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에 새로운 노숙자 한 사람이 입성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이불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나타났다.
잠자리 때문에 챙겨 왔으나,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다,
밥 얻어먹으러 가거나 화장실 갈 때마다 보따리를 들고 다닐 수야 없지 않은가?
길가에 잠깐 두고 가지만, 언젠가는 환경미화원의 손에 들려간다.
그 때야 비로소 노숙자로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버리면 마음이 한 결 편하다는 것을...






교회 벽 앞에는 쪽방사람이 꽃밭을 만들어 놓았다.
얼마나 꽃밭이 그리웠던지, 떠도는 화분으로 꿈을 모았더라.
비록 한 평짜리 쪽방 인생이나, 꿈을 펼쳤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한 쪽에는 수박장사가 수박을 잔뜩 풀어 놓았다.
그러나 장소를 잘 못 골란 것 같다. 쪽방 촌엔 수박이 팔리지 않는다.
돈도 돈이지만, 다들 좁은 방에 혼자 있는데 그 큰 수박을 어떻게 처분하겠는가?






그리고 동자동을 길들이는 ‘서울역쪽방상담소’는 변하지 않았다.
그토록 줄 세우지 말라고 노래 불렀으나, 쇠귀에 경일기다.
몇 일전 롯데에서 선물을 보냈는데, 숫자는 주민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량이란다.
량이 모자라 줄 세울 수밖에 없다지만, 푸드마켓에 넘기면 되지 않는가?
거기서 필요한 것 골라 가면 될 텐데, 그렇게 생색내고 싶은가?






물건을 타기위에 일찍부터 나와 지루한 시간을 보냈는데,
박스를 열어보니 거의 백화점 수준이었다.
필요 있는 상품도 있었으나, 필요 없는 상품도 많았다.
그 다양한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골고루 전해주는 방법은
푸드마켓에 넘기는 방법 뿐 인데, 갑 질 거리를 넘기기 싫은 모양이다.






박원순 시장님! 제발 쪽방상담소 일을 동 사무소에 통합시키세요.
갑 질하는 일자리 창출해 무슨 똥바가지 덮어쓰려고 그러십니까?

그만 하십시요.

사진, 글 / 조문호












밤 깊은 서울역
홈리스들이 총 맞은 병사처럼 쓰러져 잔다.



어디선가 여린 선율의 바이올린소리 들린다.

거리의 악사가 들려주는 ‘아베마리아’다.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그들보다 가진 자들이 더 많지 않은가?




고통스런 삶이냐? 자유로운 삶이냐?
추운 날은 고통이고, 더운 날은 자유롭다.




처음 힘들 때는 고통스럽게 보였지만,
내가 익숙해지니 자유롭게 보이더라.




상대적이라 아무도 단정 못 한다.
그들에게 돌을 던지지 마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월에 받은 빵사진 



토요일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던 ‘한강교회 브레드 미니스트리스’의 자선이 8년 만에 끝났다.



지난 10월, 빵나눔에서 선물을 주기 위해 퀴즈문제를 내고 있다



지난 달 부터 사정이 어려운지 빵의 량이 줄더니, 급기야 손을 들고 말았다.
그러나 참 고마운 사람들이었고, 훌륭한 일을 했다.
배고픈 사람들을 살렸으니, 정부에서 표창장이라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2017년 11월 비오는 날, 빵을 타기 위해 길게 줄지어 있다.



말이 그렇지 8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토요일마다 한 결 같이 베푼다는 것이 말처럼 싶지 않다.
그 빵은 어려운 사람이나 노숙자들의 생계를 잇는 생명줄이었다.



지난 11월 찍은 사진, 빵을 타서 허급지급 먹는 노인,



빵의 량도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 일주일은 버틸 수 있는 량인데다, 빵을 탈 때 마다 카드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열두 번을 찍으면 컵라면 한 박스를 선물로 주는데, 그 라면을 받기위해 더 열심히 빵 타러 나왔다.



지난 9월에 찍은 빵나눔 사진


왜냐하면, 다들 몸이 불편하여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움직여 먹어라는 배려였고 유인책이기도 했다.
빵을 나누어 주는 봉사원들도 모두 친절했지만, 타 먹는 사람들도 새치기 하는 사람 한 번 본 적 없을 정도로 질서정연하다.


단지 아쉬운 것은 줄 세우기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지난 2월에 찍은 방봉지



난, 그들보다야 낫지만 밥 해먹을 공간이 없는데다,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좋아 열심히 타 먹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빵을 뺏어먹는 것 같아 늘 꼬리 줄에 붙어 빵을 놓칠 때가 많았다.



지난2월에 찍은 사진, 봉사원들이 주민들에게 도장 받을 카드를 만들어주고 있다.



없는 사람들이 잔정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한 번은 빵이 없어 돌아서는데, 누가 뒤에서 빵 봉지를 손에 쥐어 주었다.
돌아보니 강완우씨였는데, 자기 받은 빵을 건네고는 씩 웃으며 총총히 사라졌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순정의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지난 2월 찍은 사진, 빵을 받기 위해 길게 줄서 있다.



나야 인사동 친구나 사진하는 후배들 만나 면 고기도 얻어먹지만, 그들은 빵과 반찬 없는 밥이 유일한 영양 공급원이다.



지난 2월 찍은 사진, 빵을 받기 위해 길게 줄서 있다.



줄서 기다리며 서로 나누는 농담 따먹기도 가지가지다.
“딸딸이를 치니 먹은 게 없어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등 별의 별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다 나온다.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는 고상한 학문이 아니라 생존 자체다.



 3월26일, 힘없어 땅에 퍼져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주민,



문제는 한 3년 정도 얻어먹다 보니, 이젠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처음엔 맛있는 고급 빵도 있어 가방에 넣어 다니며 나누어 먹기도 했다.
2년 전 촛불시위로 광화문광장을 들락거릴 땐 그보다 좋은 도시락이 없었다.



3월26일, 휘어진 허리로 힘들게 걷는 할머니



한 번은 정의당 깃발을 들고 광화문광장에 나온 아들 햇님과 나누어 먹었는데,
얼마나 요긴하게 먹었는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배고픈 자식을 먹이고 싶은 부모마음이야 똑 같을 것이다.



3월23일 골목앞 풍경



이젠 빵을 사 먹는 수밖에 없으나, 돈 없는 노숙자들이 걱정스럽다.
돈은 없고 배가 고프면 장 발장 같은 사람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월23일, 고물을 옮기기 위해 손 수레를 끌고간다.



노숙자 지원센터인 ‘다시서기’에서라도 심각하게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팔고 남은 빵을 제과점에서 싸게 수거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3월23일,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계단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빵 나눔이 없어진 지난 토요일의 동자동 새꿈공원은 평소와 달리 한산했다.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있는 ‘동자희망나눔센터’ 앞 계단에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3월23일,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계단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주민들의 환경 개선을 위해 도와주는 것은 고마우나, 멀쩡한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릴 필요가 무언가?



3월23일,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계단에 그린 그림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봄단장은 좋으나, 쪽팔리게 하나은행 로고를 커다랗게 새겨 놓았다.
꼭 그렇게 생색을 내야 하는가?



3월23일, 그림에 하나은행  로고가  그려져 있다.



봄은 왔건만, 동자동의 봄은 요원한 것 같았다.
정치인들은 입만 벌리면 서민복지를 노래 부르지만, 빈민들의 삶은 피폐하기 짝이 없다.



3월26일, 목련 나무아래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주민들



공원의 목련조차 차마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기력이 없어 길에 퍼져 앉았거나, 잠든 사람이 여기 저기 늘려 있었다.



3월23일, 힘없이 쓰러져 졸고있는 노숙인



생사의 기로에서 허덕이는 사람이 도처에 늘렸는데,

서울역 대합실 티브이에서 나오는 뉴스라고는 하나같이 간 뒤집어지는 소리뿐이었다.



3월23일, 벤취에 누워 단잠에 빠진 노숙인



정치하는 계집이 나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반문특위니 성 접대니 씹 지랄 같은 소리나 지껄였다.
권력 가진 놈들의 추악한 짓거리에 치가 떨린다.



3월26일 저녁, 서울역 지하도 입구에 자리를 잡은 노숙인들



“씨바~ 제발 사람 좀 살자”


사진, 글 / 조문호





















일년 전 정선에서 십년 넘게 처박억아 둔 먼지투성이 액자를 끄집어낼 때 본색을 드러낸

폐질환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천형의 병이 되고 말았다.





그 때는 심한 호흡장애로 입원까지 했으나, 기관지 확장제인 ‘테오란-비’를 먹고
‘아노로 엘립타’를 매일 흡입하는 식으로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통풍으로 자이로릭까지 매일 먹어야하니 약통을 끼고 사는 편이다.
약 타러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들리는 게, 생활화 된지 일 년 가까이 되었는데,
담당의사가 묻는 말은 항상 똑 같다.






의사 : 담배 끊었습니까?
나 : 아뇨
의사 : 하루에 몇 개피나 피웁니까?
나 : 반 갑요.
의사 : 안 끊으면 죽습니다.
나 : 안 죽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의사 : 술은 얼마나 마십니까?”
나 : 소주 한 병 정도 마시지만, 혼자 있을 때는 안 마십니다.
의사 : 술과 담배를 반으로 줄이세요
나 :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그냥 꼴리는대로 살다 죽는 것이 편하겠네요.






대책 없다는 듯이 “약이라도 잘 챙겨 드세요”라며 진료를 끝낸다.
한 달에 한 번씩 주고받는 대화가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반복되는데,
처음 몇 번은 고문처럼 느껴졌으나,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답한다.






지난 5일은 ‘진주청국장’ 누님의 팔순이라 양재동에 갔다.
모처럼 남매가 만났으니, 어찌 술이 없을 수 있겠는가?
다들 맥주를 마셨으나, 혼자 소주를 마셨다.
기분 좋아 옛이야기들 곱 씹으며 즐거운 시간 보내다 돌아왔다.





서울역에서 내려 지하도로 나가니, 노숙하는 천씨가 죽은 사람 만난 듯 반긴다.
“아제! 어디 갔다 오요? 술 한 잔합시다”
소주를 사주었으면 그냥 올 것이지, 같이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종이컵에 따라 두 잔 정도 마셨는데, 몸에 신호가 왔다.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어지러워,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천씨가 “와 그라요? 이제 다 됐구나”며 지하도 밖까지 부축해 주었다.
길 모퉁이에 앉아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가누었다. 






뿌옇게 뒤 덥힌 미세먼지까지 가쁜 숨에 한 몫 하는 것 같았다.
빨리 가는 게 상책이라 집 앞까지 왔으나, 4층까지 오를 자신이 없었다.
저만치 김원호씨와 동네사람들이 보였으나,
나보다 나이 많은 늙은이들에게 부축해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없었다.






한 칸 오르고 쉬기를 수십 번 했는데, 드디어 4층 입구의 박씨 신발이 보였다.






“천국 오르기가 너무 힘들다”며 복도를 들어서니,
마치 저승사자 같은 놈이 한 쪽 구석에 버티고 있었다.
자세히 쳐다보니, 술에 젖어 사는 옆방의 알중 최완석이었다.






관속에 들어왔으니 이젠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아 뻗어 버렸다.
숨 못 쉬고 자다 죽는 것도 괜찮을 텐데, 죽는 것도 그렇게 쉽지 않았다.
저녁 무렵에서야 정신이 들었는데, 라면 국물 생각에 물을 끓이다 생각 했다.
술과 담배를 끊겠다는 것이 아니라, 낮은 방으로 이사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장터에서 점쟁이 할매들이 정영신씨에게 여러 번 들려주었다는 끔찍한 말이 기억났다.
“빌빌거리며 엄청 오래 살 겠네”



사진, 글 / 조문호













다들 가족과 즐겁게 지낸 정초에
무슨 놈의 천형의 죄를 지었는지,
지하도의 돌부처가 되어버렸다.
죽느냐? 사느냐? 아무 생각도 없다.

신이시여!

이제, 자리를 바꾸소서!

사진, 글 / 조문호











토요일만 되면 난리 쳐들어 온 것처럼 온 동네가 소란스럽다.
서울역광장에서 벌이는 박근혜 잔당들이 벌이는 패악 질 때문이다.
확성기소리가 얼마나 큰지, 쪽방의 봉창이 울릴 정도다.
낮잠은 커녕, 토요일은 아예 녹번동서 보낼 때가 많다.





지난 토요일은 정영신씨가 잠수 타는 바람에 녹번동도 갈 처지가 못 됐다.
대관절 어떤 놈인지 꼬라지라도 볼 심산으로 서울역광장으로 갔다.






한심스러웠다.
대부분 나 또래의 늙은이들이었다.

늙은 것도 서러운데, 더 이상 쪽팔리게 하지마라.

왜 애들에게 도매금으로 꼰대소리 듣게 하냐?.
좆도 모르면 방구석에 처 박혀 티브이나 보고 놀지...






토요일 집회 때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노숙자조차 어디 갔는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못 말리는 똥고집들도 도망 칠 정도니, 더 무슨 말을 하랴!.






각 지역마다 관광버스로 동원되었는데,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필경 정치권에서 흘러들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쪽바리 계집같은 나씨 패거리라도 와서 반겨야 하는 것 아니가?

초록은 동색이지만, 함께 하기는 챙피한 줄 아는 모양이구나.





가만히 살펴보니, 사이비 광신도 같은 사람도 많았다.
광신도가 아니면 열사에 가까운 우국지사거나...
“내 목숨을 가져가고 박대통령 석방하라“는 글을 등에 달고 다녔다.

죄인을 대통령이라고 부르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그런데, 성조기와 태극기는 왜 들고 다니나?

우리나라가 미국놈 속국이더냐? 그들에게 이용 당한 민족의 한을 진정 모른단 말인가?

그리고, 더 이상 태극기를 모독하지마라. 신성한 태극기에 혐오감 느끼게 만든다.





인간적인 동정심에서 박근혜를 삭방해야 한다는 말은 이해되지만,

전두환을 사면시켜 생긴 부작용을 지금 두 눈으로 똑똑이 보고 있지 않은가?

악마는 죽여야 재발을 막을 수 있고, 당한 국민들도 잊게된다.


이제 명분도 실속도 없는 패악 질은 그만하자.


사진, 글 / 조문호





















길 잃은 자 몰려드는 곳이 서울역이다.
오 갈 데 없는 방랑자의 종착역이다.






가진 것이 없으니 욕심이 없고,
희망이 없으니 일하지 않는다.
더러는 빈자의 자부심을 위안 삼는다.





육신은 무너졌고, 정신은 황폐하다.
천국의 복음보다 컵라면 한 그릇을 믿으며,
막걸리로 시름 달랜다.






이젠, 지하도에 자리 깔면 끌려 나온다.
야생의 삶이 서서히 길들어 간다.






온 종일 ‘다시서기’에서 티브이보다,
밥 때 되면 줄 서서 밥 타먹고,
밤 되면 합숙소에서 잔다.


“바르게 살자” 새마을 구호처럼...






굴하지 않는 역전의 용사도 있다.
끝까지 바람찬 광장에서 버틴다.
파지박스를 벽 삼아 두더지처럼 잔다.






왜 추운데서 개고생 하는가?
“길들기 싫은 노숙자의 자존심이다.”


세상을 원망하며 죽음을 재촉한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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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전 노숙거사 김지은씨가 기원한다.
아프지 말라는 간절함은 모든 빈자들에 대한 기도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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