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까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



▲사진가 박병문 사진집 ‘아버지의 그늘’ (눈빛출판사刊) 책표지



사진들은 쇠퇴해가는 탄광촌의 현실에 앞서 광부였던 아버지를 그리는 사진가의 애틋한 마음이 곳곳에 배어있어 사진들을 보면 슬퍼진다. 그 삭막한 폐광에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사진들이 주는 잔잔한 울림 때문이다.



▲삼방동, 2014년



사진가가 보여주려 한 것도 사라져가는 탄광의 빛바랜 풍경이 아니라 아버지가 힘겹게 살아 온 공간과, 그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숨을 몰아쉬며 올랐던 삼방동 언덕길, 빛바랜 월급봉투, 칠흑의 냉기에 휩싸인 지하막장,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까치발 건물과 분진이 날리는 저탄장 등 아버지가 살아 온 자취들이 마치 한 편의 흑백영화처럼 나른하게 펼쳐지고 있다.



▲퇴근하는 선탄부, 2007년



사진가 박병문이 유년시절의 기억까지 들추어내며 추억 속 아버지의 발자취를 기록해 온지도 어언 십여 년이 넘었다. 꾸준히 아버지의 흔적들을 추적해 온 것은 아버지의 자취를 통해 탄광촌의 아픔을 세상에 드러내놓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편으론 사진가의 기억을 통해, 보는 이의 아버지와 고향, 그리고 슬픈 기억들을 떠 올리게 하는 것이다.



▲선술집, 2007년



여지껏 탄광을 촬영한 사진가들이 여럿 있었으나 대개 한차례의 작업으로 끝냈지만, 박병문씨는 달랐다. 탄광 바깥에서 들여다 본 사진가의 시선이 아니라, 탄광은 그가 살아온 추억의 공간이고 아버지의 혼이 박힌 곳이었다. 선탄부(여자광부)에 이어 진폐에 대한 기록으로 이어갈 것이라는 그의 다짐은 한 개인의 가족사기 전에 우리 탄광의 소중한 역사로 길이 남을 것이다.



▲철거 중인 철암시장, 2014년



박병문은 2010년 강원도사진대전 대상과 2013년 제1회 최민식사진상 특별상 대상을 받으며 알려졌다. 2014년에는 “아버지는 광부였다”란 사진전을 열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사라져가는 탄광의 아픔을 슬픈 가족애로 이끌어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새까만 얼굴에 맺힌 아버지의 눈물은 한 개인의 슬픔을 넘어 우리의 시대적 아픔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눈 속의 광부 동상, 2015년


아버지를 기억하는 작업은 그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난 해 '검은 땅 우금에 서다'에 이어 또 다시 ‘아버지의 그늘’을 펼쳐 보이는 등, 아버지에게 바치는 세권의 사진집을 연이어 펴낸 것이다.



▲사진가 박명문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는 ‘기록으로 불러들인 기억 그리고 광부 아버지’란 서평에서 “박병문의 사진은 아버지께 바치는 헌시”라고 말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조문호기자






김남진 (사진가, 갤러리 브레송 대표)



‘갤러리 브레송’기획전의 “사진인을 찾아서” 세 번째 작가,
이영욱씨의 ‘텅 빈 의미’ 사진전 개막식이

지난21일 오후6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렸다.


난, 사진가 이영욱씨를 20여 년 전에 처음 알았다.
‘삼성카메라’에서 일할 때였는데, 그곳에서 ‘자유공원’이란 사진전을 했다.
그 때는 대개 틀에 박힌 사고에 젖어 있을 때라, 그의 사진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말없는 말들은 ‘자유공원’ 자체를 다시 생각게 했다.

그 후 그를 잊어버렸다. 이름은 잊었으나 ‘자유공원’은 잊지 않았다.
티비, 신문, 잡지 한 권 안보고 살았으니, 세상 돌아가는 꼴을 간첩보다 더 몰란거다.
작년부터 페북과 가까이 하며 모든 걸 알았다.
컴퓨터에서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으나, 때로는 정치나 사진판의 구태에 열받기도 했다.

얼마 전, 이영욱씨 사진에 대한 이광수교수의 글이 ‘오마이뉴스’에 올라 있었다.
“사진으로 맥아더 목을 잘라버린 그 남자”를 보고, 이영욱이란 이름을 다시 기억해 낸 것이다.
오랜 기억의 ‘자유공원’을 비롯하여, ‘대상과 침묵의 접촉’, ‘이상한 도시산책’, ‘이 도시가 꿈꾸었던 그 꿈은 무엇인가’,

‘거울의 기억’, ‘북간도’, ‘사진일기, ’불확실한 여행‘, ’아카이브‘ 등 그동안의 작업들을 정리해 놓았는데, 놀라웠다.

그의 시비는 20여 년 동안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기다리던 전시 개막식 날, 서둘러 나왔으나 전시장은 축하객으로 발 디딜 틈 없었다.
김남진 ‘브레송’ 관장이 나와 작가소개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작가 이영욱씨와 이광수교수가 서있었다.

엄상빈, 정진호, 성남훈, 이상엽, 이갑철, 박신흥, 신동필, 윤성준, 이은숙, 남 준, 김영호, 곽윤섭, 곽명우, 정영신,

강제욱, 고정남, 정태만, 이경자, 권혜진, 이상봉씨 등 많은 분들을 만났으나, 아는 분보다 모르는 분이 더 많았다.

사람이 많아 사진을 꼼꼼히 살펴볼 수 없는 게 아쉬웠으나,
모든 사진은 사물들에 시비를 걸고 있었다. 대상에 대한 반론 재기인 것이다.
기존의 관념을 깨부수는 작품은 마치 선승의 “이 뭣고?”라는 화두 같았다.
처음에는 좀 낮 선 것 같았지만, 신화에 불과한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라 했다.
그 안에는 역사도, 사회도 없고, 오로지 중지된 현상만 있다고 말했다.

이광수 교수는 작가의 화두가 사실에 대한 '객관성'이라며 열변을 토해냈다.
어떤 현상에 달라붙은 단일적 대표성에 대한 그의 시비는, 신화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라 했다.

'텅 빈 의미'도 아무 의미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의미가 너무 많아 하나의 의미로 고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찌나 논리 정연한 달변인지, 그의 사진에 푹 빠져 이해하게 했다.

강연이 끝나고 다들 뒤풀이 집으로 옮겼는데, 식당이 꽉 차벼렸다.
즐겁게 술 마시다, 전시장에선 미처 못 본 사진집을 만난 것이다.
‘접촉’이란 이영욱사진집이 눈빛사진가선 23호로 나왔는데, 일단 ‘접촉’이란 제목이 너무 마음을 끌었다.


대충 보았으나 너무 갖고 싶었다. 작품도 꼼꼼히 살펴볼 겸, 다시 찾을 작정이다.

그런데, 그 날 뒤풀이 비용이 제법 많이 나왔을 텐데, 술값을 거두지 않더라.
일단 지갑은 굳었지만, 다들 뻔한 처지라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 전시 제목은 “텅 빈 의미”였지만, 사진은 “꽉 찬 내용”이었다.
이 달 30일까지 계속되니, 꼭 한번 보시기 바란다.
전시장에서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접촉’사진집(12,000원)도 살 수 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이영욱씨의 전시작품과 이광수교수의 글을 보실 분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blog.daum.net/mun6144/3631




2016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3


이영욱 편 '텅 빈 의미 - obtus' 

3월 21일부터 30일까지 / 갤러리 브레송

 오프닝 : 21일(월)오후 6시 30분


이영욱, 자유공원, 23.5x105cm, archival pigment print, 1995.

이영욱, 자유공원, 23.5 x 105cm, archival pigment print, 1995.ⓒ 이영욱

이영욱, 자유공원, 23.5 x 105cm, archival pigment print, 1995.ⓒ 이영욱


사진이 보여주는 모양새를 서로 나눠 보고, 그 안에 담긴 뜻을 서로 헤아려 보고, 그 안에서 내 세계를 그려보고, 그로부터 지적 유희를 즐기고, 그것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그런 평가가 있었으면 한다. 그 안에는 주류도 없고, 패거리도 없는 그런 평가가 있었으면 한다. 재미있게 말하자면, 이 땅에 숨겨진 고수를 찾아서 놀이를 하자는 것이다. 장르도 초월하고, 경계도 허물고, 패거리도 없고 갑과 을의 관계도 없는 대동의 사진 세계에서 한 세상 멋지게 놀 수 있는 이 땅의 고수를 찾는 놀이다.



이영욱, 대상과 침묵의 첩촉, 8x10inch, archival pigment print(1, 2, 3), 1998.ⓒ 이영욱



글 / 이광수 (부산외대교수, 사진비평가)

아주 아주 오랫동안, 역사학의 관심은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록하고 해석하는 것이었다. 언제 누가 무슨 일을 했고, 왜 그리고 어떻게 했느냐에 관한 관심이었다. 목격이 가장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됐고, 그 위에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어떤 구조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1960년대 이후 유럽에서 '그 과거를 규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에 봉착하면서 역사학은 사실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이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안에 객관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해석일 뿐이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진가 이영욱의 문제의식은 이런 맥락과 연결된다. 그에게 가장 큰 화두는 사실에 대한 '객관성'이다. 신화에 대한 의문이다. 그 의문은 어떤 현상에 대해 남긴 기록이라는 것에 달라붙은 단일적 대표성에 대해 건 시비이고, 나아가 사진에게까지 달라붙은 그 객관성이라는 신화에 대한 도전이다.

사진가 이영욱의 작품을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가 던진 사진에 대한 사진을 통한 문제 제기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워서 그렇다. 바닷물 속에서 사는 용왕이 토끼에게 들은 땅이라는 개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듯이 그가 던진 기록과 객관이라는 신화에 대해 평소에 의문을 갖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의 사진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의 사진이 어려운 것은 독자들이 보기에 왜 이런 평범한 사진이냐는 사실에서부터 먼저 시작될 것이다. 그의 사진은 누구나가 다 찍을 수 있는 사진이다. 그런데 누구나가 다 읽을 수 있는 사진은 아니다. 사람들이 빛과 색으로 만든 현란한 이미지에 물들어 있고 그것이 가진 특정 현상에 부여된 의미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 익숙함 속에서 이영욱이 전혀 생뚱맞은 사진을 내걸어 전시를 하고, 책을 내니, 사람들은 의아해 할 뿐이다.



이영욱, 대상과 침묵의 첩촉, 8x10inch, archival pigment print(1, 2, 3), 1998.ⓒ 이영욱



1. 신화로부터 탈주

이영욱은 1995년 발표한 첫 작업 <자유공원>에서 그 화두를 꺼냈다. 그는 인천의 '자유공원'이 왜 인천 시민의 마음의 갤러리 혹은 관념이 됐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자신의 긴 사진사의 화두를 꺼냈다.

과연 그들이 품고, 개념화하고, 소비하는 그런 '자유공원'이라는 실체는 존재하는 것일까? 이 의문을 사진으로 던지는 작업이다. 맥아더 동상, 자유의 여신상, 비둘기, 경찰서, 반공 캠페인 표지판, 충혼탑, 한미수교100주년기념탑 등 역사를 해석하는 어떤 권력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규정되는, 그리고 그 해석돼 만들어진 하나의 역사를 객관의 진리로 받아들여 시민들의 표상으로 자리 잡힌 역사에 대해 냉정하게 비판하는 것이다


맥아더의 목을 쳐버리거나, 충혼탑의 글귀를 보이지 않도록 처리해버린다거나 하는 비판과 느닷없는 안마시술소나 지저분하고 전혀 '자유'스럽지 않은 비둘기집을 집어 넣어버리는 방식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스토리텔링이다.

처음 이 공원의 이름이 '만국공원'이었다가 왜 '자유''공원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왜 1990년대 이후 민족자주 진영의 진보운동가들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 했는지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진가가 사진으로 맥아더 동상을 죽여버렸지만, 그것이 그렇다고 민족자주 진영이 시도한 물리적 동상 파괴에 대한 옹호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맥아더를 통해 자유냐 반미냐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신화냐 실재냐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다음 작업은 1998년의<대상과 침묵의 접촉>이다. 전작에서 출발한 신화에 대한 고민이 거시사의 해석이었다면,<대상과 침묵의 접촉>은 미시적 일상사의 해석이다. 이 점에서 이영욱은 롤랑 바르트의 전사다.

바르트에 의하면 세상은 '일정한 구조에 의해 형성되고, 그 구조는 특정 의미를 지니는 기호'로 이뤄져 있는데, 사람들은 그 기호에 종속돼 그 안에서 발생한 어떤 제도나 현상을 마치 자연스럽거나 합리적이거나 심지어는 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화일 뿐 보편적인 것이라 할 수 없음에도 사람들은 그 신화에 함몰돼 어떤 것이 옳은지 싸운다. 나아가 그 옳지 않은 것은 처단해야 한다고 싸운다. 목숨 걸고 싸운다.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의 해석만을 기독교 성경 바이블처럼 받드는 어리석은 일이다.



이영욱, 대상과 침묵의 첩촉, 8x10inch, archival pigment print(1, 2, 3), 1998.ⓒ 이영욱

이영욱, 대상과 침묵의 첩촉, 8x10inch, archival pigment print(1, 2, 3), 1998.ⓒ 이영욱

이영욱, 대상과 침묵의 첩촉, 8x10inch, archival pigment print(1, 2, 3), 1998.ⓒ 이영욱

이영욱, 대상과 침묵의 첩촉, 8x10inch, archival pigment print(1, 2, 3), 1998.ⓒ 이영욱



이영욱이 <대상과 침묵의 접촉>에서 보여주는 사진들은 모두 이미지의 실재에 대한 반론이다. 흔히 말하는 리얼리티라는 것은 의미 없는 것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란 다름 아닌 그것을 바라보는 특정인의 신화 구조 속에서 형성된 그 사람의 관념의 소산일 뿐인데 왜 그것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해석으로 굳혀져야 하느냐고 묻는 것이다.

짝짝이로 놓여져 뭔가 잘못된 된 것 같이 보이는 군화 한 켤레, 다 타버린 연탄 위에 버려진 담배꽁초와 그 앞에 죽어 널 부러진 비둘기(이 새는 평화의 상징으로 사람들에게 읽힌다) 한 마리, 풀밭에 놓인 뒤엉켜 버린 고무호스, 텅 빈 유원지에 놓인 목마, 트럭 짐 차 앞에 놓인 매트리스, 공원에서 사진 찍는 포즈의 여성과 사진 찍는 것 같으면서 아닌 것 같은 앉은 자세의 남성 등 그 어떤 장면 하나 하나가 명확한 의미를 보여주는 것도 없거나 자칫 식상한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으로 해석될 듯한 장면들을 모아놨다.

누구든 이 장면에 대해 확실한 의미를 보여줘 봐라는 것이다. 세상이 이러 하니 제발 잘 찍은 사진 한 장, 물성이 좋은 이미지, 리얼리티가 분명한 이야기로 세상을 해석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영욱, 이상한 도시산책- 중앙동, 100x150cm, archival pigment print, 2014.ⓒ 이영욱

이영욱, 이상한 도시산책- 용현동, 100x130cm, archival pigment print, 2014.ⓒ 이영욱



2012년의 작업, <BLOW_UP, 이 도시가 꿈꾸었던 그 꿈은 무엇인가>와 2014년 작업 <이상한 도시 산책>도 이와 동일한 선상에서 이뤄진 사진의 기록과 신화에 대한 문제제기다. 사진가는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자신의 작업실 주변을 기록했는데, 15년 정도가 지난 후 우연히 그 사진들을 보다가, 그곳을 다시 찾아가봤다.

그리고서는 변해버린 장소성 안에서 특정의 시간을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스스로가 붙들고 있는 긴 화두를 다시 한 번 되새김질했다. 사진으로 남긴 것은 기록이라는 탈을 쓴 하나의 기억일 뿐이지 않는가, 그것이 국가·민족·계급과 같은 만들어진 집단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내가 보았고 내가 셔터를 눌러서 기록했다고 해서 그 '나'의 시각은 '나'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집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말이다를 말하고 싶어졌다.

그러한 의문으로 그의 사진은 '나'에게서 도시에게로 옮겼다. 그래서 이 도시가 꿈꿨던 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 꿈이란 도대체 있었던 것일까? 그 꿈은 무엇인가?


이영욱, BLOW_UP. 이 도시가 꿈꾸었던 그 꿈은 무엇인가, 8x10inch, archival pigment print(1, 2), 2012(1993-1998촬영)ⓒ 이영욱

이영욱, BLOW_UP. 이 도시가 꿈꾸었던 그 꿈은 무엇인가, 8x10inch, archival pigment print(1, 2), 2012(1993-1998촬영)ⓒ 이영욱



2. 기록과 다큐멘터리의 부정

사진가 이영욱은 <자유공원>과 <접촉>을 통해 '존재와 해석'에 관해 사진으로 글을 썼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의 긴 작업을 하나의 글이라 치면  <자유공원>과 <접촉>은 기(起)에 해당한다. 그 기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2001년 <거울의 기억.에서는 살을 붙이고, 윤기가 나게 문지르고, 생각을 확장했다. 이른바 승(承)이라 할 수 있다.

사진가가 보는 존재란 절대성이 없고, 그것은 해석에 대해 열려 있을 뿐이라면, 이제 <거울의 기억>은 그 해석의 열린 공간을 만들어보는 문제의 이음새다. 올림푸스 하프 사이즈 카메라로 작업해 한 프레임 안에 찍혀 좌우에 우연히 배치된 서로 다른 장면들을 하나로 묶어 우연성 안에서 해석의 여백을 만든 작업이다. 사진의 가장 큰 특질 중의 하나인 우연의 요소를 기반으로 하로 만든  이미지다.

그는 그 두 개의 이미지를 우연에 기대어 하나의 조합으로 세워 둘 뿐, 다른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나의 사진이 어떤 완결된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사진가는 바로 이 전제에서  '텅 빈 의미'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텅 빈 의미'란 아무 의미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의미가 너무 많아서 하나의 의미로 고정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영욱, 거울의 기억, 8x10inch, archival pigment print(1, 2), 2001. ⓒ 이영욱

이영욱, 거울의 기억, 8x10inch, archival pigment print(1, 2), 2001. ⓒ 이영욱



이영욱이 '존재와 해석'의 문제를 또 다른 방식으로 승(承)한 것은 기록에 대한 것이다.  2007년의 <북간도> 작업에서다. 그것은 기록이지만 탈(脫)기록이다. 그 기록이란 기존의 시간과 맥락을 탈피하려는 새로운 차원의 기록이다. 사진가 이영욱은 자신이 처음 접한 '북간도'에 대한 인식을 '일반화'라는 신화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했고, 그래서 그것을 중지시키고자 했다.

상징으로 점철된,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가치로부터 벗어나야 뭔가 새로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사진가 이영욱은 우리가 흔히 '북간도'라 하면 자연스럽게 상기되거나 읽혀지는 특정 역사의 의미 구조를 과감히 배제하고, 객관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는 좀 낮 설 수도 있는 이미지를 선택해 기록의 신화로부터 탈주하고자 함을 말하고자 한다.

분명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던 풍경들, 일제 강점기나 아버지의 아버지들의 잃어버린 조국 강산, 반드시 되찾아야 할 조국 강산을 위해 살아남아야 할 그 땅의 의미로부터 벗어나 그냥 있는 그대로의 만주 평원을 기록한 것이다. 그 안에는 역사도 없고, 사회도 없다. 오로지 중지된 현상만 있을 뿐이다. 당신은 이런 방식의 기록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영욱, 북간도, 90x100cm, archival pigment print(1, 2), 2007.ⓒ 이영욱

이영욱, 북간도, 90x100cm, archival pigment print(1, 2), 2007.ⓒ 이영욱



이영욱은 객관성이라는 만들어진 신화에 대해 그리고 그 신화 안에 똬리를 튼 '사진(의 과학성)'이라는 또 다른 신화에 대해 사진으로 말을 하는 중이다. 사진으로 사진을 말하는 사진론, 참으로 무거운 작업이다.

그는 이 작업을 1995년부터 해오던 중 2001년에 중국에 갔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신화 깨기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말하기의 방식은 기존의 것과는 사뭇 달리 <즐거운 유배지>와 <사진일기> 작업을 했다. 동일한 주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자 한 것이다. 이 작품은 낮은 화질(350dfi)의 이미지로 5x7 inch 크기의 사진이 텍스트와 묶여 함께 발표됐다.


이영욱, 사진일기 - 즐거운 유배지, 5x7inch, archival pigment print(1, 2), 2007.ⓒ 이영욱



이영욱, 사진일기 - 즐거운 유배지, 5x7inch, archival pigment print(1, 2), 2007.ⓒ 이영욱



이영욱은 이 두 작업을 두고 "어릴적 그림일기 형식을 차용해서 이미지와 텍스트를 함께 배치 한 것인데, 이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만남을 통해서 내면적인 솔직한 고백의 형식이라 믿는 일기를 뒤집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사진은 과학적인 증거의 역할을 하고, 일기는 아무도 보지 않(거나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는 자기 고백이라는 일반화 된 진실 같은 비(非)진실을 믿는 관객에게 죽비로 그 어깨죽지를 후리치는 도발이다.
    


이영욱, 사진일기 - 즐거운 유배지, 5x7inch, archival pigment print(1, 2), 2007.ⓒ 이영욱


이영욱, 사진일기 - 즐거운 유배지, 5x7inch, archival pigment print(1, 2), 2007.ⓒ 이영욱



그런데<불확실한 여행>에서는 그 텍스트를 제거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다른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 만들어졌다. 작가는 텍스트마저 제거해 앞에서 시도한 사진과 일기로 표상되는 일상성의 신화 깨기를 사진으로만 보여준다고 하는 의도인 것으로 읽힌다.

신화를 깨고 나가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는 것이겠으나, 두 장르를 가지고와 양 방향에서 신화 깨기의 협공을 벌인 싸움을 느닷없이 중지하고 전혀 새로운 방식의 신화 깨기 싸움을 벌이는 것 같아 긴 싸움의 여정에서 볼 때는 천재적이거나 산만하다.

이 셋은 이미지와 텍스트와의 상관관계, 이미지에서 물성(物性)의 제거, 평범한 오브제와 대상의 선택 등을 통해서 볼 때 결국 같은 맥락이긴 하지만, 〈불확실한 여행〉은 기(起)를 거치고 승(承)1과 승(承)2를 거쳐 전(轉)으로 넘어 가지 않고, 승(承)3으로 영역을 넓힌 것으로 이해된다.


이영욱, 불확실한 여행, 60x90cm, archival pigment print(1, 2), 2008.ⓒ 이영욱

이영욱, 불확실한 여행, 60x90cm, archival pigment print(1, 2), 2008.ⓒ 이영욱



3. 아카이브라는 또 다른 신화

사진가 이영욱이 사진으로 하는 사진에 대한 신화 깨기 작업은 2015년의 <집이다>에서 전(轉)을 맞는다. <집이다>에서 '집'은 특별한 맥락의 이해나 기교를 통한 수식 등을 필요로 하지 않은, 그 자체로서 지난 도시의 과거를 보여주는 대상을 가장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이미지로 찍는다.

그 대상으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해줄 뿐, 달리 특별한 양식의 재현을 하지 않으면서 만든 이미지다. 전작들에 비해 힘이 빠지고 기름기가 빠졌다. 상큼하다. 누구든 저 이미지를 보면 '어쩌다 저런 집이 생겼을까!'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그래서 그 묘한 그 집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보다 더 극적인 다큐멘터리는 없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아카이브의 방식을 통해 사진가 이영욱은 지금까지 해온 객관이라는 신화를 깨는 방식을 전환시켰다. 지금까진 논리적 격문을 던지는 것을 멈추고, 그저 그냥 거울 하나 꺼내 제 모습 보도록 넌지시 건네줄 뿐이다. 작품의 감동은 이러한 발상의 전환에서 온다.


이영욱, 집이다. 인천-화평동, 60x90cm, Pigment inkjet print, 2015.ⓒ 이영욱



이영욱, 집이다. 인천-북성동, 60x90cm, Pigment inkjet print, 2015.ⓒ 이영욱



이영욱이 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절대적 기록이 아니다. 그 어떤 시각도 다 배제한, 완전히 절대적으로 무미건조한 본질적 절대성을 지닌 기록으로서의 이미지란 만들 수 없다. 그래서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지개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고, 그 무지개를 잡으러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는 그 가능하지 않은 길을 새로운 방법론을 대동해 가능하다고 믿고 길을 나선다. 그 새로운 방법론이란 바로 '아카이브'다


이영욱, 아카이브 - 섬프로젝트 - 이작도, 100x130cm, Pigment inkjet print, 2015.ⓒ 이영욱

이영욱, 아카이브 - 중구프로젝트 - 송학동, 100x130cm, Pigment inkjet print, 2015.ⓒ 이영욱



일정한 장소를 기록하되, 대상을 보는 주체가 가질 수 있는 시각을 가능한 한 최대한 배제하고, 대상이 스스로 말을 하도록, 모든 장치를 방해하지 않도록 무미건조한 사진을 찍되, 그 분량을 최대한 늘린다.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인간이 관계적으로 유일하게 독립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각 매체로서의 사진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사진이 갖는 의미와 예술에 대한 강한 부인이다. 이영욱이 택한 이 아카이브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중국에서 돌아온 후,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에 시작했다.


이영욱, 농촌, 60x80cm, Pigment inkjet print, 2015. ⓒ 이영욱

이영욱, 농촌, 60x80cm, Pigment inkjet print, 2015.ⓒ 이영욱



사진가 이영욱은 이제 도시에서 벗어나, 농촌과 어촌을 향한다. 객관이나 일반의 신화를 깨려는 작업은 여전하다. 흔히 말하는 '우리'가 갖는 농촌의 모습, 섬의 이미지는 이제 이영욱의 카메라를 통해 정겹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고, 어머니와 고향으로 둘러싸여 있지도 않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무미건조한 모습으로 보여질 것이다.

그것이 설사 가능하지 않다더라도 고정 관념과 이미지를 향해 쉴 새 없이 던지는 성찰과 담론이다. 그것은 뭇 사람들이 갖는 기록이라는 신화에 대해 균열을 내서 그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던지는 것이다.

결과를 뽑아내려는 사회과학이 아닌 문제를 제기하는 인문학 담론이다. 만들어진 신화에 대한 지독하고 치열한 도전이다. 기록성을 부인하면서 만들어가는 기록, 예술을 부인하면서 생기는 예술, 우리는 이를 뭐라고 평가해야 할까? 탈객관을 지향하는 탈주관? 존재와 기록에 대한 아나키즘? 신화를 무너뜨리며 쌓은 또 다른 신화? 사진가 이영욱 앞에서 사진에 달라붙은 모든 만들어진 신화는 지금, 무너진다. 할(喝)!


 

최영진_서해안 새만금_2004~2008



2016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2 -

최영진, '공생(共生)을 묻다' 

전시 : 2016년 2월 19일부터 29일까지 /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


"사진을 서로 나눠 보고, 그 안에 담긴 뜻을 헤아려, 그것을 즐기고  소통하는 곳.

그 안에는 주류도 없고, 패거리도 없는 평등한 곳으로 오직 사진으로 이야기한다. 

장르도 초월하고, 경계도 허무는 대동의 사진 세계에서 한 세상 멋지게 놀 수 있는

진정한 고수를 찾는 사진놀이다. "

 


[최영진論]  있는 그대로 그렇게, 그 모태를 재현하다


이광수 (사진비평가 / 부산외국어대 교수)


사진가 최영진은 20년 가량 작업한 것들을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전시와 책으로 내고 있다. 처음 세 딸과 부인을 소재로 한 '네 여자'를 필두로 갯벌, 밤, 새만금, 서해안, 대공(大空) 등을 소재로 하여 생태와 자연을 말하는 작업을 해왔고, 지금은 서해안, 섬, 새만금을 동시에 작업하면서 산에 대한 작업도 같이 하고 있다.

섬과 바다, 간척지와 땅, 산과 도시 그리고 문명이 엮는 장대한 서사시를 때로는 바다의 시선으로 때로는 땅의 시선으로 때로는 산의 시선으로 보는 작업들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도시와 문명의 주인공의 입장에서 바다를 보고, 산을 보아 왔다. 그때 산과 바다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도시와 문명에 의해 대상화 된 존재다. 최영진의 사진은 그런 이분법적, 분별적, 문명적 세계관에 대한 반성이다.

도시에서 산을 바라보지 않고, 산에서 도시를 바라보면 우리네 삶은 어떻게 될까? 산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게 되는 것일까? 바다가 인간 욕망의 배출구로 소비되면 그 끝은 어떻게 될까? 산이 문명을 낳고, 바다가 문명을 낳는 모태인데, 그 모태를 소비해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이런 의문에 대해 사유의 실마리를 넌지시 던지는 작업이다. 


  최영진_네 여자_1997~2000



최영진은 전라도 영광에서 나고 자랐다. 그에겐 서해안 갯벌과 바다가 추억의 공간이자, 돌아가고 싶은 귀소(歸巢)다. 지금의 작가 정신을 지탱하는 기둥이기도 하다. 바다 곁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바다와 갯벌은 곧 자연이다. 달리 설명할 수도, 규정할 수도 없는 그런 존재다. 그 자연을 자연의 시각으로 담으니, 그의 작업은 결국 자연에 대한 헌시가 된다.

바다가 산보다 위대한 것은 아래에 있기 때문이라는 노자의 생각을 사진으로 말하고자 한다면, 굳이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유한한 시간을 기록하는 방식을 따를 필요가 없다. 인위적 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예술의 방편을 따를 이유도 없다. 노자의 자연을 사진으로 말하려면 쉬운 사진이 좋다. 그래야 여러 쪽에서 울림이 생긴다. 결정적 순간이라든가, 기존 프레임의 파괴, 예리한 운동성 같은 특별한 (혹은 창조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담는다. 때로는 은은하게 때로는 세밀하게.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 <도덕경> 56장

사진가 최영진이 자연과 생태의 삶을 주제로 삼아 하는 작업 가운데 말하기 방식의 관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해안'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에 전시하고 <West Sea of Korea>라는 이름으로 낸 책이다. 이 책은 멀리서 본 어느 서해안의 해수욕장 사진 몇 컷으로 시작한다. 아련하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한동안 계속해서 나온다.

주로 하늘 여백이 넓고 빛이 은은하고 사람들이 아주 작게 나오는 이미지들인데, 흔한 키치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흔한 동양화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서양의 추상화적 풍경화 같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누구나 좋아하는 전형적인 소재주의 사진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책의 끝 부분으로 가면서 소용돌이가 한 번 인다.

시커먼 하늘 밑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이미지 하나가 나오는데, 누가 봐도 어? 이게 뭐지?라고 의문을 가질 만하다. 노자가 말하는 현공(玄空)일까? 그리고 곧 이어져 느닷없이 죽은 철새 한 마리 대가리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 섬뜩하다 못해 소름 끼친다. 그리고서는 또 죽은 새 한 마리, 물고기 한 마리가 나오면서 책이 끝난다. 끝 부분의 사진 몇 컷 때문에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은 혼란스럽게 된다.



 최영진_ 서해안 새만금,2004~2008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작가의 메시지를 쉽게 간파하기가 어려운 것은 그의 이러한 말하기 방식 때문이다. 이런 작업의 경우, 책이나 전시장의 첫 이미지와 끝 이미지, 각 파트의 첫 이미지와 끝 이미지에 주목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의 경우 작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끝 부분의 사진들에 주목하지만, 난 첫 부분의 사진들에 주목한다. 첫 부분의 해수욕장 풍경 사진들은 평화스럽고 아늑한 느낌이다. 반면에 끝 부분의 사진들은 죽어서 썩어가는 새와 물고기라 심란하다.

첫 부분 사진들만으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혀 읽을 수가 없는 반면, 끝 부분의 사진들은 그것만으로도 작가의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사실, 첫 부분 사진들은 독자를 고의로 안심시키는 일종의 기만전술로까지 읽을 수도 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 책 첫 부분의 사진들은 이발소에 걸어놓으면 딱 이발소 사진이고, 응접실에 걸어놓으면 딱 살롱사진이다.

그렇지만 죽은 새와 물고기 사진들과 함께 보면 작가주의에 충실한 작품의 일부가 된다. 그런데도 그의 사진 하나 하나는 애호가에 의해 구입되어 단독의 장식품으로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그 경우 사진가가 말하고자 하는 묵시록의 메시지는 소거되어 버리고 새로운 차원의 감상 미학이 발생한다. 전적으로 독자가 주체가 되어 사진을 읽어내는 방식이다.

'사람은 땅을, 땅은 하늘을, 하늘은 도를, 도는 자연을 닮는다.' - <도덕경> 25장

고대 힌두 현인들은 땅을 품이 넓은 자라 했다. 그리고 그 품이 넓은 자를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어머니로 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 어머니를 암소로 보았다. 그들에게 땅은 만물에 생(生)을 주고 기(氣)를 주는 암소였다. 그런데 그 대지의 어머니 신 쁘리트위(Prithvi)는 모든 존재에게 생명을 주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인간에게 내어 주는데, 인간은 그를 착취한다.

땅은 모든 식물을 낳게 하는 어머니다. 끝없이 연속적으로 펼쳐져 있는 생명의 모태다. 곡식은 생명이 되고, 그 생명으로 인간의 생명을 낳게 하고, 죽으면 그것을 품어 다시 또 다른 생명으로 올려주는 너른 터다. 생명과 죽음이 순환하고, 그것이 윤회하는 거대한 유기체다. 그 땅, 어머니 대지가 곧 사진가 최영진의 갯벌, 라 마르(La mar)다.



 최영진_라 마르, 살아있는 갯벌, 2000~2003



'라 마르. 살아 있는 갯벌' 사진들은 모두 현미경적이다. 전체적으로 사람의 살갗 느낌이다. 어떤 것은 살갗이 튼 자국 같기도 하고, 모세혈관 같기도 하고, 모공 같기도 하다. 숨을 쉬는 듯한 생생한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낸다. 사방이 꽉 막힌 프레임 안에서는 모든 생명을 잉태한 태초의 땅을 느끼고, 위로 열린 하늘 공간으로 나뉜 프레임으로는 코스모스로 가기 전 카오스의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갯벌 속에서 나온 모든 존재가 어디론가 가는 운동을 보여주는 듯, 힘이 넘쳐흐른다. 프레임이 막혀 있든, 열려 있든 '라 마르. 살아 있는 갯벌' 사진들은 꿈틀거리면서, 갯벌 위 모든 존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작은 것이라고 해서 무시당하거나 없어도 되는 그런 세계가 아니다. 얼마나 작은지 우리의 눈과 인식 체계로는 파악할 수 없지만, 그 작은 존재들이 이루는 전체를 인식할 수는  있다.

어머니의 손길 하나만으로도 어머니의 우주적 사랑을 파악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분은 보되, 전체를 보지 못하거나 전체를 보되 부분을 보지 않는다. 이치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갯벌을 파괴하는 것이란 곧 그 안에서 숨 쉬고 있는 뭇 생명체를 죽이고 나아가 대지의 순환 체계를 파괴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모든 존재가 인(因)과 과(果)의 거대한 체계 속에서 산다는 말이고, 모든 존재는 그 안에서 반드시 대가를 지불한다는 법칙이 작동한다는 말이다. 현대 문명이 지금같이 자연을 대상화 하고, 약탈하고, 그것을 소비하는 데만 몰두하고 탐닉에 빠진다면 결국 그만큼 자연은 그 명(命)을 재촉하게 된다. 철저한 되갚음, 응보(應報)의 세계다. 그 자연의 보복을 경외하자는 말을 하는 것이다, 사진가 최영진은 지금.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추한 것이 있어서다.' - <도덕경> 2장

최영진은 분노한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식으로 처리해버린 새만금에 대해 분노한다. 그렇지만 그는 그 분노를 열정으로 쏟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격문으로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직설적이고,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지로 넌지시 말한다. 고인돌을 찍은 'Stone, Full of Life. 돌, 생명을 담다'는 그러한 그의 사진 언어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고인돌 위에 끼어 있는 이끼, 돌이 갈라지고 그 갈라진 틈이 만들어내는 구멍, 그 사이에서 자라나는 초록의 생명, 그것들이 빛과 더불어 무시로 그려내는 파노라마 같은 그림, 소나무 밭을 주위에 두고 마치 카멜레온처럼 색을 초록으로 만들어버린 오브제 ... 그 어디에도 시간의 흔적이 박혀 있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사람의 발자취는 보이지 않는다. 고인돌을 작업한 또 다른 사진가 권태균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권태균의 고인돌 작업에는 내러티브가 있다. 그 중심에 사람이 있고, 그래서 그의 사진은 고인돌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사는 삶의 풍경이다. 따뜻한 인간미가 나는 포토저널리즘에 입각한 다큐멘터리 스타일이다. 그런데 최영진은 다르다. 그의 사진에는 사람이 있지 않다. 자연에 대한 사유만 있다. 냉정하다. 사람의 역사보다 더 큰 차원의 자연에 대한 지구사적 다큐멘터리인 셈이다.



 ⓒ최영진_돌,생명을 담다_2009~2011


최영진의 사진은 전반적으로 내러티브를 잘 만들지 않는다. 'Stone, Full of Life. 돌, 생명을 담다'가 그렇고, '라 마르La Mar'가 그렇다. 굳이 말 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드러내지 않는 방식이다. 사람이 들어가지 않고, 사람 사는 모습이 들어가지 않고, 그것을 파괴하는 현장을 이성적 시선으로 분석하거나 기록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유를 나누는 방식이다.

고인돌이 사람들 사는 마을에서 놓여 있는 모습을 그리는 방식은 문화를 다루는 방식이다. 하지만, 고인돌을 카멜레온의 보호색을 보여주 듯, 주변의 자연과 더불어 있는 듯 없는 듯 그 경계도 찾기 어렵고, 분별하기도 어려운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은 문화를 낳은 자연을 따르는 방식이다. 갯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경우와 달리, 내러티브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을 사용한 경우도 있다. '서쪽 바다, 새만금'에서다. 이는 다른 작품과 달리 새만금 간척사업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기록물이다. 그래서 내러티브가 있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장편 서사시에 '새만금'에서 구체적인 에피소드 하나를 취해 끼어 넣는 방식이다.

그 안에는 조개를 채취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주인 따라온 개도 보인다. 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시에서나 보일 법한 고급 승용차도 보이고, 그 차가 남긴 바퀴 자국도 있다. 서서히 방파제는 쌓이고, 갯벌은 갈라지면서 물은 빠지고 뭇 생명들이 죽어가는 곡소리가 들려온다. 사진가는 갯벌이 어떻게 죽어가고 그것이 어떻게 인간을 죽이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 배를 가르듯이 시간이 점점 지나가면서 뻘은 메말라 갈라지고, 그 속에 감추어진 생명체들은 불 속에 타들어가듯이 최후의 순간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최영진_서해안 새만금_2004~2008


그의 사진은 기호와 상징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가 자연이란 어떤 방식으로든 규정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호나 상징은 대상화를 통한 이해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자연은 대상화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사진 어디를 보더라도 그가 말하려는 바, 생태학에서 흔히 말하는 근원, 회귀, 순환, 복잡계 등을 드러내는 기호화 된 이미지는 없다.

사진이 자연을 담고자 한다면, 그 방식은 자연의 속성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결국 그의 사진은 노자의 미학을 – 만약 이런 용어가 성립할 수 있다면 – 사진으로 시각화하는 것이다. 노자가 보는 미(美)와 추(醜)를 노자가 말하는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 노자가 말하는 비어 있음과 유기체의 방식으로 구성한 것이다. 인공은 여백을 꽉 채우고, 자연은 여백을 만들어낸다. 인공은 부분을 잘라서 인식하고 자연은 부분을 연계시켜 인식한다. 최영진은 인간이 손댈 수 없는 대지(大地)와 대해(大海), 대공(大空)을 보여줌으로써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이상향을 말하고자 한다.


 ⓒ최영진_서해안 새만금_2004~2008


그의 사진을 보는 내내 'West Sea of Korea'에 나오는 죽어 다 말라 버린 물고기 한 마리 이미지가 쉬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진을 통해 난, 노자가 말하고 최영진이 따르는 자연의 미와 추에 대해 생각한다. 죽은 물고기의 몸이 썩고 말라 부서진 모습이 흡사 꽃이다. 부서진 자연을 말하려 산화해 버린 꽃. 느닷없이 그 이미지가 화가 최병수의 '너의 몸이 꽃이 되어'에 중첩된다.


미군의 폭격에 죽은 아들이 아비의 품 안에서 꽃으로 산화하듯, 파괴된 새만금 갯벌에서 죽은 새 한 마리가 말라버린 죽음의 땅 위에서 꽃으로 산화한다.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과 추함이 따로 분별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존재가 함께 어우러질 때 그 안에 추함이 있고 그 안에 아름다움이 있다. 바다가 바다로서, 갯벌이 갯벌로서 그 자리에 그렇게 있을 때 그것이 아름다움이다. 보지 않았던가, 고인돌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갤러리 브레송’의 2016년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가 드디어 막을 올렸다.
그 첫 번째 작가로 고정남씨가 선정되어, “Unlimited” 바람의 봄을 선보인 것이다.
지난 20일 오후6시에 열린 개막식에는 작가 고정남씨를 비롯하여 김남진관장, 이광수교수,

김보섭, 류은규, 김영호, 마동욱, 남 준, 정영신씨 등 많은 사진인들이 자리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사진평론가 이광수교수는 고정남씨의 작가론에서 평범한 대상을 보는 주관적인 작가의 시선을 첫 번째로 꼽았다.

두 번째는 장소성에 두었다. 그 장소는 누군가 그 의미를 매개해 주는 사람이나 사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작가의 기억에 두었다. 평범한 사람이나 오브제 등 모든 것이 기억을 매개로  이어졌다.

네 번째는 대동 세상을 들었다. 평범한 세상을 통해 장소 속으로 들어가 기억의 나래를 펴는 세상은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대동세상이라는 것이다.

처음 작품을 볼 때는 작가의 기억에 따라 아주 자유롭게 찍었다는 생각만 했는데, 듣고 보니 공감되었다.

작가의 관점으로 사진을 보는 재미가 솔솔했다. 이광수교수의 서문처럼 앞으로는 어떻게 나갈지도 궁금했다.

그의 작품은 물같이 흐르는 그 어떤 것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 없고, 낳지 못할 것이 없는 그 사진세계의 무궁무진함이

가히 불교가 말하는 유정의 세계와 같다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30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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