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아침부터 반갑지 않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허기 때우려 새꿈 공원에 빵 타러 갔더니, 마음까지 축축했다. .
비가 와도 빵 주는 '한강교회'사람이나, 빵 타기 위해 줄 선 노숙자나 힘든 것은 다 마찬가지다.





난, 노숙자는 아니지만, 빵으로 끼니 때우기를 즐긴다.
어디서나 간단하게 먹을 수 있으니, 버릇 된지 오래다.
그러니 빵 나누어 주는 행렬엔 노숙자들이 더 많다.
그 빵이면 삼일을 버틸 수 있으니, 노숙자에겐 최고의 밥이다.






오후에는 공원 아래 둥치 튼 ‘황야의 무법자’ 캠프에 들렸다.
그 곳은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환대받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지들 주머니보다 내 주머니가 더 무거우니까.
막걸리 세병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송가까지 나온다.






원종훈을 좌장으로 이경환, 강 원, 박상일 등 넷이서 지키지만,
조연배우처럼 왔다 갔다 하는 거지도 많다.
그 놈의 담배 값이 너무 비싸, 술보다 더 목 타게 하는 것이 담배다.
한 대 얻어 피우려고, 담배 피우기만 기다리는 시선들이 따갑다.






버려진 천으로 하늘을 가렸지만, 마시다 보면 온몸이 비에 젖을 수밖에 없다.
속옷까지 젖어 우들우들 떠는 원이의 이빨 부딪히는 소리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쪽방에 기어올라 입지 않는 겨울 옷을 갖다주니,
지 애비 같은 나를 “형님은 죽으면 천당 갈 것”이란다. 이 썩을 놈~






그날 술상 안주는 푸짐했다.
어디서 얻었는지 해물탕 그릇이 놓여 있고, 빵 타는 날이라 술상에 빵 봉지가 너부러졌다.
비닐 벗긴 빵은 이미 빗물에 물러 버렸고, 종이 막걸리 잔에도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경환이 부르는 ‘긴 머리 소녀’에 갑자기 죽은 적음선사가 생간난다.
머리 털 하나 없는 중놈이 부르는 청성 맞은 노래에 다들 배꼽 잡지 않았던가.
그런데, 경환의 노래는 나를 슬프게 했다.
적음선사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노래에 경환의 애환이 실려 있었다.






공단에 들어간 어린누이는 없지만, 말 못할 소녀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기 때문이다.
집나간 지 오래된 애미보다 찰떡이 목에 걸려 돌아가신 할매가 보고 싶단다.
다들 눈물 마른지 오래지만, 이 날은 빗물이 눈물 되어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어제는 비오다햇볕나는 등, 날씨가 지랄 같았다.

달세 보증금 50만원을 다 까먹어 쫓겨난 친구가 얼마 전 쓰레기장 옆에 거처를 마련했는데,

비 때문에 이불이 젖게 되어, 응급조치로 천막을 치게 된 것이다.

그 것도 이사라고 집들이 한다며 막걸리 4병과 꽈배기 한 봉지를 사들고 갔다.



 

주인은 보이지 않고, 서울역 노숙거사 이덕영을 비롯하여 이경환, 김동진, 정용성 등

몇 사람이 딸막딸막한 술병을 놓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먼저 본 놈이 임자라고, 그들이 집들이 술을 다 빨아 버렸다.



이덕영을 알게 된지는 제법 오래 되었다.

2016년 가을에 처음 만나 찍은 사진이 바로 카메라는 칼이다사진집 표지에 실린 것이다.

일 년 전, 그에게 사진을 뽑아 주었으나, 노숙자 신세라 보관할 곳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도 몰라, ! 그 사진 한 장 더 뽑아줘라고 다그치길래

사진 대신 책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동갑내기인 김동진씨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동사무소 복지과에 가서 이빨부터 하란다.

자기도 이빨이 없어 동사무소 도움으로 말짱해졌다며 자랑했지만, 난 구제 받을 급수가 아니다.

이빨이 없으니, 키스를 해도 걸리는 게 없어 좋더라고 했더니, 배꼽을 잡는다.

"지들이 게 맛을 알기나 하려나."


 

이덕영과 이경환은 천원 짜리 지폐한 장 놓고 가위 바위 보로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그 돈으로 막걸리 사서 같이 마시겠지만, 술을 쏘는 갑이 되고 싶은 거다.



그런데, 결핵검진 받은 사람은 라면을 다섯개 추가로 준다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얼마 전, 안 해도 될 결핵검사 받아 탄 라면을 원용희씨에게 준 일이 있었다.

그게 불법이라면 천 번이라도 법을 어기겠다는 글을 올린적도 있는데, 고맙기 그지없었다.


 

이경환이 이천원만 달라고 하도 졸라대어 돈 가지러 갔다 오며, 쪽방상담소에 라면 타러 갔더니,

여러명이 서예연습 하느라 한창이었다

 노숙자는 라면 끓일 불판도 없어, 청소하는 할매에게 받은 라면을 드렸다.



김용만는 고물하나 주워, 모터 빼내기 위해 드라이브로 나사구멍을 열심히 쑤셔댔다.

자기 일처럼 눈이 빠져라 지켜보는 홍홍임 아짐의 모습이 정겹더라.


 

돈 만진 김에 어버이날  성금 내러 동자동 사랑방에 들렸다가. 그 앞에서 노닥거리는 유한수, 강명국씨를 만났다.

행사는 며칠 남지않았는데, 뽑을 사진도 골라놓지 않고, 사진 주겠다는 생색만 내고 다닌다.

빌어 붙을 데라고는 마음 약한 정영신씨 뿐이니, 하해와 같은 선처를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이번 빨래줄 전시와 관련해 양해구할 일이 하나 있다.

몇일 전 혼자 이야기로, 주민들에게 돌려 줘야 할 빨래줄 사진 걱정을 했는데,

도와주겠다는 분들 전화나 댓글이 여럿 있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사연은, 결코 떠벌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이 빨래줄 전시지 사진을 전해주기 위한 방법인데,

자칫 일이 부풀려지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로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동네 주민들 잔치로,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또 한가지 해명해야 할 것이 있다.

인사동 사람들블로그는 나의 사진 일기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메주알 고주알 사적인 생각들을 올리는데, 이걸 페북에 연결하다보니,

때로는 오해를 빚거나 말썽을 일으킨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어떤 이는 사진작가란 양반이 무슨 사진을 그리 많이 올려?”

좋은 사진 한두 장만 올리라고 충고하는 이들도 많으나, 그건 내 뜻을 몰라 하는 소리다.



 

그 사진들은 나의 사진이 아니라, 찍힌 분들의 사진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보다, 찍힌 분들이 좋아하는 사진이 더 우선인 것이다.

그들의 취향을 일일이 알 수가 없어, 모든 사진을 올릴 뿐이다.

또한 내가 찍은 사진을 정리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빨래줄 사진도, 내가 좋아하는 사진보다 그들이 좋아 할 사진이나 영정사진을 뽑는다.


 

사진의 작품성 운운하는 웃기는 소리 제발하지마라.

내 사진은 예술이나 작품이길 단연 거부한다.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길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 순간순간을 기록할 뿐이니, 오해 없기 바란다.


 

그리고 어버이날 행사나 빨래줄 전시에 관심 있는 분은 그냥 편하게 오시면 된다

카네이션 한 송이라도 가져와, 자식 없는 불쌍한 어르신들에게 전해드려라.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고 싶은 분이라면 대환영이다.

 

57일 오전 열시부터 오후 두시까지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에서 진행된다.

 

사진, / 조문호



























한 해를 보내는 지난 31일은 왠지 일찍부터 마음이 들떴다.
몇 날을 송년회 핑계대고 퍼 마셨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종각 타종행사 같은 곳에 갈 수는 없잖아.

마침 ‘통인’의 관우선생께서 연락이 왔다.
낙원상가 밑의 ‘다리 밑 집’으로 오라는 것이다.
관우선생 단골집이지만, 좁아도 술집 분위기가 꽤 괜찮다.
마치 어린 시절 짚동 사이에 들어가 놀던 틈바구니 생각도 나지만,
집 이름이 너무 야하지 않은가?

인사동에 나가보니 낙원상가 가는 길이 꽁꽁 얼어붙어 몇 사람이나 넘어졌다.
연탄재라도 좀 뿌려야 했으나 요즘은 연탄재도 흔치 않다.
그런데, ‘다리밑 집’에 문이 잠겨 있었다.
연락했더니, ‘낙원아구찜’으로 옮겼다고 했다.

그 자리에는 관우선생을 비롯하여 송재엽씨 등 여러 명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미녀가 두분이나 있었다.
관우선생이 도예가와 큐레이터라고 소개했는데, 큐레이터라는 여인의 얼굴을 보니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사슴 눈처럼 큰 눈에 금방 눈물이 고일 것 같은 애잔함이 가득한데,
약간 도툼한 입술은 모든 기를 다 빨아들일 것 같은 강한 마력을 갖고 있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걸 눈치 챈 송재엽씨가 얼른 자리를 바꾸었다.
이런 저런 씨잘데 없는 이야기 나누며, 소주로 한 해의 여독을 씻었다.

이차로 다른 곳에 간다지만, 난 서울역으로 가야 했다.
한 해를 보내는 즈음이라 노숙하는 친구들과 한 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사동 최고의 부자나 인생의 벼랑에 선 사람이나 술마시고 노는 건 별 다를 바 없다.
쪽방 촌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가 기초생활수급자라 사는데 별 걱정은 없지만,
노숙자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을 부리는 것이 인간이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욕심 부릴 게 없다.
내일은 생각하지 않고, 있는 대로 나누어 먹는 그들이 진정 비운 자라는 생각도 한다.

패트 소주 두병과 육포하나를 사들고 서울역으로 같다.
개찰구를 나오니 지하도 한 쪽 구석에 낯 익은 자들이 보였다.
이종민, 김종학, 김상훈씨등 여러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낄낄거리고 놀았다.
총무를 맡고 있다는 김종학은 ‘종학이를 아느냐?’며 계속 천원만 달랬다.
서울역에서 종학, 종철, 종민, ‘쓰리 종’을 모르면 간첩이라며 유세했다.

마침 세밑이라 그런지 온정을 나누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외국인 가족이 각기 봉투를 들고 왔는데, 그 안에는 빵 하나 우유 하나, 양말 한 컬레, 핫펙 하나가 들어 있었다.
난 고맙다며 사진까지 찍었으나, 다들 시큰둥했다.
술이 취해 했던 소리를 되풀이하거나 가끔은 금지된 노랫가락이 튀어 나오기도 했는데,
지나가는 역무원들이 제지시키며 나가라고 종용했다.
몸에 상처를 입은 동자동 최씨는 ‘다시서기’직원들이 휠체어로 실어갔다.

이종민이가 카메라를 달래서 주었더니, 이런 저런 모습을 찍어댔다.
마침 경찰의 강제 해산에 직면해 어지러운 술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선물이 담긴 봉지는 챙기지도 않은 채 그냥 두고 갔다.
그런데, 정리를 하고 나니, 종민이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가져간 카메라는 5년 전에 삼십만원에 구입한 NIKON Coolpix P310으로 지금은 단종 된 카메라다.
술자리에서 마구 사용한 고물이라 돈은 되지 않지만, 오늘 찍은 사진파일이 걱정되었다.
그 심장이 멎을 것 같았던 미인도 미인이지만, 같이 마신 친구들의 초상사진도 많았다.

다른 역으로 옮긴다면 모르겠으나, 서울역에 있다면 언젠가는 만날 것이다.
한편으로 배신감도 일었으나, 아무래도 물욕은 아닌 것 같았다.
나에겐 소중할지 모르지만, 그들에겐 쓰레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분명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더 가까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라는 듯...
그들 무리에 합류하고 싶으나, 추위가 두려워 탐색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카메라를 빼앗긴 무장해제 상태가 되니 지갑에 돈 떨어지듯. 온 몸에 힘이 쫙 빠졌다.
기관총 급인 라이카를 챙기러 동자동 방으로 올라갔다.
이 카메라는 고향후배인 사진가 하재은씨가 선물한 카메라인데, 

좋기는 하지만 술자리나 현장에서 막 쓰기는 불편하다.
찍히는 사람들도 피해의식부터 느끼니, 큰 행사나 많은 사진을 찍을 때가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다시 카메라를 챙겨 서울역지하도로 내려갔으나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새로 나타난 어느 노숙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 깔고 누워 있었다.


하는 수 없어, 해 바뀌는 시점에 함께 축배 들기로 약속한 녹번동 정영신씨를 찾아갔다.
오늘 일기장에 올릴 사진을 모두 잃어버렸다며, 내 얼굴 한 장 찍어달라며 카메라를 내 밀었다.
신년 인사를 겸한, 강한 의지가 담긴 그런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되기를 기원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홈리스들이 왜 역을 안방처럼 생각하고, 서울역을 큰집처럼 생각할까?
역이니까 어디로던 쉽게 떠 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구걸하기 좋기 때문일 것이다.
기나 긴 역전의 세월이 쌓아 놓은 빈자들의 울타리다.
맞은편에 둥지 튼 양동과 동자동은 한 가닥 희망 촌 역할을 한다.






지난 22일은 충무로에서 열리는 사진전에 들려 낮부터 술을 마셨다.
돌아오다 보니, 서울 역 주변이 마치 전쟁터 같았다. 
총 맞은 듯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는데, 다들 술에 취해 있었다.
그래서, 홈리스를 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멀쩡한 놈이 일은 안하고 빈둥거린다'거나
'술만 마시고, 행패나 부리는 놈'이라는 등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들여다보면 다 사정이 있다. 더러는 게으름뱅이거나 알콜 중독자도 있으나, 일부일 뿐이다.
오히려 요즘은 그들이 대포폰, 대포통장, 대포차, 바지사장 등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무슨 천형이나 받은 듯 특별한 계층으로 보지만, 노숙자 되기는 아주 쉽다.
정해진 주거가 없는데다 돈 떨어지고,
일용직을 구하고 싶어도 경쟁에서 계속 밀려나면 그냥 노숙자가 되는 거다.





4~50대에 실직한 뒤 고시원 쪽방 다 거치고 찜질방 전전하다
그마저 갈 돈이 없으면 그때부터 노숙한다.
청년층은 대학 졸업하고 취직이 안 되어 좌절하거나,
또는 계약직 전전하다 막히면 30대 중반부터 노숙자 신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사연이 절절하다.
대개 노숙인이 되는 과정은 질병이나 사고로 노동력을 잃은 사람이 많지만,
사업이 망하거나 실직, 빚보증을 잘 못서거나 가정불화로 나온 사람도 있고,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직업을 택한 경우도 많다.
주로 주먹쟁이나 운동선수, 군인, 예술가등이 그런 직종인데,
그 중 많은 게 운동선수와 주먹쟁이다.






지하도 계단을 지나다 노숙하는 김용규씨와 눈이 마주쳤는데, 술 한 잔 하고 가라는 듯 종이컵을 들어보였다.

상원이와 소령이를 거느리고 술판을 벌여놓았는데,
그는 구미가 고향인 씨름선수 출신이다.





김용규씨는 젊은 친구들을 잘 보살펴주어 동생들이 지극히 모신다.
술이 부족하여 오천 원을 꺼냈더니, 상원이가 냅다 달려가 소주 두병을 사왔다.
다들 폭주 하지 않고 서서히 즐기며 마셨는데, 나만 쭉쭉 들이켰다.





씨름꾼 시절의 삿바 이야기에서 부터 몇일 전에 일어났던 싸움이야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시비를 걸어 노숙인과 싸움이 붙었는데,
경찰이 노숙인만 나쁜 놈으로 취급했다며 열변을 토했다.
같이 주먹다짐을 해도 일반인보다 노숙자가 불리한 것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에게 인권이란 없다.







너무 답답하여 “술~ 술~ 술이 원수다‘란 케케묵은 노래를 불렀더니, 다들 질급을 한다.
역무원에게 당장 쫓겨난다는 것이다.
그들은 쫓겨나지 않으려 공중질서를 지키지만, 내가 더 못난 놈이었다.
상원이가 노래 말에 시비를 걸며 ”형! 술이 원수가 아니라 돈이 원수지요“라고 말했다.
조그만 소리로 다시 불렀다. “맞다 맞다 맞았다! 돈이 원수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울역 쪽으로 나가니, 노숙하는 김지은씨가 빨리 가자며 재촉했다.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났다고 했더니, 괜찮단다.






따라갔더니, 진짜 그때사 선물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지은씨 덕에 도시락과 화장지 선물을 받았는데, 타이밍이 귀가 막혔다.

예배와 공연으로 보내야 하는 지루한 시간을 생략했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인생을 배우지만, 가끔은 약삭빠른 요령도 배운다.


이러다 사기꾼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2일 동지 날은 해마다 서울역에서 홈리스 추모제가 열리는 날이다.

‘홈리스 행동’을 비롯하여 ‘동자동 사랑방’등 40개 반빈곤인권사회단체가 연대한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에서 추진한 행사로,

무연고 홈리스 사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문화제다.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분향소가 마련되어 서울역광장을 오가는 시민들이 헌화하기도 했다.

인간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 죽음에 이른 무연고 사망자들의 죽음을 사회에 알려 추모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야하는 홈리스의 복지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거리나 쪽방에서 외롭게 죽은자를 추모하는 자리지만, 무관심한 사람이 더 많았다.

국민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살펴야 한다는 말들은 하나, 말 뿐이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지하도에서 연명하는 홈리스 이야기를 꺼냈더니, 한 친구가 핀잔을 주었다.

게으르고 술만 마시는 그들은 어쩔 수 없다며,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했다. 너무 열 받아 한 마디했다.

“눈에 비는 거로 판단하지마라. 니가 그 사람들 사정이나 한 번 들어 봤나?

돈이 사람을 망치는 세상의, 한 희생자일 뿐이다. 어쩌면 돈에 길던 니가 더 잘 못 산긴지 모른다.“






세상이 정해놓은 논리에 순응하지 못해 비참하게 죽었는데, 누가 그들의 죽음에 돌을 던질 수 있겠나?

추모제가 열린 날은 다른 날에 비해 덜 추웠지만, 홈리스의 삶은 일 년 내내 혹한의 겨울이다.






매년, 거리에서 죽어가는 노숙자나 쪽방 촌 빈민들이 300여명이나 된다,

그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절실하지만,

편안히 눈감을 수 있는 장례라도 제대로 치루어 주어야 한다.






그 날 서울역광장에서 한 해 동안 세상을 떠난 빈민들을 추모하며, 살아남은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들에게 안정적인 주거와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죽어서나마 영혼이 구천을 떠돌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 많은 무연고 사망자 중에 영정사진이라고는 세 사람 밖에 없었고, 다들 이름만 적혀 있었다.

무슨 놈의 팔자가 그토록 기구하여, 죽어가면서도 자기 얼굴 한 장 남기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추모제에서는 각종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법률상담, 홈리스 사진관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소리 없는 이들의 삶을 기록한 ‘홈리스 생애기록’이란 책도 출판해 나누어 주었다.

홈리스들은 책 자체도 짐일 뿐인지라, 책보다는 ‘동자동 사랑방’에서 끓여 준 동지팥죽을 더 찾았다.






오후7시부터 시작된 추모제 본 행사에는 다들 촛불을 들고 무연고 사망자들을 넋을 기렸는데,

'동자동 사랑방' 차재설씨가 나와 안타까운 추모사를 낭독했다.

쟁가수 박준씨와 ‘노들장애인야학’의 박경석씨의 노래도 있었지만, 마음에 불을 지핀 건 김가영씨의 추모노래였다.

‘새로운 선택’이란 노래도 마음 아팠지만, ‘오! 자유여, 오! 기쁨이여, 오! 평등이여, 오 평화여’ 라고 열창한 노래에 피가 끓었다.






추모공연이 끝난 후 죽은 홈리스의 은신처이기도 했던 서울역 구내를 비롯한 일대를 한 바퀴 도는 추모행진을 하며 구호를 외쳤다.

홈리스 차별을 철폐하라”, “홈리스 인권을 보장하라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1세라지만, 홈리스의 평균수명은 48세라는 걸 잊지 말자.

홈리스의 죽음은 스스로 택한 죽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방치한 죽음이다.

그들도 인간답게 죽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 빈소도 빌리지 못한 채 냉동 보관되다 화장터로 직행한다. 

더 이상 홈리스의 죽음을 방치하면 천벌 받는다.






이 날 추모제에는 '동자동사랑방'의 선동수간사를 비롯하여  김장수, 조두선, 김정호, 차재설, 김호태, 이난순, 유한수,

윤용주,, 박희봉, 홍홍임, 조인형, 유영기씨 등 많은 동자동주민들이 나와 팥죽을 나누어 주는 등 일 손을 도왔다.


우연히 행사장에서 옛 사우 박옥수씨를 만났는데, 요즘은 충무로에서 철수하고 집에서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동짓날 서울역광장에서 '홈리스 추모제'가 열렸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 동지다.
해마다 이맘때면 홀로 세상을 떠난 이름 없는 민초들을 추모하는 자리가 열린다.

올해 12월 21일의 동짓날은 눈 대신 비가 내렸다.

한겨울 치고는 덜 추웠지만, 빈민들의 삶은 일년 내내 혹한의 겨울이다.

매년, 죽어가는 거리의 노숙자나 쪽방 촌 빈민들이 300여명이나 된다,

그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욱 절실하지만,

편안히 눈감을 수 있도록 장례라도 제대로 치루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고독사’나 시체를 포기하는 각서, 사망신고를 할 수 없어, 죽어도 죽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죽는 것을 미리 걱정할 처지가 못 되는 것은, 사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노숙인이나 쪽방촌에 사는 빈민들을 대신해 43개의 민간단체가 나섰다.

한 해동안 세상을 떠난 빈민들을 추모하며, 살아 남은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들에게 안정적인 주거와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죽어서나마 영혼이 구천을 떠돌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올 한 해 동안 동자동 쪽방 촌에서만 돌아가신 분이 25명이고, 무연고자는 40명에 달했다.

대부분 영정사진이 없어 얼굴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대통령이란 년은 마약주사나 맞으며, 멀쩡한 상판대기와 변기나 뜯어 고치는 지랄을 하는데,

무슨 놈의 팔자가 그렇게 기구하여, 죽어가며 자기 얼굴 한 장 못 남겼는지 모르겠다.

이제 국민들 세금 도적질하는 정치꾼들, 없는 사람 착취하는 재벌, 눈치보는 공무원들은 말끔히 쓸어내야 한다.


이 날 추모제에 내린 비는, 비가 아니라 원혼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인간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 죽는 무연고 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힘 모아 싸워야 한다.






추모제에서는 각종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법률상담,

노숙인들의 취업을 돕기 위한 무료 증명사진 촬영 등의 행사도 진행됐다.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제도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엽서에 담은 ‘1000인의 우체통 프로젝트’ 이벤트도 열었다.

노숙을 탈출하는 윷놀이도 진행되었고, 따끈한 동지팥죽도 한 그릇씩 나누어 먹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빗방울이 굵어졌으나, 행사는 계속 진행되었다.

이현의씨의 추모사, 민중가수 박준의 노래, 안상호씨와 '희망공간 거리의 아빠들' 합창단 공연도 이어졌다.

이정훈씨의 연대발언과 동자동주민을 대표한 차재설씨의 투쟁발언도 있었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1세라지만, 홈리스의 평균수명은 48세라는 걸 잊지 말자.
죽음을 방치하면 천벌 받는다.





이 날 추모제에는 '동자동사랑방'의 박정아 대표와 공제조합 우건일 조합장을 비롯한 동자동주민들이 대거 몰려나와 행사를 도우며,

팥죽을 나누어 주었다. 반가운 사진가로는 ‘한겨레’ 김봉규기자, ‘서울문화투데이’ 정영신 기자, 김 원, 최인기씨를 만났다.

 

사진, 글 / 조문호


































































































요즘 동자방 쪽방에 들어 앉아 일을 하다보면, 주변이 산만해 집중이 잘 안 된다.
서울역에서 외치는 확성기소리가 마치 난리 난 듯 왕왕거린다.

지난 18일엔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해, 카메라를 메고 나갔다.
서울역 광장으로 가기위해 지하도로 들어가니,
잘 아는 노숙자 두 명이 동전놀이를 하고 있었다.
인기척에, 박씨가 돌아보며 죽은 처 삼촌 만난 듯 외친다.
"어! 기자형님 오셨네. 사진 찍어요. 찍어...“

요즘 동자동에서 나에게 두 가지 칭호가 따라 다니는데,
공무원들이나 젊은 양반들은 사진작가라 부르지만,
동내 사람과 노숙자들은 대개 기자양반이라 부른다.
지랄 같은 사진작가란 말보다, 늙어 쭈그러져도 기자 노릇은 하고 있으니,
기자라는 말이 더 편하더라.

‘가위 바위 보!’ 한 번으로 동전을 가져가는 놀음을 하고 있었는데,
전부의 동전이 삼천 원을 넘지 않았으니, 다시 빌려 주기를 계속했다.
잘 못해 동전이 시멘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손끝이 무디어 집어 올리기도 힘든데,
이기는 잠깐의 기쁨에, 그 짓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막걸리 두 병 값 밖에 되지 않는 돈이지만, 자기 전에 마시려고 버티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밖에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재미있다.
“배때지가 부르니 지랄 떠는 기지요. 지랄하면 몇 푼 주는 모양인데,
씨발넘들이 거지라고 사람차별까지 하고 지랄이야”

궁금증에 “막걸리 한 병 사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보니, 대통령하야반대 및 안보 지키기 국민대회’란
듣도 보도 못한 단체가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보수단체 늙은이 천여 명쯤 되어 보이는데, 보아하니 박사모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야당과 좌파의 민중혁명 음모를 규탄한다”며 나발 불었는데, 정말 과관 이었다.

그런데, 만만한 게 태극기인지 모두들 태극기를 들고 야단이더라.

나라를 위하는 척 호들갑 떠는 게 정상은 아니라, 서울역을 오가는 젊은이들 보기 부끄러웠다.
나도 거기서 사진 찍고 있었으니, 같은 패거리로 볼까봐, 얼른 막걸리 사서 지하도로 내려갔다.

‘제발, 늙은 놈 쪽 팔리게 하지마라. 이 정신 나간 꼰대들아!’ 

 

막걸리를 들고 가니, 박씨가 반색을 하며 반긴다.
“기자형님 진짜 막걸리 사왔네. 최고다 최고”
야! 천오백 원짜리 막걸리 한 병에 저렇게들 좋아하는데,
국민들의 돈을 엄청나게 도둑질한 기집 년은 뻔뻔스럽게 버티고 있으니, 또 분통이 터졌다.

술 한 잔 마시며, 고함을 내 질렀다
“박그내를 박살내자” 지나가는 젊은이들도 따라 외쳤다.
술 마시던 노숙자 둘도 덩달아 박살내자고 외치더라.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 주변을 지나치다 보면, 동자동을 거점으로 떠도는 노숙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들은 대개 지하철 출구의 셔터가 닫히는 후미진 곳에서 자는데, 차거운 바닥은 박스에 의지하지만,

입구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은 막을 수가 없다. 어떤이는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자,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들에게 온 몸이 쏙 들어갈 수 있는 침낭이라도 하나씩 제공해 주었으면 좋겠다.

더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적극적인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동자동 주변과 서울역 지하철 11번 출구를 무대로 오가는 노숙자들을 자주 만나는데,

그들의 바램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동자동 쪽방 촌에 입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일할 수 있다는, 연령제한 등의 갖가지 사정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데,

문제는 일용직 자리도 얻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무료급식소에서 밥은 얻어먹을 수 있으나,

밥만으로 그들의 외로움과 고생스러움을 못견디어, 구걸하여 술을 마시게 된다.






지난 일요일 늦은 시간, 지하철 타러 가다, 잘 아는 노숙자들을 만났다.
세 사람이 술값 마련을 위해 짤짤이를 하고 있기에 나도 끼어들었다.

막걸리 한 병 값이라도 보태주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잃어 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 동전을 나누어주려니까, 한 잔이라도 마시고 가라며 손목을 잡는다.

사실 술도 술이지만, 그들은 정에 더 굶주려 있다.









2012년에 시행한 전국 노숙인 조사 통계에 따르면 전국 노숙인의 수는 13,262명으로

이 중에서 거리 노숙을 하는 사람은 1,811명이고 시설 거주자는 11,451명이라고 한다.

사실상, 노숙인의 규모를 단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통계 자체를 믿을 수 없는 것은 고시원에서 지내는 사람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일용직이나 오 갈 때 없는 사람들이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도 바로 노숙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 대상인 것이다.

대개 노숙인이 되는 과정은 질병이나 사고에 따른 노동력 상실, 사업 실패에 따른 실업,

가출이나 이혼 같은 가정문제 등으로, 대개 경제적인 문제다.

그러나 여성이 노숙인이 되는 과정은 일자리를 잃은 남성 노숙인과는 다르다.

실업 상태의 남성은 사회 경제적 안전망의 부재가 중심이라면 여성의 경우에는 가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가정 폭력 등 가부장적 가족 구조 속에서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자녀가 있는 여성의 경우에는 양육이라는 난제도 따른다.











대개의 시민들은 노숙의 원인을 게으름과 알코올 중독, 정신건강상의 문제 등

일하기 싫은 나태함으로 노숙자가 되었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이러한 인식들이 노숙인 사회복지현장에서 걸림돌로 작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노숙인 쉼터 이전이 지역주민의 반대로 무산된다거나, 항의성 민원으로 인해 쉼터가 폐쇄되는 경우다.

하지만 노숙인 역시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같이 살아야 할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인 것이다.

특히 이들이 취업의 접근성이 용이한 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거리 노숙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것은 개인 공간 확보가 제일 우선이었고,

그 다음이 일자리 확보와 건강문제 순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적합한 취업 연계, 직업 교육, 의료서비스만 제공된다면

상당수가 거리 노숙에서 벗어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제 사회의 가장 빈곤층인 노숙자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그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입안해야 되고, 지자체에서도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러한 해결책이 마련될 때까지라도 우리 모두가 그들을 껴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우선, 집에 사용하지 않는 침낭은 없는지, 구석구석 살펴봅시다.

있으면 좀 보내 주세요. 나이 많은 노숙자부터 차례대로 전해 주겠습니다.

그러나 새 침낭은 보내지 마세요. 신품은 남대문시장에 팔아 술을 마십니다.


보낼 주소: 서울 용산구 후암로 57길 3-14 (동자동) 1동403호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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