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는 지난 31일은 왠지 일찍부터 마음이 들떴다.
몇 날을 송년회 핑계대고 퍼 마셨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종각 타종행사 같은 곳에 갈 수는 없잖아.

마침 ‘통인’의 관우선생께서 연락이 왔다.
낙원상가 밑의 ‘다리 밑 집’으로 오라는 것이다.
관우선생 단골집이지만, 좁아도 술집 분위기가 꽤 괜찮다.
마치 어린 시절 짚동 사이에 들어가 놀던 틈바구니 생각도 나지만,
집 이름이 너무 야하지 않은가?

인사동에 나가보니 낙원상가 가는 길이 꽁꽁 얼어붙어 몇 사람이나 넘어졌다.
연탄재라도 좀 뿌려야 했으나 요즘은 연탄재도 흔치 않다.
그런데, ‘다리밑 집’에 문이 잠겨 있었다.
연락했더니, ‘낙원아구찜’으로 옮겼다고 했다.

그 자리에는 관우선생을 비롯하여 송재엽씨 등 여러 명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미녀가 두분이나 있었다.
관우선생이 도예가와 큐레이터라고 소개했는데, 큐레이터라는 여인의 얼굴을 보니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사슴 눈처럼 큰 눈에 금방 눈물이 고일 것 같은 애잔함이 가득한데,
약간 도툼한 입술은 모든 기를 다 빨아들일 것 같은 강한 마력을 갖고 있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걸 눈치 챈 송재엽씨가 얼른 자리를 바꾸었다.
이런 저런 씨잘데 없는 이야기 나누며, 소주로 한 해의 여독을 씻었다.

이차로 다른 곳에 간다지만, 난 서울역으로 가야 했다.
한 해를 보내는 즈음이라 노숙하는 친구들과 한 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사동 최고의 부자나 인생의 벼랑에 선 사람이나 술마시고 노는 건 별 다를 바 없다.
쪽방 촌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가 기초생활수급자라 사는데 별 걱정은 없지만,
노숙자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을 부리는 것이 인간이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욕심 부릴 게 없다.
내일은 생각하지 않고, 있는 대로 나누어 먹는 그들이 진정 비운 자라는 생각도 한다.

패트 소주 두병과 육포하나를 사들고 서울역으로 같다.
개찰구를 나오니 지하도 한 쪽 구석에 낯 익은 자들이 보였다.
이종민, 김종학, 김상훈씨등 여러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낄낄거리고 놀았다.
총무를 맡고 있다는 김종학은 ‘종학이를 아느냐?’며 계속 천원만 달랬다.
서울역에서 종학, 종철, 종민, ‘쓰리 종’을 모르면 간첩이라며 유세했다.

마침 세밑이라 그런지 온정을 나누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외국인 가족이 각기 봉투를 들고 왔는데, 그 안에는 빵 하나 우유 하나, 양말 한 컬레, 핫펙 하나가 들어 있었다.
난 고맙다며 사진까지 찍었으나, 다들 시큰둥했다.
술이 취해 했던 소리를 되풀이하거나 가끔은 금지된 노랫가락이 튀어 나오기도 했는데,
지나가는 역무원들이 제지시키며 나가라고 종용했다.
몸에 상처를 입은 동자동 최씨는 ‘다시서기’직원들이 휠체어로 실어갔다.

이종민이가 카메라를 달래서 주었더니, 이런 저런 모습을 찍어댔다.
마침 경찰의 강제 해산에 직면해 어지러운 술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선물이 담긴 봉지는 챙기지도 않은 채 그냥 두고 갔다.
그런데, 정리를 하고 나니, 종민이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가져간 카메라는 5년 전에 삼십만원에 구입한 NIKON Coolpix P310으로 지금은 단종 된 카메라다.
술자리에서 마구 사용한 고물이라 돈은 되지 않지만, 오늘 찍은 사진파일이 걱정되었다.
그 심장이 멎을 것 같았던 미인도 미인이지만, 같이 마신 친구들의 초상사진도 많았다.

다른 역으로 옮긴다면 모르겠으나, 서울역에 있다면 언젠가는 만날 것이다.
한편으로 배신감도 일었으나, 아무래도 물욕은 아닌 것 같았다.
나에겐 소중할지 모르지만, 그들에겐 쓰레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분명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더 가까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라는 듯...
그들 무리에 합류하고 싶으나, 추위가 두려워 탐색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카메라를 빼앗긴 무장해제 상태가 되니 지갑에 돈 떨어지듯. 온 몸에 힘이 쫙 빠졌다.
기관총 급인 라이카를 챙기러 동자동 방으로 올라갔다.
이 카메라는 고향후배인 사진가 하재은씨가 선물한 카메라인데, 

좋기는 하지만 술자리나 현장에서 막 쓰기는 불편하다.
찍히는 사람들도 피해의식부터 느끼니, 큰 행사나 많은 사진을 찍을 때가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다시 카메라를 챙겨 서울역지하도로 내려갔으나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새로 나타난 어느 노숙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 깔고 누워 있었다.


하는 수 없어, 해 바뀌는 시점에 함께 축배 들기로 약속한 녹번동 정영신씨를 찾아갔다.
오늘 일기장에 올릴 사진을 모두 잃어버렸다며, 내 얼굴 한 장 찍어달라며 카메라를 내 밀었다.
신년 인사를 겸한, 강한 의지가 담긴 그런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되기를 기원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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