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수 석달만에야 1차 지원자 발표
직전엔 건보액 따라 선정기준 바꿔
탈락불만 줄잇자 “전문심의” 밝혀
극심한 경제난에 실질적 도움 못줘


“한번 무대에 오르면 하루 ‘페이’(일당) 3만5000원을 받습니다. 한 달 내내 공연을 하면 50만원 조금 넘게 법니다. 배역 하나를 두세 명이 돌아가며 맡을 때도 많거든요. 6년 전 ‘프리 선언’ 직후엔 하루에 1만5000원, 2만원씩도 받았어요. 편의점이나 맥줏집 아르바이트라도 잠깐씩 하지 않으면, 생활비는 고사하고 당장 방세나 휴대전화 요금도 낼 수가 없어요. 아는 작가 선배한테 ○○○ ○○○○○○을 소개받고 ‘와, 진짜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요.”(12년차 연극배우 이민화씨·가명·36)
“2009년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했어요. 2011년 누구나 알 만한 대형 영화제작사에 그 작품을 넘기며 계약금 1000만원을 받았고요. 그때만 해도 영화 제작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시나리오 써봐야 당장 돈이 나오는 게 아니어서 편의점, 주유소 아르바이트로 한달 60만원 정도 벌고 있는데, 많이 힘들죠. 딱 올해까지만 어떻게 버텨보고 길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직업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나타난 게 ○○○ ○○○○○○이었어요. 그거라면, 조금 더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는데….”(8년차 영화 시나리오 작가 김중호씨·가명·35)
이씨와 김씨, 젊고 가난한 두 예술인에게 희망 대신 실망을 안긴 동그라미 속 그것은 ‘예술인 긴급복지지원(예술인 복지사업)’이다. 형편이 어려워 창작에 힘쓰기 어려운 각 분야 예술인에게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겠다며 정부가 시행에 들어간 이 제도는 애초 취지와 달리 되레 예술인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대상자 선정기준과 갑작스런 선정기준 변경, ‘긴급’이라는 말을 무색케 하는 오랜 선정 기간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예술인재단)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예술인에게 매달 100만원의 긴급복지지원금을 3~8개월간 지원한다는 내용의 예술인 복지사업 시행 계획을 발표한 것은 지난 1월23일이다. 자신의 예술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저소득 예술인 가운데 실업급여나 보건복지부 긴급복지지원제, 국민기초생활보장제 등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지원 대상이다.
지난 2월24일 예술인재단이 접수를 받기 시작하자 ‘긴급지원’을 바라는 많은 예술인들이 재단 누리집 등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다. 서울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어렵게 배우의 꿈을 키워온 이씨와 자신의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김씨도 기대에 부풀어 예술인재단 문을 두드렸다.
예술인 복지사업에 몰린 많은 관심과 달리,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사람은 석 달 가까이 나타나지 않았다. 재단에 지원을 신청한 예술인 사이에서 “이건 긴급복지가 아니라 거북이 복지”라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예술인재단이 뒤늦게 1차 지원 대상자를 발표한 건 지난 5월16일이다. 문제는 그로부터 3일 전이었다. 5월13일 재단은 느닷없이 “좀 더 많은 예술인이 예술인 복지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선정기준을 바꿨다”며 이전에는 없던 ‘건강보험료 납입고지액 2014년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월 163만원 이하) 200% 이하’라는 기준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쉽게 말해 건강보험료 납부액 기준으로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두 배 이상이면 지원 대상에서 탈락시킨다는 내용이었다.
건강보험료를 감당할 형편이 안 돼, 가족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등록된 예술인들이 무더기로 탈락했다. 이씨는 1일 “작년까지 내 힘으로 건강보험료를 내다가 수입이 줄어 계속 연체했다. 어쩔 수 없이 남동생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렸다. 미납 보험료는 아직도 할부로 갚고 있는 처지인데, ‘건강보험 피부양자이기에 (예술인 복지사업에서) 빠졌다’는 답변이 들으니 이게 뭔가 싶다”고 말했다. 김씨도 같은 이유로 예술인 복지사업 대상에서 밀려났다.
갑작스런 선정기준 변경 탓에 지원 대상에서 탈락한 예술인들이 불만을 쏟아내자 재단은 지난 28일에야 공고를 내어 “선정기준에 부합되지 않아 미선정된 사례 중 부채, 질병, 기타 개별적 특수 사안에 대해 전문가들에 의한 전문 심의를 추진하겠다”며 물러섰다. 또 재단은 심의 과정에 대해서도 “(많은 신청자가) 제기한 다양한 개별 사안에 대해 고려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나도원 예술인소셜유니온 공동위원장(음악평론가)은 예술인 복지사업 논란에 대해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 등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겨우 마련된 예술인복지법과 관련 사업이 어려운 형편에 놓인 각 분야 예술인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문화부와 예술인재단 관계자가 현장 예술인들의 다양한 현실과 처지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신문 /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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