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수그러들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는 처서입니다.
처서가 됐다는 것은 가을이 오고 있다는 것이지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분기점이 처서인데, 가장 대표적인 속담으로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처서가 되면 그만큼 날이 선선해지기 때문에 모기의 극성스러움도 덜해진다는 뜻이겠지요.

푸른 하늘아래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만지산 풍경이 벌써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그렇지만 나의 가을은 이미 실종신고 되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추석으로 산소에 벌초도 해야지만 떠나지 못합니다,
구월 한 달 넘게 방구석에만 쳐 박혀 부지런히 일만 해야 할 처지입니다.
정선도 인사동도 잊어버린 채...

오래된 필름을 찾아 스캔 받고 수정하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닙디다.

찍기만 하고 처박아 둔 자료들을 한꺼번에 정리하려니 온 몸이 저리고 아프지만,

시간이 없어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습니다.

사진집을 출판하려는 계기를 떠나 자신의 반평생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그동안 관리해 온 블로거나 카페에 빨간불이 들어와도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처서였던 지난23일의 인사동거리는 주말이라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고,

한낮에는 날씨도 후덥지근했습니다.

거리에는 그림 그리는 화상들이 여럿 나왔고, 사람 광고판도 등장했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글을 써 붙인 거리악사의  서툰 노래 소리가 소음에 날리지만

어린이들은 신기한 듯 여기 저기 기웃거립니다.

술 한 잔하자는 벗의 당부를 물리치고, 아내와 처서음식 먹으려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처서에는 애호박과 고추를 넣은 칼국수를 끓여먹는 풍습이 있었지요.

추어탕은 가을대표 보양식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막힌 혈을 풀어준답니다.

그리고 가을 보약이라는 늙은 호박을 이용하여 죽을 끓여 먹으면 환절기 감기예방에 좋다고 합니다.

처서 무렵 가장 맛이 좋다는 복숭아도 잊지 말고 챙겨 드세요.

 

 



인사동에 낭만과 풍류가 사라진지 오래다.

고서화점들이 몰려있던 70년대 쯤,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신 민병산, 천상병, 박이엽선생과

친구인 강 민, 민 영, 채현국, 황명걸, 신경림씨 같은 문인들이 관철동에서 옮겨오며 인사동문화가 꽃피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 들어서는 술 때문에 먼저 간 사진기자 김종구, 서양화가 강용대, 이존수, 김용태, 시인 최영해씨와,

미국으로 이민간 최정자시인, 늙은 총각 구중관, 공윤희, 시인 김신용, 박종수, 조해인, 박중식, 김명성, 소설가 배평모, 

서양화가 이청운, 박광호, 최울가, 이목일, 전강호, 김언경, 도예가 김용문, 신동여, 사진가 이수영을 비롯해 

노광래, 김민경, 장익화, 장 춘, 이해림씨 등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들었으나,

유명세로 몰려드는 인파와 그에 편승한 장삿꾼들의 얄팍한 상혼에 인사동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게 된 것이다.

 

고풍스럽던 예전의 가게들이 화장품점이나 싸구려 중국산 민예품에 밀려나기 시작하더니,

이젠 아예 잡동사니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돈에 의해 변하는 인심과 흐르는 세월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인사동 골목골목을 돌다보면 가뭄에 콩 나듯 옛 기억을 소주잔에 부어 마시는

사라지기 직전에 있는 예술가들 몇몇은 남아 떠돈다.


하루라도 인사동에 나오지 않으면 온 몸이 쑤신다는 ‘인사동아리랑’을 노래하는 시인 강 민선생,

인사동에 사무실 얻어놓고 팔리지 않는 시집 만들며 노래나 부르는 음유시인 송상욱씨,

제주에서 무작정 상경한 후 대폿집 문간방 빌려 사무실로 쓰는 민속학자 심우성씨,

불편한 몸이지만 빠지지 않고 인사동 작업실을  지키는 사진가 한정식선생을 비롯해

극작가 신봉승, 임재경, 김동수, 이계익선생 등이 계신다.

 

그 외에도 사업장을 인사동에 둔 '아라아트' 김명성,'통인가게' 김완규, '옥션단'의 김영복, '유카리화랑' 노광래,

그리고 인사동에서 대폿집하는 '푸른별이야기' 최일순, '유목민' 전활철씨 처럼 생계와 연관되어 터 잡고 사는 분들도 있다.

 

예술로 빌어먹는 술꾼들이 외상술에 개똥철학 풀던 그런 대폿집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으나

그 시절의 낭만과 풍류를 못 잊어 마땅히 갈 곳도 없는 인사동을 배회하거나,

그 때 그 사람들이 그리워 만날 날만 기다리는 유목민들은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행위예술가 무세중선생, 시인 조준영, 화가 장경호, 이청운, 연극배우 이명희,

뮤지션 김상현씨 같은 인사동파 예술가들이 있기에 모두들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편하게 죽치고 앉아 회포를 풀 장소도 마땅찮거니와, 모두들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것 같다.

가끔 지인들이 전시회를 열거나 출판기념회라도 하면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호사는 누리지만,

술자리 분위기가 예전 같잖다. 이 것 저 것 눈치보여 마음이 편치 않은데다, 신나게 놀 수가 없다.

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어 부지런히 사진은 찍어왔지만, 이젠 기력마저 떨어진데다, 

그 동안 찍어 모아 둔 사진 정리할 일이 더 급하게 되었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요즘 젊은이들은 잘 이해될지 모르지만,

낭만과 풍류가 있었던 당시의 인사동 문화는 질퍽하면서도 따뜻한 정으로 이어져 있었다.

모두들 주머니는 비었으나 밤새 외상술 마셔가며 예술을 이야기하고 인생을 노래했던 것이다.

이제 모두들 가버리거나, 떠나고 싶어도 마땅히 갈 곳마저 없어,

그 흐릿해 가는 추억만 까먹는 사람들이 인사동을 떠돌 뿐이다.

그래! 이런 케케묵은 감상들을 널어놓는다는 것 자체가 늙었다는 것 일게다.
결국 늙으면 죽는 것이겠지만, 저승에서 만나게 될 선생님들 뵐 면목이 없다.

 

지난 사진첩을 뒤적이며, 그 때 그 시절의 추억들을 꺼내본다.

 

사진 : 조문호, 정영신 / 글 : 조문호

 

 

 

 

 

 

 

 

 

 

 

 

 

 

 

 

 

 

 

 

 

 

 

 

 

 

 

 

 

 

 

 

 

 

 

 

 

 

 

 

 

 

 

 


 

 

체면이나 시선 따윈 사치일 뿐이다. 
가진 것 없는 서러운 인생,
빈손에 눈물만 고인다.

어느 누군들 사연 없는 인생없다.
길거리에 뒹구는 나뭇잎도
속내 깊은 이야기는 숨어 있다.

살아가는 모습은 다를지라도 
절절한 아픔들 가슴에 묻고 살기에

덧없는 인생, 자꾸 눈물이 난다.  

 

 

2014. 8. 6 인사동거리에서

 


 

그동안 이명동선생을 모시는 오찬회를 인사동에서 정기적으로 가져왔으나, 이번에는 이명동선생의 전시가 열리는 ‘한미사진미술관’이 있는 ‘어양’ 중식레스토랑에서 모임을 가졌다.

지난 7월 28일 정오에 가진 오찬회에는 이명동선생을 비롯하여 육명심, 한정식, 이완교, 전민조, 조문호, 구자호, 김영수, 유병용, 이기명, 고 김기찬씨 미망인 최경자씨등 모두 열 한 명이 참석하였다.

오랜 세월동안 한국사진사를 정리해 오신 육명심선생께서 우리나라 근대사진사에서 이명동선생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다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 초창기 사진은 대부분 사진관 인물사진이었지요. 그 때의 사진관은 상류층들이 주로 활용하는 곳으로 대개 연미복을 입고 찍었어요.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들도 대부분 일본에서 공부하고 온 엘리트로 국내작가로는 이해선, 서순삼, 현일영, 박필호씨 등이 주도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명동선생께서 당시로는 아마추어 사진가에 불과한 임응식씨를 내 세워 ‘생활주의 리얼리즘’을 주창하며 사진계 흐름을 완전히 뒤집은 거지요. 그렇지만 그때 나는 이명동 선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사진협회 창설이나 '동아사진콘테스트'로 사진판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이 싫었거든요. 그런데 이명동선생의 숙적이나 마찬가지였던 사진가 이종화선생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갔더니, 문상 오신 이명동선생께서 달구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장례가 끝 날 동안 지키고 계셨어요. 결국 이명동선생의 인간적인 면모에 끌려 생각을 바꾸게 된거지요. 그동안 사진계에서 이명동선생의 도움을 받지않은 분이 별로 없지만, 그중에서 임응식선생과 임선생의 직계였던 홍순태교수가 도움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한 번 도와주기 시작하면 끝까지 도와주는 그런 분이예요. 모든 공적과 실리를 임응식선생께 돌리고 뒤에만 계시던 이명동선생께서 임응식선생이 세상을 떠나시니, 그 아들 임범택씨를 위해 팔방으로 애쓰셨어요. 분명한 가치관과 인간적인 의리로 똘똘 뭉친 분이지요.”

올해로 이명동선생의 연세가 아흔다섯에 이르지만 건강상태는 물론 기억력까지 너무 좋아 팔순 정도의 연세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마 백수는 물론 아직도 십년 정도는 건강하게 사실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사진계의 최고 원로이자 산증인이지만, 병석에 계신 사모님 간병으로 만년을 쓸쓸하게  보내고 계신다. 사진인들의 모임이 있을 때면 나오셔서 사진계 비사들을 들려주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면 낙이다. 유병용교수가 인터뷰를 가져 많은 사료들을 기록해 놓았다니, 머지않아 한국사진사의 볼만한 책 한 권이 나올 것 같아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번 모임에는 이명동선생 이야기 외에도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얼마전 사진가 전민조씨와 고 김기찬선생의 미망인 최경자씨가 독일 사진비엔날레에 초대되어 다녀 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서울시가 일억 오천만원 상당의 전민조씨 작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그동안 순수사진에 밀려 뒷전에 머물던 기록사진의 가치가 늦게나마 인정받았다는 것은 다큐멘터리사진을 하는 입장에서 엄청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좌로부터 사진가 육명심, 전민조, 이기명, 한정식씨, 한미수석큐레이트 손영주씨, 원로사진가 이명동선생, 고 김기찬

      미망인 최경자씨, 사진가 이완교, 김영수, 구자호, 유병용씨와 앞 줄은 필자 조문호




MBN이 주최하고 '페인티안'이 주관하는 아름다운 TV갤러리와 함께하는 페인티안 초대전 개막식이 지난 15일 오후6시 인사동 '아라아트'2층에서 열렸다.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 전시인 <매일경제TV Mmoney 아름다운 TV 갤러리 - 페인티안 초대전>에는 힐링을 주제로 총 17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작가들의 드로잉 작품과 기부작품 30여 점, 기업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아트광고 등이다.

15일 저녁 6시에 열린 오프닝 행사는 방송 사상 최초로 매일경제TV Mmoney를 통해 생방송으로 송출되었는데, 참여 작가들과 만남의 장을 제공하는 토크와 관람객들을 위한 참여 작가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이벤트로 구성되었다, 참여작가는 도성욱 낸시랭, 신철, 정기호, 이목을, 백진, 박성남, 조문호, 김남용, 전인경, 권두현, 김용문, 허미자, 정영신, 안윤모, 임채욱, 이청운, 강찬모, 김진석, 프레디, 두츠 등 90여명의 작품이 선보인다.

박혜영 페인티안 대표는 “많은 분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품을 통한 힐링을 느껴보시기 바란다”며 “페인티안이 작가와 기업, 개인 콜렉터가 함께 참여해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을 실천하는 온라인 미술입찰 사이트를 지향하는 만큼, 작가와 기업, 대중이 함께 기부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매개체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전했다.

개막식에는 '페인티안' 박혜영 대표를 비롯하여 '아라아트' 김명성 대표, mbn 정완진 국장, 미술평론가 김종근씨, '2014광장아트페스티벌' 변석 대표가 참석했고, 이청운씨 등 70여명의 출품작가 외에도 함상희. 조경석, 조준영, 임태종, 노광래, 편근희, 공윤희, 정순겸, 고상준, 전인미, 이명희, 김민경, 주승자, 전강호, 김상현, 조성호, 권영진씨 등 2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식순에 의해 진행자 김종근씨의 전시 취지에 대한 소개말과 김명성씨의 축사, 참여작가들의 인사말 등이 이어졌으며, 전시회의 성공적인 개최와 사회공헌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 참여 작가에게는 감사패도 수여되었다.

 

이 전시는 아라아트 2,3,4,5층 전시실에서 7월21일까지 이어진다.

 

 

 

 

 

 

 

 

 

 

 

 

 

 

 

 

 

 

 

 

 

 

 

 

 

 

 

 

 

 

 

 

 

 

 

 

 

 

 

 

 

 

 

 

 

 

 

 

 

 

 



올 봄, 모종 심어 놓고 한 번도 만지산 집에 못 들린 아내를 위해 보내는 만지산 현장보고서다.

장모님 간병에다, 제 몸마저 편치 않아 “야채는 얼마나 컸을까? 호박은 몇 개나 달렸을까?

그 난장판으로 널린 나무들은 어떻게 정리됐을까?” 여러가지 궁금한 아내에게 현 작황을 그대로 보여 줄 작정인데,

내일 정선장 찍어려면 온전히 하루를 기다려야기에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것 저 것 찍어, 토닥토닥 독수리타법으로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는데, 처음 보는 손님 한 분이 만지산을 찾아왔다.

뮤지션 김상현씨 소개로 방문한 분은 삼탄아트마인 작업을 구상하러 온 ‘브띠크 단’ 대표 조정희씨 였다.

처음 만난 분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뜻이 맞았던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떠나 보내고 나니 밤 열한시가 넘어버렸다.

뒷 정리하다 하루 지난 보고서가 되고 말았지만 다시 자판기를 두드린다

 

 

조정희씨가 겁도없이 만지산적 소굴을 방문하고 있다.

 

달밤에 만난 미녀라 오히려 산적이 더 떨린다.​

 

 

예고편은 끝내고, 본편으로​ 들어가겠다

 

 

툇마루 옆에 있는 야채밭이다.

4년전 심은 목련이 텃밭을 지키는데, 올해도 바빠 꽃봉우리만 보고 목련은 보지 못했다.

횡대를 이룬 갖가지 야채들은 여러차례 뜯어 먹혔으나 계속 돋아나고 있다.

 

 

"호박이, 말 거시기 같다"고 전했더니, 아내가 말 거시기를 본적이 없다기에 찍었다.

 

 

 

을 것만 같았던 고추모종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 키만한 고추를 달고, 옆에 버틴 큰 고추에게 야유를 던진다. "야! 작은 고추가 맵다는 걸 알지"

 

 

 

열무, 들깨, 쑥갓 등 몇가지 종자를 뿌렸으나 열무만 나오고 ,다른 것들은 소식이 없다.

"가짜 종잔가? 아니면 새가 파 먹었을까?"

 

 

척박한 땅이지만, 모두들 가지 한 개씩은 다 달고 있다.

 

 

호박들이 귀엽다. "야들야들한 영계들인데, 맛이나 들었을까?"

 

 

오이,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렸다. 빨리 토마토가 익어야 마나님 따다 줄텐데...

 

 

어떤 사람이 옥수수는 한 포기에 하나만 달린다며 우기기에 그렇게 믿었는데,

오늘 확인해 보았더니 모두 두개씩 달렸네. "초우도 모르는 넘이.."

 

 

고추모종들이 목이 마른지, 나처럼 힘없어 보인다.

 

 

가랑이를 쩍 벌린 이 나무가 개복숭아다.

해마다 엄청나게 많이 열려 개복숭아술에다 효소까지 담게 해 준 고마운 친구다.

그런데 해걸이도 하지 않는 나무가 올 해는 딱 한개만 달려 개복숭아가 아니라 일반 복숭아처럼 컷다.

그 나무의 기운을 한 개가 다 받아 맛도 있고 엄청난 보약일거라는 생각이 들어

잘 익으면 병석의 장모님 갖다 드릴려고 벼루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보았더니 새가 파먹었는지, 벌레가 먹었는지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아무리 먼저 본 놈이 임자라지만 너무한 것 아닌가? 모처럼 효도 좀 하려는데...

억울하고 아까워 남은 걸 먹어치웠더니, 역시 최고의 맛이었다.

"장모님! 면목없습니다"

 

 

"개복숭아 나무야! 어디가 아파 그러느냐?

그래도 네 자태 하나는 요염하기 짝이 없구나."

 

 

한 그루만 심은 이 은행나무는 은행이 열리지 않는다.

"빨리 짝을 만들어 줘얄텐데..."

 

 

만지산 냉장고로 소문난 '소나무숲 쉼터'를 오래동안 버려 두었더니 쓸쓸하기 그지없다.

'혹시 저 텐트 속 침대에 구렁이가 누워 있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도 해 본다.

 

 

이 소나무들은 언덕에 비스듬히 누웠다. "힘들어 잠들고 싶을까? 아니면 누굴 잡고 싶을까?"

 

 

언덕에서 마당을 내려다보니, 그 어지럽게 널렸던 나무들이 자리를 찾아 한결 깔끔해졌다.

 

 

성질 급한 코스모스는 벌써 피기 시작했다.

"대가리 쇠똥도 벋거지지 않은 조그만 것들이..."

 

 

 

마나님께서 이 땅들을 개간하라는 어명인데, 내가 소처럼 힘이 쌘줄 아나베...

 

 

가시에 찔려 잘라버린 장미지만 계속 꽃이 핀다.

 

 

굴러다니는 목을 언덕에 박아두었는데, 그믐 날 밤에 보면 좀 으시시하다.

 

 

그토록 지붕 위로 올라가래도 내려오던 덩쿨이 드디어 마음을 바꾸었나보다.

 

 

 

작년 가을 벌목하다 나무둥치에 발등 찍힌, 그 지긋지긋한 현장이다.

 

 

칡능쿨에 머리채잡혀 자리에 눕지 못하는 잡목들. 저걸 어쩌지...

 

 

 

우리집 명상소다.

한 해 동안의 똥을 받아 거름으로 쓰는데, 재를 뿌려서 인지 전혀 냄새가 없다.

 

 

 아내가 가꾸는 야생화 밭인데, 주인이 오지않으니 꽃도 피지 않는다.

 

 

마당을 독차지 하던 그 많은 나무들을 해체해 부위별로 모았다.

그 위로 호박넝쿨이 기어 오른다.

 

 

 이 장작들은 나처럼 오래된 것들이라 금방 타버리지만 화력 하나는 끝내준다.

 

 

아직도 대기중인 나무들이 있다,

기계톱이 망가져 무딘 톱으로 잘라야는데, 어느 세월에 다 자를까.

 

 

 

도끼질하려면 고생 좀 해야겠네.

 

 

 

대충 찍고, 사진 정리하러 컴퓨터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엊저녁 제사지낸 덕에 먹을 것이 좀 여유롭다. 좋아하지도 않는 과일이 책상에 다 있고...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한채, 벽에 붙어 있는 육신들..​

이 작업들은 언제 쯤 마무리될까?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엔 폭우가 무섭도록 쏟아졌다.
승용차가 개울에 떨어져 가족들이 병원에 실려 가는 등,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
정신을 놓아 어떻게 시신을 땅에 묻었는지 기억마저 없다.

울 엄마 만지산 입산 신고식은 그렇게 힘들게 치루었다.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무심한 세월이 벌써 십년이나 흘렀다.

아내는 대상포진이라는 병에 걸려 몇 일째 꼼짝을 못하는데,
태풍마저 온다는 뉴스에 마음이 무겁다.
새벽4시부터 일어나 음식들을 싸들고 혼자 정선으로 떠났다.

양평을 벗어나 횡성 가까이 쯤에서 운해에 휩싸였던 산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조개구름을 비집고 햇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태풍 대신 폭염을 예고하고 있었으나, 푸드덕 나는 새가 길조이길 바랬다.

열흘 만에 찾은 집은 잡초도 무성하지만, 텃밭의 채소도 몰라보게 컸다.
만지산 산소에 가족들이 온다는 연락에 혼자 바쁜 걸음 쳤다.
청소하고 밥 짓고 밤 깎는 등, 두 시간이 금새 지나버렸다.

이번 기일엔 모두들 살기 바쁜지 많은 가족들이 빠졌다.
누님(조영희)과 동생(조창호), 형수(김순남)와 조카(조영란)만 왔는데,
조카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할머니 좋아하는 꽃바구니를 사들고 온다.
생전에 조카를 끔찍이 좋아하기도 했지만, 도무지 요즘 애들 같지 않다.

제삿날마다 비 아니면 폭염이 쏟아져 각오는 했지만, 땀이 팥죽처럼 흘렀다.
아무리 산중이라지만 찬바람 나는 에어컨이 그리웠다.
산소에 차린 음식마저 마다하고 모두들 읍내로 외식하러 나갔다.

시설 좋은 집 찾느라 ‘국향’까지 갔는데, 왠지 바가지 쓴 기분이다.
곤드레 정식 일인분에 17,000원이라니...
식당 안내 잘 못한 죄로 병방치 스카이워크까지 갔으나, 그 또한 쓸데없는 짓이였다.

모두들 떠나가고 혼자 쓸쓸히 제사상을 차려야 했다.

 

 

 

 

 

 

 

 

 



장에 가는 재미 중 사람 보는 구경거리도 빼 놓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축제라도 사람 없으면 소용없듯, 장터의 중심은 결국 사람이다.
길이나 버스 같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과는 또 다르다.
일에서 해방되고 울타리에서 벗어났으니, 모든 걸 내려놓고 함께 어울릴 수 있다.

그동안 개인주의적인 의식구조 때문에 쉽게 소통하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마음의 빗장을 풀고, 모르는 사람 만나는 재미에도 한 번 빠져 보자.
알고 보면 다 정다운 이웃이고 좋은 사람들이다.

정선아리랑시장 문화장터는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다양한 층들이 얼굴을 부딪친다.
때로는 공연장에 나가 같이 엉덩이를 흔들며 춤도 춘다. 이게 사람 사는 재미다.
할머니 같기도 하고 아버지 같기도 하고, 애인 같기도 한, 다 가족 같은 이웃이다.
옛 말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장을 지나치다 눈길이 마주치면
서로 웃으며 말을 걸어보자. “안녕하세요. 패션이 멋지네요”, “어디서 오셨어요?”

문화장터에서 만난 사람과는 막걸리라도 한 잔 나누며 어울려보자.
정선아리랑시장에서 만나는 이런 인연들이 쇼핑이나 공연보다 훨~~~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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