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시던 날엔 폭우가 무섭도록 쏟아졌다.
승용차가 개울에 떨어져 가족들이 병원에 실려 가는 등,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
정신을 놓아 어떻게 시신을 땅에 묻었는지 기억마저 없다.

울 엄마 만지산 입산 신고식은 그렇게 힘들게 치루었다.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무심한 세월이 벌써 십년이나 흘렀다.

아내는 대상포진이라는 병에 걸려 몇 일째 꼼짝을 못하는데,
태풍마저 온다는 뉴스에 마음이 무겁다.
새벽4시부터 일어나 음식들을 싸들고 혼자 정선으로 떠났다.

양평을 벗어나 횡성 가까이 쯤에서 운해에 휩싸였던 산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조개구름을 비집고 햇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태풍 대신 폭염을 예고하고 있었으나, 푸드덕 나는 새가 길조이길 바랬다.

열흘 만에 찾은 집은 잡초도 무성하지만, 텃밭의 채소도 몰라보게 컸다.
만지산 산소에 가족들이 온다는 연락에 혼자 바쁜 걸음 쳤다.
청소하고 밥 짓고 밤 깎는 등, 두 시간이 금새 지나버렸다.

이번 기일엔 모두들 살기 바쁜지 많은 가족들이 빠졌다.
누님(조영희)과 동생(조창호), 형수(김순남)와 조카(조영란)만 왔는데,
조카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할머니 좋아하는 꽃바구니를 사들고 온다.
생전에 조카를 끔찍이 좋아하기도 했지만, 도무지 요즘 애들 같지 않다.

제삿날마다 비 아니면 폭염이 쏟아져 각오는 했지만, 땀이 팥죽처럼 흘렀다.
아무리 산중이라지만 찬바람 나는 에어컨이 그리웠다.
산소에 차린 음식마저 마다하고 모두들 읍내로 외식하러 나갔다.

시설 좋은 집 찾느라 ‘국향’까지 갔는데, 왠지 바가지 쓴 기분이다.
곤드레 정식 일인분에 17,000원이라니...
식당 안내 잘 못한 죄로 병방치 스카이워크까지 갔으나, 그 또한 쓸데없는 짓이였다.

모두들 떠나가고 혼자 쓸쓸히 제사상을 차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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