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40여 년 전에 진주 진양호에서 찍은 사진이다.

부산에서 최민식선생 인간사진집에 빠져 카메라 장만한지 얼마 안 된 무렵이다.

사실 그땐 사진보다 음악을 더 좋아하던 때라,

음악 찾아가는 여행길에 카메라가 따라 붙었을 뿐이다.

 

, 어릴 적부터 내성적인 성격으로, 고독을 잘 씹었다.

왕따 같은 버릇을 고치려 친구들을 유별나게 좋아하게 되었고,

그러다 술만 마시면 백팔십도로 바뀌는 괴짜가 된 것이다.

아직까지 술 마시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에겐 말도 못 꺼내는 쑥맥이다.

 

사진을 찍게 되면서 부터 여행을 자주 떠났다.

풍광이 좋은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발길 닿는대로 갔는데,

그중 자주 갔던 곳이 서울 아니면 진주 진양호였다.

 

서울은 이태원에 레코드 사러 가며 신촌의 옥스라는 음악실에 들리는 일이 전부였다.

시커먼 공간에 쳐박혀, 시끄러운 하드락에 고막이 너덜너덜 하도록 개기는 것이 큰 낙이었다.

진양호는 까따리나라는 카페 때문이다.

고방자씨가 운영한 그 카페는 음악뿐 아니라, 대마초를 나누어 피우기도 했.


대마초 이야기가 나왔으니, 대개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지적해야겠다.

마약이라는 누명도 당치 않지만, 대개가 그걸 피우면 심각한 환각에 빠진다고 착각한다.

단지, 오감이 예민해져 평소 느끼지 못하는 미세한 음이나 맛, 생각이 깊어지는 것 뿐이다.

조용한 베이스음까지 세밀하게 감지할 수 있는 그런 느낌 때문에 음악인들이 자주 피운다.

제발 대마초 피우면 홍콩 간다는 헛된 생각이랑 버려라.

 

까따리나에서 음악 들으며 석양의 호수를 내려다보는 감상은 귀가 막힌다.

사실 음악이야 휴대용 녹음기인 워크맨으로 어디서든 들을 수 있었지만,

좋은 오디오의 중량감있는 음악에다, 생각이 같은 벗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좋았다. 

가끔은 혼자 진양호 주변을 산책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어느 날, 대마초 한 대 피우고 인적 없는 진양호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앉았는데,

그 때 헤드폰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킹 크림슨의 아일랜드였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에 빠져, 마치 무인도에 온 느낌이었다.

 

그런데, 옆쪽 포구에 없던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낑낑거리며 물 길어 오르는 소년과 그걸 쳐다보는 여인인데,

돕지도 그냥 두지도 못하는 여인의 어정쩡한 자세에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그 뒤 부산으로 돌아왔는데,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자 말자 불심검문에 걸려버렸다.

장발에 헤드폰을 낀데다, 한쪽 알은 노란색이고 한쪽 알은 파란색인 선 그라스를 꼈으니

의심 받을 만도 했다. 그 때 둘러 맨 카메라는 니콘 FM이었.

옆구리엔 권총처럼 워크맨을 차고, 한 쪽엔 탄창처럼 생긴 필름 통까지 달았으니 궁금했을거다.


꼴 볼견이라 가끔 쳐다보긴 하지만, 대개 코메리칸쯤으로 생각하고 넘어가는데,

이 날은 좀 별난 세파트에 걸려 버렸다. 한사코 신분증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결국 파출소로 끌려 갔는데, 장발이야 개기면 되지만, 휴대한 대마초에 바짝 얼어붙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지품검사를 하겠단다.


탄창처럼 생긴 케이스부터 열어보라기에 필름 세통 꽂힌 것 중에

첫 통에 든 트리이액스 필름을 꺼내 보였더니, 대마초가 든 필름 통은 그냥 통과되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얼굴색이 완전 똥색이었을 것이다.


머리를 자르고 가라지만, 못 자른다고 버텼으니,

다음 날 즉결재판 때 까지 구치소에 잡혀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구치소화장실에 대마초 버리느라 007작전 버금가는 신경전을 펼쳤다.

 

그 이틀 날 집에 돌아와 진양호에서 찍은 사진부터 현상해 보았다.

별 것 없는 서정적 포구풍경이지만, 여인의 감정이 읽혀져 마음에 끌렸다.

부산의 원로 사진가 분들에게 자문을 구해보고 싶었으나,

대개 트리밍 자나 들이대는 수준이라 싫었다.

나 혼자 별 것도 아닌 사진에 꽂혀 여기 저기 공모전에 출품도 해보았지만,

보내는 곳마다 미끄러졌다.


왜? 그 사진 한 장에 그토록 집착했는지, 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같은 생각인 분이 있을 것 같아, 조그만 견본사진까지 갖고 다녔다.

한참 후 서울에서 언론인 출신의 평론가 서상덕선생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시던 선생께서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조형! 뜬 구름 잡는 예술사진은 하지 마세요.

사람을 찍을 생각이라면, 카메라를 그들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만드세요.”

사실, 평론하는 자신도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솔직한 선생의 충언에 할 말을 잃었다.

 

말씀을 새겨들었으나, 과연 그 힘든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건, 자신을 채우는 작업이 아니라 비우는 작업이었다.

죽을 날이 가까워진 아직까지 못 이루었으니, 사진이란 끝없는 고행이다.

아마, 진양호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그토록 못 잊어 한 것도,

그 깨우침을 두고 두고 새기라는 뜻인지 모르겠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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