자화상 같았다.

그런데, 그 이후 그림부터 상형문자처럼 조형화, 도식화되어 아쉬운 감도 들었다,



박광호작 [숲속의 음악세상 카페에서 스크랩]




그와의 인연은 70년대 부산 남포동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꾸려가던 ‘한마당’이란 국악주점 단골로 드나들 때, 얽힌 사연이 만만찮다.

허구한 날 돈 없이 마시고는, 그 자리에 엎드려 잤다.

그는 술만 마시면 끝장을 보는 체질이라 같이 자기도 여러차례 잤다,

사진에 미쳐 다 말아 먹고, 서울 올라오며 한 동안 박광호를 잊고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인사동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는데,

시국사범으로 광주교도소에서 일 년 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다.



박광호작 [꽈꼴다원 카페에서 스크랩]




그 때부터 그와의 인연이 다시 이어졌다. 그를 볼 때마다 고난받는 예수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쥐띠부인을 만난 후로는 개봉동과 강메, 행신동으로 옮겨 다녔는데, 사는 게 순탄치 않았다.

개봉동 집 부근에 카페를 운영할 때는 가게에 불을 지러기도 했다. 

강메에서는 철거될 빈집에 들어가 2년가량 살았는데, 억새풀이 어우러져 분위기는 좋았다.

그런데, 거기서도 불을 질러, 사는 꼴을 가까이서 안보니 속은 편했다.

뒤늦게 찾아가 타다 남은 작품을 찍기도 했는데, 그의 강직한 성격은 아무도 못 말린다.




박광호작 [유카리화랑 카페에서 스크랩]




그 이후 다행히 행신동 임대주택에 살게되어 잘 됐다고 좋아했는데,

그 때부터 근이양증이란 희귀병이 찾아와 앉은뱅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쥐띠부인 정신병까지 생겨 불운이 겹친 것이다.

술만 마시면 넘치는 쥐띠부인의 극성스러운 성격에 너무 힘들어 했다.



1993년 의정부, 천상병선생  장례식장에서, 좌로부터 세번째가 박광호다



그래도 가끔 술을 사들고 행신동 아파트로 찾아 갔으나,  쥐띠부인 못 마시게 하려고 박광호가 술을 끊어버렸다.

때로는 쥐띠부인의 정신병 증세가 심해져 병원에 입원시키기도 했는데,

일어서지도 못하는 장애인이  밥 해먹는다는 것을 한 번 생각해보라.




오른쪽이 박광호며 안 쪽에 김용문씨도 보인다. 1990년 인사동 여관방에서,..



어느 날 그의 집에 가 보니, 작품 중에 별난 작품이 한 점 눈에 띄었다.

전면에 까마귀 한 마리가 버둥대는 형상을 크로즈 업 하였는데, 왠지 불길했다.

평소 그림과는 달라 유심히 쳐다보았더니, “형! 그 그림 맘에 들면 가져가”라며 싸 주었다.



2011년 천상병선생 의정부 묘지에서, 좌측 전강호씨와 차안은 박광호씨



남의 작품을 탐내거나 손 벌린 적이 한 번도 없으나, 그의 성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오래 전 신세진 게 마음이 걸려 작품이라도 한 점 주고 싶은 것 같아 그냥 받아왔다.

그 그림을 정선에 가져다 놓은 지가 벌써 20여 년이 되었는데,

그림만 보면 불길한 예감이 들어 한 번도 벽에 걸지 못하고 모퉁이에 세워 두었다.

불길한 예감에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버릴 수도 없었다.

좌우지간, 그 그림을 갖다놓은 뒤 부터 풀리는 일이 없었다.



정선 만지산 작업실 모서리에 세워 둔 박광호작품



2013년 10월,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남극과 북극을 오가다’란 글을 올리며

만지산 작업실 일부분을 찍은 위의 사진을 올렸는데, 아마 그 그림을 알아 본 듯했다.

마치 악의 그림 같은 걸 뒤늦게 보았으니, 신들린 여자 눈에는 꽂혔는지 모르겠다.

작품이 탐나면 그냥 필요하다며 달라하지, 왜 병문안 핑계로 미친 척 쇼를 하냐?



2014, 박광호



한 동안은 박광호가 안부 전화를 걸어 왔으나, 일 년 전부터 소식이 끊겨 버렸다.

‘쥐띠부인’이란 별명으로 인터넷에 들락거리며 신이 내린 무당이라는 등

여기 저기 휘젓고 다녀 아예 소통 자체를 끊어버렸다.

안부를 묻고 싶어도, 극성스러운 그녀와 말 섞기조차 싫었다.



병원에 입원 중에 참석했던, 일산에서 열린 단체전에서 찍은 사진으로 뒤에는 아들이다.



뒤늦게 요양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화가 전강호씨로 부터 전해 들었다.

인사동 ‘유목민’ 모임에서 함께 병문안 가자는 이야기도 했으나,

환자가 목에 호스를 꽂아 통화를 할 수 없는데다, 아무도 요양원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쥐띠부인의 극성스럽고 악랄한 처세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멀어져 버린 것이다.

다들 쥐띠부인을 만나는 것은 물론, 통화조차 꺼려해 미루어 왔다.



2003년 명동성당에서 열린 박광호전 개막식에서, 그 때만 해도 많은 벗들이 모였다,



늘 마음의 짐이 되어 기회만 기다렸는데,

느닷없이 ‘쥐뛰부인‘으로 부터 놀라 자빠 질 문자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조문호, 박광호가 1년간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데 전화도 없고 병문안도 오지 않는 게 도리냐?

박광호가 그린 세발까마귀 그림 아래 주소로 보내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1동 샘터마을 222동 404호, 바로 부쳐라”



2013, 인사동 ;아라아트'개관 전에서



그 불길한 그림을 돌려달라니 반갑기도 하지만,

평소에 '오라버니~'라고 아양 떨며 꼬리 치던 여자가, 손 위 사람에게 보낸 막말 메시지에 속이 뒤집혔다.

전화가 계속 울렸으나 받게되면 쌍욕부터 튀어 나올 것 같아 참고 있는데, 두 번째 메시지가 왔다.

‘너 내 전화 좋은 말로 할 때 받어!’

결국 연결 되지 않으니, 정영신씨께 전화해, 나더러 개 새끼라고 욕을 해대며,

그 그림은 짓게 될 박광호박물관에 들어 갈 작품이라는 등 헛소리를 해대며, 빨리 보내라는 것이다.

그렇게 막말할 군번도 아니지만, 너무 돌변스러운 행동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막막했다.



녹번동 '풍년식당'에서 정영신, 조준영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침 ‘인사동 사람들’ 맴버인 조준영시인이 녹번동으로 온다기에 함께 자리했다.

정영신씨 집을 방문해 인근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갔는데, 또 다시 메시지가 온 것이다.

“너 내가 어물 적 넘어갈 줄 알면 큰코다쳐! 좋은 말 할 때 박광호 세발 까마귀그림 택배로 부쳐!“





조준영시인은 쥐띠부인을 본 적이 있어, 사연을 설명하며 전화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메시지를 본 조준영씨가 “그 그림 보내 줘 버려요”라고 잘라 말했지만, 그렇게 간단히 처리할 문제는 아니었다.

이젠 행동을 제지하는 남편마져 병석에 누워 꼼짝할 수 없으니,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듯하다. 

지리산으로 내려 간 박한웅씨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도 여럿 곤욕을 치루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더나들며 인사동 소식은 물론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훤히 꿰고 있었는데,

병문안 못 간 것에 화가 났다면, 내가 입원하거나 길흉사가 있을 땐,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나?

그리고 메시지를 잘도 보내면서 박광호가 입원했다는 메시지는 보낼 수 없었나?

순리대로 정중히 메시지를 보냈다면, 당장 정선 갈 수야 없지만, '동강할미꽃 축제' 때 까지만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2014 '아람누리미술관'에서 열린 '일산미술회' 단체전에서....



이제 박광호와의 인연을 끊던지, 이번 기회에 불운의 씨앗을 불태우던지, 결정해야 겠다.



“‘쥐띠부인에게 전하니, 단단히 새겨들어라.

오는 3월 하순 정선 귤암리에서 열리는 동강할미꽃 축제가 끝나는 날,

그 불길한 까마귀 그림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태울 것이다,

그 그림이 필요하다면, 태우기 전에 찾아와 정중히 사과하면 주겠다.

그렇지만 액운을 다시 끌고 가니, 박광호와의 인연은 끝이다.

그 대신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 전시가 끝난 2007년도에 갖다 준, 사진작품을 가져오라.

액운의 까마귀 그림대신, 그 사진액자를 태우며, 살아서의 인연을 끝내겠다.“



박광호, 2014 '아람누리미술관'에서 열린 '일산미술회' 단체전에서



“광호야! 미안하다.

그동안 참고 산다고 욕 봤다. 쥐띠부인 없는 저승에서 만나자.”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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