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기려야 할 삼일혁명 100주년을 맞은 날에,

태극기부대들은 추념은 커녕 행사를 방해하고 나섰다.

시위를 하더라도 하루만 기다리다 평소처럼 토요일에 할 것이지,

기어이 백주년을 맞는 삼일절에 몰려나와 초를 쳐야 하나?

아마 북미회담이 무산되는 것을 보고 신바람이 난 것 같았다.





토요일마다 서울역광장에서 난리를 피우는 태극기부대를 보며 진저리를 쳤으나,

마음 한 구석은 그들도 똑 같은 사람이라는 연민의 정은 남아 있었다.

나도 늙었지만, 태극기부대 때문에 노년층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고,

태극기 물결에 가슴 일렁이던 그런 감정은 사라진지 오래다.





지난 삼일절을 맞아  인사동으로 나갔는데, 오전 10시가 되었는데도 한적했다.

인파로 붐비던 평소의 인사동과는 너무 대조적인데,

남인사마당 길거리 한 편에 '대한독립만세'란 글이 적혀 있었다.

눈에 익은 글씨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서예가 김기상씨가 나타났다.






자리를 옮긴 파고다공원은 태극기로 뒤 덥혔는데, 대개가 노년층이라 얼핏 보니 태극기부대 같았다.

그러나 진정으로 선열들을 추념하며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 같은 분들이었다.






어느 할아버지가 나누어주는 유인물을 받아보니, ‘2019 신 독립선언서’라 적혀 있었다.

‘이 시대 모든 삿된 것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다“라며 시작된 깨알 같은 글씨에는,

민족에 엄청난 해악을 끼쳐 온 친일, 숭미, 반민주, 반민족, 비인간 등

모든 부당한 세력으로 부터의 독립을 선언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태극기부대가 아니던가?

그 내용을 알기라도 하듯 멸공이라 쓴 차량을 공원부근에 세워놓고, 확성기로 왕왕거리기 시작했다.

“박근혜대통령을 석방하고, 빨갱이는 북으로 가라”는 거다.

엄청난 소음을 일으키는 그들을 제지하는 방법은 없을까?





마침, 그 곳에 마임이스트 유진규씨 일행이 만북 울림에 참여하기 위해 분장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다 한반도기를 물감으로 그려 넣고 있었는데, 유진규씨가 나더러 한 번 해보라며 권했다.

늙은이 주름이라도 가려질 것 같아 얌체 같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렇게 하고는 내 얼굴을 내가 볼 수 없으니 잊어버린 것이다.





파고다공원에서 광화문으로 이동하는 만북 울림 행열과

영산줄다리기를 찍는 등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많은 분들을 만났다.

그 뒤 내 빰에 한반도기가 찍혀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은 딱 한 번 있었다.

사진가 최광호씨가 카메라로 내 빰을 찍기에 생각난 것이다.





속으로야 늙은 게 주책 떤다고 욕 할지 모르지만, 아무도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신명난 줄다리기를 끝낸 후, 하형우, 정영신, 유진규, 여현수, 김윤기씨를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진규씨는 술 생각이 있는 듯 했으나, 하형우씨가 술을 못한단다.






‘교보문고’ 앞에서 소란 피우던 태극기부대의 시위도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아쉽지만 헤어지기로 하고, 안국역으로 가는 하형우, 정영신씨를 따라 갔는데,

하형우씨가 시장 끼가 도는지, 어디 가서 밥이라도 먹고 가자는 것이다.

정영신씨가 '종로구청' 인근에 있는 도가니탕 집으로  안내했다.






식당에 들어가니, 태극기부대로 보이는 늙은이들이 가득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들도 하루 종일 악을 썼으니, 배도 고팠을 게다.

갈비탕 세 그릇을 시켜놓고 옆 자리에 앉은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태극기부대는 뭔가 다를 것으로 생각한 스스로가 민망했다. 다 똑같은 사람인데 말이다.






그런데, 지나치는 사람들이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으나 생긴게 워낙 요상해 쳐다보는 줄 알았다.

마침,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시위에 참여한 인원이 십만 명이라며 자랑했는데,

하형우씨가 십만 명은 안 된다는 말을 한 게, 불씨를 지폈다.

안 그래도 내 빰에 찍힌 한반도기에 의심쩍게 본 것 같았는데 말이다. 



 


여기 빨갱이가 있다고 말하니, 사방에서 야유와 욕설이 터져 나왔다.

“늙은 게 머리까지 길러 꼴 값을 한다느니, 어떻게 음식이 목구멍에 넘어 가냐는 등

별에 별 욕설을 다 했다. 대꾸하면 판이 커질 것 같아 아무 말도 안 했다.

난, 한쪽 귀가 안 들려 한 쪽만 막아버리면 좆 통수를 불어도 모른다.






아마 뒷자리에 있던 늙은이가 심한 욕설을 한 것 같았다.

도저히 참지 못한 하형우씨가 일어나 ‘지금 무슨 말씀하시냐?“며 공손하게 따지니,

대뜸 일어나 헤딩으로 얼굴을 박아버린 것이다.

급습을 당한 하형우씨의 안경이 날아가며, 뒤로 휘청하며 넘어질 뻔 했다.





군중심리에 다들 일어나 대들면 죽일 것 같은 험악한 기세였다.

내가 종업원에게 경찰을 부르라고 했더니, 금세 돌변해 언제 폭행했냐는 것이다.

정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었다. 그들이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자식들이 불쌍했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식들 꼴은 보나 마나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동 ‘허리우드’로 커피 한 잔 하러갔다.

차를 마시며, 그들을 씹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일제에 부역하며 친일로 온갖 만행을 저 지른 부모에 이어,

자식들은 미국 놈에 붙어 알랑방구 뀌는 것들이 인간이겠는가?. 





정영신씨가 자기도 당한 경험이 있다며, 세월호 마크나 한반도기는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촛불집회가 열리던 2년 전, 태극기부대를 찍다 봉변 당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카메라가방에 달린 세월호 뺏지 때문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적폐를 청산하려면 강력하게 밀어부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놈들은 좋은 말로 해서는 고쳐지지 않는다.

더 이상 미적거리지 말고, 도를 넘는 인간들은 구속시켜라


다들 정신 바짝 차려야 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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