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6,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 박신흥씨의 해피 데이즈전에 갔.

 

사진가 박신흥씨는 지난 해 1, ‘예스터데이사진집이 소개된 신문을 보고 처음 알았다.

엄마 대신 가게를 지키며 공부하는 어린이의 사진은 아련한 향수를 일깨우게 했다.

작가가 70년대에 사진을 찍었으면 사진계 원로나 중진 일 텐데,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알아보았더니, 고려대학의 사진동아리인 호영회에서 시작해 8년 동안 찍었으나,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사진을 접었단다.



 

그 당시는 대개의 사진인들이 아름다운 풍경이나 찍을 때인데,

서민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자체가 예사롭지 않았다.

꾸준히 활동 했더라면, 우리나라 내노라하는 사진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들었으나,

개인적으론 잘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으로 밥 먹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 이후 안양과 남양주시 부시장, 경기도청 기획행정실장 등을 거쳐, 킨텍스 상임이사로 일해 오다,

2년 전 부터 카메라를 다시 잡았다는 것이다.

 

미술을 전공한 후배 한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다.

재능이 탁월했으나, 학교를 졸업하고 건축 설계업에 투신했다.

모두들 의아해했으나 경제적인 여건을 만들어 놓은 후, 뒤늦게 그림에 전념해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예술가로 살려면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어려운 현실을 모두들 일찍부터 알아차린 것이다.

사진에 빠져 한 평생을 허덕이는 스스로를 뒤돌아 볼 때, 현명한 생각이라 판단되었다.

 

박신흥씨를 직접 만나게 된 것은 일 년 전, 인사동에서 가진 나의 청량리588’전시 때였다.

그 이후 다른 전람회장에서도 두 차례 만났으나, 생각보다 젊어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사진의 주제도 같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최고의 대상이라는 내 생각과 같아, 더 호감이 갔다.

지난 주 이상엽 사진전에서 만나, 전시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오프닝에 초대 받아 함께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전시된 사진은 지난 해 찍은 사진들인데, 대부분 여행 중에 포착한 작품이었다.

대부분 '알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을 연상케 하는 사진이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대상이었지만, 시간을 초월해 극적인 조화에 달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우연일 것 같지만, 그건 필연일 수밖에 없다,

어떤 대상을 찍으려면, 작가는 여러 가지를 예견하며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일상들을 담은 그의 사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철학적 사유도 담겨 있었다.

어린이와 동물이 자주 등장하는 그의 사진들은 아이러니컬하기도 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만의 독보적인 시각이라, 앞으로가 더 기대되었다.

행복을 찾아 나서는 그가 너무 행복해 보였다.

 

전시장에서 반가운 사람들도 만났다.

박신흥 내외를 비롯하여, 김남진 브레송관장, ‘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 ‘스페이스22’ 정진호대표, 구자호,

곽명우, 정영신, 남 준, 윤원진, 한재수, 최창숙, 백승민, 박영환씨 등 많은 분들을 만나 자리를 옮겨가며 축배를 들었다.

    
























 


요즘 감기몸살로 곤욕을 치루고 있으나, 반가운 사람들 만나 술 마시니 힘이 다시 솟았다. 역시 술이 약이었다.

술자리 대화에서 부부가 20년만 살고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짧은 인생살이에 서로 변화로운 체험기회도 줘야하기 때문이란다. 술이 취해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아내와 만난 지가 13년 밖에 되지 않아, 다시 체험하려면 7년이나 남아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구! 선생님은 이미 두 번 체험 했잖아요라며 다들 웃는다. 참 꿈도 야무지지...

 

술 취한 김에, 공격적 마케팅을 해야 한다며, 박신흥씨가 있는 탁자로 자리를 옮겼다.

올 해부터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문화알림방고객이라며 10만원을 내 놓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여지 것 취재하여 소개해 주었으나, 안 주는 사람이 더 많아 노골적으로 본 색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박신흥씨가 개막식에 오라했지, 취재를 부탁하진 않은 것이다.

또 허탕이다 싶었다.





















 

옆 자리로 옮겨, 이 방면의 선배 곽명우씨에게 물었다. “ 어떻게 살아가냐?”...

그도 전시회마다 쫓아다니며 사진 찍어 주는 일을 오랜 세월 했지만, 여지 것 장가도 못간 홀애비로 살고 있다.

대가를 안 주는 사람이 많지만, 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가난한 사진가들이 힘들게 마련한 전시회라 손 벌리는 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누군가는 기록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다들 힘들지만, 사정에 따라 하면 되기 때문이다.

몇일 전, 가난한 이상엽씨 전시 때도 그랬다. 촬영하고 취재하는 품삯으로 사진집 한 권 달라고...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지만, 그 날은 좋은 사진에다 반가운 사람만나 젖었으니 기분 좋았다.

개털인 걸 눈치 챈 정진호씨가 내 술값까지 내 줬으니, “필승을 외치며 줄행랑쳤다.

행복한 박신홍씨의 사진처럼 행복한 밤이었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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