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변한다는데, 죽을 날이 다가 온 걸까?
친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 날 정도로, 식구보다 더 챙긴 내가 요즘 마음의 문을 서서히 닫으며,
그 오래된 인연을 하나하나 끊고 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변화다.

없는 자보다 가진 자가, 못 배운 사람보단 배운 자가,
못난 사람보단 잘난 사람들의 가식과 비인간적인 실체에 서서히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솔직히 동자동 사람 외는 아무도 만나기 싫어 고장 난 핸드폰마저 일부러 고치지 않고 버틴다.

문제는 동자동에 정착하며 그 증세가 더 심해졌다는 점이다.
정 많은 동자동 사람들과 비교되어서 일까? 아니면 일종의 패배의식의 발로일까?
항상 마음의 문을 열라 나발 불었지만, 정작 나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것이다.






열흘 전, 동자동 공원과 용성이네 집에서 술 마시다 자정이 넘어서야 돌아왔는데,
주머니에 넣어 둔 열쇠가 사라져 버렸다. 동내 나들이라 호주머니가 얕은 옷을 입고 나간 게 화근이었다.
쪽방의 자물쇠 고리는 방 안에서 고리가 나와 밖에서는 못을 뽑을 수가 없도록 되어 있었다.
쪽방에 별 중요한 물건도 없을 텐데, 다들 문 걸어 잠그는 건 철저하다.

망치도 없지만, 잠든 야밤에 퉁탕거릴 수 없어 고민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염치불구하고 건물 관리자 정선덕씨를 깨워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더니,
가끔 있는 일이라며 쇠 자르는 공구로 단숨에 자물통 고리를 잘라 주었다.
감사~ 감사~를 연발하며 들어 왔으면 잘 것이지, 술 취해 컴퓨터를 열어놓고 페북 질 하느라 날밤을 깠다.
눈을 떠보니 점심때가 지났더라. ‘식도락’도 끝난 시간이라 컵라면으로 속을 풀어야 했다.






그러나 외출을 하려니 자물통이 필요했다.
후암시장 철물점으로 급히 갔는데, ‘서울역쪽방상담소’ 앞에서 김만귀, 문규도씨가 밑반찬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냉장고가 텅텅 비어 밑반찬이라도 챙겨가야 하지만, 미처 신청하지 못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던 얻어먹으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하지만, 쪽방상담소에는 왠지 걸음이 가지질 않는다.

열어 놓은 방이 걱정되어 자물 통 하나 사서 바삐 걸어오니, 멀리서 이재화씨가 반갑다며 손을 흔들지만,
손 인사만 하고 그냥 지나쳐야 했다. 방문을 걸어 잠거야 맘 편히 다닐 수 있는 것도 잠재적인 피해의식이리라.





쪽방은 겨울보다 여름 지내기가 더 힘들다.
방이 좁아 통풍이 잘 안되니, 방문을 열어놓으면 훨씬 나을 텐데, 다들 문을 닫고 산다.
아무런 비밀도 없지만, 독거들의 공통된 심리다.

그런 폐쇄되고 고립된 습관에 의한 것인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불신인지 모르겠으나,
방문 닫는 것보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어 그것이 더 걱정이다.
깊어가는 불신의 고리를 끊고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평생을 사람 사람하며 인본주의를 노래불렀는데,

더 이상 그런 말 할 자격도 사진 찍을 자격도 없다.
불신의 병이라면 빨리 치료 받고 싶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4일 오후5시, ‘동자희망나눔센터’2층에서 동자동 5월 주민자치회의가 열렸다.
김장수씨를 비롯한 23명의 주민들이 참석한 이날 자치회의는 위원장을 선출하는 날이었다.
지난 달 회의에서 김병택씨가 신임을 얻지 못해 재투표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김병택씨 대신 김만귀씨가 출마해 찬성20명, 무효표3명으로 당선되었다.

무효표로 나온 3명도 표기방식이 달랐을 뿐이지 사실상 찬성이나 마찬가지라

참석한 전 주민의 지지를 받아 위원장에 선출된 것이다.





마치 율 부린너같은 겉모습만 보아도 일은 잘할 것 같았다.

김만귀씨는 언변이 어눌하여 나처럼 농아리를 잘 풀지 못한다.

인사말 하라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란 한마디로 끝냈다.

씨잘데 없는 공치사로 시간 끄는 인사말보다 얼마나 시원하냐?

대개 말 많은 사람들이 실속이 없다.





그런데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배부한 ‘5월 주민자치회의공지사항에 보니

지난달과 달리 주민 자치회의 위원장 선출을 반장 선출로 잘 못 표기해 놓았다.

실무자의 실수로 여기고 싶으나 운영위원 선정에 대한 언급이 없어 조직을 축소시켜

자치 업무를 제한시키려는 의도가 아닌가도 생각되었다.

천여 명이 넘는 동자동 주민의 자치기구 대표를 반장으로 격하시키는 것도 우습지만,

이건 반장을 통해 모든 걸 관장하려는 불순한 의도로도 볼 수 있다.





김만귀 위원장은 서로 협의하여 주민들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10명 내외의 운영위원회를 즉각 구성해야 한다.

모든 주민들의 의견은 그 운영위원회의를 거쳐 상담소에 전달되고

실행에 옮겨질 수 있는 명실상부한 주민자치회의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운영에 대한 정관도 빨리 만들어야 할 것이다.





관리업체의 종이 될 것인지 주인이 될 것인지의 심각한 사안이다.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이제부터 주민자치회의에 관여하지마라.

주민들에게 알려야 할 공지상황만 알려주면 된다.

 

회의가 끝난 후 이기영, 이남기, 김만귀, 김장수, 강완우, 김진호씨 등

여러 주민들이 어린이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한담을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김만귀 위원장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그는 내년에 쉰이 되는 일하기 딱 좋은 나이였다.

그리고 40여 년 동안 동자동에서 살아 온 원주민이라

주민들의 어려움이나 불편함 등의 고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조직이 구성되지 않은 터라 많은 것은 물어 볼 수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 갈 작정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와의 원활한 협력관계를 만들고,

주민들의 뜻을 전달하고 시정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사진,/ 조문호






서울역 쪽방상담소의 5월 공지사항

 

[무료진료 일정안내]

511() 오후730(드림의료봉사단 무료진료) 성남교회

518() 오후8, (한방진료 및 이미용) 동자희망나눔센터

521() 오후2, (명성의료봉사단 무료진료) 새꿈나눔터(청운고시지하)

525() 오후730, (드림의료봉사단 무료진료) 성남교회

 

[5월 후원 및 자원봉사단체 활동 일정 안내] 

517() 코오롱 직원 봉사활동 (반찬서비스 부식 만들기)

527() 너나들이 단체 봉사활동 (급식200명 제공)

 

[2017년 상담소 지원사업 운영] 

513() 어르신의 날 행사 진행 (용산 가족공원)

# 동자경로당 앞에 8시까지 집결하여 차량으로 이동

[식사, 공연관람, 기념품 배부]

 

516() ‘현대엔지니어링-디딤돌문화교실 프로그램진행

매주화요일 1030분부터 12시까지 총20[선착순20]

생활용품 제작반 (쥬얼리공예, 냅킨아트, 바느질공예)

운영후 수료증 발급, 참여자 나들이 진행예정, 우수작 시민청 전시

사진반(동대문), 풍물반(영등포), 서예반(종로) 관심있는 분은 주민센터에 접수

 

517() 야크희망도전단 4기 산행 진행 (강원 오대산)

523() 일자리박람회 참가 (서울시청 서쪽광장)

530() KT&G 어르신 나들이진행 / 파주 벽초지 수목원(사전 접수자에 한함)























지난 4월 25일은 동자동 쪽방주민을 위한 2017년 상반기 결핵검진이 있은 날이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사무실 앞에서 실시한 결핵검진은 시간을 정하지 않고 하루 종일 검진해, 편한 시간에 받을 수 있었다.

‘대한결핵협회’에서 나온 검사원 외에도 ‘서울역쪽방상담소’ 정수현 소장과 전 직원들이 나와 검진을 도왔다.

나도 검진을 받아야 했다. 여지 것 결핵검진 뿐 아니라 대부분의 검진을 모르는 게 약이라며 기피해 왔으나,

이젠 검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식생활 등 공동체 생활을 하는 입장이라 남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액스레이 촬영과 객담 검사를 준비하니, 일을 돕던 김만귀, 문규도씨가 라면10개와 우유 한 팩을 선물로 주었다.

결핵검진 봉사현장을 주민들에게 알리려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뒤에서 사진 찍지 말라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뒤늦게 나오던 심경섭씨였는데,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하는 회의나 행사는 항상 취재에 제동을 걸어 왔던 사람이다.

상황 파악도 않은채, 무턱대고 초상권침해를 내 세운다.

찍어도 친분 있는 분들 위주로 촬영하고, 당사자가 싫어하면 그 자리에서 삭제해 자기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공공의 행사는 취재하여 주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무슨 권한으로 주민들의 알 권리인 취재를 방해하는지, 소장이 눈치를 주는데도 막무가내였다.

전형적인 완장부대의 월권행위였다.


쪽방상담소의 특별한 직책도 없을텐데, 먹고 살기위해 하는 짓일까?

일제 강점기나 한국전쟁 통에 파생된 완장부대는 전형적인 적폐청산 대상이다.

권력에 빌붙어 국민들을 괴롭혀 온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현실이 서글펐다.

자기가 행하는 짓이 무슨 짓인지도 모르는 사람과 구차하게 시비하기 싫어 물러났다.

다음에 만나 조용히 설득해 볼 작정이지만,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주민대표선출이 있는 오는 4일의 주민자치회의에는 녹음기도 휴대할 작정이다.

주민들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해 얼굴 노출되기를 싫어하는 분은 피해서 촬영할 것이다.

더 이상 참석하지 못하는 다수 주민들의 알 권리를 방해하지마라.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쪽방주민자치회의가 지난 4월7일 오후5시, ‘동자희망나눔센터’ 2층에서 열렸다.
이날은 쪽방주민자치회의 위원장을 선출하는 자리라, 정선에서 하던 일 중단하고 상경했다.
누가 맡느냐에 따라 주민들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보수 봉사 직이라 나서는 분들이 많지않다.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라고는 김병택씨 한 분이었는데,
그 분은 연세가 많아 적극적인 봉사가 어렵지만, 상담소 편을들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민자치회의를 끌어 갈 사람은 항상 주민 편에 서야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김장수씨가 김병택씨 선임에 제동을 걸었다.
“추천된 분이 좋은지 아닌지를 묻는 무기명 투표를 하자”는 것이었다.
찬성이 많으면 넘어가지만, 반대가 많으면 다시 추천받아 선출 하자고 했다.
그리고는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젊은 김만기씨를 추천한다고도 말했다.

맞는 말이다. 회의장에 불과25명밖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다들 주민자치에 관심가진 분들이라, 그 들의 의견을 들어야 했다.
이배식씨는 ‘권위나 경륜 있는 김병택씨가 되어야 한다’했고,
김장수씨는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서로 주민들의 동의를 구했다.

주민 투표를 실시한 결과 김병택씨를 찬성하는 표는 9표, 반대 표가 14표로 김병택씨가 신임을 얻지 못했다.

무효표도 두 장 나왔는데, 동그라미를 쳤다가 다시 액스 표를 쓴 것도 있고, 이름을 적은 표도 나왔다.

그런데 이해 되지 않는 것은 투표에서 떨어 진 김병택씨가 화를 버럭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린 것이다.

“신청자가 한 사람 뿐이면 그대로 해야지 왜 투표를 하냐?”는 것이다. 이게 무슨 공채하는 자리인가?

주민들의 대표를 뽑는데, 어찌 주민들의 의견을 묻지 않을 수 있겠나?

그리고 대가 없는 봉사 직에 목맬 일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열심히 하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것이 어른으로서 도리다.
쪽방주민자치회의 위원장 투표는 다음 달 자치회의로 미루어졌다.


상담소 직원은 필요 없는 물건과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는 물물교환장터를 연다는 공지를 했다.

사실, 필요 없는 물품들이 지원되어 비좁은 방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어떤 물품이 필요하냐고도 물었다. 바퀴벌레약, 모기장, 메트 등 몇몇 요구가 있었지만,

그 몇 사람 요구로 천여 명이나 되는 전체주민의 뜻을 수용할 수 있겠나?

진정으로 주민들에게 도움주고 싶으면 직원들이 회람을 돌려 몇 가지 정도의 물품을 신청 받아 합리적으로 택하던지,

아니면  예산에 맞는 상품권을 지급하여 주민들이 필요한 것을 구입하도록 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매일 아침 우유 한 팩 배달해 드리는 것보다 더 고마운 일은 없을 것이다.

다들 몸이 불편하여 잘 나오지를 못하니 먹는 것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주민들의 실생활에 다가가는 실질적인 행정을 펼쳐주기 바란다.


주민들에게 물품을 지급할 때도 시간을 정해 줄 세우지 말라고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시정되지 않고 있다.

몸이 불편하여 나오지 못하는 분들도 많은데다, 보기에도 좋지 않고 주민들을 타자화하여 자립심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소량으로 보내오는 물품 때문이라지만, 물품내용에 불문하고 주민번호 대로 차례대로 돌아가며 지급하면 된다.

줄을 세우게 되면 받는 사람은 계속 받지만, 몸이 불편하여 게시물을 보지 못한 분들은 번번히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물품을 어디에서 얼마만큼 지원되었는지도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보내는 분들의 고마운 뜻을 알아야 할 주민의 권리가 무시되기도 하지만, 그런데서 비리가 생기는 것이다.


모든 일을 주민측 입장보다 상담소 편한 대로 진행하고 있는데, 도대체 상담소 직원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 날은 ‘서울역쪽방상담소’소장이라는 정수현씨를 처음으로 소개했다.

내가 동자동에 온지 육 개월이 넘도록 '서울역쪽방상담소'나 자치회의장을 여러차레 찾아 다녔지만 처음 보았다.

단상에 나와 그동안 몸이 불편했다고 한다.


비참하게 생활하다 홀로 비명에 돌아가시는 주민이 많건만, 그들은 아예 손놓고 있다.

손 놓은게 아니라 주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니, 알리가 없다.
언제까지 주민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이 따위 탁상행정을 계속할 것인가?
이 또한 우리사회에서 청산해야 할 적폐인 것을 명심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우리나라는 어딜 가나 둘로 나누어진다.
마지막 분단국가의 한이 곳곳에 뿌리박혀 있다.
진보, 보수로 나뉘는 정치적 대립은 물론, 종교적 갈등도 마찬가지다.
색깔이야 다를 수 있겠으나, 문제는 다르면 상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광신도적인 종교적 성향을 가졌거나,
박사모 같은 보수꼴통의 친구들은 잘 만나지 않는다.
더구나 인터넷 매체에 노골적으로 박근혜를 씹어대니,
그들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 살며 마음 주고 받으면 그만인데,
몰지각한 정치꾼이나 맹신도들의 놀음에 왜 우리가 휘둘리는지 모르겠다.





빈민들이 모여 사는 동자동도 마찬가지다.
일단 주민들을 돕는 조직부터 둘로 나뉘어져 있다.
주민들이 스스로 꾸려가는 ‘동자동사랑방’과
관변 조직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있는데, 서로 반목한다.

싶게 말해 애들처럼 사탕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것이다.
가시적인 지원행사는 빈민들의 자립심만 잃게 한다는 말이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이곳도 정치적 성향으로 갈려있다.
몇일 전 진보성향의 ‘동자동사랑방’ 정기총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축사 하는 분이 지금 인양되고 있는 세월호의 아픔을 잠깐 언급하자
한 분이 대뜸 일어나 총회에서 정치적인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월호의 아픔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자체가 슬픈 일이다.






지난 30일 시나리오작가 최건모씨가 내가 사는 쪽방을 방문했다.
‘동자동사랑방’ 박정아씨를 만날 일이 있다고 했다.
‘식도락’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박정아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건모씨에게 닥아오는 어버이날, 주민들 사진 돌려줄 수 있도록
사진 프린트 지원업체를 한 번 알아봐 달라는 부탁도 했다.






‘동자동사랑방’사무실 주변에는 여러 명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김정호씨는 사랑방 입구에 걸린 간판을 자기가 새로 만들었다며 자랑 했다.
최건모씨가 돌아간 후 ‘새꿈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공원 입구에 버틴 목련 꽃송이는 터질듯 부풀어 있었다.
그 아래 정재헌씨가 이른 시간부터 낮술에 젖어 있었다.
목련꽃 몽울진 봄바람에 취했는지,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허무를 달래고 있었다.
옆에 있던 김장수씨는 기계체조 선수 시절의 추억을 씹었다.






‘동자동사랑방’ 주변에는 낮에 술 취한 사람이 전혀 없지만,
공원주변에는 낮에 취한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술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 차이가 아니라
희망을 가진 사람과 희망이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겠다.
한 가닥 희망마저 포기했기에 죽음 제촉하는 독주를 대낮부터 퍼 마셔대는 것이다.





돌아서니 최남선씨가 나를 불렀다.
영정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고 했다. 요즘은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면 반갑다.
가진 재주가 그 뿐이니, 주변에 세워 두 컷을 찍었다.
슬며시 내 손에 전해주는 베지밀 병의 온기가 따뜻하게 전해졌다.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이처럼 따뜻한 온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몇 일간 심한 감기증세로 꼼짝않고 방에서만 지냈다.
일단 사진을 찍지 않으니, 일 할 게 없어 편했다.
컴퓨터도 켜지 않은 채, 들어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천장에 붙여 둔 천상병선생의 윙크하는 사진이 위안했으나,
점점 고립감이 엄습해 온다. 죽음에 대한 연습인가?

쪽방은 방문을 닫으면 옆방에 사람이 죽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철저한 고립만 남는다.

그렇지만 그 고립을 은근히 즐겨온 게 사실인데, 몸이 아프니 도리가 없다.
엊저녁엔 장경호씨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찾아 와 병원가자고 난리를 피웠지만,

그마저 귀찮은 것이다. 사람이 싫어지면, 사진도 찍을 필요가 없고, 살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래, 봄이 올 때까지 한 번 기다려보자.

곧 입춘이니, 광화문광장에서 한 판 놀아야 할 것 아닌가.
이틀 만에 밥을 먹기 위해, ‘식도락’으로 내려갔다.
그마저 늦은 시간이라, 밥은 일인분만 남아 있었다.
발알 하나 남기지 않고 밥솥을 비웠으나, 도통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입맛이 없어 살기위해 먹는다고 생각하니, 비참해지더라.

아마, 나 혼자 먹었더라면, 밥 숱 가락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어렵게 남을 돕는 공간이라 밥 한 톨 남길 수 없었다.
다 먹은 후, 맛있게 먹었다는 난에 스티커를 한 장 붙였다.
허미라씨가 매일 오후1시부터 주민들과 정 나누는 티타임을 갖는단다.
허마담이 타주는 다방커피가 그리웠으나, 커피만 안 된다니 정이나 나눠야지...

내가 모르는 '서울역쪽방촌상담소'에 대해, 최남선씨에게 많은 것을 물어 보았다.
쪽방촌상담소는 관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단체에 하청을 주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방’으로 자리를 옮겨 김정호씨 에게도 여러 가지 물어보았다.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사랑방조합’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단다.

관의 도움이나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하게 위해서다.

 

줄 세우는 거지취급도 싫다지만, 그건 주민들이 바꾸어 가야 할 일이다.
피난민들을 위해 한국전쟁 때나 있었던, 줄 세우는 짓은 이제 끝내야 한다.
주민들에게 지급하는 물품도 날자를 정해, 시간 나는 데로 찾아갈 수 있도록 하고,
소량의 후원 물품도 돌아가며 나누는 방법으로 바꾸면 된다.
빈민들을 구제한다는 가시적인 효과를 노리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좀 더 합리적인 여러 방안을 마련하여, 협상에 나서기로 작정했다.

저녁에는 안승룡씨 전시 오픈이 있어, 강남 ‘스페이스22’에 가야했다.
반가운 분들 만났으니, 어찌 술잔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몇 잔 마시지 않았는데도, 어지러워 일어나야 했다.

돌아오는 길의 서울역 지하도엔 웅크려 자는 노숙자가 나를 비웃는 듯 했다.


저렇게도 살아가는데, 어찌 힘내지 않을소냐?

사진, 글 / 조문호



























새해 첫 날부터 열 받았다.
부모님의 차례를 지낼 수 없어 ‘동자 희망 나눔 센터’에서 치루는 합동제례에 함께했다.

70여년 살아왔으나, 가족 없이 합동차례를 지내는 것도 처음이지만, 정월 초하루 날 이렇게 열 받아 본 적이 없다.

돈이나 권력 가진 자들의 갑 질이야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빈민들을 위해 만든 “동자 희망 나눔 센터”도 마찬가지였다.

문 앞에서 만난 직원의 사진 찍지말라는 첫 말에 그만 울화가 치민 것이다.

인사부터 나누며 이런 저런 사정을 이야기하며 양해를 구하는 것과 강압적으로 찍지말라는 것은 천지차이다.

등짐에서 카메라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만나는 직원마다 사진 찍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전에 자치회의 진행의 잘못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한 글을 꼽게 여겨, 보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사람들의 초상권 보호를 위한다지만, 그 문제는 그들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 내가 걱정할 일이다.

그동안 사진을 찍어왔지만, 대개의 주민들이 나의 사진기록을 묵인해 주었다.

사진 찍히기를 싫어하는 몇몇 분은 내가 피하기도 하지만,

삭제해 달라면 그 자리에서 삭제해 별 문제가 되지않고, 오히려 찍어 달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을 위한 사진이기도 하지만, 그 작은 기록들은 먼 훗날, 그들 삶의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합동 차례는 여기 저기 알려 권장할 일인데다, 뒷모습만 나오니 초상권 운운할 문제는 더구나 아니었다.

그런데 직원들은 찍으면서 나만 찍지 말라는 것이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나그네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박근혜 하는 짓이나 하나도 다를 것 없었다.






문제는 주민들에 대한 갑 질이 아주 조직적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말 잘 듣는 몇 명에게 주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할 지원품을 여유있게 주는 완장부대를 둔 것이다.

자원봉사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나를 그렇게 만만하게 본 것일까? 사진 찍지 말라면 그만 두고, 싫다면 나오지 않을 그런 사람으로 말이다.

난 빈민들의 보다나은 삶을 위해 남은 목숨 바치러 온 사람이다.

아니, 돕는 다는 말보다 스스로의 권익을 찾으러 왔다.

그렇게 제지하는데도 계속 사진을 찍으니, 잘 아는 완장부대 영감이 “너 맞을레”라며 욱박질렀다.

“당신 깡패야?”라고 되물었더니, 손으로 맞는 것만 맞는 것이냐?“며 슬며시 꼬리 내린다.


명절제사를 제대로 치루지 못해 합동제례에 모시는 불효막심에 가슴 아팠으나,

어쩌면 허례허식일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위안도 가졌다.

합동제례는 가난한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는 권장할 일이었다.

차례를 일 년에 네 번씩 치러 왔지만, 제사상 한 번 차리는데, 20만원은 족히 들기 때문이다.


많이 차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성이 더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없다.

마음의 정성이라도 모우려,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부모님에게 차례를 올렸다.

부족함을 용서 빌며, 앞으로 마을 분들과 잘 지내며 더불어 사시라는 부탁도 드렸다.






이젠 우리 조상들이 지키던 고유의 신은 외국의 하나님 신에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천 이백여명의 주민 중에 제사상에 절한 주민은 열 댓 명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명절이 되어 더러는 일가친척 댁에 간 분도 계시고,

좁은 방이지만 정성 것 차례 올리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미 판세가 바뀌었다.

우리집 제사 역시, 형제자매가 모두 하나님을 믿어 내가 맡은 게 아니던가.

차례를 지낸 후, 가족들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제사 밥 먹던 일도 이제 추억이 되어버렸다.

설날 주민들과 어울려 떡국이라도 한 그릇 나누며 정 나누길 기대를 했으나, 그마저 깨졌다.

‘동자동 사랑방’처럼 온 주민이 한마음이 되어 치루는 제사가 아니라, 아낙네들 마저 보이지 않았다

대개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있다'듯이 추석선물을 기다리는 것  같은데,

주민 간의 따뜻한 말 한마디 없는 냉냉한 분위기가 더 서글펐다.


그리고 어제도 '사랑의 빨간 밥집'이란 후원단체에서 나와 쌀을 나누어 주었다.

난, 쌀이 남아 줄 서지 않았지만, 그 행렬도 길었다. 사는데 제일 중요한 품목이니까...

그러나 거지처럼 줄세우는 것도 그만해야 한다.

'나눔의 집'에 일괄 넘겨 날자를 정해 수시로 받아가게 했으면 좋겠다.











차례를 지낸 주민들은 이층 사무실에 쌓아 둔 지원품을 힘들게 내렸는데, 그 시간도 제법 걸렸다.

그 사이 물품을 받으려는 동내주민들의 행렬은 장사진을 쳤다. 지원품의 종류도 다양했다.

쌀과 삼계탕, 식혜 등이 담긴 포장박스 외에도 사과 한 알, 계란 세 알, 양말 몇 컬레로 나누는 품목도 있었다.


그런데, 민간단체나 기업에서 후원한 물품을 나누어 주는데, 최소한 어디에서 누가 주는 물건인지 알고나 받아야 할 것 아닌가?

그게 베푸는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리고 어디에서 어떤 물품이 얼마나 보내왔고, 몇 명의 주민에게 어떻게 배부되는지, 주민들도 소상하게 알 권리가 있다.

이것이 주민을 무시하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길들이는 일이 아니고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잘 못된 모든 일은 하나 하나 시정되어져야 한다.






허기진 몸으로 주민들 틈에 끼어 지원품을 받아들고 서둘러 돌아왔다.

광화문에서 열릴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제례에도 참여해야하고,

설날에도 쉬지 않는 ‘미술행동’에도 참여해야하기 때문이다.

방으로 돌아와 선물로 준 일회용 삼계탕으로 끼니를 때웠다.

설날 밥상치고는 좀 특별했으나, 시장이 반찬이란 말처럼 잘 먹었다.

그 동안 방이 좁아 밥상 하나 둘 자리도 없었는데, 선물이 담긴 포장박스를 뒤집어니 좋은 밥상이 되더라.

주민들의 권익을 위해 각오를 다진, 새해 첫 날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이 노숙인은 선물도 받을 수 없다.


공짜 물품에 매달리지 않은 강완우씨, 아직 자존심이 살아있는 사람이다.



























쪽방 촌에 살다보니 가끔은 ‘레이더스’가 부른 ‘인디언 보호구역’이 떠오른다.
쪽방 촌이 마치 빈민 보호구역 같다는 생각에서다.
보호한다는 긍정적인 뜻 이면에는 길들인다는 측면도 깔려있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사람을 사육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빈민들은 보호보다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급하다.
수입만 생기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잘리니, 자립할 수 있는 길을 막은 것이다.
그러니, 다들 일하지 않고, 주는 것만 받아 간신히 연명하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하청주는 ‘쪽방상담소’란 사무실이 서울에 다섯 군데다.
동자동이 소속한 ‘서울역쪽방촌 상담소’를 비롯하여 남대문, 동대문, 종로, 영등포에 있다.
모두 서울 중심지에 몰려있는 것도 특징이다.
상담소에 등록하여 회원증만 받으면 공짜 상품도 수시로 준다.
그러니,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쪽방 촌으로 몰려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 9일에는 상품을 준다기에 나갔더니, 참치 캔이 든 상자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상자에 박힌 ‘대한민국정부’라는 로고에 또 한 번 주눅 들었다.
국가에서 너희들을 어여삐 여겨, 특별히 주는 것이니 말 잘 들으란 말 같았다.






물건을 타러 길게 줄지어 선 모습을 보면, 마치 난민 수용소의 한 풍경이 연상된다.
보기에도 안 좋지만, 줄 서 있는 입장에서는 꼴이 말이 아니다.
한 가닥 남은 자존심마저 몇 차례의 반복으로 서서히 사라지며, 좀 뻔뻔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본인도 모르게 길들어가는 징조다.









오늘은 구정선물 준다기에 갔더니, 추운 날씨에 사람들이 이삼백 미터나 길게 줄지어 있었다.

기다려보니 물건을 받기까지, 두 시간이나 걸렸다.
웅크려 떨며 기다리는 그 시간들은 인내의 한계를 보여 주었다.
방에 와서 펼쳐보니, 그의 백화점 수준이었다.
어린시절 미군들에게 얻어먹었던 씨레이션 박스가 생각났다.










일회용 팩에 든 곰탕을 비롯하여 내복과 잠옷, 떡국, 고추장, 김, 치약, 칫솔, 비누, 샴푸 등
한 살림이었다. 그러나 내가 당장 필요한 것은 곰탕과 떡국 등 한 두 가지 뿐이었다.
내일 당장 난리 터질 일도 없으니, 비좁은 방에 두면 짐스럽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기호품으로 당장 필요한 일회용 커피는 없었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서로 힘들게 하지 말고,

적절한 상품권을 주어 당장 필요한 물건으로 바꾸어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얻어 먹는 주제에 줘도 말이 많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젠 좀 합리적으로 하자는 말이다.
그걸 받아 약간의 도움은 될지 모르나, 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받는 사람의 정신만 병들어가는 것을 왜 모르는가?






돈 많이 드는 장기적인 복지개선 보다, 가시적인 생색내기에 딱 안성마춤인 것이다.
그런 생필품은 쪽방에 사는 빈민보다, 거리에 방황하는 노숙인이 더 절실하다.
그들은 기초생활수급을 못 받는 것도 서러운데, 이런 생필품마저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노숙인의 인적현황도 제대로 파악 못하면서, 무슨 놈의 빈민의 복지를 말하냐?







정부의 하는 짓거리를 보면 빈민들이 협력하는 ‘동자동사랑방공제협동조합’보다 못하다.
실제도 그렇지만, 진보와 보수의 차이다. 그러니 주민들조차 둘로 나뉜다.
협력하여 자립의 길을 찾는 것과 눈깔사탕으로 길들이는 것이, 어느 게 더 나은가?
정치가 썩었으니, 관료들도 잔머리만 굴려 국민들만 고달픈 것이다.





지난 11일 오후 다섯 시에 주민자치회의가 있다기에 아픈 몸을 끌고 ‘나눔의 집’으로 갔다.
삼 십 여명의 주민들이 모였으나, 회의를 소집한 상담소 직원은 15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주민자치회의에 공무원이 올 필요야 없지만,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번 회의에서 보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를 줄 알았으나 마찬가지였다.





말만 자치회의였지, 일방적인 공지의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언제 선물 주고, 언제 무료 진료가 있다는 등의 안내뿐이었다.
그 정도면 지금처럼 요소에 붙인 공지문으로 다 아는데, 왜 불러 모았을까?
자치라는 말뜻도 모르는 모양이다. 이것도 길들이는 수순인가?





이제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것과 함께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구조적 모순점들을 완전히 쓸어내야 한다.


“난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다. 죽어도 사육 당하기는 싫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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