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시인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2016∼2017년 겨울, 노시인은 촛불을 들고 매주 거리에 나왔다.

함께 나온 이들 중 제일 나이가 많을 것이라고 웃으면서 그동안 시인임에도
사회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치지 못한 죄책감을 조금씩 덜어냈다.

'지난해 겨울의 이야기다 / "머릿수나 채워야지." / 그때 배추와 나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만나 / 광장으로 갔다 / 그냥 집에서 죽치고 있으면 뭔가 죄짓는 것 같고 / 피가 끓어서 광장으로 나갔다 / 이윽고 켜지는 촛불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 (…) / 밖에서는 다시 촛불의 열기가 올랐는지 / 백기완 작시의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광장에서' 부분)

1962년 '자유문학'에 '노래'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래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잔잔한 창작 활동을 한 시단 원로 강민 시인의 시선집 '백두에 머리를 두고'(창비)가 출간됐다.





시인은 문단에 발을 들인 지 30년 만에 첫 시집을 냈고, 시력 57년 동안 단지 네 권의 시집을 펴냈을 뿐이지만 '걸어 다니는 한국문단사'라 불릴 만큼 문단의 산증인으로서 문학의 삶을 살아왔다.

그의 시집 4권 중 94편을 가려 뽑고 신작 시 4편을 더해 완성된 이 시선집에는 혼돈의 시대를 힘겹게 산 시인의 미로 같은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 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군사 정권, 최근 촛불 정국까지 노시인은 80여년을 살아오며 몸소 겪은 삶의 애환과 시대의 고통을 가슴에 안아 들고 자기만의 목소리로 노래했다.

늘 밑바닥을 견뎌온 그의 시에는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사람도 생생히 눈앞에 그려볼 정도의 치열한 시대 인식과 역사의식이 담겨 있다.

'요란한 불자동차 소리 나더니 / 깃발, 옷가지, 손수건 따위를 흔들며 소리치는 / 신문팔이, 구두닦이, 막노동자, 노점상, 지게꾼 같은 / 누추한 몰골의 젊은이들을 뒤칸에 잔뜩 태운 소방차가 와 멎었다 / (…) // 시내 곳곳에서 함성이 일고 / 저녁 어스름이 깔린 거리에서 / 나는 비겁한 방관자였다 / (…) // 그때 학생들이 앞장선 4·19의 혁명은 / 어쩌면 이렇게 소위 양아치들, 밑바닥 민초들의 가담으로 승리했는지도 모른다'('비망록에서1' 부분)

'"이놈의 전쟁 언제 끝나지. 빨리 끝나야 고향엘 갈 텐데..." / 때와 땀에 절어 새카만 감발을 풀며 그는 말했다 / (…) "우리 죽지 말자"며 내밀던 그의 손 / 온기는 내 손아귀에 남아 있는데 / 그는 가고 없었다'('경안리에서' 부분)

"전쟁 때 인민군이 동네를 점령해 자꾸 자기네들에 협력하라고 하니 시골에 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지. 걷다가 경안리 부근에 주막에 묵으러 들어갔는데 밤이 되니 북한 인민군이 들어오더라고. 얼굴이 빨갛고 뿔이 났다고 배웠는데 걔네가 그렇게 신사적이데. 그중 한 친구가 내 옆에 앉았는데 함흥에서 왔다며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니들이 북쪽에서 쳐들어오니까 남쪽으로 도망간다고 했지. 그랬더니 픽 웃네. 밤새 얘기하다가 이 친구가 먼저 떠나는데 배웅하러 나갔더니 손 내밀면서 '야 우리 죽지 말자' 그러더라고."(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시인은 "시는 누구나 알기 쉽게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학이니만큼 상상력과 서정성이 들어가야겠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쓰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그도 시대의 억압 속에서 운동권 젊은이의 죽음을 담은 '물은 하나 되어 흐르네' 등 은유를 담은 시 여러 편을 썼다고 설명했다.

'노을 비낀 유연한 강물에 / 네 짧았던 생애가 / 눈물로 피는 데 / (…) // 너는 사자였지 / 아니, 호랑이였지 (…) 못난 놈 / 잘난 놈 / 보다 못해 뛰쳐나온 / 한국의 호랑이였지 // 물이야 막힌들 못 흐르랴 / 잠시의 고임 뒤엔 넘쳐서 흐르지 / 영산 낙동 금강 / 한수 살수 두만 압록 / 막아도 막아도 물은 넘치고 / 물은 하나 되어 흐르네'('물은 하나 되어 흐르네' 부분)

통일과 민주주의, 민중 해방에 대한 오랜 소망을 간직한 시인에게 역사의 미로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리고 그는 지사적(志士的) 심성을 늘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 지금도 치열하게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염무웅 평론가가 "80대 중반을 넘긴 강민 시인의 건강이 많은 후배들에게 희망이 되는 까닭이다"고 적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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